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문학의 숲 17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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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 소설의 역사가 긴 만큼 많은 작품들이 나왔고그 만큼 온갖 트릭들이 나왔다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으니 더 이상 새롭게 구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올 정도다(원서로 1950년대에 나온 이 책에서도 언급된다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트릭은 거의 다 나왔다고.). 재미있는 것은 이럴 때마다 어떻게든 새로운 가능성과 재구성이 나와서 트릭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시대가 변해갈수록 트릭 역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옛날에는 이런 건 반칙이라고 하거나 추리가 아니라고 여겨지던 것이 요즘에 와서 자연스럽게 쓰이고지금 보면 시시해 보이거나 역시나 반칙에 가까운 황당한 것이 그 당시에는 상당히 기발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그렇다이런 부분에서 트릭을 참고하려 해도 시대적 차이 때문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어디까지나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고 호불호의 문제긴 하다옛날 트릭을 보고 역사적인 접근 방식으로 추리 소설의 과거가 이랬구나 하면서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추리 소설 초창기에 에도가와 란포가 트릭에 대해 정리해서 쓴 글이다대중적으로 보기 쉽게 썼다는 점에서 간단하게 기술된 부분이 많은 편이다이런저런 사정으로 언급만 하고 자세히 다루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 트릭에 관해 가볍게 쓴 수필에 가깝다(실제로 서문에서도 저자는 이 책은 쉽게 쓴 수필을 엮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탓에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약간 시시하게 느껴지거나원하던 내용은 없고 뻔한 것만 있는 식으로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를 수도 있다오히려 추리 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나 다름 없다고 언급 되는 작가의 다른 글인 <유형별 트릭 집성>이 더 흥미롭게 보일 것이다.

 

 수많은 트릭을 접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트릭에 대해 폭 넓게 보는 경향이 보인다종종 추리 소설에 쓰이면 반칙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에서 그렇다공정성을 논하는 건 추리 소설을 작가와 독자의 수수께끼 풀이 게임이라고 생각해서 나오는 주장인데 그렇게 협소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한다추리소설의 규칙이나 법칙 같은 것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갈수록 트릭을 만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규칙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을 오히려 도입하는 추세라고 하니까아예 억지스러운 것이나 비합리적인 것까지 좋게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실제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부자연스러움을 느끼지 않게 그럴 듯하게 써서 독자를 납득 시켜야 된다는 것이다이게 작가의 역할이고그래서 탐정소설이 어렵다고 말한다이런 점에서 작가는 트릭을 현실성 문제보다는 가능성 문제로 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꽤 다양한 트릭에 대해 다루는 한편으로 이 안에서 실제로 활용할 만한 것은 몇 개 되지 않아 보이긴 하다(암호 관련 부분은 <유형별 트릭 집성>에서 인용한 글이라 그런지 꽤 활용할만하긴 하다.). 저자의 말처럼 그냥 보면 유치하고 재미 없어 보이거나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렇다그냥 잊혀진 무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고 지금도 꽤 알려진 작가의 작품에 나온 경우가 있어서 적지 않게 놀랄 만하다그 만큼 당시의 추리소설 트릭은 가능성에 중점을 둔 실험을 많이 했다는 걸로 보인다가능성을 넓게 보면 쓰지 못할 트릭이 더 많겠지만 그 안에서 그럴싸한 것이 발견될 수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물론 이와 별개로 반복된 사용으로 인한 진부함과 가능성을 너무 크게 보는 극단적인 발상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거다단순하고 도저히 써먹지 못할 발상이라도 생각을 진전 시키면 하나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저자가 본인의 소설 하나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 부분을 보면 기발함과 단순한 발상은 한 끝 차이일지도 모른다반대로 말하자면 아무리 좋은 소재나 참신한 트릭이 있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이 재미 없게 다루면 못 써먹는 것은 똑같다는 말이다.

 

 트릭에 대해 다룬 책이지만 다양한 종류를 모아 놓은 사전이나 참고 글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일종의 방법론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고 본다트릭을 어떻게 구상해야 되느냐트릭의 범주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느냐트릭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트릭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트릭의 시초는 어디서부터인가등등편견이나 제한 없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트릭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특히 반 다인 식의 논조는 추리소설을 빈곤하게 만든다고 불만이라 하는 부분을 보면 얼마나 넓게 보는 시각이었는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다앞으로의 추리소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걱정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지금 시점에서 보면 옛 연구 기록이긴 하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현재에서 무언가 떠오르지 않고 막혔을 때옛날 기록을 찾아보면 조언이나 답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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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의 눈 바벨의 도서관 8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최재경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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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의 세 기병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정부 기관 관리로 일하는 폰드 씨는 저명한 외교관과 함께 서로 잘 알고 있는 어느 지역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어떤 사건을 언급하게 된다그 지역에는 높은 둑이 하나 있고그 위에는 사람 하나 지나가기 충분한 좁은 길이 있었다사건이 일어난 당시 프로이센 영토였고 그 둑길을 지키기 위해 서쪽에 백마기병대가 주둔한 상황이었다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이란 근처 마을에 살던 폴란드 출신 시인이 처형당할 뻔했다가 살아난 이야기였는데...


