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관 - 밀실 살인이 너무 많다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추리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뭘까? 명탐정 코난의 영향으로 다들 어느 정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알리바이, 트릭, 밀실. 그 중 밀실은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부터 내려온 단골 소재다. 그런 밀실이 하나도 아닌 7개.
 진지한 느낌을 기대하며 첫 단편을 보고 밀실 살인소설이라면서 왜 이래? 라고 성질 급하게 판단하신 분들은 뒤에 작가와 역자 후기를 미리 보셔야 할 겁니다. 저도 진작에 안 봤으면 오리하라 이치를 오해할 뻔했습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초기 소설이라는 점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냥 쉽게 말해 머리 아프게 고민말고 밀실로 즐기자는 내용이니, 가볍게 보는 편이 좋습니다.
 추리하지말고, 즐기세요~

 

 밀실의 왕자

 

시라오카에서 매년 열리는 스모 대회에서 연승을 이어가던 서쪽 상점회의 쓰후노우미를 꺾고 동쪽의 도키토야마가 승리한 날, 밀실의 체육관에서 기절한 4명의 상인들 틈 사이에 도키토야마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밀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구로호시 경감은 난해한 사건에 흥미를 보임과 동시에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의 장벽에 한계를 느끼는데...
 밀실 덕후인 구로호시 경감의 좌충우돌 서장을 장식하는 만큼, 가볍게 볼 만한 밀실 사건이다. 얼핏보면 정말 답이 없는 밀실인데, 알고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는 구성을 보여준다. 

 낚시줄과 기타 등등으로 문 밖에서 문을 잠그는 기행이라던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나올 법한 비밀장치 같은 추리소설 적인 복잡한 장치 없이도 간단히 밀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얼핏보면 구로호시 경감을 작가가 대놓고 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한 여자에게서 큰아버지의 변고를 신고 받고 출동한 구로호시 경감. 도착한 저택은 대부호 가자미 아키라의 저택으로 신고한 여자는 아키라의 조카였다. 아키라의 방이 잠겨 있는 걸 확인한 구로호시 경감은 또 다시 밀실병이 도지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아키라의 방에는 두 구의 옷을 걸친 백골 사채와 둔기, 독극물 등 흉기로 추정되는 온갖 도구들이 발견된다. 더욱 큰 문제는 방 열쇠가 백골 시체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인데...
 첫 밀실부터 너무 가벼워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로 진기명기한 밀실이 나와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조금은 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밀실이라 다른 밀실들에 비해서 다소 많은 기묘함을 느꼈다. 문제는 밀실은 사족을 못 쓰면서 정작 해결을 못하는 구로호시 경감이었으니...

 불량한 밀실

 시라오카에 있는 두 야쿠자 조직, 야마다 회와 산와 회의 대립으로 경찰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돈다. 급기야 야마다 회에서 로켓포를 입수 했다는 첩보가 들리자 산와 회는 핵 셸터까지 구입해 회장 보호에 나선다. 마침내 로켓포가 산와 회 저택을 휩쓸지만 핵 셸터에는 그 어떤 상처를 내진 못한다. 그러나 산와 회 회장은 셸터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데...

 밀실 외에도 뭔가 일본스러운 예능요소들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예상 외로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는 야쿠자라던가, 일본식 저주의식, 거기에 밀실의 핵심이 되는 핵 셸터까지... 이 쯤하면 더 할 말은 없다.

 거창한 장식이 많지만, 역시나 별거 아닌 것으로 밀실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결과적으로 불량한 밀실은 밀실 사건이 아니라 거의 밀실을 가장한 생쇼였지만...
 
 그리운 밀실

 시라오카 출신의 베스트셀러 추리작가 쓰지이 야스오. 그는 2년 전, 별장겸 작업실인 통나무집에서 3명의 편집자의 눈을 피해 밀실인 서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2년 뒤, 연재하던 밀실의 부호경감의 해결편 발표를 앞두고 문제의 서재에서 쓰지이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상당히 수위 높은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동기가 좀 어이없지만 나름 공감이 가서 참으로 요상한 밀실이었다. 아마 여기 범인 뿐 아니라 추리독자들이라면 전부 공감할 만한 동기라 해도 될 법 하다.

