몬터규 로즈 제임스 -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3
몬터규 로즈 제임스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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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내가 처음 공포소설을 접했던 것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러브크래프트, 스티븐 킹 등, 숱한 공포소설들을 보아왔다. 그런데 몬터규 로즈 제임스라는 이름은 처음보았다. 다른 공포 단편모음집에는 실려 있었는데, 모음집을 그닥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보지 못한 모양이다.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공포 소설은 대체로 옛스러운 분위기와 흔히 잘아는 서양풍의 유령이나 악마가 등장하고, 마무리로 러브크래프트가 즐겨쓰는 미지의 공포로 마무리 된다. 배경은 전부 빅토리아 시대라서 그런지 아무리 옛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해도 중세 고딕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중세 시대의 잔재(종교적 권위가 높다던가, 장원, 영주 등)와 근대 사회가 공존하는 분위기라던가, 근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망령이 주는 태고적 공포, 종교적인 성역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코스믹적 공포는 고딕에서 발전된 현대 공포소설의 기초라 해도 될듯 하다.
 작가 분이 심한 보수주의자라 불릴 정도로 옛스러운 걸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클리셰가 흔한 편이다. 예를 들면 각 단편마다 주요인물에 목사가 꼭 나온다던가(이들은 대체로 해결사 또는 조력자 역할이다.), 주요장면으로 영국 국교회 성당이 자주 나온다던가(이런 경우 100% 그 성당과 관련된 흑막이 있다.), 고문서나 유물이 인물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면 네크로노미콘 급의 마도서나 주술도구였다던가(이런 경우 소유자가 공포스러운 일은 겪어도 공정하게도? 죽는 건 나쁜 놈들 밖에 없다.), 마지막 흑막으로 털이 북슬북슬한 붉은 눈의 악마가 자주나온다던가(묘사가 조금조금씩 다르지만 종합해보면 전부 이런 모습이다.).
 총 4개의 단편집을 한 권에 묶은 것이라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거기에 각 단편마다 분량 차가 심하게 차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웃긴 것은 중요한 얘기만 한다면서 한 두페이지 넘게 엄청 질질 끈다는 것이다...), 다른 단편집에 비해서 읽다가 지루함을 많이 느낄만도 한다. 전부 소개할 수는 없고,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것만 꼽는다.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는 전형적인 하얀 천 형태의 유령이 나오는데, 요즘에는 흔해빠진데다 귀요미로도 취급받고 심지어는 개그소재로 뒹구는 그런 녀석이 여기서는 진짜 무섭게 나와서 아, 이 녀석이 원래 이런 녀석이었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역시 그 시대에 유명했던 것은 그 시대 사람 손에서 나와야 진짜 무서운 것 같다.
 '대성당의 옛이야기'는 분량이 약간 많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옛 우주의 신이 강림하는 듯한 코스믹적 공포가 일품이다. 단지, 그 공포스러운 존재가 악마처럼 종교적인 존재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다른 단편인 '바체스터 대성당의 성가대석'을 같이 놓고 보면 M. R. 제임스의 소설 속 오래된 성당은 마치 크툴루가 잠들어 있는 르 뤼예에 있는 건축물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옛것이 없어져가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울부짖는 우물'은 저주받은 땅을 중심으로 마치 좀비물을 연상시키는 공포요소(실제로는 저주받은 망령이지만, 묘사가 마치 좀비 같다.)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역시 어른들이 가지말라는 곳은 가지 말자.
 '소품'은 특정 지역에 대한 공포심을 다루는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계의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라는 듯이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묘사가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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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살인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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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왠만한 추리 독자들을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은 이분. 아비코 다케마루하면 다들 아실 겁니다(이러면서 정작 저는 그 유명한 살육을 아직 못 읽었지만;;). 제목 그대로 0을 나타내며 흩뿌린 피자국을 보면 또 한바탕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내려놓아야 덜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0의 살인은 살육에 이르는 병이 나오기 전에 나온 책이기도 하고, 이 시리즈인 하야미 삼 남매는 전혀 그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호 노파인 후지타 가쓰의 생신을 맞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녀의 변호사, 전담 의사, 조카인 구지타 다쓰오와 히로코, 남동생인 미우라 겐지. 생신잔치는 막바지에 이르러 가족 간의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다가, 티타임에 커피를 마시던 구지타 히로코는 누군가 넣은 청산가리로 인해 독살당하는데...

