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산산이 부서진 남자

산산이 부서진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지도 모르나, 현대의 인터넷 발달로 많은 이들이 쉽게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언어의 폭력성이다. 공익광고에서도 수없이 언어가 그 어떤 흉기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걸 언급하지만 다른 흉기들과 달리 말은 너무나 쉽게 쓰이는 것이다. 게다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나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도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이상 인지를 할 수 없는 것이라 더욱 남용되기 쉽다.

 이렇듯 언어의 폭력성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상처를 주는 걸 넘어서 말로만 사람을 죽인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11월의 영국.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교수는 경찰의 요청으로 다리에서 투신시도를 하려는 여성을 설득하러 나선다. 올로클린 교수의 적극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폭우로 인해 급류가 흐르는 강에 투신해 사망하고 만다. 이후, 자살을 막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앉고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올로클린 교수 앞에 투신자살한 여성의 딸이 나타나는데...

 보통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범인은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범인은 그런 거 없다. 오직 말빨로만 사람을 후벼 죽이는 흉악한 녀석이다. 이런 녀석을 마침 심리학자인 올로클린 교수가 상대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구도로 진행되서인지 주로 인물간의 심리상태가 잘 들어나 있거나, 심리를 흔드는 부분이 많은 내용이다.

 조 올로클린 교수를 보면 심리학자라는 캐릭터에 파킨슨병이라는 요소가 있어서 독특하게 보였다. 작중 곳곳에서 파킨슨 병의 증세가 나타나 있고, 올로클린 교수 본인의 심리상태가 반영이 잘 되어 있어서 파킨슨병 환자들의 고충을 느낄 법 했다. 게다가 병이 진행중인데다, 이 분이 시리즈로 나와서 후반에 가서는 올로클린 교수가 스티븐 호킹처럼 휠체어로 돌아다니며 사건을 맡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아니면 링컨 라임에 가까워지려나?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요근래의 사건들(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말리아, 아프리카 내전, 테러)이 언급되고, 현대적 통신망이 세세하게 활용되서 나름 현실감 있게 몰입된다. 특히 통신 기지국 관련해서 보다보면 지금 가까이 있는 핸드폰이 얼마나 엄청나고 복잡한 물건인지 실감이 갈지도 모른다.

 가끔 뉴스에서 보다보면 유괴나 인질극 같은 것에서 당사자인 가족들이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 자주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니까 왜 그런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당사자가 된다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단순하게 무너지고, 심리가 무너지면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지...

[서평]흑백

흑백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괴담식 소설은 많이 보아왔다. 주로 환상적이거나 기괴함, 공포, 기발함으로 느낌을 평하는데, 미야베 미유키가 쓴 흑백은 그냥 괴담도 아닌 변조괴담이다. 변조라는 건, 원래 있던 걸 다르게 만든다는 뜻인데 과연, 미유키 작가는 괴담을 어떻게 변조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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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화

 본가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숙부 이헤에의 주머니 가게인 미시마야에 기거하게 된 오치카. 어느 날, 이헤에가 집을 비운 사이 바둑을 두러온 손님이 있었다. 이헤에가 바둑을 두는 흑백의 방에서 마냥 기다려두게 하기는 실례라는 생각에, 오치카는 손님을 맞는다. 도베에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오치카를 앞에 두고 창 밖의 만주사화를 불안하게 돌아보는데...

 흑백의 방에서 처음 시작하는 괴담치고는 잔잔한 느낌의 괴담이었다.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이 갈 법한 내용이라, 기괴한 느낌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뭍어나는 내용이었디. 지금도 전과가 있으면 시선이 좋지 않은데, 과거 에도시대에는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가족이지만, 범죄자라는 낙인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리하고서 드는 갈등. 이런 게 바로 가장 쉽고 자연스럽게 들어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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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 흑백의 방에서 오치카가 손님을 맞은 이후, 이헤에는 괴담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오치카에게 계속해서 손님을 맞으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 오치카는 당황스럽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지 오래라 어쩔 수 없이 흑백의 방에서 또 손님을 기다리게 된다. 잠시 후, 흑백의 방에 들어온 오타카라는 여자는 사람을 집어 삼키는 저택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흉가와 관련된 괴담은 수없이 많다. 그 유명한 아미티빌 저택부터, 한때 엄청난 이슈였던 곤지암 정신병원 같은 걸 봐도 그렇다. 여기서 나오는 흉가 괴담은 독특한게, 흉가 안에서 시작하지 않고 흉가 밖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물쇠가 관련되어 나와서, 사람잡아먹는 자물쇠 얘기로 보였을 정도였다.