 여담이지만, 언제 들었던 추리소설에서 가장 어이없는 결말이라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와키혼진 살인사건

 교직 은퇴 후, 시라오카로 이사 온 오쿠야마 교스케. 그는 얼마 전, 와카혼진에서 발생한 밀실사건에 영감을 받아 <와카혼진 살인사건> 집필에 나선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와카혼진의 잇폰야나기 가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인데...
 아무래도 패러디 작품의 명성 때문인지(일단 제목부터 보면 알만한 분들은 다 아니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건이 나름 진지한 느낌이 강했다. 작품 속 작품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앞에서부터 내용 구조가 탄탄한 느낌이어서 약간은 유머스러운 면이 줄어들어 보였다.
 나름 반전의 반전이 묘미인 작품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부터가 어이없을 정도이니;;

 불투명한 밀실

 시라오카 주민센터 공사 건으로 맞붙은 호소다 건설과 기요카와 건설. 그런데 기요카와 건설이 물밑공작으로 공사를 따내자, 두 건설사 사이의 대립은 깊어진다. 그러던 중, 기요카와 건설 사장이 회사이자, 자택의 사무실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것도 밀실에서...
 의외로 간단하게 보이나 은근히 복잡하게 보이는 밀실이라 작가가 또 어떤 기발하면서도 간단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의외로 구로호시 경감의 헛다리도 나름 논리적으로 나온다. 그 동안 그냥 심증으로만 범인 취급하거나, 부실한 추리로 일관하던 것과 달리 이것저것 가능성을 따지는 모습이 나와서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맞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천외소실 사건

 시라오카 산 케이블카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정황상 자살한게 분명하지만, 흉기는 발견되지 않고 케이블카 내부를 보면 분명 누군가 더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 이른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살해된 여자가 한 남자와 케이블카에 탄 걸 목격한 사람까지 나타나는데...
 그냥 방도 아닌 케이블카라는 공간을 이용한 밀실이라는 점이 눈에 뛸 정도다. 무엇보다 케이블카에서 나타날 수 있을 맹점을 이용한 트릭 아닌 트릭 또한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만큼이나 꽤나 큰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마지막 반전까지.
 여담으로 이 작품이 일곱 개의 관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단편이라 그런지, 이전 단편과 다른 느낌이 많았다. 여기서는 구로호시 경감이 거의 페이크 주인공 취급이라 초기에는 그를 주연으로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뭐, 결론적으로는 7개의 밀실에서 허탕치는 희대의 개그 캐릭터가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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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소도중
미야기 아야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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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요시와라는 에도시대의 매춘업소인 유곽이 있던 곳으로 알고 있다. 현대에는 매춘이라 하면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그 옛날 에도시대의 유녀는 어땠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사진으로 보면 온갖 화려한 이미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화려함 너머의 진짜 모습은 어땠을까?

 화소도중은 요시와라 유곽의 유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이야기다. 어쩌면 그냥 유녀를 주인공으로 한 야한 로맨스 소설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화려함 속에 숨어있던 사람다운 삶의 소망과 진정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그냥 문학상을 받은 책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연작 형식으로 진행되어 마지막에 가면 작품 곳곳에서 언급됐던 인물 대부분이 한 번씩 주연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단 한 명의 일탈이나 소망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녀들이 염원하고 고민하던 문제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금기의 사랑, 사랑의 배신, 잃어버렸던 가족애, 친근함이라는 이름의 애정 등. 여러 형태의 사랑과 애환을 보면 화려한 이미지가 물색하게 유녀는 그저 비련의 여주인공일 뿐이었다. 때로는 완전한 비극, 또 때로는 쓸쓸함.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좋아하는 남자를 둘 수도 없고,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곽의 여인들은 물론, 기타 관계자들(몇몇 손님과 머리손질 해주는 장인)까지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를 아껴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로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위치인 만큼 유대감이 잘 형성된 게 아닌 가 한다.