 제목을 보면 성경의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묵시록의 4기수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참고로 가톨릭에서는 묵시록이라 표기하고 개신교에서는 계시록이라 표기한다.). 내용을 보면 진짜 성경과 관련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비유에 가깝다계시는 폴란드 시인의 처형기병은 프로이센의 백마기병대에 해당된다오래 전의 유럽 정치적 상황이 묘사돼서 살짝 어렵게 보이겠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서 걱정할 필요없다어디까지나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폴란드 시인이 극적으로 살아나게 된 사건이다.


 대체로 좁은 둑길에서 세 명의 기병으로 인해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다루고 그 전말을 짤막하게 정리하는 구성이다보기에 따라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고이걸 어떻게 파악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그 심리 부분을 매우 잘 다루었기 때문에 문제없다프로이센 시절의 독일군이 어떤 분위기였고 기병대 사령관이 어떤 신념을 가진 인물인지 상세히 설명한다단순히 내면 묘사 뿐만 아니라 겉으로 들어나는 모습이나 사소한 행동도 비유를 들어 상세히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 한 명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다고 해도 될 정도다그렇다보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이렇게 상세하게 묘사된 사령관 밑에 있는 병사들은 도대체 어떤 심리상태고 어떻게 행동할까문제는 사령관 이외의 인물들은 대부분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 있을 뿐내면이 어떤지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추리 외의 부분에서는 둑길 주변을 나타내는 장면과 둑길을 달리는 기병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묘하게 환상적인 색체가 강하게 느껴졌다그저 밤 중의 늪지대 풍경에 지나지 않는 배경에서 다른 세상의 원시 자연 풍경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원초적인 두려움에서 오는 듯한 불결함이 동시에 있어서 인간이 느끼는 자연에 대한 인상이 딱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기병 역시 하나의 사물로 묘사되어 체스게임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는 부분이 묘하게 보였다사건 자체도 다시 보면 체스나 다름 없긴 하다폴란드 시인이라는 킹을 잡기 위해 머리를 쓰는 프로이센군 사령관이라는 킹의 머리 싸움.


 작중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주장이 계속 나온다지나치게 올곧고 충심이 깊은 부하가 많으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다뭔가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긴 하다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고 그 어떤 잘못 없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찬양 일색인 추종자들이런 곳에서 어떤 지시가 내려오고 너도나도 완벽하게 해낸다고 설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잘 될 일도 요상하게 꼬여버리지 않을까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은가.




