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선 : 마리 A.의 기억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4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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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주장은 이러이러한데, 사람들은 나를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기고 비판하고 심지어 정치적으로 몰아 붙인다. 시를 읽으면서 이러한 취급을 받은 게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아닌 가 싶다. 단순히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를 부르짖고, 나의 생각과 비슷해보이는 사상에 동의를 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가 안타깝게 보일 뿐이었다.

 브레히트의 시는 대체적으로 어딘가 리얼한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한 점도 있지만, 특별한 상징을 사용하더라도 그게 감상적인 이미지라기 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 그 자체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다. 베르톨트의 시에 군인이 나오면 진짜 군인이고, 사람이 죽으면 진짜로 죽은 것이고, 절망을 부르짖으면 실제로 절망을 부르 짖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베르톨트의 시는 현실적으로 크게 와닿고 때로는 그가 얘기하는 리얼함이 아직도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리얼함과 동시에 베르톨트의 시에 자주 나오는 것은 전쟁과 민중이다. 이들 만큼 리얼함을 극대와 시키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서 인지 주로 전쟁에 대한 비판과 억압받는 민중의 모습이 많다. 그것도 특정한 물체에 빗대에 비유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리얼함이 살아 있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리얼함을 통해 주장하는 한편으로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이루어진 게 없다는 공허험이 느껴지는 시도 있었다. 그런 시들은 베르톨트 자신이 개인으로서 얼마나 초라한지 깊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베르톨트가 바라던 개인의 행복이 자기 자신에게도 조차 적용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 '후대에게 바치는 시'는 시라기 보다는 그 시대에 대한 통탄을 후대에 전하는 베르톨트의 외침이라는 느낌이었다. 그 당시 시대를 살아가는 베르톨트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철저히 과거의 사람으로 배제하여, 이 시는 그 당시 쓰여졌지만 그 당시의 시점으로는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미래로 보내는 타임머신 그 자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르톨트가 암흑의 시대에서 시로 타임머신을 보냈지만, 과연 현재는 베르톨트가 살던 암흑의 시대와 달라지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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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몽유도원기
조영주 지음 / 피커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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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기록을 보다보면 몇 군데 식은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기록이 찢겨나가거나 소실되서 알 수 없게 되거나, 아니면 기록은 되어 있으나 그 인물의 행적이나 심리상태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거나, 또는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서술하는 경우다. 이러한 미상의 기록들 중에는 나름 사연있는 얘기들도 있지 않을까?

 늦은 밤, 몽유도원을 그린 안견의 아들인 안소희는 북악산 야행을 나선다. 달빛이 강한 것으로 예측하고 나온 것과 달리, 예상치 못한 월식으로 인해 어두운 산길을 걷게 생겼다. 그런데 그때, 산 아래에서 초롱불을 든 선비와 만나 같이 동행하게 된다. 선비는 낭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하고, 안소희 역시 낭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선비는 안소희가 만난다는 낭자가 자신이 만날 낭자와 동일 인물이냐고 의심하자, 안소희는 자기가 만날 낭자는 공혜왕후의 혼백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제목이 몽유도원기라서 안견에 관련 된 내용인줄 알았는데, 전개될 수록 김시습과 성종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맨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약간 역사 미스터리물 느낌이 있었지 않나 한다. 아마 그래서 인지 더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를 꼽자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김시습이 나름 기인 같은 행보를 보이긴 했으나 초반에는 어딘지 모르게 탐정스러운 면이 보여서 조금 당황하긴 했었다. 이렇듯 작중의 김시습의 모습은 로맨스적인 분위기와 별개로 상당히 유쾌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구성하는 인물로 재미를 주지 않았나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반전은 이 소설 속 전개가 실재 역사 속에서 이해할 수 없던 공백 부분에 자연스럽게 들어 맞아 보인다는 것이다. 비록 나온지 좀 된 모 유명 역사영화와 유사한 분위기가 있긴 있었지만, 한 부분의 공백이 아닌 여러 공백을 통틀어서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고 할 수 있을듯하다.