 결말을 보고서 알게 된 것이지만, 이 흉가 괴담에는 처음 봤을 때 알 수도 있었을 법한 맹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등장인물들이 수상해 보이는 경우는 있었어도, 집이 수상해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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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련

​ 오타카의 안도자키 언덕의 저택 얘기로 인해 심란해진 오치카. 그런 그녀를 보고 하녀 오시마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흑백의 방에 자리를 마련한다. 오시마와 얘기를 나누던 오치카는 그 동안 숨겨왔던 본가의 불미스러운 일을 털어놓는데...

 제목의 한자인 간사할 사, 변할 변을 보면 사악하게 변하다라는 뜻이 된다. 제목처럼 이 내용은 한 사람이 사악하게 변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 가장 잔혹한 괴담이라 해도 될듯 하다.

 그 동안 오치카가 왜 숨겨왔는지 이해되고, 멀쩡한 사람이 잔혹한 괴물처럼 변하는 건 한순간이라는 게 뚜렷하게 보이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도 성격 좋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잔혹하게 죽였다는 사건이 종종 보인다. 대부분 안 그럴 것 같던 사람이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데, 사련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사람이 사악하게 변하는데에는 모종의 과정과 그 순간이라는 게 있을 것으로 보였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쌓이고 쌓인게 들어나지 않은채 숙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들어있던 뚜껑이 열리는 순간이 생긴다. 뚜껑이 열리는 '그 순간'. 그게 바로 인간이 사악하게 변하는 순간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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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

 본가의 일을 털어 놓은 이후, 다시 손님 맞이를 시작한 오치카. 이번에 방문한 손님은 오시마와 아는 사이로 보이는 오후쿠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이 하던 가게가 멸망해버렸다고 하며, 거울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거울과 관련된 내용이라 약간은 예상할 수도 있을 법하다. 왜냐하면 거울과 관련된 괴담 역시 수없이 많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뻔하다는 느낌이 없는게 거울과 관련된 얘기지만, 정작 거울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거의 근친에 가까운 내용이라, 옛날에는 가족 내에 근친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느끼게 했다.

 그리고 앞선 괴담들과 비교하자면 마경 역시 사건 당사자의 입장에서 전개되지만,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보면 완전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듯한 구성으로 보였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오후쿠의 가족에게서 사건이 벌어졌지만 정작 오후쿠 본인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도,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러니 오후쿠는 괴담의 당사자로서 들려주는 게 아닌, 관찰자로서 들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나리

 본가에서 오치카를 보러 오빠인 기이치가 미시마야를 방문한다. 오랜만에 오빠를 본 오치카는 반가우면서도 본가의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기이치는 다름아닌 오치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걱정이 되서 미시마야로 서둘러 달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괴담 올스타전이라 해도 될만큼 뒷 얘기들이 많이 언급되서 마지막 에피소드 치고는 상당히 쇼킹한 느낌이었다. 그냥 괴담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괴담 특유의 미묘한 결말 끝에 존재하는 완전한 결말을 찾기위한 내용으로 보였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대결하는 느낌도 있어서 괴담 대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이 에피소드의 진정한 의미를 보자면 괴담의 애매모호한 결말 끝에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을 부각시키고, 그것들이 가진 또 다른 사연을 알아보자는 걸로 보인다. 이런 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가 생각하는 괴담의 결말일지도 모른다.

[서평]별도 없는 한밤에

별도 없는 한밤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누구나 한 번 쯤은 복수를 꿈꾼 적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사소한 것 때문에, 또는 돈이든 뭐든 큰 것 때문에.

