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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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면 놀이

 어릴 때부터 몸이 성치 않았던 나는 자신의 재력을 들먹이며 떵떵거리는 할아버지로 부터 6.25 시절 방문했었던 펀치볼이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듣게 되는데...
 6.25를 배경으로 한 사건을 다룬 내용으로 산간지역의 척박함과 고립감 속에서 나타난 충격적인 광경이 정말 놀라웠다. 무엇보다 미지와 실체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면서 뭐가뭔지 알 수 없게 만든 분위기는 돼지가면 놀이의 섬뜩한 부분적 실체는 전쟁보다 더 참혹하다는 감상을 느끼게 했다. 공포로서 돼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만, 여기서 들려오는 꿀꿀 소리를 듣다보면 돼지가 이렇게 무서운 동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제목과 작중 언급되는 돼지가면 놀이가 어쩐지 인터넷에서 본 괴담인 "소의 목"이 생각나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이걸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숫자 꿈

 언제나 현실을 추구하던 회사원 강에게 어느 날부터 의문의 숫자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걸 읽고 정말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진짜 이게 무섭다고, 공포라고 생각하고 쓴 게 맞는지. 거기에 내용에 나온 것 대부분이 어디서 많이 본 것들 투성이라 짜집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뭘 보고 이걸 공포소설이라고 선정한 건지. 단편선 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용도 그렇게 긴장감 있지도 않았다. 이런 죽음의 예언 같은 내용은 죽음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등의 긴박함이라던가, 예상도 못한 죽음에서 오는 섬뜩함이나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을 법 한데, 이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단조롭고 진부하기만 할 뿐이다. 그냥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게 설정했는지 알려주기 위해 단편소설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공포모음집이 더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당 아들

 무당 어머니의 손길을 피해 교도관으로 취직한 영민. 첫 근무 날, 영민은 순찰 도중 18번 방에서 목을 매단 수감자를 목격하게 되는데...
 교도소를 배경으로 현실범죄에 대한 고찰을 느끼게한 내용이었다. 교도관이 어떻게 근무를 하는지, 대체로 교도소가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잘 나타나 있었다. 다만, 너무 세세한 감이 약간 있어서 살짝 지루할 뻔했다.
 내가 봤을 때는 제목과 내용이 큰 괴리감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무당 아들이라는 제목과 교도소, 그리고 현실 비판은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처음에 무당 아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귀신 얘기라고 확신했는데, 알고보니 성격이 전혀 다른 내용이였다. 그래서 이 무당 아들이라는 요소를 빼고 교도소 관련 내용으로 계속 밀고 갔으면 어이없는 감상없이 충격적인 내용이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무당 아들이라는 요소를 유지하고 제목만이라도 교도소와 관련되게 했으면 좋을 것 같다.
아마 귀신 얘기인줄 알고 봤더니 갑자기 사회훈계가 나와서 많은 이들이 실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관바리

 출장차 대전에 온 나는 비 속을 뚫고 어렵사리 낡은 여관의 방을 구하게 되고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딘가 전형적인 인터넷 괴담류 같은 느낌이나 단순히 느낌만 그럴 뿐이었던, 나름대로 신선한 내용의 공포소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크게 무서운 건 아니다. 허름한 여관, 으스스한 느낌. 인터넷 상의 폐가체험 내용의 무서운 이야기 같은 글에서 많이 볼 법하나, 나름대로 작가 만의 스타일로 나타낸 공포가 보여서 그렇지, 이런 게 없었다면 숫자 꿈과 하등 다를게 없을 뻔했다.
 신선하다고 느낀건 토속신앙에서 다루는 가신(家神)이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보였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에서 나왔듯이 가신이라 해도 사연이 있을 것이고, 아무리 가신이라 할지라도 귀신은 귀신이기에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것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작가 소개란에 나온 말이 정말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낚시터

 금연 차 방문한 낚시터에서 나는 기묘한 생명체를 낚으려다 손가락 하나를 절단 당한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잘린 손가락은 집에 나타나고, 다시 손에 붙기까지 한다...
 작중 분위기라던가 느낌으로 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데이곤과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외진 마을과 출처불명의 지역, 기묘한 사람들,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 거기에 결말까지 치자면 해안가 마을이 아닐 뿐이지, 거의 인스머스의 그림자 같기도 한다.
 문제는 이게 장점이면서 큰 단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이건 인스머스와 비슷하다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수생괴물의 이미지라는 게 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데이곤처럼 느껴지는 건 내 개인적인 느낌인 것인지...