 전반적으로 본격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는 흐르지만, 대체로 등장인물들이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마냥 하나같이 나사 빠져 보이거나 개그스럽다. 비슷하다고는 했지만, 도쿠야는 과장스러운 개그라던가 약간 비현실적인 요소(예를 들면, 수수께끼 시리즈의 부잣집 아가씨 경찰인 효쇼 레이코라던가, 마법사는 완전범죄를 꿈꾸는가의 마법적인 요소 등등.)까지 넣어서 개그스럽게 만드는 반면, 다케마루는 진짜 있을 법한 사례들을 넣어서 개그스럽게 한다. 그래서 개그인데 개그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주연인 하야미 삼남매는 각각 포지션이 나누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사건해설역이자, 의뢰인 역할 격에, 동생들에게 봉취급을 당하는데다, 지지리 복도 없는 장남 하야미 교조. 탐정 역이자, 커피 중독자인 미남 카페 점장인 둘째 차남 하야미 신지. 온갖 의견과 가설을 내놓으며 막무가내 추리를 하는 미스터리 마니아 막내 여동생 하야미 이치오. 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에서 천재적인 아마추어 탐정의 현란한 말빨 솜씨 같은 걸 기대하지 않기를 바한다. 왜냐하면 다들 그럴 싸하게 말은 하지만, 정말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같은 분위기보다는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실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토론하는 분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온갖 추리소설에서 나오는 밀실이나 살해방식 등을 들먹이며 추리를 하는 이치오 같은 경우는 진짜 미스터리 소설 독자나 다름없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아마추어 탐정의 진정한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아마추어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기발한 추리라던가 트릭 없이 우연을 가정으로한 전개가 많다. 이전에도 우연을 가장한 추리를 본 적이 있어서 말하지만 상당히 김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랑 이번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명탐정스러운 아마추어 탐정이 나오면서 상당한 트릭이 나오다가 중간에 이런 전개를 내놓으면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추리를 하는 건 일개 미스터리 마니아일 뿐인 보통 사람인데다, 지극히 현실스러운 배경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열에 아홉은 일어날 법한 우연이 일어나도 조금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0의 살인의 살해현장 중 하나를 보면, 아비코 다케마루가 살육에 이르는 병에 나오는 고어틱한 걸 표현하기위해 시범적으로 넣었을 법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있어서 조금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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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노버트 데이비스 시리즈 Norbert Davis Series
노버트 데이비스 지음, 임재서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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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부터 하드보일드 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챈들러까지 극찬한 인물인데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이름이라 노버트 데이비스는 나름 기대되는 이름이었다. 기대한 만큼 재미있었나 물어본다면, 조금 당황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고, 나름 하드보일드만의 재미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좀 당황스럽다고 밖에 평할 길이 없다. 그 이유는 노버트 데이비스의 소설에서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립탐정 도앤은 듬직한듯 하면서 못말리는 성깔을 가진 개 카스테어스와 함께 의뢰차 멕시코 깊은 곳에 위치한 로스알토스로 향한다. 도앤과 함께 관광버스에 탄 이들은 다향하다. 낭만을 가진 여교사 재닛,  오합지졸의 핸쇼 가족, 온갖 멋을 떠는 귀족 아가씨와 그 일행. 그런데, 로스알토스에 도착하자마자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도앤이 의뢰를 받아 찾아간 은신 중인 미국 경찰이 지진으로 사망하고, 여교사 재닛은 가지고 온 옛 스페인 탐험가의 일기장 때문에 그 지역 대위에게 쫓기다가 현상수배범과 맞딱뜨리고, 거기에 귀족 아가씨의 사망까지 이어지는데...
