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별에 서툴러서 - 이별해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
최은주 지음 / 라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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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겪는 일에는 뭐든 서툴기 마련이다. 만남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남은 한 순간이고 이제 좀 친해졌다 싶으면 끝난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더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예고도 없이 떠난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언제나 힘들다. 뭔가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일 수도 있고, 남들에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소중한 인연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이별을 앞둔 이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흔히 생각하는 사람 간의 이별, 인생의 전환점을 위한 이별, 겉으로 봐서 알 수 없는 이별, 소중한 것과의 이별, 좋은 이별, 나쁜 이별. 생각보다 이별은 여러가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별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으며 어떻게든 다시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떨까. 무엇과 이별하느냐에 따라 무조건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것이었다면 후련할 수도 있고. 기다리고 있던 이별이라면 오히려 기쁠 수도 있다. 마침표로 끝이 나지 않고 새출발의 지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 만큼 이별의 준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이별에 위로를 주는 건 작중의 대부분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별카페다. 소소한 인테리어 속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되며 이별 하나하나가 정리되어 간다. 아무런 뒤탈 없이, 미련없이, 잔잔하게. 이별의 당사자들에게 준비된 이별노트 위에서 정리된 문장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 모든 것이 마무리 된다. 놓지 못하고 잡던 미련, 혹시나 걱정하던 부분, 그 동안의 추억.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한 파트가 마지막 장에 도달하고 이제 새로운 첫 페이지를 향해 나아갈 차례다.

 인연은 멈출지라도 인생까지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이별이라도 그 이후가 있으며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다.

