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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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하지만 솔직히 공감하지 못한다. 도대체가 어디가 어떻게 좋다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선택보다는 강요에 가까운 필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다고 말하는 게 정답에 가깝다. 빙과를 접하기 전까지는 별의미 없이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나날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읽은 이후로는 왠지 모르게 그 시절에 뭐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성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면 감정이 나타나지 않은 애니와의 차이점이 같은 작품을 두 번 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원작을 보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어떤 것을 첨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쉬운게 있다면 일본어 표기법을 지키면서 생긴 어색함이다.

 각종 부서활동으로 유명한 카미야마 고등학교에 입학한 오레키 호타로는 에너지 절약주의라는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어 하지만, 학교 선배이자 누나인 오레키 토모에의 권유로 고전부에 들어가게 된다. 방과 후, 호타로는 특별동 4층 구석에 위치한 고전부실에서 치탄다 에루와 만나면서 일상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추리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나의 학창시절 지냈던 모습에 거의 가까웠기 때문에 행동과 생각에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어떻게 잘지냈는지 돌아봤을 것이다. 그때는 학교에 가면 공부 말고는 할게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때 다른 것도 있었는데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어떤 것이 사건이 되고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는지 처음알게 되었다.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하고 고전부라는 부서에도 들어왔을 때라서, 전반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배경으로는 고전부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떤 의미인가였지만, 인물로 보면 치탄다 에루의 목적도 있지만 오레키 호타로의 변함없던 에너지 절약주의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스타일의 변화를 생각하게 되는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살인에서 오는 것은 죽음과 사연의 무게라면, 일상에서 오는 것은 감춰진 불편한 진실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약간의 의무적으로 과거의 일을 조사할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식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당시 시대의 내적 심리 같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일일 거라는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진실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미화시켜 만들어진 것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게 보였다.

 이 빙과라는 제목에서도 가벼움과 동시에 숨겨진 무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과라는 단어 하나로 학창 시절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모습을 나타낸 작가의 의도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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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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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은 종교, 그 중에서 특히 불교와 종파간의 고찰을 심오하게 다룬 내용이었다. 정신의학서적과 다름없던 광골처럼 철서도 불교서적에 버금가는 장광설로 뒤덮여 있다. 불교 교리라던가, 역사, 십우도 등등은 전편 만큼 읽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종교는 그걸 접하는 사람의 해석에 달렸다는 것이다. 대체로 장광설은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범행 동기를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는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나가와 현 하코네에 있는 수수께끼의 사찰 명혜사를 취재하기 위해 희담월보의 아츠코와 이쿠보, 그리고 사진기사 겸으로 참여한 도리구치는 센고쿠로라는 여관에 묵게 된다. 그곳에는 명혜사 승려에게 골동품을 소개받으러 온 이마가와 마사스미와 조시가야 사건(우부메의 여름)이후 은거 중인 구온지 요시치카를 만난다. 새하얀 설경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와중에 갑자기 정좌를 한 스님의 시체가 여관 정원에 떨어지고, 하코네 산 중의 연속 승려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 동안 의뢰를 받거나 우연히 사건현장을 목격한 것과는 다르게 우치다 야스오의 아사미 미쓰히코처럼 여행을 갔다가 사건이 일어나는 구성이다. 아츠코 일행 같은 경우 약간 성격이 다르겠지만, 부부동반 여행 겸으로 광골 때처럼 고서 의뢰를 목적으로 하코네를 방문한 세키구치와 교고쿠도라면 확실하다. 전작에서 대활약?을 한 에노키즈의 계속되는 활약이 돋보이기도 했다. 거칠게 나가는 가나가와 경찰 경부보와의 기싸움을 이기고, 아무도 손을 못쓰는 명혜사에 가서는 스님들을 뒤흔들어 놓았다. 거기에 에노키즈 만에 이름 개명에 당한 인물이 좀 많이 나왔다.

 우부메 관련 인물인 구온지 요키치카의 등장은 간간히 분위기를 슬프게 만들었다. 우부메에서 언급된 복선을 마무리 짓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사건 이후의 관계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타내면서 사건은 끝났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전작의 등장인물이 재등장하는 것은 소설 속의 사건이 끝나면 관계자 역시 사건으로부터 멀어지고 다시는 나오지 않는 느낌을 없애고, 살아가다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인물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건도 토막살인이라던가, 해골이 넘쳐나는 전작들보다는 딱히 기괴한 느낌이 없었다. 배경이 사찰이고 승려가 많다보니 약간 경건하다던가, 살인사건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명혜사라는 공간이 가지는 알 수없는 무거움이 있었다. 다만 스님들 밖에 없는 절에 숨어있는 살인자, 일명 쥐스님인 철서가 스님들 사이에 숨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자라지 않는 소녀로 불리는 아이의 출몰로 아무리 경건한 분위기라 해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명혜사라는 공간도 외진 곳에 존재해서 일명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사건 관계자들과 스님들 사이의 단절감도 또 하나의 밀폐된 공간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여도 사람관계에서의 밀폐가 집단간의 밀폐가 되면 그것도 밀폐된 공간을 이룬다는 생각이든다.

