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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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와 스노보드의 스릴과 뜨거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출간되자 마자 밀리언셀러가 될만한 작품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는 바이다. 스키장을 주무대로 테러가 벌어지는 일은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중요 국가산업시설도 아닌 스키장을 폭파시킬 이유가 뭐가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스키장에 늘어 뜨려 놓은 인물간의 다양한 관계를 파악하게 되면 테러의 의미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가 스노보더이다 보니 스노보드를 탈 때 느껴지는 짜릿함을 그대로 글 속에 녹여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스노보드는 물론이고 스키도 제대로 탈 줄 몰라서 직접 느껴보지 못했지만 테러범과 추격을 벌일 때 나오는 화려한 스노보드의 움직임과 자세하게 묘사된 스키장의 지형을 보면서 왠지 직접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키장에 폭탄을 매설하고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구실로 돈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스키장 경영진에게 도착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실리와 양심의 대립으로 경영진들 간의 의견 차이를 겪는 것은 테러가 벌어지는 상황이면 당연히 나타나는 구도인데, 여기서는 의견격차가 크게 벌어져서 실리가 우선으로 서게 된다. 외부적으로는 아무런 일 없이 평화로운 스키장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긴장감이 흐르는 거대한 협상판이 된 것이다.
 계속되는 테러범과의 협상과 테러범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패트롤 요원의 추격은 상황을 긴장감 있게 만들고 스노보드와 스키가 급박하게 슬로프를 내려오는 속도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테러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중간, 중간 사고로 인해 폐쇄된 슬로프로 침체를 겪는 마을과 그 문제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리에 요시유키와 사고의 충격으로 스키를 타지 않게 된 아들 타쓰키, 노후를 즐기고 있는 노부부 같이 드라마적 요소를 구성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테러사건에 너무 편중되지 않게 조절하고 있어 보였다. 또한 이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리적 요소도 잠제되어 있어 보였다.
 사건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추리보다는 거의 스릴러 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 작품이라고 본다. 또한 스키장과 관련된  영화로 나온다면 화려한 장면들이 많이 보일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영화화를 상당히 염두하고 쓴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 영화가 결말을 향해 나아갈 때 느껴지는 스펙터클한 느낌과 결말에서의 안정된 느낌이 딱 영화에서 나타는 구조로 보였다. 그래서 만약 영화화가 결정되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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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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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본격 미스터리 작품으로 유명한 관 시리즈는 이전 부터 관심이 있어서 여러모로 궁금한 작품이었다.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타이틀도 색다르게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나의 이목을 끈 것은 관이라는 건축물이었다. 이전부터 고딕 소설의 한 부분처럼 비밀장치가 숨겨져있는 건축물에 관해서 이것저것 구상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적이 많아서 그런지 관이라는 건축물은 정말 멋진 요소로 보였다. 무엇보다 십각관의 살인은 흡인력이 엄청나서 흡인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흡인력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십각관은 이름 그대로 십각형 모양의 건물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건축물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이런 건물이 있다면 각 방이 구분이 되지 않아서 패닉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다 십각형에 관련된 가구와 식기 까지 있다면 현기증이 나는 것은 무리도 아닐 것이다. 곳곳에 있는 십각형 모양 말고도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감돌게 하는 십각관은 특이한 건축물을 뛰어넘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별명을 유명 추리 작가들의 이름으로 해 놓은 것도 어딘가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마치 추리 작가들 끼리 모여 살인게임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별명은 별명일 뿐이라 실제 작가와 비슷한 모습만 있고 모두 같이 추리를 하지 않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처럼 무인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십각관의 살인은 관이 라는 작가만의 요소를 더한 오마주라면 오마주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진행요소를 작가 만의 능력으로 재창조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 됐든 간에 이 작품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와 유사점이 많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유사점 때문인지 어딘가 조금 현대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섬에 간 사실을 알고 있는 외부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외부인의 등장으로 범인을 예측하는데 애를 먹을 것 같지만 본인 같은 경우에는 추리를 잘한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가능성을 배재해두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범인을 빨리 알아 맞혔다. 하지만 범인을 예측한다 해도 결말을 제대로 보지 않는 이상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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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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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그냥 흘러 보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꿈을 자주 꾸고, 심지어는 무서운 게 나온 적이 있어서 부모님에게 달려간 적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기억에 남는 꿈을 가지고 이리저리 해석을 시도하거나, 역시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나타났을 때 기분나쁜 느낌이 남을 정도니까. 단지, 기억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거나 기억이 난다고 한들 그냥 꿈이다 하고 끝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권에서 자크가 어머니를 찾는 과정을 넘어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꿈과 수면에 대해 접근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의 평온한 잠 문화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꿈의 발전이 이루어지기까지. 편안한 과거에 안주하는 것도 좋지만 진보하며 나아가는 미래도 환상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수면과 꿈에서 시작된 탐구는 곧 현실에 대한 시각과 상상력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는 이미지가 내가 보는 이미지로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한 점이다. 