이상한 발소리


 상류층들에게만 개방된 선착순제 사교클럽 형태로 운영하는 버논 호텔이곳에서 급하게 신부를 찾는 바람에 브라운 신부가 방문하게 되고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호텔 사무실 안의 작은 개인 방을 빌리게 된다거기서 브라운 신부는 어딘가 이상한 발소리를 듣게 되고 호텔 안에서는 고급 식기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원제목이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인데 Innocence의 뜻이 결백천진난만이다 보니 번역서에 따라 표기가 다른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에 수록된 작품이다작중 내내 버논 호텔에 대한 부분을 꽤 상세하게 다루는 편인데사실상 그 당시의 상류층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나 다름없다평범한 사람은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 브라운 신부가 우연히 방문하지 않았다면 화자가 알 길이 없었다는 둥온갖 불필요하고 허례허식인 것이 거기서는 멋과 고상함 그 자체라고 하는 등상세한 묘사 속에서 점잖게 돌려 까는 것이 예술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뭔가 거창하게 벌어진 사건처럼 보이나 트릭만 놓고 보면 엄청 사소하기 짝이 없다어느 정도 범인의 노력이 들어가긴 했지만 메인 트릭 자체는 현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이런 걸 눈치 채지 못할 수 있는지 어이없게 보일 것이다뭐 어쩌겠는가그 당시 시대의 문화가 그랬다고 하니어쨌든 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에서도 상류층에 대한 비판이 녹아들어 있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이걸 예술에 빗대어 무대장치와 배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작동했는지 설명하며 앞서 말한 점잖게 돌려 까는 것의 정점을 찍어버리기 때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브라운 신부가 발소리를 듣는 장면의 묘사 부분을 잘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점차 어두워지는 방과 우중충해지는 하늘의 석양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안에서 발소리를 분석하며 사색에 잠기는 브라운 신부어딘지 모르게 고해소에서 참회자의 고해성사를 듣는 모습처럼 보인다물론 이 소설이 추리소설인 이상 이렇게 봐야한다직접 죄를 고백하고 성찰하는 고해소와 달리 이 수상한 자는 신부가 직접 죄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특이점이라면 고해성사를 들은 신부가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는 것처럼 왜 그랬는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그저 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해결됐는지 설명하는 것이 전부다이것이 곧 브라운 신부라는 탐정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현실적인 사건 속에서 성격이 다른 것 같은 환상적인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스라엘 가우의 명예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브라운 신부는 친구인 탐정 플랑보가 어느 귀족의 죽음을 조사 중인 글랜가일 성을 방문하게 된다플랑보가 조사하는 것은 성주인 글랜가일 백작의 죽음이다백작은 그 동안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성을 관리하는 유일한 하인인 이스라엘 가우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백작이 성에 없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그러던 어느 날백작의 시체가 담긴 관이 준비되고 묘지에 묻히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그 관 안에 있는 것이 진짜 백작인지 확인한 외부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인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에 수록된 작품이다오래된 귀족 가문과 성이라는 배경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고딕소설 같은 분위기가 먼저 느껴진다사실 사건 자체만 보면 그냥 관을 열어서 시체를 확인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하지만 브라운 신부를 비롯한 조사관들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여다보며 글렌가일 백작이라는 인물에게 접근한다시체를 확인하기에 앞서 현장조사를 한다고 할 수도 있고 보기에 따라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혹시나 관을 열어서 발생할 충격적인 진실에 대비하기 위한 배경조사.


 사건 현장인 글렌가일 백작의 성과 그 주변에 대한 풍경 묘사가 꽤 웅장하다성은 마치 고딕소설에 나오는 음침함과 신비로움이 느껴지고주변을 둘러싼 숲은 예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연의 무거움이 있는데다여기에 시시각각으로 거칠어지는 날씨까지 더해지니 흡사 종교 그림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보인다그런데 여기서 사건 해결부분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확 밝아진다앞에 나왔던 섬뜩해 보이던 장소들은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곳이 되고 이건 사건의 진실 역시 마찬가지다겉으로 보기에는 그 누구도 이해 못할 괴이한 사건처럼 보였지만실상은 지나치다 못해 병적으로 순수하고 바보 같기도 한 아름다운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아폴로의 눈


 친구이자 탐정인 플랑보의 새 사무실 보러 런던으로 향한 브라운 신부신축 아파트라 그런지 입주자는 플랑보 말고는 두 집단 밖에 없었다하나는 위층에 입주한 아폴로의 사제라 자칭하는 교주가 창시한 신흥종교 사원다른 하나는 아래층에 입주한 두 자매가 운영하는 타이핑 사무실이다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무렵아폴로의 사제가 태양을 향한 의식을 거행하는 중이었고 갑자기 아파트 안에서 엘리베이터 승강구로 사람이 추락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순진>에 수록된 작품이다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현실적인 사건인데도 태양을 숭배하는 신흥종교의 존재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분위기로 빠져들게 만든다여기에 아폴로의 사제와 브라운 신부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까지 더해져 때 아닌 종교관 대립이 발생하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건이다그래서 이 사건이 비현실적인 사건이라고 하냐면 그건 아니다인자한 브라운 신부마저 추악하기 짝이 없다고 여기는 질 나쁜 범죄다.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와 근거 없는 고집이 어떻게 다른지 나타나 있다의지는 말 그대로 실현 가능한 것을 노력해서 이루는 것이다반면 고집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에 의미 없이 집착하는 것에 해당된다이렇게 보면 어딘지 모르게 서로 비슷해서 고집을 의지로 곡해하는 일이 적지 않다노력해서 이겨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근거 없는 미신에 매달려 쓸 때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어리석고 오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과 관련된 신화를 찾아보면 동경하거나 잘못 다루어서 큰 피해를 입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다브라운 신부 역시 이렇게 말한다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숭배하는 일에는 잔인한 측면이 있다고작중의 사건도 이렇다고 할 수 있다보이는 그대로를 믿다가 추악한 진실을 보지 못해서 추락하고만 이카루스와 비슷하다고 말이다아무리 빛이 어둠보다 신성하다 주장해도 이런 식이면 해롭게 보일 뿐이다빛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어둠이 나을지도 모르겠다어둠 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먼저겠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무엇이든 숨김없이 보이긴 한다성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말이다.