 복수 역시 사소하게 할 수도 있지만, 작정하고 하면 스케일이 커지고 그렇다보면 죽음이라는 완전한 복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크던 작던 복수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복수 이후의 허전함. 분명 목적이 있어서 복수를 했지만 정작 그 이후에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을. 그리고 복수로 인해 만들어질 존재하지 않던 비현실을 깨닫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복수의 끝에 존재하는 비현실.

 그것이 바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별도 없는 한밤일 것이다.

 1922

 1922년 네브레스카 주의 외지에 살던 농부 윌프리드는 땅 때문에 아내와 말 다툼을 하게된다. 땅 문제가 해결을 보이지 않고 더욱 격화되어 가자, 결국 윌프리드는 아들과 공모에 아내를 죽이고 만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들을 달래며 윌프리드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연말이 다가올 수록 윌프리드의 농장은 풍비박산이 되어 가는데...

 땅 때문에 모든 게 파탄난다는 점이 마치 나비효과 같다는 느낌에, 시도때도 없이 돌아다니는 쥐의 흔적를 보면 오래전에 킹 작가가 쓴 단편 <철야 근무>와 러브크래프트의 <벽 속의 쥐>도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땅 때문에 일이 터져서 풍비박산 난다는 게 참 웃기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스티븐 킹 특유의 분위기로 망가져가는 가족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에 대한 끝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가족 한 명의 부재가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역시 스티븐 킹이 대단하고 생각되는 게 바로 공포를 일으키는 주체. 바로 쥐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쥐는 공포소설에 자주나오는 단골 소재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단편인 <철야 근무>에서도 써먹은 소재다. 그럼에도 킹은 우려먹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쥐를 공포적인 요소로 잘 만들어냈다. 같은 쥐떼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게 잘 나타나 있어서 감탄스러웠다.

 주로 윌프리드의 입장으로 나와서 농촌 토박이가 생각하는 도시에 대한 편견과 대립을 잘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그저 부동산이라는 개념에 지나지 않는 땅에 대한 아낌. 먼 도시에서 오는 이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적대심. 이런 걸보다보면 처음에는 윌프리드를 이해할 수 있다가도, 점차 앞뒤 꽉 막힌 사람으로 보였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딱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내를 죽인 게 발단이라면 발단이겠지만, 모든 문제는 윌프리드의 똥고집에서 시작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살던 곳이 변함 없을 것이라 여겨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화의 바람이 오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다 여기거나 조금은 타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에 온 몸으로 맞선다면 어떻게 될까? 변화를 거부하면 이전의 그 생활은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평생은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빅 드라이버

 코지 미스터리 소설가 테스는 독자 강연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다행이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녀가 받은 피해는 이미 상상을 초월했다. 불안에 떨며 집에만 있던 테스는 한 술집에서 차를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을 습격한 괴한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서 복수를 하게 되는데...

 묘하게 미저리가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미저리의 로멘스를 쓰던 남작가가 코지 미스터리를 쓰는 여작가로 바뀌고, 작가를 습격하는 인물은 사이코 간호사 애니 윌크스에서 거대한 덩치의 불한당 트럭 운전사로 바뀐 듯한 구성으로 보였다. 뭐, 이렇게 보였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은 완전 딴판이다.

 앞서 보았던 1922에 나온 섬뜩한 분위기와 다르게 빅 드라이버는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복수극이라 특별한 것이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빅 드라이버의 묘미는 바로 테스가 복수를 실행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을 보면 너무나 쉽게 진행되서 이 여자 진짜 소설만 쓰는 작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아마도 인터넷이 보급화된 세계의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올리는데, 그 중에는 아무 생각없이 올린 개인정보가 수두룩할 테니까.

 여기 중편에서는 복수 이후의 허무함이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허무함을 이겨내기 위해 자꾸만 동기와 의미를 부각시킨다. 복수와 함께 갈등을 나타낸 것인데, 그 갈등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이 좀 병맛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테스가 너무 진지한 상황이라 그 마저도 진지하게 흘러가고 만다.