 소중했기에 더 안타깝고, 아쉽겠지만 그럴수록 더 좋은 순간으로 끝내는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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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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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것은 밖에서 다가온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재앙으로 보이겠지만 빈틈을 노린 침입자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문단속이 허술한 틈에 들어온 강도일 수도. 아니면 보통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즉 사람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다. 심각한 상황이라면 경찰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사람 아닌 존재에게도 통할까? 집요하게 방문하고, 언제 어떻게 찾아갈지 모를 정체불명의 그것. 보기왕은 상상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다하라 히데키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삼촌과 병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접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긴지 몇 년이 지난다. 결혼하고 딸까지 생겨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히데키에게 누군가의 연락이 온다. 치사 씨, 바로 딸을 찾는 연락이다. 문제는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던 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히데키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영매사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오는 내용이라 기대를 많이했다. 밖에서 불러내고 절대 문을 열거나 대답하면 안 된다는 점만 보면 다양한 옛날 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설정이긴 하다. 그럼에도 보기왕이 나타났을 때의 분위기는 섬뜩 그 자체다. 아무한테 알려주지 않은 이름을 부르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은 집요하다. 자신이 찾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서 연락을 한다. 게다가 교활하고 잔인하기까지. 진짜 피를 말려 죽인다는 게 제대로 느껴진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퇴마물 형태다. 가족이 중심이 된다는 부분까지 보면 마치 컨저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미국 호러영화 특유의 하우스 호러와는 좀 차이가 있다. 일단 보기왕은 밖에서 오는 존재고 사건 발생까지 여러 인과관계가 엮여 있어 더더욱 정체를 알기 어렵다. 단순한 악령, 악마 같은 것이 아닌 요괴라 더 그렇다. 옛기록을 찾아보면 대부분의 요괴는 자연에서 목격된다. 그리고 목격되는 지방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 이유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본다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족 문제가 들어나기 때문에 호러부분만 집중하고 봤다면 좀 놀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총 3파트마다 화자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이전 파트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보인다. 이런 걸 보면서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다 같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자기 만족이 곧 가족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내 생각이 모두의 의견이 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의견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문제 없어 보여도 분명 어디선가 놓친 부분이 있고,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있던 점이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보기왕이라는 존재를 체계적으로 잘 만들었다. 기원이 되는 부분에서 모티브를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의외였다. 서양의 유명한 괴담을 일본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 치고는 너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서 그렇다. 재미있는 건 원본인 서양 괴담의 설정이 보기왕의 특성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 점이다. 확실히 무엇이다라는 정체는 나오지 않지만 숨겨놓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윤곽이 보여서 난해하다는 인상은 없다. 외형 역시 끔찍함 그 자체라 상당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결말까지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인상이 끝까지 잘 유지되서 좋았다. 한 번 엄청난 인상을 남기면 그걸 또 한 번 만들기가 은근 어려운데 이 소설은 가면 갈 수록 점점 커진다. 각 파트 단계별로 보자면 첫 인상, 약간의 윤곽, 실체 순으로 보기왕이 점점 본 모습이 들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클라이막스가 총 3번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보기왕에게 맞서는 퇴마부분 역시 부족한 부분 없이 강렬하다. 화려한 주술이나 눈에 띄게 특별한 도구 없이 단조로움에도 분위기는 하나는 엄청 크게 몰아간다. 싱겁게 압도적으로 빨리 이기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약해 보이게 패배하는 것도 아닌 정도의 벨런스라 후반부로 갈수록 실망할 부분도 없다. 이기기 어려운 최종보스를 어떻게 잡을지 기대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기왕이 메인이기 앞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건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한창 좋은 경험을 많이하고 사랑 받을 나이에 환경이 나쁘면 안 된다. 어린 시절일지라도 한 번의 경험은 오래남고 먼 미래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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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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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첫 문장부터 고민의 시작이다. 쉽게 써질 때는 주로 책 내용과 관련된 주제로 생각해 볼 부분을 다루는 편이다. 반면 시작부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는 깊이 있는 내용이라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리고 읽고도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다. 이해를 못했다기 보다는 어떻게 표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에 가깝다. 감상이 별로라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숨기지 않고 자세히 써놓고도 남았다. 오히려 좋았던 부분을 나타내기 어렵다. 이걸 이렇게 써야 하나,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고민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 책도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이렇게 시작하게 됐다. 글쓰기 관련 책처럼 보이면서 작가이론처럼 보이기도 하고. 개발서나 전문도서, 에세이 위주의 설명처럼 보이면서도 소설 쪽으로 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내용처럼 보이면서도 꽤 도움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이 있고. 또, 흔하고 뻔한 얘기 없이 흥미로운 점으로 구성되어 있어 믿고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글쓰는 방향에 대한 내 입장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난 소설 쪽을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본 글쓰기 책도 대부분 소설 관련된 것이었고. 그렇다보니 흥미롭게 보다가 고민이 생겼던 것이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건 그렇다해도 개발서, 에세이 관련 쓰는 방법만 나오는데 도움이 될까. 결론만 말하자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안내서라는 제목 만큼 다른 글쓰기 책과의 차이점이 많다. 글쓰기 책하면 흔히 강조하는 문장 쓰는 법 같은 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일종의 준비과정을 알려주는 것에 가깝다. 기술이라기 보다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책을 쓰기 앞서 생각해볼 점이 많다는 걸 나타낸다. 도입부인 1, 2부만 봐도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책 하나가 나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렇기에 무작정 잘 쓰기만 한다고 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파트마다 편집자로서의 경험한 사례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도 쉽다. 또, 중간중간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색이 칠해져 있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기억하기 쉽다.

 전반적으로 책을 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경우에 딱이다. 출판사에 문의해서 일일이 답변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나, 물어보기 힘든 부분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인세 관련 부분이나 출간 과정에서도 작가가 참여하는 부분처럼 다른 글쓰기 책에서는 볼 수 없던 게 많다.

 다만, 개발서나 에세이 위주의 내용이 대부분이라 소설 쪽 입장에서 보면 글쎄다 싶은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해할 만한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같은 글쓰기라도 분야가 다른 만큼 방법론 역시 다를 수 밖에 없기에 견해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책 자체는 꽤 괜찮다. 국내에서 나온 글쓰기 책 중에서 처음 보는 걸 접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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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장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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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요소가 나오거나 현실적이지 않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현실적이지 않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나오는 걸 말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나오면 대체로 호불호가 갈린다. 이런 요소가 굳이 들어가야 되냐는 것부터,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다, 설정이 과하다는 평까지. 특히 추리 쪽이라면 나름 현실성을 갖추어야 하기에 더욱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다. 저 같은 경우야 진짜 어이없는 종류만 아니면 왠만한 건 그냥 보는 스타일이고.