이르슈 박사의 결투


 프랑스에서 유명한 과학자인 이르슈 박사의 자택에 들이닥친 불청객 뒤보스크 대령그는 박사가 직접 개발한 기술을 독일 스파이에게 넘긴 증거가 있다며 난동을 피운다이르슈 박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사실상 결투 신청을 하고이 사건을 조사하던 플랑보에게 뭔가 이상한 점을 들은 브라운 신부도 개입하게 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브라운 신부의 지혜>에 수록된 작품이다당대의 정치적 상황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첩보스파이 관련 사건으로 보일만 하다그러나 브라운 신부의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 정리된다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뚜렷한 의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그 진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이렇듯 사건 자체는 해결이 되지만 왜 이런 짓을 하게 됐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브라운 신부 역시 잘 모르겠다고 하니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과 거짓에 대한 생각지도 못한 논점을 제시해서 꽤 놀랍다보통 정보의 혼선이 생기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발생하고는 한다대체로 한쪽이 진실을 말하면 반대쪽은 거짓이라 주장하며 충돌하는 양상으로 말이다작중의 이르슈 박사와 뒤보스크 대령이 딱 그런 모습이다그런데 브라운 신부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문제가 된 정보 안에 진실은 얼마만큼 존재 하느냐만약에 진실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다면 오히려 그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힌트가 된다그러니까 완벽한 거짓을 말하려면 그 만큼 진실을 많이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즉, 어설프거나 우연히 만들어낸 거짓은 일부가 사실이라도 나머지는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요즘 같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이상으로 심오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진실과 거짓의 대결은 현실적인 사건으로 시작해 뜻밖의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환상적이다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건의 진의를 잘 모르겠다그저 진실과 거짓을 현실의 무게가 아닌 마술과도 같은 신비로움으로 보여준 특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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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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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갑자기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된 나첫 등교날전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마도 다카리라는 이름의 눈이 유독 인상적인 여자아이다뭔가 나이와 맞지 않은 분위기에서 오는 꺼림 직한 느낌을 받던 중그 아이가 결석을 하는 바람에 빵과 숙제를 전해주러 가게 됐는데...

 

학교와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 전학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종종 있긴 했다낯선 아이가 온다는 점에서 신기함과 한편으로는 낯설다는 것이 이유모를 두려움으로 발전한 형태에서 나온 괴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현실적으로 보자면 전학생에 대한 일방적인 따돌림에서 파생된 악의적인 소문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대체로 이런 괴담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구성이다뭔가 심상치 않은 전학생점차 그 전학생과 엮이며 발생하는 무서운 일가족 중에 있는 심령 전문가의 도움으로 벗어나는 위기그런데 작중에 나타나는 불길한 묘사는 전혀 뻔하게 보이지 않는다평범한 일상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분위기를 시작으로 조금씩조금씩덮쳐오는 살아 있는 불길함이 생생하다어릴 적 보았던 괴담집이 인스턴트커피 같다면 이 소설은 진하다 못해 조금 쓴 아메리카노 같다고 해야겠다공포를 묘사하는 깊이나 결말에서 오는 상상도 못한 반전의 섬뜩함이 있어서 그렇다.

 

 

 

괴기 사진 작가

 

잡지 편집자로 일하던 나는 영국 괴기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접하고 좀 더 알기 위해 출판사까지 찾아간다그런데 거기서 기획 편집자로부터 또 다른 괴기 사진작가에 대해 듣게 된다모쿠노 요시미라는 사진작가로 우연히 방문한 개인 사진전에서 마주쳤다고 한다뭔가 이상한 사람을 떠맡아 달라는 부탁처럼 보여서 꺼림 직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사진이 궁금해진 나머지 모쿠노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로 사진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현대에는 주로 이상한 것이 찍히는 심령사진이 대표적인데과거에는 동서 가리지 않고 영혼을 뺏어간다는 인식이 많았다고 한다관점으로 따지자면 무엇이 찍힌다는 것과 현실에 있는 것을 똑같이 담아낸다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다사진 관련 공포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이라면 이 두 가지 관점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령사진 비슷한 내용으로 보이다가 점차 사진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여러모로 놀랍다보통은 무언가가 찍혀서 무섭다고 하지사진 그 자체가 무섭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딱히 이상한 것이 찍히지는 않았지만 그 장소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담겨서 따라온 사진그런 사진이 수 백장이나 가득 쌓인다이러면 사진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도 이상하지 않다여기에 텍스트와 이미지에서 오는 공포의 차이점과 이 둘이 합쳐져 2배의 효과를 내는 부분에 대한 묘사까지 있어서 꽤 흥미롭게 봤다.

