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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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적인 고독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1인 가구, 1인 분, 1인용 등등. 모든 것이 혼자를 추구하는 것으로 변하는 시대에 고독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1인이 처음에는 활용 공간이 많아진다고 생각되던 것이 어느새 나 혼자 쓰기에는 낭비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보면 앞서 말한 절대적인 고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구에서도 이렇게 될지 모르는데 우주는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에 나 혼자. 내가 그렇다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사업가이자 우주인인 맥 매커천은 애인인 물리학자 김안나 박사의 우주엘리베이터 프로젝트에 쓰일 소행성을 구하기 위해 총 3대의 우주선을 이끌고 우주로 나선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맥과 함께 탑승한 빌리가 아기가 유산됐다는 소식에 조울증에 빠지면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우주 엘리베이터부터, 기상천외한 우주선 재료, 여기에 소행성 운반까지 해서 나름 엄청난 세계관을 보여준다. 엄청난 기술력으로 발전된 세계라기 보다는 가까운 시일 내에서 나름대로 도전하고 가능성을 알아보는 분위기의 근미래다. 그렇다보니 전반적인 내용에서 도전적이고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가능성이 보였다.

 우주에 대한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고독과 말 그대로 무의 공간에서 버티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 최소한의 소리가 들리던지, 아니면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낮겠지만, 우주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한된 물품으로 고독을 이겨낸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는 사람도 이런 상태에서는 도저히 버티지 못할듯 하다.

 우주에서의 고립이라는 점이 <마션>과 비슷하다 할 수 있어도, 내용 속에서도 지적하듯이 상당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어차피 책 내용 속에서 다 알려주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면 알 것이다. 저자가 쓰면서 은근히 <마션>과 조금이라도 비슷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부분으로 보인다.

 각종 서브컬쳐나 SF영화 등등. 익숙한 것들이 많이 언급되서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우주의 지루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맥 매커천이 보고 듣고, 읽고 하는 것들로 언급된다만, 그걸 읽고 있는 독자들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똑같은 지루함과 고독을 독자와 맥 매커천이 같이 이겨내고 있다고 해야될까.

 우주에서 장시간 버티는 과정이 웃프다고 하고 싶다. 맥 매커천이 원래 유쾌한 인물인 건 알았지만,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대한 웃으려 해서 더 슬퍼보이기도 했다. 그냥 무인도라면 어떻게든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구조를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우주는 아무 것도 없다. 그나마 작중에는 비상식량 제조기가 있지만, 자급자족에 비하면 최후의 임시방편이나 다름없다. 공기도, 중력도 없고 식량은 부족하고 우주선의 안전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다 아무도 없고. 이런 상태에서 그나마 웃으며 지내는 맥 매커천이 대단할 뿐이다.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이런 걸 보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중에서 우주선이 삐그덕 거리는 부분이 은근히 강조되는데, 아마도 신동욱의 투병생활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희귀병이 생긴 자신의 상태는 망가져 가는 우주선,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자신은 맥 매커천.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우주가 여러개라면 다양한 엔딩 중 하나일 것이다. 죽거나 혹은 살거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도전하고 가능성을 볼 것이다. 결말은 예측한다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니까. 우주에 대한 염원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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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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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는 나름대로 규칙이 세워져 있다. 특정한 것에 대한 상징색이라던지, 물체에 지어진 이름, 정해진 사용법 등등. 이것을 따르지 않는 다면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다름, 혹은 약간 심한 말까지 가면 비정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의 반대인 경우는 어떨까? 내가 아는 상식과 규칙이 현실과 다르고 비정상으로 보인다면. 이건 어디가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정해진 논리? 아니면 대규모로 진행된 조작일까?

 마모루는 어느 날, 황야에 고립된 학교에서 여섯 명의 학생과 세 명의 학교 관계자와 살게 된다.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라든지, 정확한 위치 같은 건 모르는 상황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비축해둔 과자가 사라지는 일까지 발생해 의문은 갈수록 커진다. 그러던 중, 새로운 신입생이 오게되면서 학교는 광란의 피바람이 불게 되는데...

 범상치 않은 배경에 어딘지 모르게 현실인지 의심스러운 환경이라 인물들(특히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음에도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다.

 배경만 놓고 보면 클로즈드 서클이 형성되어 있지만, 완전히 고립됐다고 하기에 어딘가 애매하고. 학생들에 개인에 대한 정보 외에는 모든 게 출처를 알 수가 없어 의문투성이다. 보통 작중에 나오는 배경은 주요인물들이 잘 알려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자나 주요인물들(학교관계자들 제외)은 작가만 아는 세계에서 놀아난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학교라는 환경에 대해 학생들 간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현실적인 해석, 초현실적인 해석, SF적인 해석. 다들 그럴싸하긴 하지만 학교에 대해 잘 아는 학교 관계자들이 진실을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가설에 불과하다.