 로맨스적 요소를 보자면, 사랑하는 인물의 뒤바뀜으로 인한 동요와 거기서 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점이 상당히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나 느낌은 판타지 그 자체였다. 정말 제목 그대로 몽유도원의 한 부분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이야 막장이니, 그걸로도 안 되면 아예 판타지적인 요소로 감동적이게 만들어 보자는 부분이 적지 않게 보이는데, 그런 것 없이 단순한 우연적인 요소로 이렇게 느낌을 살려서 제대로 된 로맨스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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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에이지 -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오쓰카 에이지.선정우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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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일본 서브컬쳐 작품이 들어온지 꽤 되었다. 추리소설하면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시마다 소지 등. 만화하면 코난의 아오야마 고쇼, 원피스의 오다 헤이이지로, 드래곤 볼의 토리야마 아키라 등. 그런데, 이 분. 오쓰카 에이지라고 들어봤는가?

           

 

        

 

 

 


 본 저서는 선정우 씨가 오쓰카 에이지를 만나 나눈 인터뷰 내용을 담은 대담집이다. 만화작가이자, 편집자이자, 만화창작 관련 강의도 하고 계신 분이라는데, 이 분의 유명작 중 국내에 들어온건 '다중인격 탐정 싸이코'라는 것 뿐이라 아시는 분이 적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더군다나 19금 판정 받은 거라...)

 앞의 서문에서부터 눈여겨 볼 점이 있었는데, 바로 자아실현이나 자기표현의 욕구부족이 범죄로 이어지고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에게도 공감이 되는 게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을 통해 나를 나타내고, 또는 방법만 알면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수 있는 쉬운 길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용에는 정말 의외라고 여겨지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가 일본을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쓰카 에이지의 말을 보면 아직 일본을 이해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한테는 말도 안 되는 일도 일본에서는 몇 년 동안 해온 당연한 관례인 것이나, 정확한 작법서 없이 구두로 서로에게 알려지는 것을 보면 역시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 출판문화나 만화 쪽에 특이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주로 오쓰카 에이지가 다룬 주제는 오타쿠, 문화, 스토리텔링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가지가 어떻게 보면 관련성이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들에 대해 오쓰카 에이지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 오타쿠라는 말이 생긴 배경과 실제 오타쿠로 불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차이가 있었다면, 현재 오타쿠와 과거의 오타쿠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문화적 해석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부분이 잘못알고 있거나, 크나큰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진리가 많았다.
 많은 주목할 것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오쓰카 에이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명 순문학 논쟁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그 동안 고뇌하던 순문학, 장르문학 문제가 약간은 해결점을 본 것 같았다. 그가 말하는 순문학의 죽음에 대해 보면서 단순히 가치로서의 판단 뿐만 아니라 판매부수와 다른 불공정한 관계, 끼리끼리 노는 폐쇄적 분위기이면서 유명하다고 자부하는 실태는 충분히 비판 받을만한 점이라 생각된다. 오쓰카 에이지가 순문학 논쟁에서 비판한 점을 보면서 우리나라 출판사들도 이런 게 아닌 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에는 장르문학을 취급하지 않던 출판사에서 어느순간 장르문학 브랜드를 신설하거나, 돈 되는 유명 장르문학 소설을 싹쓸이 하려는 행보를 보면 이게 단순한 의심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의식에 대해 나온 부분은 현재 한중일이 겪는 온갖 분쟁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현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대부분 그들의 인간성이나 민족성 같은 걸 걸고 넘어지며 한치의 양보가 없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나 하니 바로 피해자 의식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라고만 여기고 가해자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니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데,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의식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관련 없는 이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데에서 비롯된다.
 21세기, 문화가 요동치는 시대. 한 번 쯤은 오쓰카 에이지처럼 뒤돌아보고 현 상태에 대해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순문학 논쟁은 이미 내구연한이 끝난 문학을 그렇게까지 해서 연명시킬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는 준엄한 문제였던 겁니다.

 최근 10여 년간 전쟁을 긍정하는 일본 영화가 꽤 만들어졌는데요. 그것도 히트하니까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윤리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진짜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듬지 못하면서,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기 긍정을 위해 피해자 의식을 만들 뿐입니다. '피해자 의식'이라는 것은 진짜 피해자의 마음과는 다릅니다.

