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양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백귀야행 음에 이은 교고쿠도 시리즈에 나온 주변인물들을 다룬 사이드 스토리다. 표지가 흰색으로 밝고 한자도 양(陽)이 쓰여 있지만, 밝은 내용은 없다. 하기야 이 제목은 밝다는 느낌으로 쓰인 게 아니라, 토리야마 세키엔의 요괴 화집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백귀야행 음은 주로 외부에서 오는 공포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느낌이었는데, 백귀야행 양은 대체로 자신의 내면 속에서 하는 갈등과 고민이 점점 두려워지면서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디로 피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이라면 그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오안도

 

 있을리 없는 여동생에 집착하는 자산관리인의 이야기다. 주연인물이 본편에서 어떤 역할이었고,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와 있어서 내용상 백귀야행 음의 엔엔라처럼 에필로그 같은 분위기였다.

 책의 수요와 가격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가치의 유무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독서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주장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개인적인 기록은 아는 사람에게 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 있어 보였다. 아무리 옛 사람들의 개인적 문헌을 보아도, 글쓴이가 쓴 글의 느낌을 알 뿐이지 기록 속의 글쓴이의 감정이 어땠는지 독자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기록과 기억의 차이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책에 관한 어려운 부분 말고도 이 작품은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삶은 어제가 축척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이야기고, 오늘에 실체가 불문명한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일종의 주마등과 비슷한 것 같지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축척된 어제 속에서 나는 귀신 같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싹하다.

 

오쿠비

 

 성욕에 얽힌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주로 성욕의 본질과 사회에서 취급 받는 위치의 모순 아닌 모순에서 느끼는 갈등이 나타나 있었다.

 애정과 관능 사이에서 뭐가 진짜인지, 관념에서 분리된 성욕의 본질은 무엇일지 엄청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의 몸을 탐하는 것의 차이. 감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자체는 감정이 있어서 어리석지는 않지만, 각 신체의 부분은 감정이 없어서 어리석다는 것일까. 아니면 성욕이 사람의 몸에서 오고, 그걸 사회에서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신체부분이 어리석고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일지.

 어쩌면 사람자체는 어리석지 않으나, 사람의 신체부분라는 것이 어리석어서 사람자체를 어리석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걸지도 모른다.

 

뵤부노조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로 인해 괴로워하는 창녀 출신의 노파 이야기다. 주로 뭔가를 감춘다던가, 숨어서 하는 행위를 누군가 엿본다는 꺼림직한 느낌이 많았다.

 지금은 병풍이 흔치 않다보니 단순히 뒤에 세워 놓는 물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은근히 무언가를 가리는 용도로 많이 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사람의 키를 넘어서는 병풍 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구성이라 어딘가 짠하게 느껴졌다. 어린시절과 삶이 힘겨워지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엿본다는 행위를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훔쳐보는 것을 자각한다는 걸 넘어서, 내면에 남아있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나온 죄책감이 기괴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엿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에는 자기를 엿보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도

 

 너무 좋아하는 엄마가 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죽일 놈의 아들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분위기를 감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든 눈치가 없어서 분위기를 파악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눈치없는 척을 한다던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도 아니게 보일 것이다.

 편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는 생활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듯한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의 심리 같지만, 그저 영원한 평온을 원하는 교활한 심리라는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평온은 언제나 끝이 나기 마련이라 대부분 본인이 직접 대안을 마련할테지만, 그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끔 하기도 했다. 다수의 감정을 소수의 다른 감정을 가진 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 지, 또는 다수의 감정과 다르면 사람이 아닌 것인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리에 맞지 않은 감정을 지닌 것은 소수의 다른 감정이 아닌,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라고.

 

아오사기노히

 

 빛나는 왜가리를 본 시골에 숨어든 소설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교고쿠도 시리즈상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인물이 등장해서 좀 기대한 내용이었다.

 대중소설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글에 대한 신념이라던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제한된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유를 원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 하는 의문이 새로 이어져서 흥미로웠다. 하늘을 나는 동물에 불과한 새가 사후세계와 관련 있고, 밤에 날아다는 새가 죽은 사람의 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에 매혹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환상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감정을 뒤쫓는 모습을 보며, 본편에서 이 인물이 보인 행동이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카노히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은 사인을 찾아 나서는 아들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발간 예정이라고 몇 년째 고지하고 있는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의 프롤로그인 듯 하다.