 이 소설은 일본에서 여러 미스터리 관련 문학상을 휩쓴 대작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논쟁이 있을만한 문제작이긴 하다. 일본에서나 국내에서나 호불호에 대한 부분은 상당하다. 약간이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좀 심하게 갈리다 보니 나 같은 스타일에게도 좀 고민이 되긴 하다.

 신코 대학교에 다니며 탐정활동을 하는 아케치와 하무라. 여름방학 기간 동안 특별한 사건을 맡고 싶어하던 중, 영화부에 합숙을 겨냥한 협박메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건의 기운을 느낀 아케치는 영화부 합숙에 어떻게든 끼어들려 노력한다. 하지만 번번히 거절당해 아쉬하던 차에 라이벌 격인 여탐정 겐자키의 도움으로 참가에 성공한다. 합숙장소인 자담장에서 사건을 기다리던 아케치와 하무라는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고 만다. 그리고 이와중에 기괴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고 마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분위기에 서술방식도 대체로 가벼워서 읽어나가기 쉬운 편이다. 주요 인물과 설정이 만화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삽화 없는 라이트노벨처럼 보일 정도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운 감이 없잖이 있었지만 이런 종류를 많이 접하지 않은 탓인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나치게 가벼운 건 선호하지 않지만. 또한 작중에 나타나는 주요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있는 듯한 인물이나, 만화에 나올 법한 미소녀나 추리광 같은 설정이 좀 과해서 거슬리긴 했다.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가 무색하게 중반부부터 일어나는 상상도 못할 재앙에 살인사건까지 진행되면 나름 진지해져서 분위기를 잘 잡았다고 본다. 독특한 클로즈드 서클 시도 치고는 꽤 스케일이 있어 좀 놀라기도 했고. 다만, 클로즈드 서클에서는 누가 어떤 이유로 죽을지 몰라 서로 의심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누가 죽을지 미리 알 수 있어 긴장감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 긴장감의 부재를 예상치 못한 재앙으로 채운듯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재앙에 대한 설정을 여기서 끝내냐 더 보충할 후속작이 나오냐의 문제다. 작중에서는 정확한 윤곽 없이 부분부분 흔적만 나와 있다. 결말에 가서도 아무런 설명이 없고. 이걸 조금 더 설명할 필요성을 작가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냥 클로즈드 서클을 만들기 위한 요소 밖에 되지 않게 된다. 즉, 작위적인 요소 그 이상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추리적인 부분은 나름 특수한 상황을 이용한 기발한 트릭이 나오긴 했다. 어떻게 보면 트릭이라 보기도 뭐한 잔재주에 불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사례를 본 적이 있어서 내 나름대로는 나쁘지 않게 본 편이다. 특수한 상황을 이용한 트릭이라는 점에 끌린 것도 있고. 하지만 추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좀 개연성 없어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고작 이런 것때문에, 라는 생각이 들정도인데다 그 인물의 캐릭터성까지 붕괴될 할 정도라 그냥 더욱 확실한 증거를 만들기위한 설정이라는 생각이다.

 직접 읽어보고 논란이 되는 이유를 나름 짚어보며 내린 결론은 일단 별 생각없이 읽기 좋은 한편의 오락물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하지만 나름 짚어낸 단점부분을 보고 진짜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많을 테니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않겠다. 내가 괜찮게 읽었다고 다른 분들도 똑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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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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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예로부터 엄청난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방의 산이나 바다에는 전설이나 괴담이 존재한다. 특히 육지에 많이 솟아있는 산은 그 크기만큼이나 압도적인 존재감과 산 속에서만 느껴지는 시간감각과 공간감 때문인지 여러문화권에서 전설과 민담이 얽힌 괴이한 곳이 되고는 한다. 현대에 와서도 그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산짐승의 공격이 있을 수도, 길을 잃을 수도, 또 시간감각 차이 때문에 내려올때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점까지.