                                                                                                             -오쓰카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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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시집 : 체임버 뮤직 - 수동 타자기 조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6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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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조이스하면 생각나는 건, 영문학 희대의 괴작으로, 번역마저 불가능하다고 평가되는 피네간의 경야와 율리시스가 있다. 그나마 쉬운 책이라면 더블린의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있지만, 이것 역시 호불호가 갈려서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 애매하다. 그래서 이 분 하면 이러한 가치가 있지만 읽기가 어려운 괴작들만 주를 이루는데 이런 것들을 쓰기 이전에 썼던, 그야말로 처녀작인 이 시집을 보면서 이 분도 한때는 평범한?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시는 제목인 체임버 뮤직에 걸맞게 정말 노래 가사 같은 느낌을 어필한다. 음색이 흐르는 문장과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선율이 음악에 각별한 사랑이 있었다는 조이스의 면모가 잘 들어나 보였다. 그 동안 나온 시선과 다른 타자기 느낌의 글씨도 거기에 한몫을 더했다는 느낌이었다.
 읽다보면 알겠지만, 전부 쭉 이어지는 시이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내용으로. 이게 정말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점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쓴 시는 대개 짧고 간결한 내용 안에서 강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조이스는 1번 부터 36번에 이르는 긴 시를 통해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를 쓴 그를 생각하면 이렇게 애정있는 긴 시를 쓴 것도 분명 예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긴 만큼 내용 안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나 표현이 수시로 달라지고, 분위기 또한 좋아지다가 나빠지기도 한다. 좋아할 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좋다는 듯이 표현하면서도, 점차 그 사랑이 멀어져 갈 때는 그 어떤 상황보다 더 비참한 것이 없다는 듯이 나타나 상징물로 서의 사랑하는 여인이 아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하며 쓴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묘사를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그 만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결국에는 모든 게 지옥이 되어 버리기에 이른다. 심각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파괴적으로 변모하는 만큼 사랑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득력 있는 설명을 요구한다 해도, 사랑의 상실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 <더블린 사람들>의 한 파트인 에벌라인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감정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더블린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자의 행적만 나오지만, 감정적인 면에서만 보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심리적 압박이 강하게 느껴졌다. 제임스 조이스 역시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거나, 자신이 이러고 싶었다고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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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매인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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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하면 주로 서구권에서의 문제거리라던가,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지역의 카르텔을 떠올린다. 우리나라와는 먼 얘기 같아도 사용하다 걸린 사례가 두드러지게 들어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체로 밀수입이나 밀매 관련해서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가 마약 관련해서 이정도인데 외국, 특히나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일까. CNN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 난장판이라는 건 다들 알 것이다.
 새벽의 아이솔라 거리를 순찰하던 경관 딕. 한 공동주택의 지하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접근한다. 그런데 지하실에는 침대에 앉은 자세로 목을 맨 소년의 시체가 있었다. 딕의 신고로 도착한 카렐라와 클링. 현장을 확인하던 중, 카렐라는 소년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마약 주사기를 발견하면서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처음 읽는 87분서라 기대가 많았다. 경찰소설은 일본 추리 쪽에서 요코야마 히데오와 혼다 테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 그 밖에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와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등으로 접해 보았다. 대체로 보면 경찰에 소속된 개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특징이 있는데, 87분서는 단독 주인공이 사건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게 아니라 한 부서라는 개념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각 시점에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 역할을 맡아 다 같이 사건을 이끌어간다.
 부서라는 개념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이라는 직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쉬웠다. 보통 추리물에서 감식반이나 형사들이 하는 일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게 다 나온다. 그렇다보니 정석적인 추리 느낌보다는 현실적인 경찰수사의 모습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예상치 못한 변수라던가, 꾸며낸 것처럼 보여도 진짜로 밝혀진 것들이 그렇다. 이런 전개를 보면서 보통 추리소설에서 떨이 취급을 많이 받는 경찰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또한 현장에서의 경찰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같이 나와서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고충도 나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마약 밀매와 그걸 쫓는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 치밀하고도 엄청난 신경전을 볼 수 있었다. 굳이 멕시코 카르텔처럼 무자비한 세력이 나오지 않더라도 마약거래를 위해 경찰을 속이고, 심지어 협박하는 모습은 실로 엄청나게 보였다. 그리고 마약에 손대는 연령이 꽤 낮아서 우리나라에서 담배를 일찍 시작하는 것 마냥, 미국에서는 마약도 일찍 시작하는 악습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청소년 흡연 문제처럼 청소년 마약 문제로 인한 가정 갈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흡연과는 차원히 다른 양상이라 겪는 인물이 정말 힘겹게 보일 정도였다.
 에드 멕베인의 87분서는 한 사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게 하고, 이들의 비중이 나름 적절하게 돌아가면서 여럿이서 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분위기를 확실히 어필하는 게 보였다. 앞으로도 87분서의 경찰들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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