 제목 만큼 작중묘사나 인물들은 여러의미로 화려하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의미없이 지속되는 화려한 생활에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모습에 박제된 것 같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변치 않은 화려한 모습이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의미와는 반대로 본질적인 화려함은 이미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면 할 수록 더욱 안타깝게 보인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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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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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동화책이라는 부류 속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발견하는 건, 안데르센 저서의 동화책들과 그림형제 동화, 그리고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익숙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 책을 다시 만났을 때, 걸리버 여행기의 정체성을 다시 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원작을 읽으면서 당연한 사실임에도 그 동안 아무런 인식을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소인국이든, 거인국이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 걸리버와 말이 통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소인국도 엄연히 해외에 있는 나라이고 다른 언어를 쓸 것이 당연한데 왜 그 동안 이런 상식적인 걸 잊고 있었는지...

 

 1. 릴리퍼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소인국 파트를 접해봤을 것이다. 이게 동화로 개작됐을 때는 약간 훈훈한 느낌이 있는데, 원작은 절대 그런 느낌이 아니다. 걸리버가 겪을 고난의 서막일 뿐이다.

 나름 풍자소설이라지만, 릴리퍼드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소설적 재미에도 신경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서도 끊이지 않는 당파싸움이라던가, 상반된 의견을 하는 이들에 대한 탄압과 억압, 그리고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의 라인타기에 대한 풍자가 엿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거기에 작가가 살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왕권신수설에 대한 언급과 계급도 나타나 있다. 주로 이런 부분은 여행지 나라의 문화라면서 서술하는데, 이런 부분을 보며 정치적인 건 물론이고 유럽 문화적인 부분까지 풍자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릴리퍼드가 소인국으로 나온 것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대립하는 이들을 작가가 느끼는 관점에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네들끼리 엄청 진지하게 싸우는데 작가가 보기에는 하찮은 것 그 이상도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라인타는 걸 풍자한 부분을 보면 거의 광대놀음에 가까운 개그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2. 브롭딩낵

  릴리퍼드에서 거인으로 모진 대우를 받았다면, 여기서 걸리버는 소인으로 온갖 능욕을 당한다. 아마 모든 여행기를 통틀어 꼽자면 걸리버가 가장 고생한 곳이 아마 이곳일 것이다.

 릴리퍼드가 자잘한 느낌이었던 반면, 브롭딩낵에서는 모든 게 걸리버의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로 서술된다. 여기서도 이 나라가 얼마나 거대한지 상세히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걸리버가 느끼는 압도감과 공포를 간접적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주로 크게 봄으로서 평범한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확대효과가 나타나는데, 단순하게 작았던 것이 크게 보임으로서 느껴지는 괴리감 외에도 작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하등할 것이라는 논리가 거만함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브롭딩낵에서의 논리를 보다보니 그 당시 식민지를 개척하던 열강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하등취급하고, 그가 살던 곳들도 마찬가지로 하등하다고 여기는 논리. 이는 크기 문제를 인종이라던가, 종교, 문화로 바꾸어 보면 딱 그 당시 열강들의 논리와 일치하는 것과 더불어, 현재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인종차별, 종교문제, 문화차별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이렇듯 브롭딩낵 자체가 문화 우월적인 면이 강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작중 서술된 정치적인 부분은 휴이넘과 더불어 가장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3. 라퓨타

  그 동안 크냐 작냐의 문제로 내용이 진행되던 것이 여기서부터는 아주 가관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한 풍자로 버무려진 부분이다. 소인국 릴리퍼드와 더불어 라퓨타라는 이름도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분들이 아는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원작소설에서의 모습을 보면 완전 딴세상이다.

 주로 학식있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로 보이는 게 많은 편이다. 앞의 릴리퍼드나 브롭딩낵에서도 학자들에 대한 풍자가 있었지만, 라퓨타에서는 보다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으로 풍자해서 지식인 풍자의 최고봉이라 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학식의 적용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나타난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수학과 음악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라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라퓨타 사람들의 외모도 이상하게 나타낸 걸 보면 제대로 바보들이라 나타낸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아카데미라는 기관이 가관이다. 의미없는 실험부터 발전이라는 탈을 쓴 퇴보적인 연구 같은 것들만 있어서 이게 교육기관인지, 학자를 빙자한 퇴물들만 모아놓은 집단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오죽하면 정치 쪽에서는 망상만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다.