 아직 미발매인 본편의 일화를 다룬 내용이라서 곳곳에서 배경이 어디고, 큰 사건과 연관성을 갖게 되는 작은 사건의 관계자들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작중 인물들은 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크게 망가지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산 자체를 숭배하는 산 신앙과 그 산에 들어온 각종 종교에 대해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종교라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으나 그 숭배의 대상은 사람이 만든 만들어진 신이라고 해서 상당히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산에 대한 것을 다루며 산 속에 있는 것은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산의 일부라는 말이 나와서 어딘지 모르게 살아있는 자연의 거대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사건 뒤에 펼쳐질 본편의 사건이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산처럼 거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오뇨보

 

 지옥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자 제작 장인의 이야기다. 한 가지에 병적으로 집중한다는 것과 대인기피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사람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서평을 쓰는 본인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서 이 분위기에 대해서 약간은 공감이 가는 편이다.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하고 싶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결국 단념하면서, 생각대로 되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두루뭉실한 사람의 감정에 혼란스러워져서 상자에 집착하게 됐지만, 결국에는 그 집착 때문에 해어나오지 못하는 게 된 것이다.

 사람의 무관심이 주변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느껴졌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나는 나대로, 주변은 주변대로 분리되어서 알아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면 모를까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한 명이라도 충실하지 않으면 제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메온나

 

 갓난아기 때 액땜에 실패해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는 건달의 이야기다. 어딘지 모르게 미신으로 인한 주변의 태도 때문에 한 개인이 피해를 입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부터 불길한 아이였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은 탄생이라면 몰라도, 액땜에 실패했다고 불길한 취급을 받는 다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사람은 듣는 말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불길하다고 취급을 하니까, 불길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대하는 관점이 문제로 보였다. 한 사람을 미신 같은 근거도 없는 이유로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나쁜 짓으로 보이고 결국에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쁜 일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자타이

 

 뱀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호텔 메이드의 이야기다. 이 역시 아직 미발매 중인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에 나오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배경은 하카노히에 나온 지역과 같은 곳이나, 시점과 배경이 다르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면서 미발매 신작에는 본편 주연 인물의 가족 중 한 명이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광지에 대한 생각지 못한 견해가 있었다. 관광객의 입장이 아니라 현지인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약간은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본인들에게는 누추한 곳을 멀리서 보러 온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호텔 같은 서양식 관습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시대적 상황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처럼 갑작스럽게 외래문화가 밀려들어온 곳에서는 한 번쯤 다시 돌아봐야할 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알고 있다는 것을 막상 잘 생각해보면 애매해지고, 어떨 때는 아예 잘못 알고 있었거나 왜곡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게 있다면 그 비슷한 것에도 기억의 한 장면이 각인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곡된 기억일지라도.

 

메쿠라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남자가 탐정이 된 이야기다. 교고쿠도 시리즈 상 탐정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분이라는 걸 알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탐정이 되기 전의 생활까지 나타나 있어서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선에 대해서 다루어서 '백귀야행 음'의 모쿠모쿠렌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느낌이다.

 물고기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지 않아서, 물고기의 시선을 다룬 부분을 보며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여도 남들이 그렇지 않으면 순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니까 남들의 판단을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이 분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탐정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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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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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전승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내용이 많다. 대체로 전국적인 것부터 특정 지방에 한정된 것까지 다양하다. 이게 단순한 소문일지, 아니면 진짜 목격담인지, 또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사람이 인위적으로 일으켰다면, 도대체 왜 그런 기묘한 짓을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기록한 사람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어행사 마타이치와 인형사 오닌, 괴담 수집가 모모이치, 그리고 변장술사 지헤이가 돌아다니는 곳에서는 기묘한 일이 발생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리 이상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 눈치를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피하려 하면서 보게 되는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신이니 요괴니 하는 초현상적인 존재들에 의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즈키아라이

 

 한밤중 절에 돌아가는 길이던 승려 엔카이는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기위해 한 오두막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오두막 주인 외에도 비를 피하려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어행사 마타이치가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제안하고, 얘기가 계속 될수록 빗속에서 팥을 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엔카이는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구성은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서 파는 괴담집에서 이미 본적이 있었다. 그 내용과 구성은 비슷하게 보였지만 이 내용은 기현상을 빙자한 권선징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성격이 확실히 다르다. 보통 외딴 오두막이라는 배경에서는 내부에서 공포가 일어나는 내용이 많다. 그 내용에서는 도망칠 곳이라도 있지, 아즈키아라이에서는 외부에서 들리는 팥을 이는 소리와 내부에서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하는 얘기까지 더해 고립된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죄가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하쿠조스