 일단 탐정이 등장하고 어느정도 하드보일드하기까지는 하다. 하지만 대체로 보면 이게 추리소설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생뚱맞을 것이다. 지역 군인들 때문에 아무런 조사도 못하는 마당에, 곳곳에서 최대 흑막이라면서 경계하지를 않나, 사건은 계속 터지질 않나...거기에 온갖 현실적인 냉혈함이 흐르는 하드보일드가 확실히 있음에도 상당히 가벼운 느낌이다.

 아직 챈들러도 읽지 않았음에도 하드보일드에 나오는 탐정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데, 그에 비하면 도앤은 상당히 만담꾼이라 해도 될 정도로 익살스럽고 코믹한 편이다. 거기에 카스테어스가 덤으로 상황극을 만들어서 웃기는 상황이 더해진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 같은 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시대적면에서 2차세계대전이 한창일때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약간 저마다 생각하는 지역비하적인 면이 많이 보였다. 멕시코 사람들이 갖는 역사적 자부심 속에서 돈만 밝히는 미국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비하하고, 반대로 미국 사람들은 멕시코가 못 살고 돈만 던져주면 환장한다고 생각하고.
 추리면에 대해 말하자면, 추리소설을 좀 읽는다 하는 분들이 원하는 그런 추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사건과 범인이 있을 뿐이라 이게 뭐냐고 혹평을 하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기서 나오는 탐정은 우리가 아는 엄청난 추리력으로 트릭을 간파해 범인을 알아내는 그런 부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완벽하게 현실에 존재하는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업으로서의 탐정 그 자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늘 알던 탐정의 모습이 나오지 않고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탈하게 보일진 몰라도 이게 노버트 데이비스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탐정의 모습과 현실적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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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성 - <드래곤마스터> 포함 옴니버스 작품집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8
잭 밴스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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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성

 그 동안 SF를 보면 먼 우주를 개발하려고 탐험하는 내용을 흔하게 보았다. 낯선 행성에 갔다가 정체모를 원주민들에게 습격당하거나, 반대로 원주민들을 정복하거나, 또는 그 밖의 여러 상황이 벌어지는 래퍼토리지만, 개발을 진행하는 내용이 전부고 그 이후의 생활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최후의 성은 우주를 개발하고 난 이후의 인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내용이다. 그래서 먼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들과 자원과 영토를 다룬 전투보다는, 문명의 발전 끝에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과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는 관점이 많았다.
 먼 우주로 나갔던 인류는 외계인 노예들을 이끌고 지구로 돌아와, 성을 쌓고 토착지구인들을 경멸하며 귀족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계인 노예 중 '멕'이라는 종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성들이 일일이 함락되면서 위기감을 느끼는데...
 내용을 보면 성에 사는 이들이 정말 꼴불견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잘난 맛에 살고, 온갖 화려한 것에 둘러 싸여 살고, 다른 외계인 노예들이 하던 일이지만 사람으로서 할 수도 있는 일을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이라며 기피하는 모습은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부유층, 귀족, 기득권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답답한게, 반란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는 것이라고는 지금의 화려한 생활을 이어나갈 궁리나, 직접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내놓는 탁상공론식 이론에, 자신들은 하등한 외계인들에게 패배할리가 없다는 허세에 빠져 자만하는 것뿐이다.
 성에 사는 귀족들이 부리는 외계인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지금도 존재하는 인간군상이 보였다. 멕, 페인, 괴조, 노예, 짐승차량이라는 외계인이 있는데 이 중 몇몇을 보면 이렇다. 반란을 주도하는 멕은 외계 생명체이긴 하나, 더듬이로 모두가 하나의 정신을 공유한다는 점을 보면 컴퓨터 네트워크처럼 보보이면서, 부당한 대우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군중심리 같기도 했다. 페인은 요정 같다던가, 연약하고 저항을 못한다는 부분을 보면 마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많은 이들이 욕망으로 만들어진 이상 속에서 원하는 순종적 여성을 나타낸 것 같았다. 괴조의 경우는 화려하며 수다스럽고, 무례하지만 정작하는 건 도박 밖에 없는 걸보면 말만 번지르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허세 많은 인간상의 모습이었다.