 

의외의 추리요소가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다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되짚어가다가 발견하는 반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트릭이 있어서 그렇다원문으로 봐야 이해될 부분이라 번역에 나름 신경 써야 될 부분이었는데 다행히 번역가 분이 센스 있게 해놓아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괴담 기담 · 사제 옛 집의 저주

 

작가가 실제로 수집한 실화 괴담으로 부록 형태로 4개가 수록되어 있다처음은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관련된 짤막한 괴담이다약간 흔한 괴담처럼 보이지만 그저 과거 시점의 얘기로 끝나지 않고 현재와 연결점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줘서 찜찜함을 남긴다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작가가 수집한 실화 괴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려다보는 집

 

귀신의 집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쓰게 돼서 문득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된 나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사거리 오르막길 벼랑에 새로 지어진 서양식 주택이 있었다완공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 사람이 살지 않은 점이 주목을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화제가 됐다그렇게 몇 달 동안 그 집을 계속 올려다보던 중나와 친구들은 너무 수상해 보인 나머지 몰래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흔히 흉가로 알려진 곳은 심령스폿으로는 물론이고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흉가라고 하는지는 대부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뭔가 애매한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이를테면 이 소설에 나오는 집 같은 경우 말이다딱히 이상한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오래 방치된 집이 아닌 새로 지은 신축 건물이다문제는 사람이 사는 인기척이 전혀 없다대놓고 음침한 분위기가 무섭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기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경우도 은근 무섭긴 하다.

 

전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탐험 같은 느낌으로 전개되는 중간에 집에 대한 불길한 느낌을 강조한다단순히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고 구체적인 무언가의 목격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함을 점차 쌓아가며 분위기를 조성한다정확히는 무언가가 나와서 무섭다가 아니라 그냥 멀쩡하게 생긴 집 자체가 무섭다는 인상이다여기서 나타난 공포 요소는 복선이 주어지고 나중에 무슨 의미인지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이다나름 이 부분을 추리 요소로도 볼 수 있긴 한데 무서운 이야기에서 흔히 나오는 반전 같은 것에 가까워서 추리로 보이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그저 이런 부분에서 공포와 추리는 성격이 다르면서도 한 끝 차이로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괴담 기담 · 사제 원인

 

안 좋은 일은 갑자기 연달아 온다고 하는데딱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실화 괴담이다무슨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연속 불행에 대한 원인이 딱히 존재할까만약 존재한다면 이런 것 밖에 없다불길한 무언가와 접촉했다든지일종의 저주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저질렀다면 몰라도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면 예기치 못한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특히나 이게 실화 괴담이라고 하니...

 

 

 

한밤중의 전화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 된 나전화를 건 친구는 내가 작가 데뷔를 한 기념으로 방문했었던 심령스폿으로 유명한 산에 와 있다고 한다그저 밤중에 심령스폿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호러작가라는 설정을 현실에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그런데 친구가 전화를 계속 이어가며 문제의 심령스폿을 방문한 이후 발생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전화와 관련된 괴담하면 대부분 둘 중 하나다수신자나 발신자에게 뭔가 있다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소설로 진행했으면 약간 뻔하게 보일 수도 있어 대화문으로만 진행되는 내용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다른 서술이 없으니 대화 안에서 나오는 한정된 정보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만약에 작중 인물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더라도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이상독자 역시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런 부분에서 공포 뿐만 아니라 추리 요소를 어느 정도 써먹기 딱 좋다.

 

부주의 하게 심령스폿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한다옛날이나 지금이나 단순 재미로 버려진 장소에 무단 침입하는 사례가 많다사유지 무단 침입 같은 법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좋지 않은 장소에 있는 것에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보통은 그런 좋지 않은 것이 따라온다는 표현한다그런데 요즘 같이 통신이 발달한 시대라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찾아간다이것도 어디까지나 전화 관련 괴담에서 자주 나오는 것이긴 하다.