 무엇보다 빅 드라이버를 보면 복수는 진짜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엄청 들것이다. 복수를 하려다가 온갖 긴장과 의심, 스트레스 때문에 먼저 죽을지도 모를 정도니까.

 공정한 거래

 데리에 사는 스트리터는 암 투병으로 인해 얼마 살지 못할 인생이다. 그런 그가 퇴근 길에 구토증세로 인해 공항 근처에 차를 세웠을 때, 한 노점상을 발견하게 된다. 엘비드라 소개한 노점상은 자신은 뭐든지 늘릴 수 있다며 스트리터에게 거래를 하자고 한다. 스트리터는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생명을 늘려달라고 하자, 엘비드는 자신이 공정한 거래를 추구한다며 미워하는 사람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는데...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법한 이야기라 다소 공감이 가는 면이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잘 되는 게 없는데 아는 친구는 너무나 잘나가서 잘 살고 있다. 너무나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른 중편들에 비해 많이 짧은 만큼 간결하고 인물도 별탈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내용이라 별거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스티븐 킹의 특별한 복수극인 만큼 여러모로 의미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되는 게 없는 사람이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잘 되던 사람에 하루 아침에 몰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점을 누가 예측할 수도 없고 설사 예측한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다가 승승장구하는 것도, 땅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것도 공정한 일이라는 걸까.

 복수극도 복수극이지만, 이 중편에서 나름 느끼는 게 있다면 바로 킹이 자신의 인생 전중반을 회상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001년부터 이 중편집이 미국에서 발매되기 전인 2009년까지. 마치 자신의 작가생활과 동시에 이렇게 오래산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킹 작가가 나이와 세월을 많이 느끼며 쓰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 장면에 있는 건 작중 인물이 아니라, 스티븐 킹과 그의 부인 같기도 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다아시는 남편 밥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16년 째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리모컨 건전지를 찾으러 차고에 간 다아시는 수상한 것을 발견한다. 다름아닌 차고 구석의 비밀공간에 숨겨진 나무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는 한 여성의 소지품 3개가 들어있었다. 며칠 전에 연쇄살인마의 손에 살해된 여성의...

 앞선 복수극들에 비해 다소 충격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평생을 같이 살아왔고, 심지어 지금도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이 알고보니 변태사이코 연쇄살인마라니! 그 누구라도 생각하기 어려울 끔찍한 상황이다.

 앞선 복수극들은 거리낌없이 진행되는 감이 있던 반면, 여기서는 엄청나게 신중히 진행된다. 아무리 사이코 연쇄살인마라 해도 사랑하던 남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언제 돌변해서 나를 죽일지 모른다. 정말 이런 모순의 모순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자녀들 문제까지.

 주로 사람의 이중인격에 관한 부분이 나와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지킬박사와 달리, 현실의 사람은 그런 걸 구분할 게 없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다른 인격이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인격이라는 게 충동이나 중독 같은 비인격적인걸 나름 돌려서 말한다던가. 또는 고도의 거짓말이던가.

 복수. 특히나 살인사건과 관련된 복수는 지금도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여기 한 줄 던지는 명언이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위스키 병을 입에 달고 살거든요. 아들을 죽인 범인이, 아니, 아들을 토막 낸 범인이 죽었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뀔까요? 그럴리가요. -594p

[서평]검찰 측 죄인

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정의추구. 말은 정말 쉽고, 듣기도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다. 특히나 현대에 들어서는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이러한 상황에 정의 실현을 직접 하고 있는 경찰과 검찰은 어떤 생각일까. 무엇보다 직접 법 집행에 참여하는 검찰이라면 더더욱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검찰 즉 죄인은 상당히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법률 서스펜스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 검찰로서 활동하는 이들의 세세한 부분을 나타내서 검찰의 일상을 다룬 소설이라 불러도 될듯 하다. 그래서 수사물에서 나오는 액션넘치는 모습 같은 걸 바랬다면 싱거운 반응을 느낄지도 모른다.