 

 여우사냥꾼 야사쿠는 유메마야산의 여우숲에 있는 한 사당과 무덤 앞에서 잠시 쉬던 중, 여우탈을 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야사쿠는 여자가 준 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뒤, 젊은 글쟁이와 노인이 사는 집에서 깨어난다. 젊은 글쟁이는 야사쿠가 있던 사당과 무덤이 하쿠조즈라는 오래묵은 암여우를 모신 곳이라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들은 야사쿠는 자신이 여우에게 홀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여우에 관한 여러 설화가 있지만,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것은 매번 구미호라서 그런지 그 밖에 있을 지도 모르는 다른 설화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쿠조스는 흔하다 할 수 있는 여우요괴가 나오는 내용임에도 흥미로웠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들 간의 혼선을 이용해 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보면서, 현실에서 서술트릭을 실제로 하면 이런 형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약점을 잡혀서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배경이 옛날인 만큼 사람이 사람으로 둔갑한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쿠비

 

 도모에가후치라는 깊은 못 기슭에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며 사는 귀호 아쿠고로라는 망나니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장 주인인 고산타는 아쿠고로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참수인 마타시게는 한 노인에게 자신의 딸을 잡아간 아쿠고로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도코로 주나이는 아쿠고로의 노름 친구인 어행사에게 아쿠고로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쿠고로의 오두막 앞에서 목이 잘린 세 구의 시체가 발견 된다...

 읽고나서 회본백물어에 기록된 마이쿠비 전설 속에 등장하는 목이 잘린 3인의 이름이 작중에 그대로 사용된 것을 알게 되서 작가의 치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얼핏보면 최악의 악인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나섰다가 처참하게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권선징악 속에 숨겨진 권선징악이라는 느낌이었다. 하는 짓이 진정한 악인으로 보이더라도, 이용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처음 알았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다는 것도 눈여겨 봐야할 것 같다.

 

 

시바에몬 너구리

 

 아와지 지방에는 시바에몬이라는 존경받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던 노인은 마을 외곽에 인형극단이 오던 날, 손녀딸 하나가 살해당하는 일을 겪게 된다. 손녀딸을 살해한 범인은 잡히지 않은채 몇날 몇칠이 흘러가던 중, 시바에몬 노인의 집에 한 너구리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너구리를 반갑게 맞이하던 시바에몬 노인은 그 너구리로 부터 자신도 시바에몬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 다음 날 자신이 그 너구리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민간전승에서 사람으로 둔갑하는 짐승으로 여우 외에도 호랑이가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는 여우 외의 대표적인 것이 너구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바에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너구리의 대화는 분위가 무거운 작중에 잠시나마 유쾌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확실치 않은 조상내력을 들먹이며 현실의 책임을 묻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뒤틀린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를 부정하고 있기에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조상이 누린 권세에 눈이 먼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너구리였을지도 모른다.

 

 

시오노 초지

 

 오시오가우라 해변에 말장수 부자로 유명한 우마카이 초자는 인심이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매월 열엿샛날 마다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배푸는 것은 먼 지방에 까지 소문이 날 정도다. 이 얘기를 들은 마타이치는 지헤이와 함께 과거 우마카이 초자의 가족이 도적을 만난 참극의 현장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앞서 나온 패턴과는 약간 다르게 마타이치 일행이 사건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이 먼저 나와서, 그 동안 마타이치 일행이 사전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지만, 옛날에는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운송수단으로 많이 이용되는 말은 그만큼 함부로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먹는 다는 행위로 인해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는 전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야나기온나

 

 야나기아라는 숙소에는 여관 건물보다 큰 버드나무가 정원에 있다. 그 버드나무는 예부터 저주받은 나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저주에 대한 소문 때문인지 숙소 창업자인 소에몬은 버드나무 앞에 작은 사당을 만들었으나, 현주인인 기치베는 저주고 부처님이고 믿지 않는다면서 사당을 없애버린다. 그 후, 기치베의 아내와 자손들이 연이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나무는 자연에서 나오는 한정된 자원이자, 지구의 대기와 환경에 큰 역할을 하는 식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우리나라 무속의 서낭당 나무처럼 신성시여겼거나 보통 나무가 아니라서 베면 저주를 받는다는 둥의 얘기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성하거나, 불길한 나무에게 사람의 죄를 뒤집어 씌운다면 얼마나 큰벌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자각을 하지만,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거기에 걸맞는 이유를 찾는 것만큼 비겁한 짓은 없을 것이다. 자각만 있다고, 곧 양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타비라가쓰지