 

 

 

재나방 남자의 공포

 

지방의 어느 온천 여관에 머물던 나여관 건물 구조가 독특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본관 건물 밖에 존재하는 산길을 발견한다호기심에 산길을 올라 온갖 폐허를 목격한 끝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서둘러 여관으로 돌아오게 된다이후 자정 무렵불이 꺼진 온천에 들어가 있을 때 그 누군가와 만나게 된다그는 어쩌다보니 산 속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예전에 그림 연극을 하던 시절 겪은 재나방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이들 앞에 나타나는 괴인에 대한 괴담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국내에서는 빨간 마스크나 홍콩할매귀신 같은 경우에 해당하고이런 괴담의 원조인 일본에는 입 찢어진 여자(빨간 마스크의 원조 격인 괴담)와 빨간 망토가 있다서양에서 비슷한 것이라면 19세기 영국에서 목격된 스프링힐드 잭이라는 것도 있다여러모로 익숙한 괴담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특이하다고도 할 수 있다근현대에 들어서 많이 발생한 괴담이라는 점과 그냥 길에서 마주친 정신이상자나 거수자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의 형체를 한 기이한 존재로 묘사되는 부분에서 말이다작중에 등장하는 재나방 남자는 길거리 괴인 괴담에 서양에서 유명한 모 크리처를 합친 듯한 이미지다중간에 그 크리처가 언급되는 걸 보면 확실히 모티브로 삼은 것이 맞는 모양이다.

 

재나방 남자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앞선 다른 소설들에 비해 추리소설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피해자범인목격자사건현장의 미스터리추리소설하면 당연히 나오는 요소들이다단순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 사건을 다루다보니 조금 더 자세한 단서 같은 것이 없긴 하지만 정황만 가지고 추리가 진행되긴 한다보통 이런 정황 추리는 물증이 없어서 조금 끼워 맞추기 식으로 허술하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나름 그럴싸한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이 되다보니 꽤 그럴싸하게 나오는 편이다.

 

여기까지 보면 단편 괴기 추리겠지만 사건의 범인에 대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사람인가아닌가그냥 살인범이라면 추리소설로 끝나지만 범인이 정체불명이라면 공포소설이 되는 셈이다이건 앞서 말한 괴인 괴담에서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아마 작가는 이런 사소한 부분의 차이로 공포와 추리가 구분되며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한 경우라면 장편 시리즈인 도조 겐야 시리즈를 단편 소설로 접하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

 

 

 

괴담 기담 · 사제 애견의 죽음

 

애완동물과 연관된 괴담 역시 심심치 않게 있는 편인데 이 괴담 역시 그런 사례다이런 괴담의 특징이라면 애완동물의 진짜 정체 같은 괴기스러운 경우와 주인과의 인연을 다룬 감동적인 경우로 나눠진다그런데 이 괴담은 감동적이라 봐야할지 기이하다고 할지 조금 애매하다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주인의 사랑으로 이어진 어딘가 감동적인 괴담이긴 하다문제는 이것이 애견이 만들어낸 기묘한 기적 치고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괴담에서 무슨 과학적인 것을 따지냐고 하겠지만 이건 창작이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실화괴담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뒷골목의 상가

 

소설에 들어갈 괴담 소재 조사를 부탁한 나그 중에는 씨라는 인물이 겪은 어느 골목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체험인이 아직 그 곳에 거주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취재원이 사용 허가를 거부한다하지만 작가로서의 알 수 없는 기질 탓인지 나는 최대한 각색을 해서 소설 속에 해당 괴담을 넣으려 시도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괴이한 일로 인해 결국에는 완전히 포기한다이후 취재원으로부터 오랜만에 우편물이 도착한다그 안에는 안부 인사가 적힌 편지와 함께 씨가 체험했다는 그 기이한 골목 이야기가 자세히 적힌 원고가 있었는데...

 

도시에서 가장 외진 곳이라고 한다면 골목길 밖에 없다물론 골목마다 다 똑같다고 할 수 없고 주택이나 상가가 밀집한 곳인 경우도 있어서 사람이 아예 안 보이는 곳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골목이라고 하면 어딘지 무섭다는 인상이 드는 건 왜일까그것도 뒷골목이라고 할수록 더더욱그건 일상적으로 보이는 바깥 공간이 갑자기 협소해 보인다는 인상과 함께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는 위화감이 겹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마치 원래 알던 세계에서 이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이런 곳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일 수밖에 없다그것도 앞에서 다가오는 것보다 뒤에서 오는 경우가앞에서 오면 적어도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하지만 뒤라면 돌아보지 않는 이상 소리로 인식하는 것이 전부니까.

