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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사회의 그림자 속에는 숨어 있는 것들이 많다. 표면에 들어나지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되는 깊은 세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이곳에서 발생한 일이 사회 표면으로 올라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 수면 가까이에서는 절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심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괴리감과 함께. 숨어 있던 심연을 탐색하고 파해 치려는 시도가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이다. 실체가 들어나기 바라는 이들이 있기에,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얽힌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다. 단서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묻혀버리거나 남는 것은 이거 밖에 없다. 이 심연에 발을 들이민 이들에게 끝나지 않을 후유증으로 남는 크나큰 상처.
단 한 번의 실수로 가족을 잃고 하루하루를 술로 살아가는 전직 형사 이호진. 그에게 예전 상사였던 백동표 과장이 찾아와 몰래 조사할 일을 의뢰한다. 다름 아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단서는 실종된 딸이 나온 포르노 영상 뿐. 이마저도 경위를 알 수 없기에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사건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되는 수사. 그러나 수사 진행되면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상처. 호진은 이 사건을 반드시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데...
전반적으로 어둡고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주인공부터가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에 진한 술 냄새가 느껴지는 묘사와 서술까지 더해져 거칠거칠한 느낌이다. 여기에 사건마저 사회의 이면을 다루기에 이렇게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미스터리는 어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것은 거울에 비친 듯이 나타나는 자기 자신의 모습. 요지경 이 꼬라지하며 흉을 보는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는 진실. 자기 자신은 깨끗하고 잘못된 게 없다고 부정하겠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얼마나 역겨운 위선자로 보이는지. 남을 비판할 수준도 안 되는 것들이 큰소리치고 다니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걸로 보일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이런 거 말이다. 철없는 사회 초년생 사이에서 발생할 법한 일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강력 범죄. 평화로운 가정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비극.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겉 표면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 겉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비춰지니까, 그 자극에 이끌려 감정을 쏟아내고 열을 내며 더욱 부풀리니까 진짜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애먼 곳에 화풀이 하고 책임을 묻는 코미디가 벌어진다. 이게 문제다. 저런 걸 보니까 범죄로 이어진다. 규제해야 한다. 이러는 사이에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 방치 된다. 앞에서는 꼰대질 하면서 자화자찬, 실질적인 문제는 바뀌는 것이 없는 현실. 겉은 자극적으로 변하고 본질은 묻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추리요소로 사건을 뒤집어 버리는 점이 아주 놀랍다. 느릿느릿하고 진한 고독함으로 가득한 하드보일드 분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수사 흐름만 따라가는 구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눈여겨볼 것 없이 지나가게 된다. 건조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배경으로 보이기에 그렇다. 무겁지만 너무 뻔한 듯이 흘러가는 인상이라 어딘가 심심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단서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상당한 충격을 주는 것에 비해 사실상 모든 전말이 범인을 통해 밝혀지는 탓에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처참한 현실을 아주 크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사회의 이면, 검은 그림자를 나타내기에 이만한 연출이 어디 있을까.
사회의 이면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구나 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익숙하게 자주 접하는 모습이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자신이 부정 당한다고 합리화 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든 공격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만만한 대상을 지목해 사회의 악이라고 몰아간다. 올바른, 불건전, 불법, 범죄조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악질적인 인지부조화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렇게 상처는 끊임없이 커져간다. 내 상처만 생각하며 남에게 상처를 내고. 그 상처는 곧 다시 돌아와 더 큰 상처를 낸다. 상처는 상처로 번지고 번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난도질하는 형국이 된다. 이걸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거다. 본질을 외면하지 말자.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겉으로 들어난 것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더 깊은 사정을 파악하고 해결하자. 애먼 공격대상을 찾으며 책임전가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