 

 

 가타바라가쓰지라는 갈림길에는 단림황후의 시신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야무네 린조는 한 사당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그린 구상시 그림족자를 보고 있는 마타이치를 찾아와 그 갈림길에서 일어난 일의 해결을 부탁하게 된다. 사건은 작년 여름부터 가타바라가쓰지에서 나타난 여자의 시체로 시작된다. 여자의 시체는 썩은 상태로 버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시체를 치운 후, 다음 날이 되면 또 다시 여자의 시체가 나타나고 갈수록 부패 상태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시체와 관련된 기이한 일이라는 점과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서 다른 내용들에 비해서 약간 더 섬뜩한 내용이기도 했다. 일본에 시체 그림부터 썩어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설이 있다는 것은 처음들어 보았다.

 보통 살아있는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분리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이 관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죽어서까지 사랑하게 된다면 과연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살아있을 적에 나누던 기억일지, 아니면 생명은 멈추었으나 이승에 남겨진 몸일지. 그리고 과연 그게 거짓없는 진정한 사랑일지, 아니면 욕망으로 가득 찬 집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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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2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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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든 소설이든 속편이 나오는 일이 많다. 주인공 캐릭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과 또 다른 사건에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편이지만, 전편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견습의사는 전편인 외과의사와 연결된 속편이지만, 속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애매한 것이 느껴진다. 시리즈 상의 주인공인 제인 리졸리 형사에게는 사건의 악몽이 연결된 속편이었지만,외과의사에게는 전작에서 밝혀지지 않은 과거를 말하는 프리퀄과 리졸리와의 끝판을 보려는 속편이라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 사건이 벌어진지 1년 후, 보스턴에서 부부를 상대로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코삭 형사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리졸리는 부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외과의사를 모방했다는 점을 알아낸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아직 외과의사에 대한 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건에 개입한 FBI 요원 게이브런 딘 때문에 불편함은 늘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2차 살인극이 벌어지고, 외과의사가 탈옥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제인 리졸리의 비중이 높아지고, 파트너격인 검시관 마우라 아일스 박사의 등장이 눈여겨 볼 점이었다. 마우라 아일스는 검시관인 만큼 검시하는 부분에서 큰비중으로 등장한다. 전작에서 작가만의 의학 지식을 범인과 관련인물에게 거의 투자를 했다면, 이번에는 전작에서 역할을 다하고 빠진 코델 박사를 대신해 비중있게 의학 지식을 다룰 주연급 역할과 제인 리졸리의 조력자 역할을 하게금 마우라 아일스를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전작에 비해서 의학 지식은 마우라 아일스가 담당하고, 정작 범인이었던 외과의사는 기상천외한 탈옥방법을 제외하면 의학에 대한 비중이 확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전작에서 뼈속까지 경찰이던 리졸리가 사건에 시달리는 피해자이자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안타까운 모습이 자주보였다. 경찰과 범인의 관계로 대결해야하는 동시에, 피해자와 범인 관계로 대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지 생각 해보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경솔한 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얼핏보면 옆에서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코삭 형사나 게이브런 딘도 리졸리의 시선에서는 자신을 깔본다던가, 방해한다는 느낌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아쉬운게 있다면 이번 사건의 범인이 말그대로 외과의사 모방범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부를 대상으로한 범행과 소름끼칠 정도의 재현실력에 외과의사에 맞먹는 범죄동기를 보이면서 은근히 외과의사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결말에 가서는 너무 싱겁게 다루어져서 리졸리와 외과의사를 연결시키는, 작품 내에서 치고 빠지는 조연에 지나지 않게 보였다. 견습의사의 범인이 온갖 사건이라던가, 강렬하고 잔인한 분위기를 깔며 식탁 한가득 차려놨는데 마지막에 외과의사가 전부 독식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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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수사 - 범죄수사에서 활약한 심령술 형사들의 이야기
제니 랜들스 외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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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퍼내추럴이나 고스트 위스퍼러, X파일, 고스트 앤 크라임 같은 미드라던가, 우리나라 영화인 사이코 메트리에 나오는 심령수사는 경이롭기는 하나 실생활에서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언론에는 다루어지지 않은 심령수사가 곳곳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 심령술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나, 사기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책에는 흔히들 알고 있는 사이코 메트리, 예지몽, 투시, 텔레파시, 최면부터 수맥 찾는 용도로 잘 알려진 다우징,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우연히 유령과 접촉한 것과 의도적으로 부르는 영매, 또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목소리나 도움을 이용한 사건 수사 사례와 함께 과거 기록에 나와 있는 심령술의 실용적 사례, 역사가 나와 있다. 알고보면 심령수사의 역사가 상당하다는 것은 좀 놀라운 점이다.