 까마득하고 어두컴컴한 산중은 흡사 이계라 봐도 무방하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방황하다보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과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다. 그 존재의 눈에 산 속을 해매는 이방인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비웃음이 나올정도로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산 속에 파묻어 버릴 희생양 정도로 봤을지도. 이런 상상만으로도 산 속의 괴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일지 어느 정도 실감이 날 것이다.

 하도에 있는 삼산에서 전통 참배식을 하던 중 겪은 괴이체험과 이중 밀실에서 발생한 증발 사건이 담긴 원고를 받은 도조 겐야. 작년 히메쿠비 산에 가던 중 계획을 바꿔 방문한 구마도 인근이라는 걸 알고 다시 방문하게 된다. 산림지주인 가지토리 가의 당주에게 다시 도움을 청한 도조 겐야는 흉산이라 불리는 부름산에 대한 전설을 예의주시하면서 밀실 증발 사건이 발생한 가옥을 찾아간다. 그런데 가옥은 원고에 나타난 것과 똑같이 밀실 상태였고 안에서는 머리가 불탄 시체가 발견된다...

 노랫말을 연상시키는 연쇄살인이 나와서 얼핏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생각나게 한다. 차이점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노랫말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는 기괴한 분위기만 살렸다면,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이 노랫말과 똑같은 살인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더해진다. 왜 굳이 여기에 집착해야 할까, 왜 이해할 수 없는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어떤 행동이 일어나기까지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당위성에 대한 부분도 여러모로 무섭게 보인다. 물론 이 노래형식의 연쇄살인이 은근히 많이 쓰였다는 걸 생각하면 신선함이 약간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나는 형태다. 잘린머리에서는 괴이한 존재가 돌아다니는 인상이라면, 산마는 산이 현실세계를 집어삼키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구마도 촌락과 흉산인 부름산의 분위기가 완전 다른 세상인듯한 분위기다. 살인사건 역시 현실과 괴이가 섞인듯한 인상이다. 그럴싸한 동기나 용의자가 있어도 정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점만 늘어나 현실이 허상이고, 허상이 곧 현실이 되기까지 한다. 클로즈드 서클로 고립된 장소도 아닌 그냥 산중에 둘러싸인 마을에 지나지 않기에 사람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잘린머리에서는 간접적으로 밖에 나오지 않던 도조 겐야가 제대로 활약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본격 미스터리인데도 탐정보다는 괴이 탐구가로 불리길 원하면서도, 괴이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에서의 이미지가 충돌하는 모양새다. 재미있게도 탐정이라는 논리적인 분야와 괴이라는 비논리적인 분야는 보다시피 상극이다. 이 상극인 두 분야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게 바로 도조 겐야의 추리 스타일이다. 그렇기에 현실의 사건 범인도, 현실적인 논점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괴이도 전부 밝혀낸다.

 결말을 보면 살짝 앞에서 작가가 반칙을 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기 어려운 인물인 것도 둘째 치고, 앞에서 제시한 공정성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글자 몇 자 차이로 해석이 달라지기도 해서 그럭저럭 넘어갈 수는 있다. 서술트릭이란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을 노리니까. 또 살짝 아쉬운 게 있다면 구마도 지역 지도가 없다는 점이다. 잘린머리 때는 히메카미 촌의 지도가 같이 있어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기에 더 아쉽게 느껴졌다. 굳이 지도를 넣지 않아도 이해하기 쉬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산간 지형을 나타내기 까다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나온 괴이인 산마도 꽤 무서웠다. 산마 전설부터 산마의 비웃음과 함께 실종된 사건까지. 정녕 산에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산마가 사람을 잡아가는 세계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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