 또 명혜사가 숨겨져 있던 오래된 사찰인 만큼 약간의 유물탐사 같은 구성도 있었다. 교고쿠도만 이해할 고서와 관련이 있고, 건축양식이라던가 종파와의 연관성도 있었다. 철서가 불교와 연관성이 큰 만큼 작가가 불교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다 채워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인물들이 스님들이라서 절에서 역할이 어떻게 나눠지고, 종파별로 다른점이 뭔지 알 수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닌 종교인이라는 점에서 인물들과 대화를 할 때 격언을 한다거나, 불교에서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는 등, 좀 어려운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교고쿠도의 장광설 수준의 말이 짧고 굵게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였는지 간간히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연쇄살인이 계속되는 상황에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스님도 역시 사람인지라 갈수록 동요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명혜사에 있는 스님들을 보면서 스님이라면 당연할 것으로 생각되던 것이 일종의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지금까지 불교의 겉면만 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에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이기심이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속세를 멀리하는 불교에서는 물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득도라는 개념에서 나오는 특수한 이기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한 사건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다른 사건이었던가, 다른 사건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한 사건이었던 전작의 구조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모든 사건이 명혜사로 집중됐다. 다만, 사건의 연계성과는 관련이 없고 장소로의 집합과 동시에 붕괴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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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전집 2 -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황금가지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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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작품을 본 심경이 참 묘하다. 일단 먼저 모리스 르블랑이 누가봐도 홈즈인 것을 알아보게 헐록 숌즈를 작중에 출현시켜 표현한 것을 평가하자면, 우리나라 추리작품에 일본 작가의 명탐정 캐릭터, 예를 들면 긴다이치 코스케라던가 아케치 코고로를 등장시켜 원작 이미지을 파괴할 정도의 깽판을 친다는 설정을 해놓은 것과 맞먹을 정도다. 코난 도일이 소송을 고려하고, 영불 사이에 분쟁이 생긴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굳이 셜록 홈즈를 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굳이 탐정역할이 필요했다면 셜록 홈즈에 버금간다고 모방하고 사칭하는 탐정으로 했으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뤼팽의 라이벌격인 가니마르를 구상한 것만큼, 자체적인 탐정역을 만들었으면 오늘날까지 이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에 비해서 여성 인물들의 출현이 유독 두드러진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이전 작에서는 도둑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번 작은 흔히 말하는 신사적인 로멘티스트의 이미지가 약간 더 강했다. 이때부터 뤼팽에게 희로애락을 가져다 줄 여자 문제가 시작되는 듯하다.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두 가지다. 금발의 여인이라고 명명된 첫 사건은 책상 하나 때문에 벌어진 복권 당첨금 쟁탈전과 프랑스 대사 출신의 남작 살인사건에 연루된 푸른다이아몬드 사건에 연이어 등장하는 금발의 여인과 아르센 뤼팽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사건 관계자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빠져나가는 뤼팽이나, 발끝까지 쫓아와 놓고서는 마지막에 대굴욕을 당하는 가니마르는 여전하다. 하지만 푸른 다이아몬드 사건 이후부터 문제의 헐록 숌즈와 역시 철자를 바꿨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윌슨이 등장한다.

 헐록과 윌슨은 감히 셜록 홈즈라고 같다 썼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침착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걸핏하면 권총을 빼들고, 기분나쁘다고 아무런 상관없는 길거리 행인과 싸움질을 하는 등, 찌질함의 끝을 보여주는 헐록이라던가, 거의 호구나 다름없고 부상을 입고 헐록에게 버림받는 윌슨의 모습을 보면 도대체 왜 셜록 홈즈를 같다 쓰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금발의 여인 사건은 뤼팽식으로 만든 유사 저택미스터리였다. 작중의 푸른다이아몬드 사건이 저택미스터리 분위기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물건을 훔치는 뤼팽을 생각하면, 흔히 알고 있는 저택미스터리 형식과는 차이가 많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점도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유사 저택미스터리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건인 유대식 구리등잔은 한 부유층 자택에서 벌어진 유대식 구리등잔 도난사건에서 뤼팽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사건과의 연계성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보이는 사건이지만, 범행을 한 범인과 범행을 하지 않은 범인이 가려진다. 이 역시 뤼팽식 추리의 한 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모리스 르블랑이 넣은 짝퉁 홈즈, 헐록이 문제였다.

