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스트링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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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이 무엇인가 하면 과연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미디어 매체에서도 음악, 길거리에서도 음악, 자연에서도 음악. 아마 귀가 망가지지 않는 이상, 평생동안 듣는 소리 속에서 음악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각종 분야와 악기로 나타내는 방식, 창법, 시대적 스타일로 예를 들면 누구나 다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음악 자체가 무엇인가 하면 쉽게 답을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정말 다양한 곳에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 인생의 전환점, 삶의 원동력, 또는 인생일 수도 있다. 매직 스트링의 경우는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랭키 프레스토. 그가 무대에서 공연 중, 돌연사한 이후 그의 고국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장례식이 열린다. 프랭키와 인연이 있던 많은 아티스트와 음원 관계자들이 모이는 와중에, 프랭키를 거두러 온 음악이 그의 일대기를 들려주는데...

 매직 스트링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화자가 음악이라는 뭔가 관념적이면서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거기에 한 인물의 인생을 다루기 때문에 일대기 느낌도 난다. 하지만 음악의 각 악장마다 템포나 빠르기가 다르듯이 각 부분마다 내용전개 속도가 제각각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좀 자세히 전개되는 감이 있는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전반적인 분위기만 서술하고 세세한 부분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특정 인물의 인터뷰 형식으로 나오는 행적도 묘미다. 어떤 사람에 대해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인상 깊었던 날을 듣는 것만큼 인상 깊은 건 없다고 본다. 당사자는 느끼지 못하지만, 한 시기를 같이 보낸 이에게는 많은 느낌을 주기에 더욱 특별하게 회고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음악의 대한 내용이긴 하지만, 아티스트들이 겪는 고난이 많은 편이다. 시대적 배경에 따른 문화탄압에 각종 외적인 문제로 망가져가는 순간,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등. 특히 기타리스트가 약물 중독에 시달릴 때 어떤 상태인지 잘 나타나 있었다. 나쁘게 악용하기 보다는 방황하는 듯한 느낌이라 왜 몇몇 뮤지션들이 약물에 빠져드는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음악가의 인생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환상적인 요소와 의외의 복선이 존재해서 엄청난 대서사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덧없는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프랭키 프레스트로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일생은 대서사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인생이라지만, 자기의 삶 속에서 자신조차 모르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또한 여러 음악들이 나열되는데 글로만 이 음악이 어떤 느낌이고, 프랭키의 기타연주가 엄청나다고 나오지만,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된다. 몇몇 곡은 실제로 찾아보면 들을 수 있는데, 상상했던 느낌과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놀라웠다. 비록 프랭키의 기타연주만 들을 수 없겠지만, 진짜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여기서는 음악이 말하는 뮤지션, 기타리스트이지만, 다양한 예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말하는 화가, 조각가. 또는 문학이 말하는 소설가, 시인. 예술 분야로 예를 들었지만, 각종 재능의 형태로 설명하는 이들이 온 세상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능이 있음에도 방황하게 되는 건, 아마도 방향을 잃거나 혹은 재능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 만날 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랭키 프레스토가 그랬듯이 재능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자기 자신이 재능을 버리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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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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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로서의 염원은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많은 게 있지만 이를 테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는 이런 걸 꼭 써보고 싶다, 같은 거 말이다. 이런 거 없이도 무난하게 참신하고 재미있는 걸 써보고 싶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작중요소에 대해 찾아보고 보완하다 보면 결국 나는 이런 걸 쓰게 됐다, 가 될지도 모른다. 글이라는 건 그냥 퍼트려 놓으면 단순한 문자에 지나지 않는지만, 거기에 경험이나 문헌자료 같은 재료들이 더해져서 내용이 있는 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재료에 따라 그 글의 주제, 이런 것이 정해진다고 본다.

 그런데, 이 분. 발표작품 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내용을 보여주는 작가 미쓰다 신조. 도조 겐야 시리즈 중 하나인 <잘린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이번 노조키메도 범상치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도조 겐야가 호러와 미스터리를 접목시킨 추리소설이라면, 노조키메는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 염원하고 생각하던 호러 미스터리의 이미지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키메는 단순히 무섭거나 괴담스러운 것이라 치부할 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보통 호러소설이라면 독자와 책 내용 속이 분리 되어 있을 테지만, 이건 연결 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라 그렇다.