 

이런 골목길에서 느낄 법한 공포가 이 소설 속 괴담에 농축되어 들어 있는 인상이다단순히 골목길에서 위험한 사람이나 괴이한 존재와 마주친다는 정도가 아니다마치 현실과 다른 세계로 분리된 곳으로 빨려 들어가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존재에게 쫓긴다는 인상이다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그냥 뒤를 따라오는 낯선 존재라면 피하거나 숨으면 그만이다그런데 뒤를 따라오는 것이 하나의 공간이라면 어떨까현실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나와 그 낯선 존재랑 단 둘만이 존재하는 다른 세상내가 아는 세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가 골목길에서 끝나지 않고 확장돼버리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안과 밖의 의미가 없어진다아무리 숨 죽여 숨어 있더라도 그 존재는 자신을 인식한 이상 어디든 찾아가니까.

 

결말에 나타나는 기묘한 추리 부분은 서술 방식이 완전 다르긴 하지만 <붉은 눈>에서도 반전으로 쓰인 것을 재탕한 것이나 다름없긴 하다무서운 이야기 결말에서 흔하게 쓰이는 클리셰나 다름없기도 하고보기에 따라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섬뜩함을 느낀다단순히 저주 같은 것이 퍼져 나가는 게 아니라 무서운 이야기이라는 또 다른 세상이 현실에 구현되어 빨려 들어간다는 인상이라 그렇다작가가 설계한 메타적 설정이라는 점에서 꽤 흥미롭기도 하다.

 

 

 

괴담 기담 · 사제 찻집 손님

 

단순히 찻집에서 무례한 말로 떠드는 다른 손님을 작가가 직접 목격한 일 정도의 내용이다조금 허무하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이걸 눈앞에서 내가 직접 겪는 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할 것이다끝으로 각 괴담의 후기와 함께 작가는 아주 좋은 충고를 해준다그 어떤 무서운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서 듣는 것이 최고다.

 

 

 

맞거울의 지옥

 

교토에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나는 도쿄로 출장을 가서 캡슐 호텔에 묵게 된다거기서 세면실 거울이 좌우로 붙어 있는 맞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문득 란포의 소설을 떠올린 그때 마침 세면실에 들어온 나이 많은 남자가 관심을 가져 잠깐 대화를 주고받다가 아예 괴담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그런데 갑자기 남자는 거울이 무섭다고 하면서 맞거울 때문에 자기 동생에게 일어난 무서운 일을 들려주는데...

 

거울 역시 많은 괴담에서 나오는 소재거리 중 하나다거울에 무엇이 비치는가비치지 않은 가의 문제부터 깨트려서 발생하는 부정기묘한 의식이나 부적으로의 용도 등등신비로움과 공포가 함께 존재한다고 해도 될 정도다특히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맞거울은 한때 엘리베이터 거울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들어봤다.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해서 만들어지는 무한의 상 속에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솔직히 소재 면에서는 잘 알던 괴담이라 그런지 크게 특별하다는 인상은 아니다결말 역시 마찬가지고그럼에도 맞거울을 들여다보는 묘사나 맞거울 속에 비춰지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 기묘하다여기에 작중 인물의 일그러져 버린 인생과 맞거울이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무한이 반복되는 거울의 상좋은 일 없이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심심하고 불행한 삶무엇이 진짜 자신인지 알 수 없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무한히 펼쳐진 거울상을 들여다보게 되고그 끝은 나 자신이 진짜 내가 아니게 돼버리는 파국이다거울 너머의 무언가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은 이런 걸 뜻하는 걸까.

 

여담으로 여기서 언급된 란포의 소설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든 심심하게 읽었든 간에 맞거울이라는 나름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울을 볼 수 있으니까.

 

 

 

죽음이 으뜸이다사상학 탐정

 

사람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눈으로 확인해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할 죽음을 막는 탐정 쓰루야 슌이치로갑작스럽게 사무소를 방문한 이누마라는 의뢰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돌려보내려 한다하지만 어딘가 포착하지 못한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끼며 결국 사연을 들어본다이누마는 자신의 친구 3명이 죽었고 그 중 2명으로부터 죽음을 권유하는 말이 들려온다고 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장편 시리즈인 사상학 탐정 시리즈에 해당되는 단편이다일본에서는 8권까지 출간되어 시리즈가 완결 되었고국내에서는 2권까지만 출간되고 중단 된데다 그마저도 절판된 상태다.