며느리의 관문

 재벌가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된 은혜는 결혼식 전 회장님을 뵙기위해 동생과 함께 저택으로 향한다. 문제는 남자친구에게 돌아가셨다는 어머님이 살아있다고 듣는데...
 흔해빠진 재벌가 얘기 위에 SF스러운 공포를 뜸뿍바른 느낌이었다. 영생과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재벌가란 내용틀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는다. 기업가 내에서 바라는 영생을 뒤틀리게 나타낸 것 같은 느낌과 이 영생의 부작용을 보면서 사람의 기술이 언제든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고 느꼈다. SF적인 공포도 공포였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신데렐라 같은 것이 현실에서도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도 나름대로 심적 압박을 주기에 충분했다.

헤븐

 아는 선배의 별장으로 향하던 중, 길을 잘못든 미라. 빗 속에서 차가 퍼져버린 상황에 근처 별장을 찾은 미라는 그 집의 부부와 집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전형적인 외진 곳에서 마주친 미친 살인마의 집 같은 구조로 보이나 역시 매드클럽 소속의 작가분다운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동안 봐온 이 작가 분의 스타일대로 역시나 슬래셔 영화 같은 거침없는 느낌과 스릴은 여전하다. 흔히 이런 슬래셔 느낌은 공격하고 피하고, 반격하고, 또는 죽이고 하는 전개가 나오고 뒷마무리가 허술하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 분처럼 슬래셔 느낌을 유지하면서 뒷마무리까지 깔끔한 것은 처음 보았다.
 끝으로 한 사람의 트라우마를 이렇게 심도있게 표현한 것에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로 연결된 다섯 사람. 드디어 얼굴을 마주보게 된 이들은 정작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중,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예전에 발생한 캣쏘우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느껴졌다. 긴박한 전개와 약간 스릴있어 보이는 느낌 끝에 있는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마무리가 일품인 것 같았다. 동물을 학대하는 자의 심리라던가, 동물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 간의 충돌로 이어지는 구성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는 스릴러로서는 모를까, 공포로서의 면모는 약간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토

 다이어트를 하던 나는 오래 전, 뚱뚱하던 친구가 살이 빠져 나타난 걸 보고 경악한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서 매일 역한 냄새가 나는데...
 현대에 다이어트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면서 공포로서의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주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내적인 요소가 공포로 작용해서 그런지 마치 크리처물 같은 상상하지 못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흔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전개라서 식상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파리지옥

 동창회에 갔다가 필름이 끊기고 정신을 차린 나는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집으로 가기위해 나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가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호스텔의 편의점 버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는 명백하나 심리적으로는 그 위치가 왔다갔다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추악함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마치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초창기 작품들처럼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공포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방심하는 순간 그대로 서서히 잔혹하게 죽여가는 파리지옥. 자연에서 보면 별거 아니게 보이겠지만, 이게 사람으로서 나타낸다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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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완전범죄를 꿈꾸는가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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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을 보고서 조금은 당황했다. 논리적인 면을 추구하는 추리에 마법이라니. 이건 뭐 지팡이로 뿅! 한 번하면 범인이 밝혀지고 끝! 아닐까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가 누군가. 온갖 개그요소가 난무하면서도 증명 가능한 추리를 내놓는 히가시가와 도쿠야 아닌 가. 말도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범인이 미리 나오고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는 도치형식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범인을 밝히는 형식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건 아니다.

  최근에 찾아보니 올해 7월 말 쯤에 이 인물들이 나오는 두 번째 책이 발간된 걸 보아 이카가와 시 시리즈처럼 시리즈 확정인듯 하다. 표지를 보면 딱 내년 여름에 나오면 맞을 것 같다.