 모가미는 나름 정의추구를 생각하는 검사다. 그런 그의 밑에 들어온 믿음직스러운 청년 검사 오키노 역시 정의추구를 생각해 모가미의 관심을 받는다. 오키노가 여러 취조를 경험하며 경력을 쌓고 있을 무렵, 가타마에서 발생한 노부부 살인사건 현장에 모가미가 가게 된다. 모가미는 거기서 오래전에 법률공부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하숙집 여중생을 죽인 유력 용의자의 이름을 보게 된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모가미는 그를 가타마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하게 되는데...

 제목에 언급된 대로 검찰측을 배경으로 한 수사물이다. 하지만 많이들 익숙한 법정은 나오지 않고, 법정에 나서기 이전에 검사들이 하는 일들이 주로 나온다. 보통은 이 단계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서 검찰이 일을 이렇게 하고, 이 부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세세하게 검찰의 느낌을 살린 감이 있어서, 이 부분은 별 의미도 없는데 엄청 길게 써놓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꽤 있을 것이다. 아마 실제로 일하는 검사도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작에 대한 부분이 약간 나오는데 문화적 특성상 빼놓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게임 방식이라던가 용어까지 해서 처음들어보는 것들 뿐이라 그 부분에서 약간은 읽기 힘들었다. 마작에 대해 약간 알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작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이해하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되겠다 싶다.

 정의가 나름 논쟁거리로 나오긴 하지만, 작중에서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만든 건 바로 공소시효 문제다. 우리나라도 공소시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 만큼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너무 어려운 문제로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다. 범인을 잡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법의 한도를 벗어나서까지 잡아도 되는가. 쉬운 말 같지만 법률 쪽이 어려운 만큼, 이 문제도 엄청 어려운 문제다.

 보통 사건이 있고 범인이 잡히면서 정의실현이 됐다고 여기는 내용이 많다. 검찰 측 죄인 역시 사건이 있고 범인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의실현이 애매모호하다. 사건이 미제로 끝난다거나, 범인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확실히 체포된다. 그럼에도 결말이 다소 시원스럽지 않아서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이 시대의 정의를 묻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의실현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불법적인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도 이게 잘 된 일인지 따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를 논할 수 있을지.

[서평]임화 시선: 해협의 로맨티시즘

임화 시선 : 해협의 로맨티시즘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8
임화 지음 / 아티초크 / 2015년 7월

 국내 시인이지만, 아무래도 이 분의 이력 때문에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분이다. 낯설기도 하지만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분이라 새로운 느낌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하며 임화를 보았다.

 시인 임화가 영화배우를 한 이력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의 시를 보면 영화 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느낌과 대본을 읋는 듯한 구성처럼 보였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잔잔하게 시를 읽는 다는 느낌보다는 연기톤으로 읽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세상에 맞서는 열정과 패기 넘치는 젊은 청년의 마음을 가지고서. 이런 느낌의 시는 난생 처음이라 이런 게 임화만의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라 해도 좋을 법하다.

 거기에 내용도 말 그대로 로맨티스트 그 자체라 멜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또한, 분위기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영화적 느낌의 장르도 바뀐다. 자신이 이전에 가보았던 곳을 회상하면, 그건 영화 속 인물의 과거 회상이 되고.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면, 그건 감동 드라마의 한 장면이 되고. 웅장한 자연과 함께 있으면 말 그대로 예술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임화의 시에서는 사랑이라는 문구가 자주 나온다. 때로는 사랑하는 여인을,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의 대한 사랑을, 지금 이 시기에 대한 소중함을 나타낸 사랑을. 모든 것을 사랑하던 그는 정말 로맨티스트라 불려도 될 법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초반의 영화스러운 낭만에 비해 중반으로 갈수록 그 느낌의 빛이 바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낭만은 있었다. 하지만 진짜 열정적으로 부르짖는 낭만이 아닌, 예전에는 그랬지 하는 투로 던지는 진심 같지 않은 낭만처럼 보였다. 마치 낭만스럽고 싶지만, 그에 맞지 않은 현실의 허무함에 무너진 듯한 분위기였다. 거기에 후반 시까지 가게 되면 초반에 보았던 그 로맨티스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런 게 바로 예술가의 비애라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