 후반에 가서는 역사가 권력에 의해 쓰여진다는 부분과 지극히 현실적인 면에서 쓰여진 불로장생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불로장생에 관한 부분은 어떻게 보면 그냥 상상 속의 일을 현실적으로 쓴 것 같아 보이지만, 얼핏보면 나이가 많아질 수록 인간은 어리석어질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로장생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 하는 걸 보며 역시 이상보다는 현실이 더 시궁창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4. 휴이넘

  여행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라퓨타 보다 더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오늘만 살겠다는 심정으로 썼다 추정될 정도이다.

 이성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 인간 혐오에 가까운 내용이라 보기에 따라 약간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주로 영국의 모든 것을 얘기하며 이렇다 저렇다 하며 진행된다. 그저 평범하게 얘기하는 거라면 모를까, 여기서는 하나하나 짚어서 말하며 현실적인 얘기를 늘어놓는데 대부분이 나쁜점들 밖에 없어 보인다. 특히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나쁘게 말하는 걸 보면 말이 안 나올 정도다. 남녀에 대한 건 물론이고,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접적인 직업을 언급하며 역겨운 사기꾼들이라 언급하고, 귀족이나 장관 같은 부분은 아예 대놓고 사치와 게으름으로 찌들었다는 등, 이 정도면 차라리 라퓨타에서 나타난 풍자가 더 약해 보일 정도다.

 앞선 여행지와 다르게 걸리버는 휴이넘에 대해 칭찬일색이지만, 내가 볼 때는 휴이넘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자잘한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 아닌, 이성을 앞세우며 자신들이 야만스럽지 않다하면서 몇 가지 결점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아무리 휴이넘이 이성적이고 깨끗한 사회라 할지라도 비판을 무조건 외면하고 탄압하려들면 그렇게 야만스럽다 여기는 야후랑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걸리버 여행기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전의 다른 여행기와 달리 토론과 대화 위주가 많은 편이고, 배경 설정상 주로 집에만 칩거하다보니 다양한 묘사없어서 보기에 따라 지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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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워크 밀리언셀러 클럽 143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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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단순한 게 더 악질 넘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때면 학창 시절 벌 받을 때 그냥 서 있게 한다던가, 깜지 여러 장 쓰는 것들 말이다. 복잡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결과까지 만이라도 바랄 수 있지만, 단순한 것은 쉽게 할 수는 있으나 그 만큼 결과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즉, 시작은 쉽지만 끝이라 생각했을 지점에서 다시 쉽게 또 다시 시작이 된다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게 만들어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롱 워크 역시, 간단한 걸 죽자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롱워크는 제목 그대로 100명의 소년을 대상으로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엄청난 장거리를 걷는 경주가 벌어지는 내용이다. 문제는 도중에 포기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실격처리가 되면 그 자리에서 사살 당한다는 것, 말 그대로 죽음의 레이스라는 것이다. 그냥 걷는 경주라고 하니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을 해보아라. 자신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상조건이 좋지 않거나 몸이 좋지 않은데도, 심지어 도중에 밤이 된다해도  절대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면 버틸 수 있는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낸 소설은 본명으로 낸 것들과 느낌이나 분위기가 다르다는데, 현재 유일하게 정식으로 발간된 롱워크만으로도 약간은 느껴지는 듯 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왠만하면 술술 읽히는 편인데, 롱워크는 진짜 작중 소년들과 같이 몇 km를 같이 걷는 것처럼 진행이 굉장히 더딘 편이다. 길 위에서 걷는 내내 벌어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자세히 전개되고, 언제 자신이 탈락될지 모르는 불안감 같은 심리상태에, 소년들 간의 평가와 개인적인 잡생각까지 반영되니 하루 동안 걷는 것도 1년 동안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다. 그렇다보니 지지부진하고 답답하게 진행되는 전개에 속터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게 공포스러운 건 단순히 죽음의 레이스라는 것 뿐만 아니다. 처음에는 팔팔했던 소년들이 점차 길 위에서 산송장처럼 처참히 망가져가는 과정 때문이다. 걷는 걸로 심각한 수준으로 사람이 망가진다고 상상한 이가 있을까.