 편집자 일을 하다 비로소 작가로 데뷔한 나. 하지만 초기작인 <작가 3부작>이 본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빙의물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를 쓰기위해 준비하던 중, 나구모라는 기자와 만나게 된다. 나구모는 유명 민속학자의 미공개 문헌이라며 노조키메에 대해 알려준다. 뭔가 꺼림직한 부분이 있어서 나구모를 멀리하지만, 결국 노조키메에 대한 문헌을 얻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학노트에 기록된 한 괴담과의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얼핏보면 유사 괴담을 주제로 한 호러 소설처럼 보이지만, 작중의 주인공(이건 미쓰다 신조가 쓴 책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짐작할 겁니다.)과 전지적 작가 시점의 전개가 어딘가 실재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게 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도 모른다. 실재 이야기라는 분위기에 괴담의 실체를 밝혀내는 미스터리한 구조와 일상적인 면을 갖추고 있어서, 미쓰다 신조 특유의 호러 미스터리에 작품과 현실의 경계 없어진 분위기라 할 수 있다.


 1. 엿보는 괴이의 저택


 제일 먼저 제시된 괴담으로 인터넷에서 볼 법한 무서운 이야기나 경험담 같은 걸, 세세하게 소설 형식으로 풀어 놓은 분위기라 보면 된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괴이한 일에 휘말리는 전형적인 래퍼토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괴담에서는 이미 끝나야 할 부분에서 끝나지 않고 공포감을 더해가면서 절정을 만들어낸다. 쉽게 설명하자면 낯선 곳에서 무서운 일을 겪는 내용은 대부분 그 장소를 벗어나면 끝나는데 이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엿본다는 형식의 무서운 이야기는 흔하고 단순한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엿본다는 게 공포를 만들기에는 가장 쉬운 요소로 생각된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처다보기만 해도 무서운 판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도저히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무서운 건 없을 것이다.


 2. 종말 저택의 흉사


 엿보는 괴이의 저택과 비교하면, 작중 설정상 민속학자가 쓴 거라 그런지 소설적인 전개이지만 분위기나 내용면에서는 약간 세세하고 분석적인 면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앞의 괴담은 좀 쉽게 읽었다면, 종말 저택은 각종 마을 풍습이나 장례 같은 민속학적인 논점이 많아서 약간 읽기 힘들기도 할 것이다.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많이 나오는, 외딴 오지 마을의 괴이로 인한 무서운 체험이 주를 이룬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마을 분위기에, 오래도록 전해진 한 가문에 대한 소문.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의 출몰은 현실과 동 떨어진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분위기를 통해 인물들이 공포에 질리거나 혹은, 괴이한 존재나 현상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전개로 이어질테지만,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여기에 분석을 시도한다는 특이점이 있다.

 보통 살인사건을 추리로 이해하려 한다면, 미쓰다 신조의 경우는 공포를 민속학으로 이해하려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살인사건은 발생하는 과정에서 남겨지는 증거와 각종 흔적들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는 거라면, 공포는 생겨나게 된 근원에 접근하기 위해 과거의 흔적과 그와 관련된 풍습, 구전, 소문을 되짚어 가면서 추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쓰다 신조가 왜 호러와 미스터리를 접목시키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무서운 걸 무섭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왜 무서운 존재가 되었고,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아가는 과정. 추리와도 비슷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더욱 깊숙한 공포 속으로 끌어들이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서 <엿보는 괴이의 저택>에 비해 <종말저택의 흉사>는 공포 속에서 다소 추리적인 느낌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냥 원혼의 원한이 무엇인가, 저주를 피해갈 방법, 해결책 등등과 같은 그냥 시끄럽기만 하고 전혀 무섭지도 재미있지도 않는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진부한 요소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공포를 미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노조키메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노조키메는 무엇인가, 두 괴담과의 접점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이란 무엇인가가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큰 걸 작가에게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다.

 흥미진진하지만 이건 추리가 아니다. 그냥 괴이한 존재가 위협하며 학살하는 호러도 아니다. 미쓰다 신조가 만들어낸 호러미스터리다. 그러니 무서운건 무서운대로 느끼고, 그 끝은 명확하지 않은 미스터리로 여운을 남겨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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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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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잃는 것만큼 원초적인 공포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많이들 겪는 일이고, 특별히 낯선 곳이 아니라도 쉽게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시기에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기에 다른 공포스러운 것들이 많아도 길을 잃는 것이 어린 시절 눈 앞에서 가장 먼저 느낄 공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도심에서 길을 잃어도 무서운 판에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 얼마나 무서울까.