 여전히 무턱대고 권총을 뽑아드는 헐록에, 이번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상에 누운 뒤로 결말까지 거의 공기화된 윌슨. 이쯤되면 셜록 홈즈 이미지 파괴는 고사하고 더 좋지 않은 대우를 하면서 까지 굳이 왓슨을 출현시킨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수라기 보다는 그냥 셜록이라는 본상품에 끼워파는 싸구려 사은품 취급이다. 거기에 사건을 해결한 탐정보다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 불화를 일으킨 장본인 취급을 한다.

 비록 홈즈의 이미지를 망가뜨린 작품이지만, 이건 뤼팽이 아니라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이 비판받아야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홈즈를 끌어들인 것은 작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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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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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나 귀신 같은 영적존재, 지구 밖의 머나먼 우주, 깊은 바다, 극악무도한 살인마, 죽음의 순간, 고립, 괴물 자연재해, 벌레 등등.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에 맞게 현대에서의 공포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빠르고 바쁜 일상 속에서 늘어가는 것은 무관심이다. 평소 무관심은 아무 짓도 하지 않지만 거기에 무슨 동기라든가, 생각이 들어가면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공포가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편들은 전부 절망적이고 역겹고 현실 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비일상적인 내용이다. 평범한 인물이 이유없이 죽거나, 뒤통수치고, 극악무도한 짓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모두들 살면서 한 번 쯤 생각하거나, 했을 법한 일이라서 그렇다.

 괴작이라면 괴작이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각 작품마다 들어 있는 기분 나쁜 느낌은 꽤 오랜시간 남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건이 약간 뜬금없이 시작되는 게 적지 않아서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지도 모른다.

 

남의 일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한 일가족 앞에 낯선 남자가 나타난다.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가족에게 남자가 하는 것은 무관심한 방관이었는데...

 첫 단편부터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사고현장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나랑 상관없다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자를 이해 할 수없을 것이다.

 낯선 남자의 무관심은 섬뜩할 정도였다. 사고당한 이들을 보고 당해도 싸다며 비난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기 싫다며 신고도 꺼린다. 거기에다 답답할 정도로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남자가 하는 말이 일상에서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서 무섭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사람이 무관심해지면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도 무감각해 질지. 결말에서야 밝혀지는 남자의 정체는 예상밖이라 지금까지 보았던 남자는 누구였는지 의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게 바로 무관심의 정체가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해체

 

 서른을 넘긴 폐륜아와 사는 노부부는 매일을 힘겹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해결책으로 아들을 죽이기로 모의하는데...

 폐륜아로 인해 난장판이 된 가족의 모습은 현대에서 벌어질 법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죽이려고 부부가 모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노년에 들어서 자식 교육의 잘잘못을 따지며 싸우는 부모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폐륜의 끝을 보여주는 아들의 모습은 아무리 소설 속의 얘기라지만 예사로 넘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이런 집이 드물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파탄 난 집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책임을 전가한다. 노년의 부모도 비슷했다. 아들이라서는 망나니를 앞에 두고 온갖 극단적인 살인계획을 세우고, 상상도 못할 살해 도구를 앞에 두고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파탄 속에서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다. 아들과 남편이라는 남자 둘에 아내라는 여자 하나만 있다는 사실을.

 

딱 한입에.......

 

 유명 요리사의 집에 자녀를 납치했다는 남자가 찾아온다. 요구 사항은 단 하나,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하는 것 뿐.

 특이한 납치극과 협박이 이루어지는 내용으로, 자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마지막 반전으로 등장하는 섬뜩한 진실은 공포로서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납치범이 제 발로 찾아와, 납치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납치극의 구성을 깨트렸다. 납치로 시작하는 내용이지만, 납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납치범의 요리였다. 요리로 시작한 사건이 요리로 끝난 내용이지만, 그 끝에는 상상도 못할 것이 존재했다.

 

어머니와 톱니바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한 애인을 데리고 남자는 도망친다. 상처투성인 그들의 방황은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감동과 역겨움을 동시에 표현한 작가의 실력에 정말 감탄하고 싶었다. 내용은 정말 안타까운 사랑 얘기지만, 애인이 죽어가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은 역겨움 자체였다. 자신의 몸도 성하지 않는데 애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남자의 정성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만약 당신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장이 파열되고, 온몸의 피부가 괴사되어 점점 썩어가서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옆자리를 지킬 자신이 있는가?

