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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물의 탑 ㅣ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한 줄기 빛이란 의외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급한 순간에 보내는 신호가 될 수도 있고. 어두운 곳에서 도움이 되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이로운 관점에서 본 해석이다. 그런데 반대로 해로운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가 나올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표시. 경계심이 생기게 하지만 묘하게 이끌려 가게 되는 곳. 확실한 건 이거 밖에 없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모른다. 결국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믿음과 판단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 자신의 믿음과 판단으로 멀리 하거나 가까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키타큐슈의 탄광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광부를 그만둔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된다. 두 번째 근무지인 간세이 지역의 고가사키 등대로 향하나 어딘지 모르게 지역 사람들이 등대를 꺼림직 하게 여긴다는 걸 느낀다. 이런 탓인지 시라몬코의 전설과 수상쩍은 하얀집에 대한 일로 예정된 날보다 늦게 등대에 도착하게 된다. 하야타는 그곳에서 등대장 이사카 고조로부터 전쟁 이전에 고가사키 등대에서 근무하며 겪은 기이한 일에 대해 듣게 되는데...
등대라고 하면 솔직히 뭔가 크게 떠오르는 게 없었긴 하다. 그저 바다에 가면 종종 보이는 구조물이자, 불빛으로 항로에 도움을 주고, 종종 기이한 괴담이 나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경으로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일본의 등대 역사를 다루는 면이 많다 보니 이렇게까지 중요한 시설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다. 또한 지형적인 특성상 상당히 외로운 직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이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면이 묘하게 민속 문화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역사가 깊고 외진 곳에서 위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로 바다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산속에 대한 부분도 꽤 있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등대가 바다를 향해 있는 건 맞지만, 그 주변이 육지의 어디 부분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있을 법 하다. 가령 인구 수가 얼마 안 되는 외딴 섬이나 주변에 민가가 거의 없는 산간벽지와 맞닿아 있는 해안의 경우처럼. 사람이 많은 도심지 근처에만 등대가 있었다면 외로운 직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이러한 점에서 등대는 바다와 육지 모두와 가까우면서도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다양한 독특한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다 보니 경우에 따라 진부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동일한 장소, 사건, 경험에 대한 부분은 무서운 이야기에서 은근 자주 나오는 클리셰긴 하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현재에 다시 반복됐다는 부분이 단순 기시감이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공통된 부분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이 짧으면 모를까 이 소설처럼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경우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클리셰가 워낙 흔하다는 점도 있고. 다만 구체적으로 이 반복되는 구조 안에 어떤 비밀이 있고 또 어디에서 다른 점이 있는지 관심이 생긴다면 별 문제는 아니다. 큰 결점이라기 보다 워낙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호불호라고 본다.
추리소설이라는 면에서 보면 물증과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현실적인 사건이 아닌, 추정의 영역으로 풀어야 되는 비현실적 사건을 다룬 괴기 미스터리에 가까운 편이다. 본격적인 사건이라 해야 될 것이 결말이 가까워져야 나타나는 동시에 해결로 직행하며 끝나기 때문에 추리 면에서 다소 약하게 보일 여지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만 한가득 보여주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건 공포 부분에 만족하면서 보면 크게 문제 되지 않기에 참고해야 될 사항에 가깝다. 혹시나 평소 알던 추리소설 같은 느낌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클 수도 있으니까.
등대와 민간 신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두 요소를 통해 작은 사회와 전근대성의 폐해를 나타내서 여러모로 놀랍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두 요소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만 존재하는 사회. 외진 곳에 동떨어져 있는 환경. 하지만 등대의 경우는 근무 환경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더욱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장성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탓에 등대와 민간 신앙에서 나타난 공포의 충돌은 이렇게 보일 여지도 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괴이한 존재가 가로막기 위해 혼동을 준다고. 하필이면 작중의 괴이가 등대의 빛과 같은 하얀 존재로 묘사되기에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앞길을 비추는 빛인지, 방해하는 괴이인지. 이걸 확인하고자 가까이 가게 되는 순간 이미 그걸 선택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게 한다.
결국 고가사키 등대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버리며 생긴 원한과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선 과거라는 이름의 괴이가 뒤섞인 비극의 장소나 다름없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줬으면 하는 모순에서 오는 공포란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나 자신도 그곳에 붙잡혀 갇히고 말 것이라는 위험성과 원치 않은 꺼림직한 존재를 떠 앉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공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견딜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간혹 등대에 떠도는 괴담 같은 것도 이와 비슷하게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운 환경을 벗어나고픈 욕구와 자리를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이 충돌해서 말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에 언급된 광부를 그만둔 이후이자 등대지기가 되기 전의 시점에 대한 부분은 어떤 일일지 궁금하게 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와의 접점도 있다 보니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