 트리샤는 엄마와 오빠랑 에팔레치아 산맥의 한 등산로로 소풍을 간다. 이혼 이후, 엄마와 오빠 사이에 말다툼이 잦아진 탓에 트리샤는 잠시나마 산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가게 된다. 그런데, 트리샤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산길에서 등산로를 찾을 수 없게 되면서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험난한 산길로 인한 상처와 악천후 속에서 다가오는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트리샤가 의지하는 건, 라디오 너머로 들려오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투수 톰 고든의 활약상인데...

 산 속 조난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줄거리에서 보듯이 야구 관련 요소가 나와서 보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조난당한 상황에서 생존과 희망에 의지하듯이 트리샤가 의지할 요소가 야구, 그것도 레드삭스의 선수 톰 고든인 것 뿐이다. 야구를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아홉 살 소녀가 혼자 겪은 일이라 생각할 수 없을 법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꽉차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산등성이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환경은 경이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물론이고, 21세기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열악한 오지를 보다보면 다른세계로 보일 정도다. 거기에 숲 속에 존재하는 각종 좋고, 나쁜 요소들까지.

 무엇보다 소녀를 공포로 몰아넣는 건 알 수 없는 공포였다. 눈 앞의 낯선 환경은 순간적으로 공포 그 자체이긴 했지만, 적응되면 그냥 험난한 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지의 공포는 주변 환경처럼 분위기만 조성하는 게 아니라 뭔가가 "있다" 라는 느낌, 살아 움직이며 실존하는 형체를 가진 공포이기에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뚜렷한 이미지가 없어서 더욱 공포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미지의 공포는 그 상황에서 트리샤가 겪었던 각종 자잘한 공포스러운 것들의 집합체가 되어서 더욱 큰 공포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의지할 대상의 이미지가 확고한 것이 좋다는 것을 나름 느꼈다. 두루뭉실한 이미지 속에서 희망만 찾고자 했다면 산 속을 해매는 소녀의 심리상태가 안정적일 수 있었을까. 트리샤는 톰 고든이라는 확고한 이미지가 있었고, 트리샤가 힘들 때마다 환상의 형태로 곁에 있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트리샤는 정신이 나가기 직전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 어떻게 보면 트리샤가 너무 힘든 나머지 헛것을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희망이라는 개념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이런 환상조차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이미지가 확고하지 않은 개념을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고 생각하면,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것의 허상을 쫓으며 절망하기 보다는, 특정한 이미지의 형태로 자신의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트리샤가 해맨 이 숲이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스티븐 킹은 숲 자체는 실존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공포는 의외로 엄청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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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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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역 토건사업은 지역개발과 공공편의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개발이 언제나 정당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도 사용하는 이가 없으면 지역 흉물이나 다름없고, 의도와 다르게 나쁜 결과만 나온다면 쓸때없이 돈을 들여 지역파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역개발이 진행될 때 찬성과 반대가 대립하고 만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닌, 그 개발을 주도하거나 연관 있는 외부인들에게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다.

 창백한 잠은 지역개발 문제 속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통해 이권이라는 게 얼마나 지역 공동체를 쉽게 망가뜨리고, 또 지역 소도시에서 생각보다 엄청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해안마을 다카하마의 폐허를 촬영하러 온 카메라맨 다쓰미 쇼이치. 그는 다카하마 호텔의 폐허 내부를 촬영하던 중, 다카하마의 저널리스트 아이자와 다에코의 시체를 발견한다. 다에코의 전 남편이자, 지역신문기자인 안비루를 통해 다에코의 죽음이 다카하마의 공항건설 문제와 관련있어 보인다는 말을 듣게된 다쓰미는 과거 탐정 일을 한 경력 때문인지 사건조사에 흥미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던 중, 다쓰미의 동료가 다카하마 호텔 폐허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하는데...

 탐정 역할인 다쓰미를 보면 심각한 괴짜이거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달지 않은 꽤 현실에 있을 법한 탐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를 하면서도 개인적인 내적갈등이 상당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중요 질문이지만,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사진 찍으러 와서 갑자기 탐정 일을 해도 되는가. 이런 걸 몰래 알아봐도 되는 가. 등등. 이러한 모습을 보며 탐정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사실, 탐정이기 이전에 다쓰미는 많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도시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쫓지만 현실의 벽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끼며 고민하는 모습. 여기에 그의 과거와 폐허를 쫓아다니며 촬영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과거의 흔적 속에서 형체가 불분명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지방 출신이라 지역 소도시에서 사람관계가 경우에 따라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대부분 겉으로 봐서는 직업적으로나 생활하는 모습으로나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여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든지, 옆집 아는 사람, 친구의 선배 같은 경우로 연결된 경우가 많다. 해안마을 다카하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도시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면 난감한 게 한 둘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 간에 발생한 일 만큼 껄끄러운 건 없을 테니까.