 이 최후의 성에서 문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게 문명의 쇠퇴인가, 또 다른 발전인가, 생각해보게 됐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눈부실 정도의 기술력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성은 최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문명의 폐허에서 생존한 자들의 모습은 잃어버린 영광을 그리워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이 더 값지다고 여기는 모습이었다. 문명의 발전이란, 외견상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내면이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드래곤 마스터

 최후의 성 만큼 특이한 배경이라 순간 이게 SF인지, 중세물인지, 중세 판타지에 스페이스 오페라가 가미 된 건지 해깔릴 정도였다. 우주선이 나오고 외계인도 나오는데, 중세시대 같은 분위기에 드래곤을 기르고 병력으로 이용하는데다 전지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제라는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걸 보면 이게 뭐냐는 감상이 나오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설정에 비해 내용은 지극히 혼돈의 연속이었던 중세 분위기에 갈등과 참극의 연속이었다.
 에얼리언스라고 불리는 행성. 이곳에는 먼 옛날 어떠한 이유로 숨어살게 된 인류가 살고 있었다. 영토와 드래곤을 가지고 경쟁하는 행복계곡의 어비스 카콜로는 오랜 숙적인 벤백계곡의 조이스 벤백에게 오래 전부터 에얼리언스에 살아온 사제단에 대해 파해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이스 벤벡은 오래 전, 에얼리언스를 침공해 다수의 인간을 납치하고 공격해온 베이직들이 다시 침공할 것이라고 하며 철처히 대비한 뒤 같이 몰아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어비스 카콜로는 조이스 벤벡과의 타협 끝에 벤벡들이 침공할 시에는 협력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가지만, 자신의 원래 목적대로 벤벡계곡을 연이어 공격한다. 그러던 중, 베이직들이 침공해 행복계곡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지상에서는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외계인 침공까지 겹쳐서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험난한 산지형과 계곡, 봉우리를 넘나들며 펼치는 전술과 계략, 드래곤으로 불리는 존재들이 전장에서 펼치는 엄청난 살육전, 베이직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들의 충격적인 실태와 학살에 덤으로 있는 장황함은 중세극 분위기와 맞먹었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나면, 사지절단은 물론이고 참수, 화형 등등.. 이 만큼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러한 중세극 분위기에서 나온건 서로가 서로를 지배해야 해야한다는 지배자적 논리였다. 특히나 사육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병기들은 상상을 초월한 혐오가 느껴질정도로 끔찍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람으로서 에얼리언스의 사람들을 편들어주고 싶어도, 끝에 밝혀지는 드래곤의 진실을 보면 그들, 아니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베이직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족과 인간이라서 다행이지 인간과 인간끼리 이런 짓을 벌였다면...2차세계대전 당시 행해진 생체실험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제단들의 모습을 보며 그 동안 그들이 기피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이 바로 이러한 지배자적 논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들은 작중에서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에얼리런스에 사는 인류나 베이직들과는 달리 전혀 긴장감이 없었고 위아래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걸보면서, 모든 번뇌를 떨쳐낸 도인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숨어사는 형식으로 기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위치는 바로 사제단들과 같은 위치가 아닐까 싶었다.


 끝으로 불새 2기를 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불새 출판사 대표님에게 SF를 많이 접하지 못한 독자로서 신세계를 보여주신 것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SF 불모지에서 한줌의 희망을 바라는 노력과 바람을 잊지 않겠습니다. 표지의 붉은 선이 한 줄기의 직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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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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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추리 3대기서라 해서 상당히 긴장하면서 봤다. 책을 읽으면서 긴장할게 뭐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서문에서부터 수학, 천문학, 중세시대 건축법, 화학, 유대교 신비학, 오컬트, 악마학, 거기에 인물들의 별칭, 율법서, 종교분쟁, 의학, 심리학, 최면술, 음향학, 조로아스터교 등등... 소름돋을 정도의 방대한 지식에 오구리 무시타로 넌 누구냐, 가 절로 나올 정도다. 역시 기서라는 말이 그냥 붙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3대기서는 시리즈마냥 한 번에 몰아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흑사관만 해도 머리가 터질 정도니까...