 

심령 요소가 들어간 추리는 어떤 것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는데이 작품에 나온 사건과 해결방식을 보며 이런 식으로 새로운 추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감탄했다추리하면 당연히 존재하는 피해자와 범인이라는 구도는 이 소설에도 있다단지 있는 그대로 현실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비유로 사용돼 작가만의 새로운 방식을 대입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심령 요소 안에서 나름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한 동시에 섬뜩함을 나타낼 수 있다보통은 추리로 밝혀낸 진실이 놀라움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진실이 곧 공포인 것이다.

 

여담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의뢰인이 앞서 나온 단편 중 하나에 나왔던 등장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정보를 그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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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시대의 아이콘 평전시리즈 1
폴 콜린스 지음, 정찬형 옮김 / 역사비평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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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 소설이나 시, 에세이는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생애를 깊게 다룬 평전은 처음 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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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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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그림자 속에는 숨어 있는 것들이 많다표면에 들어나지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되는 깊은 세계무슨 일이 일어나고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이곳에서 발생한 일이 사회 표면으로 올라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수면 가까이에서는 절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심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괴리감과 함께숨어 있던 심연을 탐색하고 파해 치려는 시도가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이다실체가 들어나기 바라는 이들이 있기에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얽힌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다단서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묻혀버리거나 남는 것은 이거 밖에 없다이 심연에 발을 들이민 이들에게 끝나지 않을 후유증으로 남는 크나큰 상처.

 

 단 한 번의 실수로 가족을 잃고 하루하루를 술로 살아가는 전직 형사 이호진그에게 예전 상사였던 백동표 과장이 찾아와 몰래 조사할 일을 의뢰한다다름 아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단서는 실종된 딸이 나온 포르노 영상 뿐이마저도 경위를 알 수 없기에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사건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되는 수사그러나 수사 진행되면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상처호진은 이 사건을 반드시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데...

 

 전반적으로 어둡고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분위기가 강하다주인공부터가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에 진한 술 냄새가 느껴지는 묘사와 서술까지 더해져 거칠거칠한 느낌이다여기에 사건마저 사회의 이면을 다루기에 이렇게 보이기도 한다여기서 나타나는 미스터리는 어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것은 거울에 비친 듯이 나타나는 자기 자신의 모습요지경 이 꼬라지하며 흉을 보는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는 진실자기 자신은 깨끗하고 잘못된 게 없다고 부정하겠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얼마나 역겨운 위선자로 보이는지남을 비판할 수준도 안 되는 것들이 큰소리치고 다니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걸로 보일 것이다흔히 말하는 이런 거 말이다철없는 사회 초년생 사이에서 발생할 법한 일탈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강력 범죄평화로운 가정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비극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겉 표면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겉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비춰지니까그 자극에 이끌려 감정을 쏟아내고 열을 내며 더욱 부풀리니까 진짜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그렇게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애먼 곳에 화풀이 하고 책임을 묻는 코미디가 벌어진다이게 문제다저런 걸 보니까 범죄로 이어진다규제해야 한다이러는 사이에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 방치 된다앞에서는 꼰대질 하면서 자화자찬실질적인 문제는 바뀌는 것이 없는 현실겉은 자극적으로 변하고 본질은 묻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추리요소로 사건을 뒤집어 버리는 점이 아주 놀랍다느릿느릿하고 진한 고독함으로 가득한 하드보일드 분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수사 흐름만 따라가는 구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눈여겨볼 것 없이 지나가게 된다건조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배경으로 보이기에 그렇다무겁지만 너무 뻔한 듯이 흘러가는 인상이라 어딘가 심심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단서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상당한 충격을 주는 것에 비해 사실상 모든 전말이 범인을 통해 밝혀지는 탓에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처참한 현실을 아주 크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사회의 이면검은 그림자를 나타내기에 이만한 연출이 어디 있을까.


 사회의 이면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구나 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익숙하게 자주 접하는 모습이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자각하지 못하고그저 자기 자신이 부정 당한다고 합리화 해버리는 것이다그런 상태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든 공격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더 정확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만만한 대상을 지목해 사회의 악이라고 몰아간다올바른불건전불법범죄조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악질적인 인지부조화라고 밖에 볼 수 없다그렇게 상처는 끊임없이 커져간다내 상처만 생각하며 남에게 상처를 내고그 상처는 곧 다시 돌아와 더 큰 상처를 낸다상처는 상처로 번지고 번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난도질하는 형국이 된다이걸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거다본질을 외면하지 말자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겉으로 들어난 것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더 깊은 사정을 파악하고 해결하자애먼 공격대상을 찾으며 책임전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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