 주로 미해결 사건이 되려는 순간에 경찰이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하거나 직접 자청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예지몽이라던가 투시를 하게 되서 신고를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영화처럼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심령술사들에 말해 의하면 간접적인 상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심령수사도 반드시 완벽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수사를 더 혼란스럽게 할 때도 있다. 또한 알고 보면 심령술사들도 이런 일을 하면서 온갖 고충을 겪는 듯했다.

 몇몇 기록을 보면 심령술사는 불확실성 때문에 수사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아무리 신비한 능력을 가진 심령술사라 할지라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책 내용 중 한 부분을 보면 저자가 단순히 자료조사 만으로 책을 쓰지 않고, 심령술사가 진행하는 실험에 직접 참여하면서까지 심령술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나 법정에서는 심령수사를 필요로 하면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꺼리는 편이긴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심령술사들이 활약을 하고 심령술 형사 기관이 만들어지고 있는 편이라고 하니, 단순히 미신이나 사기꾼으로 몰고 가기 전에 생각을 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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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설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작가들은 책이 잘 팔리기를 원할 텐데, 이렇게 대놓고 보지 말라는 듯이 쓰고, 디자인한 책을 보니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랬는지 상당히 궁금했다. 개인적로는 세월의 흔적과 찌든 때의 느낌을 가진 고서 느낌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살린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나서 작가가 독자를 책 속에 들어 있는 온갖 싫고 기분 나쁜 분위기 속에 깊숙히 파묻어 버리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싫음이라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공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어떤 첨가물도 없이 '싫음' 그 자체를 표현한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회사에 근무하는 후카타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온갖 싫은 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지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은 흔하다. 일상적인 사건이라던가,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죽거나, 또는 괴물이나 귀신, 종말 같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싫은 일, 싫은 일로 인해 비롯되는 공포 같이 대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 싫음 그 자체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총 7편의 단편으로 일상에서 있을 법한 싫은 일부터, 초현실적으로 보일 정도의 싫은 일까지 존재한다. 각 단편에서 싫은 것으로 나오는 소재는 다들 한 번 쯤은 싫다고 느껴봤던 것이기도 한다. <싫은 아이>에서 나오는 수상쩍고 흉측하게 생긴 아이, <싫은 노인>에서 나오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음란한 할아버지, <싫은 조상>에서 나오는 집안 공기마저 기분 나쁘게 만드는 불단, <싫은 여자친구>에서 나오는 싫은 짓만 골라하는 여자친구가 그렇다. 문제는 이 싫어 하는 느낌이 쌓이고 쌓여 당사자를 미치게 만들거나, 싫음의 주범이 초현실적인 짓을 벌여 비정상적인 싫음을 만든다는 것이다. <싫은 문>에서 나오는 인생역전과 나락을 동시에 주는 문처럼 비정한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다던가, <싫은 집>에서 나오는 기분 나쁜 초현상이 벌어지는 집과 <싫은 소설>에서 나오는 싫은 일의 반복처럼 있을 수 없는 싫은 일 같은 예외도 있다.

 첫 단편부터 마지막 단편까지 후카타니가 직간접적으로 등장해서 보면 볼수록 싫음을 몰고다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 후카타니가 주연인 <싫은 소설>을 보면 가장 안타까운 인물로 보인다. 남들의 불행을 전부 알게 되고 싫음의 굴레를 겪고, 끝내는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존재에게 싫은 일을 당하게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싫은 소설은 조언을 잘 해주는 후카타니가 막상 조언을 필요로 하기 전에 주변인물들을 제거해가며 만든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차에 따라 혐오감 비슷한 것도 느낄지도 모르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누구든 싫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아마 평생 겪을 싫은 기분을 여기서 다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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