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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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나 귀신 같은 영적존재, 지구 밖의 머나먼 우주, 깊은 바다, 극악무도한 살인마, 죽음의 순간, 고립, 괴물 자연재해, 벌레 등등.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에 맞게 현대에서의 공포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빠르고 바쁜 일상 속에서 늘어가는 것은 무관심이다. 평소 무관심은 아무 짓도 하지 않지만 거기에 무슨 동기라든가, 생각이 들어가면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공포가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편들은 전부 절망적이고 역겹고 현실 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비일상적인 내용이다. 평범한 인물이 이유없이 죽거나, 뒤통수치고, 극악무도한 짓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게, 모두들 살면서 한 번 쯤 생각하거나, 했을 법한 일이라서 그렇다.

 괴작이라면 괴작이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각 작품마다 들어 있는 기분 나쁜 느낌은 꽤 오랜시간 남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건이 약간 뜬금없이 시작되는 게 적지 않아서 보는 이에 따라 느낌이 다를 지도 모른다.

 

남의 일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한 일가족 앞에 낯선 남자가 나타난다.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가족에게 남자가 하는 것은 무관심한 방관이었는데...

 첫 단편부터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사고현장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나랑 상관없다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자를 이해 할 수없을 것이다.

 낯선 남자의 무관심은 섬뜩할 정도였다. 사고당한 이들을 보고 당해도 싸다며 비난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시끄러운 일에 말려들기 싫다며 신고도 꺼린다. 거기에다 답답할 정도로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남자가 하는 말이 일상에서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서 무섭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사람이 무관심해지면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도 무감각해 질지. 결말에서야 밝혀지는 남자의 정체는 예상밖이라 지금까지 보았던 남자는 누구였는지 의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게 바로 무관심의 정체가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해체

 

 서른을 넘긴 폐륜아와 사는 노부부는 매일을 힘겹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해결책으로 아들을 죽이기로 모의하는데...

 폐륜아로 인해 난장판이 된 가족의 모습은 현대에서 벌어질 법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죽이려고 부부가 모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노년에 들어서 자식 교육의 잘잘못을 따지며 싸우는 부모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폐륜의 끝을 보여주는 아들의 모습은 아무리 소설 속의 얘기라지만 예사로 넘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이런 집이 드물게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파탄 난 집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책임을 전가한다. 노년의 부모도 비슷했다. 아들이라서는 망나니를 앞에 두고 온갖 극단적인 살인계획을 세우고, 상상도 못할 살해 도구를 앞에 두고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파탄 속에서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다. 아들과 남편이라는 남자 둘에 아내라는 여자 하나만 있다는 사실을.

 

딱 한입에.......

 

 유명 요리사의 집에 자녀를 납치했다는 남자가 찾아온다. 요구 사항은 단 하나,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하는 것 뿐.

 특이한 납치극과 협박이 이루어지는 내용으로, 자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마지막 반전으로 등장하는 섬뜩한 진실은 공포로서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납치범이 제 발로 찾아와, 납치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납치극의 구성을 깨트렸다. 납치로 시작하는 내용이지만, 납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납치범의 요리였다. 요리로 시작한 사건이 요리로 끝난 내용이지만, 그 끝에는 상상도 못할 것이 존재했다.

 

어머니와 톱니바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뻔한 애인을 데리고 남자는 도망친다. 상처투성인 그들의 방황은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감동과 역겨움을 동시에 표현한 작가의 실력에 정말 감탄하고 싶었다. 내용은 정말 안타까운 사랑 얘기지만, 애인이 죽어가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은 역겨움 자체였다. 자신의 몸도 성하지 않는데 애인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남자의 정성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만약 당신의 애인이나 배우자가 장이 파열되고, 온몸의 피부가 괴사되어 점점 썩어가서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옆자리를 지킬 자신이 있는가?

 

새끼고양이와 천연가스

 

 의족을 끼고 생활하는 아주머니에게 새끼고양이가 생기고, 이유없는 파멸을 맞이한다.

가장 기분나쁜 내용의 단편이었다. 개인의 일상을 파멸시키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학생들의 행패를 보고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용의 대부분이 아주머니가 한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다. 그 학생들에게 폭력은 일종의 놀이라는 개념으로, 보통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이 가질 법한 생각을 가졌다.

 문제는 이러한 폭력이 가해지는데 그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가장 극대화된 상황으로, 주변 상황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사람의 인격 조차 생각하지 않는 무관심까지 오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무관심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정년기일

 

 정년기일을 맞이한 노년의 남자는 기분좋게 환영받는다. 그런데 회사를 나서다가 부하직원들과 트러블이 생기면서 집단구타를 당하게 되는데...

 정년퇴직을 한 직장인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일명 '퇴직자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퇴직자들은 사회에 나온 순간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심지어 살해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퇴직자를 비현실적으로 밑바닥 취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회에서 퇴직자를 보는 시선이 이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비아 소환

 

 한 야쿠자 사무실에는 의뢰를 받고 상대를 미치게 만드는 일을 해준다. 의뢰를 받고 현장에 나서는 이는 증거를 찍기위한 카메라 촬영사, 노인, 그리고 10살 소녀다.