 개발 문제와 이권 다툼 속에서 돈이라는 게 얼마나 인간 관계를 망가뜨리는지 나타나 있었다. 가까운 사이라도 돈 문제 때문에 쉽게 파탄나는 일이 많은데 지역사회라면 얼마나 심각할까. 사건의 반전을 생각해 보면 돈이 단순한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옛 추억까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릴 정도니. 이런 사건의 형태를 보며 지역에 널린 폐허가 단순히 버려진 공간이 아닌, 돈이 쓰이고 남겨진 찌거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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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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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집트하면 다들 떠올리는 게 많다. 대표적인 게 피라미드, 미라, 스핑크스, 파라오 정도일 것이다. 서양에서 로제타석을 발견한 이후로 쭉 이어진 관심이니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집트에서는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하면 닌자, 사무라이만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오리엔탈에 입각한 편견적인 시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서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이집트학적인 것이 주 내용이 아니다, 피라미드나 미라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퀸은 이러한 시선을 가지고 자극적이라 평가했다. 생각해보면, 서양 입장에서 미라나 피라미드의 신비로움이 단순히 호기심 보다는, 이질적인 문화에서 온 자극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엘러리 퀸은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라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집트학을 띄우기 보다, 단순히 자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라 했다. 이건 확실히 자극적인 내용을 미려하게 포장하는데 성공적이라 하고 싶다. 이집트라는 자극적인 학문으로 상당히 잔인한 사건에 쉽게 독자를 이끌었으니.
 퀸 경감과 함께 시카고에 있던 엘러리 퀸은 웨스트버지니아의 아로요 마을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십자가 살인사건 소식을 접한다. 곧장 혼자 아로요 마을에 가지만, 뚜렷하지 않은 유력 용의자의 흔적만 발견하기에 그친다. 이후, 은사인 야들리 교수의 연락을 받고 뉴욕 외곽에 도착한 엘러리 퀸은 또 다시 십자가 살인현장을 발견하는데...
 그리스 관까지 나왔던 국명 시리즈 사건 중, 가장 잔인한 사건이다. 거기에 각종 주변요소에서 자극적으로 보일 것들까지(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인다는 정도다. 작가가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있어서 왜 자극성을 띄우기 위해 제목이 이집트 십자가인지 알 수 있다.
 서문에서도 이집트학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사전에 방지한 것에 이어 작중 곳곳에서도 이집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집트광에, 사건현장에 남겨진 이집트 상징으로 보이는 흔적 등등.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이집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사건과 관련없고 지나친 과대해석이라며 비판한다. 실제로 가면 갈 수록 이집트적인 요소로 보인 것들은 그냥 무대장식 수준이고, 사건의 양상은 이집트랑 전혀 관련없이 진행된다.

 이민 사회라는 미국의 환경에서 벌어지는 유럽인들 간 범죄라는 점에서 묘하게 국제범죄 성향을 띈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게 사건 관계자들에 관한 정보가 미국 내에 전무해서 유럽에 문의할 정도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도 유럽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의 이민사회가 가진 이면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작중에서는 이러한 점이 크게 부각되어 있지는 않지만, 엘러리 퀸이 살던 당시에도 이민자들이 벌이는 범죄 문제가 있어서 소재로 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배경도 뉴욕에만 한정되어 있던 전작과 달리 웨스트버지니아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일종의 활극 느낌도 있었다. 분량에서 큰 부분도 아니고, 크게 부각되지도 않지만 나름 올드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릴이 있었다고 본다. 1930년대 유행하던 지붕없는 듀센버그를 몰고 폭우 속의 도로를 질주하는 엘러리 퀸의 모습이란. 멋질 것 같기도 하지만 작중 서술로는 기괴하다니, 기괴하다고 해주어야 되나.
 피투성이 살인현장과 곳곳에서 흔적이 발견되지만 정작 모습은 전혀 들어나지 않는 범인으로 인해 도무지 사건의 형태를 알아보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대단원의 종장까지 도달한다면 자극적인 분위기 속에 숨겨진 사건의 진실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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