 노리미즈 린타로는 하제쿠라 검사로부터 후리야기 가문의 흑사관에서 일어난 사건을 의뢰받는다. 하지만 수사 초기부터 온갖 기이한 사실과 맞딱뜨린다. 피해자인 그레테 단네베르크 부인의 시체에서는 빛이나고, 흑사관의 성주가 만들었다던 그레테 인형이 용의선상에 올라가는데...
 일단 본론적인 걸 말하자면...이 책은 굉장히 이상하다...온갖 학문적인 게 쏟아지고 현실적이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다보니 이렇게 끔찍한 건(재미없다는 게 아니니, 오해마시길...) 없다는 생각이든다. 장광설로 유명한 교고쿠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사와 문화적인 것만 다루고, 한 번에 길게 말하하고 중간에 텀을 주는 차라리 교고쿠도가 낫다. 흑사관은 말그대로 백과사전이다.
 오컬트 현상을 설명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오고, 자살을 타살이라고 증명하는 부분에서 행성 궤도 이론이 나오고, 거기에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근대 조각품의 한 부분이 상징하는 의미로 분석하는 마당에 더 설명할 것이 없다. 거기에 이 노리미즈라는 녀석은 한 얘기를 다하고 이제 넘어가나 싶다가도 또 다른 분야를 들고 나와 정말 힘겹게 만든다. 예를 들면 토속인종학을 근거로한 분석을 하고 끝내나 싶다가 갑자기 묵시록을 근거로 한 새로운 가설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정말 피곤한 인물이다. 보통 추리에서는 요점만 말하는 걸 노리미즈는 범인의 심리를 온갖 학문으로 해석하려고 해서 읽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각종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트릭이 넘쳐나는데 건물 전체 도안이 있다면 모를까, 부분 그림이 있어도 이해할까 말까 하다. 거기에 트릭보다 더 많이 나오는 암호는 아예 어떻게 해독되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이중 삼중 암호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읽을 때 가장 힘든 점을 말하자면 현기증이 난다는 것이다...노리미즈의 말을 따라가다보면이해의 범주를 넘어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다. 특히 그게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건 제 1장부터 제 3장 부분과 노리미즈와 피해자들 간의 말싸움하는 부분이다. 교교쿠도의 철서의 우리에 맞먹는 각주 홍수에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한다... 더 웃기는 건 노리미즈에게 농락당하는 하제쿠라 검사라던가, 구마시로 수사국장을 보면 꼭 책을 읽고 있는 나 같다는 것이다. 뭐, 노리미즈의 현악적인 말 솜씨에 맞서 빌헬름 제후의 대한 구절로 응수하는 하제쿠라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
 더 혼란으로 휩싸이게 하는 건, 그 엄청난 노리미즈의 분석과 현악적인 추리가 완성되어도 범인이 그걸 순식간에 불태워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몇 번이나. 노리미즈의 엄청난 분석력을 지켜본 입장으로서 그 순간이 얼마나 기가차고, 허탈한지...도서관 수십채가 불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이 작품이 안티 미스터리라고 불린다는데, 확실히 그렇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인형이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하는 섬뜩한 전제나옴메도 불구하고 노리미즈는 그걸 전부 미스터리(오컬트)가 아닌 미스터리(트릭)라고 증명한다. 문제는 그걸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다.
 이 엄청난 현악과 계속되는 피살, 그리고 계속해서 무너지는 노리미즈의 추리 끝에 존재하는 흑사관의 진실은 실로 충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사관 만으로도 엄청 지쳐서 기서를 읽을 때는 정말 날을 잡아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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