 인물의 구성을 보면 역시 히가시가와 도쿠야 다운 인물들이라 할 법하다. 보라는 현장은 안 보고 쓰바키 경위의 신체부위에 집중하는 오야마다 소스케 형사, 그런 소스케를 나무라면서도 정작 본인도 수사중 삼천포로 빠지는 낌새를 보이는 쓰바키 경위, 거기에 말괄량이 마법사 소녀 마리까지...
 대체로 범인의 범행 행각이 도입부에서 먼저 나오기 때문에 서술자가 범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범인의 내면 묘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트릭에 대한 느낌을 말하자면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처럼 기발한 건 있어도 크게 거창한 것은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나오는 마리의 병크 아닌 병크가 좀 난무하는 바람에 수수께끼 시리즈보다 진지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가벼워도 이렇게 가벼운 건 없을 정도다. 이 마리의 병크 때문에 경찰이 범인에게 공격당하는 게 당연시하게 나오는 것도 허다하다.
 좀 특이하고 재미있고, 거기에 약간 웃긴 게 보고 싶다면 모를까...진지한 내용을 추구하는 분들은 재미는 커녕, 이게 뭐하는 지꺼리야! 장난해! 등등의 소리를 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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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거미의 이치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철서 이후로 오랜만에 접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라 정말 반가웠다. 이번 편은 우부메부터 철서까지의 사건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어서 거의 교고쿠도 시리즈 1분기 정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면이 빠지지 않고 있으나, 주로 보면 제목 그대로 이치. 즉, 행위에 대한 정당한 흐름이 많이 다루어지고 언급된다. 이치라는 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일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으냐에 따라 이치가 결정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추리소설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인 논리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를 다룬다는 건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는 것일테다.
 작년부터 시작된 금속공 히라노 유키치의 눈찌르기 연쇄살인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쿄도에서 일어난 네 번째 현장에서 기바는 생각지도 못한 증거품을 발견하면서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이윽고, 그게 현실로 일어나게 되자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는 가운데 거미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하코네 사건 이후, 탐정이 되기 위해 에노키즈의 사무실을 찾은 마스다는 조수가 되기 위해 스기우라라는 남자를 찾는 의뢰를 떠맡게 된다. 그런데, 스기우라 실종 의뢰와 보소 반도 쪽에서 일어난 성 베르나르 여학교의 검은 성모 사건, 오리사쿠 저택의 교살마, 그리고 최근의 눈알 살인마가 기괴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거대한 무언가, 즉 거미가 개입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전개 중, 유독 눈에 띄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던 것은 바로 기바의 수사와 추리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기바 형사는 경찰이라 하는 것도 무색하게 세키구치 만큼이나 별역할 없었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되집어 보자면 우부메에서는 중간의 사건 연결고리 및 후반 보조 역할로서 이 인물이 작중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정도였고, 망량에서는 사건 관계자로서 내용을 이끌어가기는 했으나 경찰로서가 아닌 단순히 직업이 경찰인 한 남자였을 뿐이며, 결국에는 마지막에 최대 피해자 중 하나로 전략했고, 광골에서는 그나마 경찰로서의 면모는 있었으나 사건 개입의 위치라던가, 대부분 나카토 형사가 이끌어간 관계로 단순한 조연 경찰이었을 뿐이었고, 철서에서는 아예 관할이 다른 관계로 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무당거미에서는 그 동안의 처우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그가 무조건 감과 힘으로 만 밀어 붙치지 않고(물론 아예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교고쿠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본인만의 논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사건의 한부분을 이끌어간다. 작가가 그 동안 레귤러 4인방(교고쿠도, 세키구치, 에노키즈, 기바) 중에서 가장 입지가 작았던 기바 형사를 띄워주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바와 더불어 작중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긴 건 놀랍게도 에노키즈였다. 그 동안 시답지 않은 말을 지껄이는 괴짜에 불과했던 미남이 여기서는 말그대로 구원자, 즉 광골에서 발언한 에노신의 면모와 침착하고 냉정한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두명의 친구 아닌 친구의 활약을 보다보니 전작에서 약간 편견아닌 편견이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바는 대체적으로 무지막지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에노키즈는 거만하고 제멋대로며 그 때문에 사람, 그 중에서 여성을 깔보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번 작품에서 그게 단순히 표면적으로 들어나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편견이었다고 말하듯이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기바는 여자가 불편하다고는 하나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류의 여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여자들을 안타까워하는 등의 자상한 면모가 돋보였다.
 에노키즈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인 발언과 특유의 오만함으로 혼란을 야기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옳고 그름을 잘가리고 편견, 특히나 어른들의 선입견으로 고통받는 소녀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사건에서의 돌발적인 진행을 미리 방지하는 등의 진정한 에노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성 베르나르 여학교 부분에서는 전작인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요리코와 가나코의  흔적이 보였다. 망량 초반에  흔히 아가씨라고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나오는데, 기독교 계열이라는 점을 빼면 성 베르나르 여학교도 마찬가지다. 다만 망량은 시대적 분위기와 어른들의 논리에 치우친 10대들의 방황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무당거미에서는 비뚤어진 학교의 실태를 다룬 것처럼 보였다. 사건의 해결보다는 본인들의 명예를 중시하고, 역시 어른들의 논리라는 선입견에서 나오는 수많은 차별, 그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교의 어리석음. 딱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현대의 학교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명예와 이미지 그리고 이익만 중시하고, 학생과 학교에 대해 무지한 관계자들이 교육의 장을 처참히 망가뜨리리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등장인물에서도 공통사항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주요인물 중, 구레 미유키는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을 받는 요리코와 처지가 비슷하고, 그 밖의 사건과 연관된 오리사쿠 미도리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으나 본의아니게 사건의 희생양이 된 가나코와 비슷했다. 특히 오리사쿠 미도리는 쓸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풍기며 강한 이미지를 남겼으나 작중에서 금방 퇴장해서 자취를 감춰버린 가나코의 연장선상, 더 자세히 말하면 망량에서 못다보여준 가나코의 이미지와 속마음에서 나오는 뒤틀림을 대신해서 보여준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이렇듯 가나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보여준 만큼 미도리는 어떻게 보면 가나코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소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 베르나르 여학교에서 이어진 오리사쿠 저택 역시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시바타 그룹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망량에서는 전적으로 남성들이 강하게 나선 시바타와는 반대로 오리사쿠는 강하게 나오는 여성들이 많았고, 느낌은 다르지만 망량 같은 사건들 간의 연계성이 있었다. 망량 같은 경우는 서로 다른 사건의 실체를 찾다보니 상자, 즉 각각의 사건들이 접점을 이루면서 결국에는 거대한 육면체 공간에서 놀아났다는 충격을 느끼게 한다. 반면, 무당거미는 오히려 사건들 간의 연계점을 빠르게 부각시키면서, 실체를 먼저 인식하게 만들어 오히려 누군가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경우로 보였다. 무엇보다 연관성을 따지자면 첫 작품인 우부메부터 내려가기 때문에 전편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것이다.