 

새끼고양이와 천연가스

 

 의족을 끼고 생활하는 아주머니에게 새끼고양이가 생기고, 이유없는 파멸을 맞이한다.

가장 기분나쁜 내용의 단편이었다. 개인의 일상을 파멸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학생들의 행패를 보고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용의 대부분이 아주머니가 한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다. 그 학생들에게 폭력은 일종의 놀이라는 개념으로, 보통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가질 법한 생각을 가졌다.

 문제는 이러한 폭력이 가해지는데 그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가장 극대화된 상황으로, 주변 상황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사람의 인격 조차 생각하지 않는 무관심까지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무관심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정년기일

 

 정년기일을 맞이한 노년의 남자는 기분좋게 환영받는다. 그런데 회사를 나서다가 부하직원들과 트러블이 생기면서 집단구타를 당하게 되는데...

 정년퇴직을 한 직장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일명 '퇴직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퇴직자들은 사회에 나온 순간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심지어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퇴직자를 비현실적으로 밑바닥 취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회에서 퇴직자를 보는 시선이 이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비아 소환

 

 한 야쿠자 사무실에는 의뢰를 받고 상대를 미치게 만드는 일을 해준다. 의뢰를 받고 현장에 나서는 이는 증거를 찍기위한 카메라 촬영사, 노인, 그리고 10살 소녀다.

 개인의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는 점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3에 실린 신진오 작가의 단편 '공포 인자'를 떠올리게 했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썩 밝은 내용은 아니다. 조직 폭력배의 극악무도한 짓과 초능력의 충격적인 비밀 외에는 그렇게 기분 나쁜 느낌은 없었다.

 

전서묘

 

 남자친구로 인해 생활이 파탄난 여자는 자취방에서 몰래 고양이를 기르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잘린 손가락을 물어오면서 알 수없는 위협을 느끼는데...

 고양이가 매개체가 되어 먼 곳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고, 갈수록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불길한 상황이 벌어지는 듯했다. 문제는 자신의 실패를 고향집에 알리기도 싫고, 애완동물이 금지인 자취방 제약 때문에 신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그 불길한 것은 여자와 고양이만 알고 있다. 아니,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리가 없는 고양이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은 여자 혼자 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누구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지 않는 여자의 판단이 맞다고 볼 수 있을까?

 

쓴 바베큐

 

 도루는 친구의 꼬드김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한적한 곳에 가서 바베큐를 하기로 한다. 순조롭게 바베큐가 진행되던 중, 강가에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일명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일가족에게 불행이 닥치는 내용이다. 흔히 말하는 공포영화 사망법칙에 버금갈 정도로 불길한 암시들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이 가족은 자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면서 계속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지만 그런 가족들을 가만둘 리가 없다. 그 불길함을 나타내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공포영화 사망법칙의 단계를 밟아간다. 어떻게 보면 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기도 한다.

 다행이도 다친 사람없이 가족은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친 사람'만 없었을 뿐이다.

 

레저레는 무서워

 

 삼창학원의 2학년 D반의 이노 교사의 자택 우편함에 자살을 예고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보내는 이는 오공이라는 가명으로 쓰여 있어 알 수가 없고, 레저레는 무섭다는 말을 단서로 학교 측에서 진상 조사에 나선다. 그러나 자살예고 편지는 늘어나고, 급기야 이노 교사의 책상에서 레저레가 쓴 편지가 발견되는데...

 상당히 지능적인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편지와 선생님의 수기, 회의 자료 등등으로 진행되는 내용으로 선생님과 학교측에서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 학교측과 학생들 사이의 생각 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껴진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레저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어른들이 학생들의 수준을 얼마나 낮게 보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크레이지 하니

 

 한 행성에서 범죄자들을 이용해 개척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범죄자들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여성로봇들의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무차별 학살을 일으킨다.

 SF물이지만, 행성 개척이라던가 로봇 등을 빼면 거의 성에 관련되었다. 사람에게 성적 학대를 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성적인 도구로 사용할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에게 사디스트에 버금갈 짓을 한다.

 극단적인 성행위 때문인지 로봇들이 오류를 일으키고 폭주했다. 로봇들은 노래를 틀면서 희생자들을 찾아 자신들에게 했던 짓 그대로 학살한다. 이러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로봇 아포칼립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도, 반전도 없기 때문에 별 감흥없는 SF였다.

