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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고헤이지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인연이라는 연결고리는 항상 아름다운 것일까? 악연이라는 것도 있으니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인연은 좋든, 나쁘든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순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만든다. 엿보는 고헤이지는 잔인한 인연의 연속에서, 인연이 무엇을 남기는 가에 대한 여운을 많이 남겼다고 생각한다.
유령연기의 장인 답게 엄청난 음기를 내뿜는 고헤이지를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는 인물들 뿐이다. 고헤이지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인연이 연결되는 것을 보면 우연이라고 하기는 어렵게 보인다. 어쩌면 고헤이지가 모든 인연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고헤이지와 아내 오쓰카의 관계처럼 이해가 가지않는 점이 많아서, 교고쿠 작가의 작품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고헤이지와 오쓰카의 관계는 오쓰카가 고헤이지의 음침함을 싫어하지만, 고헤이지가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나는 오쓰카가 고헤이지를 사랑하니까 미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 만 틀어박혀 있는 고헤이지가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니까,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쓰카가 고헤이지를 싫어하고 얼뜨기라고 하는 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헤이지가 항설백물어에 나오는 마타이치의 계획에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항설백물어가 대강 어떤 작품인지 알 것 같았다. 에도 괴담과 항설백물어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서 전혀 이질감이 없어 보인다. 엿보는 고헤이지를 보다가 항설백물어에도 관심이 생길 판이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 같은 어둠을 내뿜는 유령 고헤이지, 무능력해서 얼뜨기라고 불리는 고하다 고헤이지. 나는 고헤이지라는 인물을 보면 볼 수록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어딘가 나의 모습과 약간은 비슷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는지 고헤이지가 느끼는 덧없음이나 존재의 부정이 어떤 뜻일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에 나도 고헤이지처럼 방 안에서 문을 살짝 열어놓고 틈사이로 바깥을 엿보는 짓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현실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항설백물어의 지헤이가 말하듯이 뭐든지 말을 해야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처럼 이래저래 대화가 늘여가다보니, 음침함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고헤이지의 유령 같은 분위기가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습관이나 잔재가 남은 것으로 생각한다. 사막을 숲으로 되돌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듯이 감정이 메마른 것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 무엇이든 이야기해야만 비로소 존재가 되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어. 거짓말이든 허풍이든 입 밖에 내면 낸 만큼 존재가 되는 거야. 자네가 얄팍한 것도, 내 속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둘 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겠지.-2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