 이렇게 초기에는 공간 자체에 대한 미스터리나 학교 관계자들이 벌이는 듯한 사건으로 학교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와중에, 신입생이 오면서 모든 게 붕괴된다. 다소 기묘함 속에서 아름다운 환상으로 있던 학교는 미지의 공간이라는 점이 더욱 부각되고 거기에 살인마까지 있으면서 공포로 가득찬다. 살인사건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미 학교라는 공간자체가 미스터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보통 추리소설에서 필수요소인 범인찾기는 약간 의미가 없긴 하다. 그냥 작가가 만들어낸 이 배경의 정체가 무엇인지 큰그림을 본다는 생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말을 보면서 피터팬에 나오는 원더랜드가 붕괴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변치 않은 아름다움이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잔혹한 현실이고, 괴물로 여겨지던 것들이 바로 진실이라는데 그 누가 멀쩡할 수가 있을까. 그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찾으려해도 결국에 그런 자신은 현실에서는 괴물이 되고 만다.

 피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이 약간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규칙을 어기면서 만들어낸 세계 때문에 혼선을 겪는 요소 때문인데, 규모로 따지자면 이 작품이 더 심하다. <책상은 책상이다>의 피해자는 개인 혼자지만, 여기서는 다수의 학생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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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가 사는 저택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2
황태환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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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이 걸린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약자와 강자가 가려진다. 처음부터 인성이 쓰레기였던 아니던 모두가 괴물이 되고, 약한 자는 괴물에게 먹히고 만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생각한 양심이 남아 갈등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 괴물을 이기려면 결국에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괴물이 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먹어버릴 것이다.

 좀비로 뒤덮힌 세상에서 왜소증 환자인 성국은 아버지와 한 병원에 생존하고 있다. 안전지대에서 조달해주는 식량을 받으며 버티던 중, 아버지 마저 감염되고 마지막 탈출 수단마저 무용지물이 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그런데, 병원 원장 아들과 안전지대 군인이 병원에 들어오면서 점점 성국은 인내심과 양심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데...

 제 2회 ZA(좀비 아포칼립스)문학 공모전 수상작인 단편소설 <옥상으로 가는 길>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예전에 읽은 기억으로는 좀비가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 인물들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장편으로 나온 내용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좀비가 더 많이 나오고 인물들이 갖힌 건물이 어떤 곳인지, 주변 상황과 전반적인 세계관이 어떤지 확장되었다.

 이 작가 분의 단편소설(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의 폭주, 살인자의 요람)을 보면 다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특징이 있다. 극한의 상황을 만들고 멀쩡한 사람을 극한으로 몰리게 만들어 터트리는 것이다. 난쟁이가 사는 저택도 극한의 극한 다운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왜소증 가진 주인공이라는 다소 특이성 있는 인물로 보는 주변 생존자들의 모습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모습이나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모습이 너무 잦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착하게 살아온 성국은 더 극한에 자주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심각하게 극단적이긴 하다. 처음에는 착하게 접근했다가 뒤통수 치는 게 너무 많아서 성국 이외의 사람들은 전부 잠재적인 나쁜 놈으로 보일 정도다. 어떻게 보면 성국이 너무 착해서 문제라 생각 될 수도 있었다.

 온갖 하대 대우를 받는 와중에 단편에서도 나왔던 성국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건, 그를 다른 사람들처럼 이기적인 인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성국의 행동이 나름 이해가 되는 게,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자신을 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니 순간 울분이 터져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한계를 넘어 다른 사람들처럼 괴물이 되고 만다. 성국이 괴물이 된 것은 내적인 감정이 폭발한 것도 있지만, 외적으로 그를 자극한 부분이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극단의 극단을 오가면서도 나름 희망적인 여운을 주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 성국이 원래 가지고 있던 최후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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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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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인은 물론이고 지킬 것이 많다. 무슨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 마냥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멀쩡한 사회가 있어도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한다면 그게 야생과 다를게 없다. 특히 치안이 불안하고 부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더욱 야생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생에서는 가장 먼저 공격받기 쉬운 건 약자이다. 특히 어린 생명이.

 베니 그리설은 과도한 음주로 아내와 별거를 하고 있던 중, 아동폭력범을 골라 살해하는 일명 아세가이 살인마 수사를 맡게 된다. 아무런 단서 없이 전전하던 중, 콜걸 크리스틴이 자신의 아이가 콜롬비아 마약상에게 납치당했다는 신고를 듣고 거대한 작전을 짜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인상은 아파르헤이트와 월드컵, 그리고 괴담처럼 돌던 치안문제까지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회상이 복잡한 구성을 띄어 보였다. 빈부격차 외에도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 하는 분위기에 낯설지 않은 부정부패와 뭔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모습에서 상당히 거친 느낌을 받았다. 있을 건 다 갖춘 사회지만, 결국에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야생적인 느낌.