 

다윈과 베트남 수박

 

 외국에 사는 한 가장은 잦은 지각 때문에 어느 날, 하루 일을 못하게 된다. 가족을 볼 면목이 없던 그에게 한 동료가 하루 정도 때울 일을 소개시켜주지만, 그것은 차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기분나쁜 묘사가 넘치는 작품들에 비해 여기서부터는 다소 줄어들고, 심리적인 불편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느낌이다. 가장이 대신하게 되는 일은 이동식 차량에서 집행하는 사형을 돕는 일이었으며, 그 대상은 불합리하게 사형판결을 받은 어린아이였다. 자기 가족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남의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상황이라 어떤 사람이라도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낯선 이동식 차량으로 집행하는 사형이라던가,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 때문인지 적지 않게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실격

 

 겨울철, 한 여자가 다리 난간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먼저 자살하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는데...

 감동적인 내용인가 했더니 결말에서 제대로 뒤통수치는 내용이었다. 제목 그대로 인간실격인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의 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죽음도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랑이 발바닥은 소음기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세 친구.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던 중 한 친구에게 아이가 생기자 축하하기 위해 추억의 장소인 동물원에 밤늦게 몰래 들어가게 되는데...

 표현 수위도 높지 않고, 크게 자극적인 것은 없었지만 상당히 난해한 내용이었다. 주된 내용은 세 친구가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이 살아온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서도 약간 철이 없고 그 때문에 한 친구는 약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와주니 뭐니, 그런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서로 그냥 주절주절 삶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분위기는 슬프지 않았다. 마치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남의 일에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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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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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자체가 미스터리처럼 느껴지는 추리소설은 처음이었다. 저자가 출판업계 종사자라서 그런지 책 안에서 또 하나의 책을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 속의 책이라는 이중성은 내가 읽었던 것 중에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용에 감탄하고, 독특한 편집을 시도한 저자의 독창성에 한 번 더 감탄하게 됐다. 추리인 만큼 이 작품에서도 탐정이 등장하지만, 탐정이 정말 보통 사람처럼 등장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 사건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 읽고 나서 생각나는 것은 탐정도, 인상 깊었던 인물도 아닌, 일어났던 기괴한 사건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오쿠다마 깊은 곳에 위치한 히메카미 촌의 히가미 일족은 오래 전부터 적자인 맏아들이 당주를 맏아 가계를 이어 가문을 존속하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히가미 일족의 아들은 대대로 허약하게 태어나서 일찍 죽는 일이 잦았는데, 이를 가지고 마을에서는 옛 조상인 아오히메의 지벌이라고 여기고 있다. 히가미 일족의 제일 가문인 이치가미 가의 장남 조주로의 무사를 위한 의식인 '십삼야 참배' 날 밤 그의 쌍둥이 남매인 히메코가 우물에 빠져 죽는 일이 발생하면서, 또 다시 아오히메의 지벌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내용은 히메노모리 묘겐이라는 작가가 당시의 이치가미 가에 하인으로 있던 요키타카와 자신의 남편이자 주재소 순사인 다카야시키 하지메의 시점으로 하여 히메카미 촌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형식이다. 보통 같으면 타인의 기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 같겠지만, 실제로 연재된 글인 마냥 중간중간에 저자(히메노모리 묘겐)의 소견이 들어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처음에 민속학 추리라는 말을 듣고 교고쿠 나쓰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 같은 분위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비교를 해보니 지적인 면이나, 옛스러운 분위기가 비슷했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편집과 외딴 시골이라는 토속적인 배경, 본격미스터리 분위기가 짙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탐정 역할이자, 방랑 환상소설가인 도조 겐야는 여기서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 어떤 인물일지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민속에 관련해서는 교고쿠도에 버금갈 정도지만 유쾌한 인물이라서 다른 책에서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바이다.

 계속해서 머리 잘린 시체와 잘린머리가 나타나고, 또 머리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는 한편, 목이 잘린 귀신인 쿠비나시가 곳곳에 출몰하면서 공포스러운 상황이 이어진다. 다카야시키 순사가 조사사를 진행해도 사건의 실마리는 도무지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히메노모리 묘겐의 연재도 막바지에 다를 무렵 과거의 사건 속 시점이 아닌, 현재의 히메노모리 묘겐의 시점에서도 불길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두 인물의 시점으로 한 전개는 한편으로 약간 지루한 것 같기도 했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모를까, 한 인물이 지나갔던 곳이나 살펴본 곳을 다른 인물이 다시 지나가고 또 살펴보는 부분은 재생과 되감기를 반복하는 듯해서 전개가 느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본격 미스터리인 만큼 결말도 사건해결로 끝나는 가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짐으로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부터 진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는 했으나 히메카미 촌이라는 마을에 전해지는 괴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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