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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시집 : 체임버 뮤직 - 수동 타자기 조판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6
제임스 조이스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제임스 조이스하면 생각나는 건, 영문학 희대의 괴작으로, 번역마저 불가능하다고 평가되는 피네간의 경야와 율리시스가 있다. 그나마 쉬운 책이라면 더블린의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있지만, 이것 역시 호불호가 갈려서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 애매하다. 그래서 이 분 하면 이러한 가치가 있지만 읽기가 어려운 괴작들만 주를 이루는데 이런 것들을 쓰기 이전에 썼던, 그야말로 처녀작인 이 시집을 보면서 이 분도 한때는 평범한?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시는 제목인 체임버 뮤직에 걸맞게 정말 노래 가사 같은 느낌을 어필한다. 음색이 흐르는 문장과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선율이 음악에 각별한 사랑이 있었다는 조이스의 면모가 잘 들어나 보였다. 그 동안 나온 시선과 다른 타자기 느낌의 글씨도 거기에 한몫을 더했다는 느낌이었다.
읽다보면 알겠지만, 전부 쭉 이어지는 시이다.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내용으로. 이게 정말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점이다.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쓴 시는 대개 짧고 간결한 내용 안에서 강한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조이스는 1번 부터 36번에 이르는 긴 시를 통해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를 쓴 그를 생각하면 이렇게 애정있는 긴 시를 쓴 것도 분명 예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긴 만큼 내용 안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말하는 것이나 표현이 수시로 달라지고, 분위기 또한 좋아지다가 나빠지기도 한다. 좋아할 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좋다는 듯이 표현하면서도, 점차 그 사랑이 멀어져 갈 때는 그 어떤 상황보다 더 비참한 것이 없다는 듯이 나타나 상징물로 서의 사랑하는 여인이 아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하며 쓴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묘사를 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그 만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결국에는 모든 게 지옥이 되어 버리기에 이른다. 심각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파괴적으로 변모하는 만큼 사랑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득력 있는 설명을 요구한다 해도, 사랑의 상실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듯하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 <더블린 사람들>의 한 파트인 에벌라인은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감정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더블린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자의 행적만 나오지만, 감정적인 면에서만 보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과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심리적 압박이 강하게 느껴졌다. 제임스 조이스 역시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거나, 자신이 이러고 싶었다고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