 이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게임을 보면서 가장 큰 의문이 드는 게, 최후의 1인 한테 엄청난 상품을 준다는 목표가 확실하게 있으면서도  정작 참가자인 소년 대다수는 하나 같이 참여해놓고 롱 워크에 왜 참가했는지 자기자신조차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잘 보면 롱 워크라는 경기의 자체의 목표(최후의 1인)는 정해저 있지만, 정작 참가하는 소년들 대부분에게는 목표라는 것이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간중간에 지친 나머지 '나는 이걸 하고 싶다' 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한 순간에 생기는 욕구일 뿐 그 어떤 의미에서도 목표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목숨까지 걸면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인지. 어딘지 모르게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게 10대들의 방황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정한 목표는 있고, 모두들 그 레이스 위에서 목표를 향해 걷는다. 그 중에는 목표에 관심 없거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목표들은 부정당하고 오로지 정해진 목표 하나를 향해 가라 한다면 그 누가 목표를 가지고 의욕이 생기겠는가. 억지로 떠밀어서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자랑스럽게 보이겠지만, 도중에 '내가 진정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등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산송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결국 포기하게 되면 사회는 패배자라 욕하며 회생의 기회는 전혀 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는데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니 제정신으로 버티려면 정신이 나가버려 방황하는 게 최선일 수 밖에 없어 보일 지경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단지, 그냥 던져주는 목표를 향해 가라는 건 아무런 의미 없는 짓에 불과한 게 아니라 결국에는 몸과 마음까지 전부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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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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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천외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살인. 관 시리즈의 세 번 째 저택은 다름 아닌 미로. 그것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가 갖힌 미로를 연상시키면서 이름 그대로 미로처럼 생긴 저택. 거기에 수차관에 이은 색다른 사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마다 앞으로 도착한 한 권의 추리소설. 그것은 다름 아닌 작년, 미로관에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추리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가 소유한 미로관. 사건이 일어난 그 날, 여덞 명의 사람들이 초대를 받는다. 편집장 부부와 미야가키의 제자 넷. 그리고 추리 마니아 시마다 기요시. 하지만 정작, 주최자인 마야가키는 이미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그의 유언으로 유산을 걸고 며칠 동안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콘테스트를 열게 된다. 그렇게 첫 날이 지나고 응접실에서 추리소설가 한 명이 목이 베인 채로 발견되는데...

 이번 관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책 속의 또 책이 들어 있는, 비유하자면 액자식 소설이라 할 법한 구성으로 줄거리에서 보듯이 시마다에게 도착한 미로관을 같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냥 구성만 이렇게 해도 대단한데, 진짜 책 안에 책을 끼워 넣은 것처럼 표지와 목차, 거기에 책 끝에 항상 존재하는 제작 날짜와 출판사 주소 같은 것도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서 정말 신경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인물들이 추리소설과 관련된 인물들이 많아서 추리소설 관련 평판이나 이론에 대한 논쟁이 약간 있는 편이다. 특히 주목한게 공정성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공정성을 지켜도 참신함이 없으면 재미없다거나 아니면, 참신해도 공정하지 않으면 의미없다는 얘기를 보며 마치 작가 자신이 비밀장치가 트릭인 관 시리즈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중 인물의 말을 빌려서도 비밀장치가 공정하지 않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걸보면 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미로관이라는 건물의 특성과 그리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이 접목되면서 숨막히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느낌이 많았다. 그냥 저택이라면 복도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기도 쉽고, 숨을 곳도 마땅히 없다. 하지만 저택 자체가 미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복잡하게 갈라진 갈림길이 이어지는 복도 안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은 우연에 가까울 정도일테고, 모퉁이 도는 곳이 많은 만큼 몰래 따라가기에도 적합해 미노타우로스처럼 괴물에 가까운 살인마까지 있다면 제대로 공포스릴러 그 자체라 해도 될 법하다.

 무엇보다 묘미인게 이 소설은 그야말로 반전의 반전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크게 관심가지지 않았던 부분이 의외의 진실로 밝혀지고, 그닥 신경쓰이지 않았던 부분이 전혀 다른 사실로 밝혀지며, 아예 인물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까지 하면 저택만 미로인게 아니라, 소설 자체도 미로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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