 오리사쿠와 시바타를 비교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부재 문제였다. 오리사쿠 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건 어머니와 딸 셋. 그러나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작중에서 오리사쿠 가문이 저주 받았다고 하는 건 이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지 않았을 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이 다루어져 있어서 남성에 대한 내용은 없을 것 같지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 안의 여성성을 부정하라고 강요당하는 남자의 얘기다. 이건 성별문제를 넘어선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교고쿠도는 말한다. 애초에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은 없다. 그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니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지 성별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남자와 여성에 대한 교고쿠도의 발언은 많았지만, 이게 그 발언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차별 문제에 있어서 남자, 여자 구분된 건 없다.

그걸 굳이 구분해서 나누는 것이야 말로 차별이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마 망량과 비슷한 이유와 석연치 않게 퇴장한 인물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석연치 않다는 점은 메인 사건인 눈알 살인마와 교살마 사이의 격차일 것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는 선에서 다루자면 교살마는 직접적인 언급과 교고쿠도의 제령이 있었던 반면, 눈알 살인마는 기바의 시점에서만 다루어지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심지어 관련자까지 이유 없이 퇴장한다. 더불어 철서처럼 레귤러 중, 한 명의 부재도 원인일지도 모른다.

  여성 권리와 일본 패전 당시 발생한 매매춘. 과거에서 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모계사회의 붕괴. 그리고 탄압 속에서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 위에 또 숨겨져 있었던 거미의 존재는 사건의 스케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과 마주하고 나서 느낀 건 교고쿠도의 말대로 정말 이렇게 해야 했었나,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깊은 허탈감이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발언권이 없을 정도로 남성의 차별도 모자라 같은 여성의 차별까지 심했다면, 같은 가족이라도 여자라고 차별을 받는다면, 또 애초에 남자든 여자든 이치에 맞지 않는 차별을 받는 다면, 소중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지라도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차별이란 결국은 엄청난 파국을 남기는 것일 테다.

 마지막 권을 읽고 반드시 첫 권의 맨 앞 페이지로 꼭 돌아가 보기를 바란다.

 처참한 사건 뒤에 숨겨진 서글프면서 나름 최선이었던 무당거미의 이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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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전 -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 / 프로파간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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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소설이 있으면 탐정이 있고, 탐정이 있으면 사건있고, 사건이 있으면 추리가 있다. 이게 뭔 말인지 저도 써놓고도 모르겠지만, 설명하자면 추리는 돌고 돈다? 이 정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추리소설이 늘어날 수록 탐정도 늘어나고, 또 사건도 늘어나고, 추리도 늘어난다가 되겠습니다.(그만해...)