 특이한 무기를 가진 살인마가 나오지만, 작가는 굳이 이름을 밝히고서 시작한다. 이런 경우 대체로 형사, 혹은 탐정과 범인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스릴를 형성하고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형사고 범인이고 모두가 피해자나 다름없어 보였다.

 베니 그리설은 범죄소설에 자주보이는 술에 빠져사는 형사의 이미지지만, 가정을 위해 술을 줄인다는 점에서 약간은 색다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알콜 중독 치료과정까지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베니 그리설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내내 술과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을 듯하다. 베니를 보면 뭔가 의욕은 있지만, 세상에 실망해서 자신을 망치는 경우로 보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주변 환경 때문에 망가지는 걸 본 입장에서 베니 그리설은 불운의 경찰이었다.

 아동 범죄가 주 소재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이 있었다. 거기에 경찰은 도움이 안 되고, 범죄자 인권은 지독히 따지는 모습이 많아 아세가이 살인마의 행적은 해결사에 가까워 보였다. 보통 복수하는 형태의 살인마는 각종 다양한 문제점을 들어 정당성을 부정하려드는데, 작중 사회 상황과 증오적이기 보다는 뭔가 결의에 찬 듯한 살인마의 심리를 보면 살인마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혁명가에 가깝게 보였다. 분노와 함께 나타나는 그의 염원이 남일처럼 보이지 않아서 몰입이 되었다.

 여기에 인물들 간의 접점이 상황을 더욱 예상치 못하게 한다. 특히 사건의 중심에 있는 베니 그리설과 아세가이 살인마 외에 나오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성의 시점이 그렇다. 크리스틴은 아세가이 살인마 사건 외의 시선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제대로 모여준다. 열악한 현실에 맞서는 베니와 살인마처럼 대응할 만한 수단이 전무하기에 크리스틴은 거의 피해자의 위치라 할 수 있다.

 나오는 주요 인물들의 성향과 출신환경은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때로는 불법적이고, 때로는 과격하기도 하지만 작중 내내 펼처저 있는 사회를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아는 사람, 같은 직장의 동료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리고 멀쩡히 있는 사회가 보호를 하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자체적인 방어 밖에 없다.

 사회에 존재하는 야생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허울만 있고 실질적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가 이렇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기에 거친 야생을 언제 어디서 경험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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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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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널린 게 나쁜 놈들이다. 살인을 비롯해 사기, 아동학대, 폭력 등. 같다 붙칠 죄목은 수 없이 많고, 그 만큼 저지르는 사람도 천지다. 문제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가 아닌 이상, 이들이 처벌받아도 언젠가 사회에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과연 우리는 나쁜 놈이 과연 어떤 것인가, 용서받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누나가 살해당한 일로 범죄자 증오에 시달리는 사에키 슈이치. 그 일로 경찰까지 됐으나 범죄자 증오가 도를 넘어 퇴출되고 탐정으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슈이치는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의 최근 모습을 조사해달라는 노부부의 의뢰를 시작으로 처벌받은 이후의 범죄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개개의 사건 수사와 함께 사에키 슈이치라는 탐정의 개인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연작형식이라, 이 탐정의 심정변화와 범죄자에게 사죄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간결하게 쓰여진 것에 비해 작중 내내 무거운 소재를 계속 던져주기 때문에 가볍다 할 수는 없다. 탐정 본인이 겪은 사건도 무겁지만, 의뢰를 맡은 사건들 역시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 어려울 뿐이다.

 아동살해 사건의 피해자 노부부. 아동방임 피해자였던 청년. 범죄를 저지른 동생을 버린 누나. 사기꾼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오빠. 변호한 범죄자의 갱생을 믿고 싶은 변호사. 이들이 조사해달라는 인물들은 전부 이미 끝난 사건의 가해자들.

 범죄를 저지른 이후, 멀쩡하게 살아가는 가해자와 아직도 잊지 못하는 피해자 가족들은 현실에도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가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여기고 있는 가이다. 하지만 작중에 나타난 가해자들을 보면 속 시원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엇이 정답인지 더욱 알 수 없게 만든다.

 과연 저게 자신의 죄를 뉘우친 모습일까.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쓰레기라면 복수를 해야할까.

 현재 그들의 행복을 파괴할 권리가 있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죄일까.

 이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거리들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말로 표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보며 악당이란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악당은 그냥 나쁜 놈, 누구에게나 피해를 주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 알고 왔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를 당시나 이후에도 철면피의 악질이면 몰라도, 처벌받은 이후의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피해자들 기억 속에는 분명 악당이다. 그러나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 앞서 말했듯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죄와 용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거 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악당이 생겨나지 않으려면 증오를 없애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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