 개인의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는 점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3에 실린 신진오 작가의 단편 '공포 인자'를 떠올리게 했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썩 밝은 내용은 아니다. 조직 폭력배의 극악무도한 짓과 초능력의 충격적인 비밀 외에는 그렇게 기분 나쁜 느낌은 없었다.

 

전서묘

 

 남자친구로 인해 생활이 파탄난 여자는 자취방에서 몰래 고양이를 기르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잘린 손가락을 물어오면서 알 수없는 위협을 느끼는데...

 고양이가 매개체가 되어 먼 곳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고, 갈수록 그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불길한 상황이 벌어지는 듯했다. 문제는 자신의 실패를 고향집에 알리기도 싫고, 애완동물이 금지인 자취방 제약 때문에 신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그 불길한 것은 여자와 고양이만 알고 있다. 아니,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리가 없는 고양이를 제외한다면 모든 것은 여자 혼자 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누구에게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지 않는 여자의 판단이 맞다고 볼 수 있을까?

 

쓴 바베큐

 

 도루는 친구의 꼬드김으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한적한 곳에 가서 바베큐를 하기로 한다. 순조롭게 바베큐가 진행되던 중, 강가에서 시체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심각해진다.

 일명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일가족에게 불행이 닥치는 내용이다. 흔히 말하는 공포영화 사망법칙에 버금갈 정도로 불길한 암시들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이 가족은 자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면서 계속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지만 그런 가족들을 가만둘 리가 없다. 그 불길함을 나타내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공포영화 사망법칙의 단계를 밟아간다. 어떻게 보면 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기도 한다.

 다행이도 다친 사람없이 가족은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다친 사람'만 없었을 뿐이다.

 

레저레는 무서워

 

 삼창학원의 2학년 D반의 이노 교사의 자택 우편함에 자살을 예고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보내는 이는 오공이라는 가명으로 쓰여 있어 알 수가 없고, 레저레는 무섭다는 말을 단서로 학교 측에서 진상 조사에 나선다. 그러나 자살예고 편지는 늘어나고, 급기야 이노 교사의 책상에서 레저레가 쓴 편지가 발견되는데...

 상당히 지능적인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편지와 선생님의 수기, 회의 자료 등등으로 진행되는 내용으로 선생님과 학교측에서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그래서 학교측과 학생들 사이의 생각 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껴진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레저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어른들이 학생들의 수준을 얼마나 낮게 보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크레이지 하니

 

 한 행성에서 범죄자들을 이용해 개척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범죄자들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여성로봇들의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무차별 학살을 일으킨다.

 SF물이지만, 행성 개척이라던가 로봇 등을 빼면 거의 성에 관련되었다. 사람에게 성적 학대를 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성적인 도구로 사용할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에게 사디스트에 버금갈 짓을 한다.

 극단적인 성행위 때문인지 로봇들이 오류를 일으키고 폭주했다. 로봇들은 노래를 틀면서 희생자들을 찾아 자신들에게 했던 짓 그대로 학살한다. 이러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로봇 아포칼립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도, 반전도 없기 때문에 별 감흥없는 SF였다.

 

다윈과 베트남 수박

 

 외국에 사는 한 가장은 잦은 지각 때문에 어느 날, 하루 일을 못하게 된다. 가족을 볼 면목이 없던 그에게 한 동료가 하루 정도 때울 일을 소개시켜주지만, 그것은 차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기분나쁜 묘사가 넘치는 작품들에 비해 여기서부터는 다소 줄어들고, 심리적인 불편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느낌이다. 가장이 대신하게 되는 일은 이동식 차량에서 집행하는 사형을 돕는 일이었으며, 그 대상은 불합리하게 사형판결을 받은 어린아이였다. 자기 가족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남의 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상황이라 어떤 사람이라도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낯선 이동식 차량으로 집행하는 사형이라던가,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 때문인지 적지 않게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실격

 

 겨울철, 한 여자가 다리 난간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먼저 자살하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는데...

 감동적인 내용인가 했더니 결말에서 제대로 뒤통수치는 내용이었다. 제목 그대로 인간실격인 것이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의 끝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죽음도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랑이 발바닥은 소음기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세 친구.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던 중 한 친구에게 아이가 생기자 축하하기 위해 추억의 장소인 동물원에 밤늦게 몰래 들어가게 되는데...

 표현 수위도 높지 않고, 크게 자극적인 것은 없었지만 상당히 난해한 내용이었다. 주된 내용은 세 친구가 술을 마시면서 자신들이 살아온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서도 약간 철이 없고 그 때문에 한 친구는 약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와주니 뭐니, 그런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서로 그냥 주절주절 삶에 대한 얘기를 할 뿐이었다.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분위기는 슬프지 않았다. 마치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남의 일에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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