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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낯선 것은 밖에서 다가온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재앙으로 보이겠지만 빈틈을 노린 침입자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문단속이 허술한 틈에 들어온 강도일 수도. 아니면 보통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즉 사람이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다. 심각한 상황이라면 경찰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사람 아닌 존재에게도 통할까? 집요하게 방문하고, 언제 어떻게 찾아갈지 모를 정체불명의 그것. 보기왕은 상상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다하라 히데키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삼촌과 병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찾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접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긴지 몇 년이 지난다. 결혼하고 딸까지 생겨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히데키에게 누군가의 연락이 온다. 치사 씨, 바로 딸을 찾는 연락이다. 문제는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던 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점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히데키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영매사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오는 내용이라 기대를 많이했다. 밖에서 불러내고 절대 문을 열거나 대답하면 안 된다는 점만 보면 다양한 옛날 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설정이긴 하다. 그럼에도 보기왕이 나타났을 때의 분위기는 섬뜩 그 자체다. 아무한테 알려주지 않은 이름을 부르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것은 집요하다. 자신이 찾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 여기저기서 연락을 한다. 게다가 교활하고 잔인하기까지. 진짜 피를 말려 죽인다는 게 제대로 느껴진다.
전반적인 스토리는 퇴마물 형태다. 가족이 중심이 된다는 부분까지 보면 마치 컨저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미국 호러영화 특유의 하우스 호러와는 좀 차이가 있다. 일단 보기왕은 밖에서 오는 존재고 사건 발생까지 여러 인과관계가 엮여 있어 더더욱 정체를 알기 어렵다. 단순한 악령, 악마 같은 것이 아닌 요괴라 더 그렇다. 옛기록을 찾아보면 대부분의 요괴는 자연에서 목격된다. 그리고 목격되는 지방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 이유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본다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족 문제가 들어나기 때문에 호러부분만 집중하고 봤다면 좀 놀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총 3파트마다 화자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이전 파트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보인다. 이런 걸 보면서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다 같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자기 만족이 곧 가족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내 생각이 모두의 의견이 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의견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문제 없어 보여도 분명 어디선가 놓친 부분이 있고,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있던 점이 있을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보기왕이라는 존재를 체계적으로 잘 만들었다. 기원이 되는 부분에서 모티브를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의외였다. 서양의 유명한 괴담을 일본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 치고는 너무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서 그렇다. 재미있는 건 원본인 서양 괴담의 설정이 보기왕의 특성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 점이다. 확실히 무엇이다라는 정체는 나오지 않지만 숨겨놓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윤곽이 보여서 난해하다는 인상은 없다. 외형 역시 끔찍함 그 자체라 상당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결말까지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인상이 끝까지 잘 유지되서 좋았다. 한 번 엄청난 인상을 남기면 그걸 또 한 번 만들기가 은근 어려운데 이 소설은 가면 갈 수록 점점 커진다. 각 파트 단계별로 보자면 첫 인상, 약간의 윤곽, 실체 순으로 보기왕이 점점 본 모습이 들어난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클라이막스가 총 3번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보기왕에게 맞서는 퇴마부분 역시 부족한 부분 없이 강렬하다. 화려한 주술이나 눈에 띄게 특별한 도구 없이 단조로움에도 분위기는 하나는 엄청 크게 몰아간다. 싱겁게 압도적으로 빨리 이기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약해 보이게 패배하는 것도 아닌 정도의 벨런스라 후반부로 갈수록 실망할 부분도 없다. 이기기 어려운 최종보스를 어떻게 잡을지 기대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보기왕이 메인이기 앞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건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녀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한창 좋은 경험을 많이하고 사랑 받을 나이에 환경이 나쁘면 안 된다. 어린 시절일지라도 한 번의 경험은 오래남고 먼 미래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