 해외에도 이런 책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탐정에 대한 사전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셜록 홈즈 정도로 시작했다가 점차 넓어져서 영미권 탐정들 대다수를 접하고, 일본 미스터리까지 가다보면 탐정만 사는 나라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많아질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전으로 한 번 쯤은 정리를 해줘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탐정사전은 말 그대로 사전처럼 가나다 순으로 추리소설에 나오는 유명 탐정들에 대해서 나와 있다. 국내에 정발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대다수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고, 고전 추리의 유명 탐정, 추리 만화 탐정, 미드에 나오는 탐정, 그리고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매력적인 탐정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알고 있는 탐정이 나왔을 때는 반갑기도 하지만, 자기가 원하던 탐정이 없을 때는 약간 아쉽기도 할 것이다.
 주로 기제된 것은 탐정에 대한 이력과 작중에서 나오는 스타일, 국내나 해외에서의 인지도와 대체적인 평가, 매력적인 이유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작가에 대한 분량이 약간 더 많은 게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탐정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추리소설 입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책에서 본인도 모르던 탐정을 꽤 찾았고, 그 탐정이 나오는 책을 찾아보니 '아, 이게 추리소설이었어?'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약간 문제점으로 보인게 있다면 바로 관 시리즈 탐정인 시마다 기요시 항목이다. 안 그래도 추리소설은 스포일러 되면 재미를 잃게 되기 마련인데, 시마다 기요시 항목에는 관 시리즈 3번째 작품인 미로관의 살인의 반전요소(살인사건 자체에 대한 건 아니다.)를 그대로 기제해서 탐정에 대해서 알다가 약간의 스포일러를 보게 되는 격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 장정을 너무 고급스럽게 해서 가격을 올린 것도 좀 그렇게 보였다. 배송받고 보니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표지가 껍데기로 있는 고급 양장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고 알린다. 뭐, 개인적으로 나쁜 건 아니다만 탐정 사전을 내서 잘 모르던 탐정에 대해 알리려고 했다면, 고급스럽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가격부담 없게 반양장본 정도에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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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 1 유다의 별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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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볼 때 눈여겨 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참신한 트릭이라던가, 특이한 소재 같은 것 말이다. 그 중 특히 눈여겨 보게 되는 건 셜록 홈즈처럼 시리즈로 연이어 나오는 인물이다. 국내 추리소설에서도 시리즈로 나오는 인물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던 참이었는데,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다는걸 알아서 기대를 많이 하였다.

이번에 나온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유다의 별은 일제시대 성행했던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하고 상상을 초월한 스케일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변호사 고진의 첫 느낌은 법조인 이미지를 가진 홈즈에다가 어딘지 모를 박학다식한 다크히어로 느낌이 들었다.곶고진이 대부분 추리에 역할을 다한다면 광역수사대 경감 이유현은 단순히 범인체포를 넘어서 구속하기 위한 절차나 조건이라든가, 추리로만 범인을 굴복시키는 추리소설 속의 만능적인 부분을 배제한 상당히 현실적인 경찰 수사 측면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보통은 한 개의 사건에서 알리바이 트릭이나 밀실 같은 기발한 요소 한 개가 사건 전체를 이끌어가는 편이라면, 유다의 별은 거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느낌이다. 밀실, 알리바이 트릭, 암호 해독, 약물을 사용한 살인, 증명할 수 없는 살인 등등, 거의 한 편에 한 두개 쓸법한 여러요소들을 작가가 한 곳에 쏟아넣으니 커도 이렇게 큰 건 처음 느낀다고 해야겠다. 특히나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범인간의 대결구도가 아니었나 싶다. 마치 김전일과 타카토 요이치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건 탓인지 단점도 꽤 있어 보였다. 밀실트릭이나 암호문 같이 흥미로운 요소는 그렇다해도 그 외 나머지 살인에 대해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으로 다 때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김샌다고 해야겠다. 아무리 사이비 종교의 극단성을 나타냈다고 해도 추측만 난무하면 주인공이 하는 말일지 라도 신빙성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살인의 무대가 국내를 넘어선 것에 비해서 약간 흐지부지 된 것과 상당히 영향력있고 기대되던 인물이 후반에 가서 제 역할을 많이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결론을 말하자면 캐릭터와 추리적 요소, 그리고 범인과의 대결하는 듯한 흐름은 몰입감이 정말 좋았지만 마무리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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