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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현대인의 죽음이 모이는 곳을 병원이라 해도 잘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의 저승사자는 흑색이 아니라 백색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의학은 죽음을 결정짓는 재판이기도 할 것이다. 의사라는 판사는 환자라는 피고의 죽음을 선고하는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영역에 가깝게 있는 만큼, 의사들 사이에서도 천사와 악마가 있을 것이다. 천사가 의미하는 것은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사의 권위의식? 아니면 의학이 잘못된 일에 쓰이는 경우?
외과의사는 의학이 살인에 이용되면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과 사회에서의 여성이 어떻게 평가 받는 것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특히 피와 인간의 본성을 연관지어서 섬뜩하게 느껴졌다. 고대 아스텍에서 피의 제물을 원하는 의식을 보면, 인간이 아직도 무의식 중에 피에 집착하고 있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상처에서 피가흐르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즐기듯이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 남부의 사바나에서 살인마 앤드루 캐프라를 죽이고 보스턴에서 재개하기 시작한 캐서린 코델 박사 주위에서 여성을 상대로한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스턴 경찰청의 베테랑 형사 토마스 무어와 남자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겪는 제인 리졸리가 수사에 나선다. 그런데 언론에서 외과의사라고 명명된 살인마를 수사할 수록 연결고리는 코델 박사에게로 향하는데...
천사에 해당하는 코델 박사와, 악마에 해당하는 살인마 외과의사로 의학의 이중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서의 리얼한 수술장면과 외과의사의 살해장면이 비슷비슷하게 보였지만, 외과의사가 악역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보면 외과의사 쪽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만약 천사와 악마라는 구분이 없었다면 두 장면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이후 책 시리즈의 주인공이지만, 여기서는 크게 비중이 없는 제인 리졸리는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인정받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실질적으로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토마스 무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로멘티스트처럼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남자 형사들의 모욕적인 장난을 당하는 리졸리를 신경써주려 한다. 그런 무어를 리졸리는 경찰서에서 그나마 나은 형사라고 생각한다. 리졸리와 무어가 같이 수사하면서 외과의사와 코델 박사 사이의 연관성은 과거의 사바나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던 중, 무어도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을 느낀 리졸리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작품 속 주요 인물들을 보면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는 무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리졸리,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고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코델 박사.
무어 형사만 빼면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겪는 문제가 많이 나와 있었다.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공하면 안 되고,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는 인식이 너무 자연스럽게 있어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리졸리는 사회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성스러움을 버리고 거칠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리졸리의 거친 모습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남성의 성격을 띄는 갑옷을 두른 것처럼 느껴졌다. 외과의사라는 살인마는 여성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상처를 치유하고 당당히 사는 여성을 파괴하는 것을 즐긴다.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릴면에서는 적당하다는 느낌이었고, 적절하게 텀을 만들어서 지루할 틈을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메디컬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여성문제를 직접적으로 들어내서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