시야의 넓이 차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걸 보면서 작중에서도 제시되는 잠에서 시작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흔히 불면이라는 것이 어쩌면 현실과 다른 비시각을 원하지만 상상력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한계점이 정해져 있기에 현실에 매달리고 잠을 비롯한 꿈이 점점 적어진다고 생각된다. 상상력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으면 모를까, 사람마다 정도의 차는 있어도 상상력이 조금씩은 있다. 이 개개인의 상상력이 무의식적으로 비시각적인 이미지를 원하지만, 상상력을 가진 당사자 본인이 만들어낸 한계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상황에 등장하는 것이 수면제 같은 인공적인 수단이다. 작중에서는 악품에 들어간 요소를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수면과 꿈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단순히 꿈이 적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한계점을 더 두껍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현실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나를 속이기 보다는 나를 이해하자는 것인데,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무의식을 들여다 보자는게 관점이다. 생각은 하기 쉬워도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 만큼 내가 나의 무의식을 보는 것도 그 만큼의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상하다, 불편하다, 힘들다는 게 진짜 내 의식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서 나오는 걸 배척하고 있는지. 이걸 구분해야 진짜 나를 알 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어려워도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건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꿈 속에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난다는 점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은 애초에 설계되어 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크가 만난 미래의 자신은 완성되어 한층 더 높은 상위적인 존재가 아닌, 그저 나이와 경험이 더 많은 나 자신 그 자체다. 나의 문제를 같이 고민해주고, 다른 사람과도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를 서스름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 것이다. 숨기고 싶은 사실도 이미 다 알고 왜 그러고 싶은지 잘 이해하는 이런 친구가 어디 있을까. 나 자신이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읽다보면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 자주봤던 전개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의 소설에서는 후반부에 가서 기술의 발전이나 진보해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비극이 벌어지고 각종 부작용으로 혼란이 일어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 동안 보지 못한 부분으로 한층 더 높은 신세계를 발견하고는 했다. 잠은 오히려 그 반대로 보였다.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비극이 닥치고 혼란에 휩싸였다가 갈수록 발전해 나가 좋은 환경에 신세계에 도달한다. 작중에서도 발전과정에서의 혼란과 부작용이 언급되지만, 이 역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 차근차근 올라가며 개선을 하면 방지할 수 있다고 하는 걸보면 이전보다는 좋은 결말로 유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위인들도 꿈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꿈에서 영감을 주는 게 다른 이들은 본 적이 없던 비시각적인 이미지였을까. 아니면 미래의 자신이 이끌어준 것일까.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문제는 꿈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도 다들 잘자고 좋은 꿈 꾸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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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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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만화나 동화 혹은 자신 만의 상상 속에서 접했을 무서운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귀신이라는 걸 접하기 이전에는 대부분 괴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실, 귀신보다 괴물이 더 무서울 수도 있는 게 귀신은 실체가 없지만 괴물은 실체가 존재하는 생명체, 즉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 옛날에는 정체가 불분명한 생명체를 괴물로 치부했던 걸 생각하면 괴물이라는 명칭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진짜 괴물들만 놓고 연구하는 학문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같은 것 말이다.

 19세기 미국, 워스롭 박사라는 괴물학자의 집에 한 묘지 도굴꾼이 찾아온다. 도굴꾼은 자신이 묘지에서 괴상한 것을 발견했다며 박사에게 건내고 조수인 윌 헨리도 옆에서 거든다. 그 괴상한 것은 바로 시체를 휘감은 채로 죽어있는 안트로포바키라는 괴물이었다. 워스롭 박사는 이 괴물은 미국에서 서식하지 않는 다는 점을 들어 의문스럽게 여기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띠지에 나온 것처럼 러브크래프트+스티븐 킹이 딱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또 분류를 하자면 괴물이 나오는 19세기 세계관, 제자인 윌 헨리가 느끼는 심상, 괴물 본인, 괴물학자는 러브크래프트 성향. 괴물학자가 사는 마을, 괴물학자와 제자를 제외한 인물들, 괴물이 나오는 부분을 제외한 공포스러운 부분, 괴물학자와 제자의 과거 및 사연, 괴물학자와 가까운 주변 인물은 스티븐 킹 성향으로 보였다. 여기에 다소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넣은 실존 기록 같은 느낌까지 있어 괴물학에 대해 더 빠져들게 된다.

 괴물학자인 펠리노어 워스롭은 지금까지 봤던 괴팍한 괴짜 박사들을 통틀어 가장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별종 그 자체다. 대화다운 대화라 볼 수 없어 헛소리로 보일 정도인 자기중심적인 언행과 생각. 이성적인 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광적이라 해야될 정도인 학구열. 여기에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괴팍한 그의 성격까지. 이렇게만 보면 정말 고약하고 성격 더러운 괴물학자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간간히 나타나는 그의 과거 행적을 보면 상당한 심리적 상처를 가진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특성 탓인지 모르지만, 맞는 말을 하긴 하지만 주연인물 치고는 상당히 민폐적이고 각종 문제점들이 상당해서 사건을 해결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벌이거나 악화시킨다. 다만, 이제 막 시리즈를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앞으로 워스롭 박사가 성장할지는 지켜봐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상당히 위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아는 사람들도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 많은 듯하다.(특정인물의 정체가 상당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이런 박사 옆에 붙어다니는 제자 윌 헨리는 그야말로 안타까움 그 자체다. 나이를 생각하면 주변 환경이 상당히 나쁘고 못 볼 것만 보게 되는 일이 많아 공포가 일상에 늘러 붙어 있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가 주변상황을 판단하고 느끼는 모습은 딱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묘사와 거의 흡사하다. 러브크래프트였으면 기절하거나 이성을 상실했을 부분은 다소 순화되어 윌 헨리의 감정 폭발과 트라우마로 대체된 것 같았다. 그래도 윌 헨리는 워스롭 박사의 어린 시절보다는 그나마 낮다고 생각되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워스롭 박사는 심리적 상처로 폭발해 나오는 괴팍함 속에서 자신이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과 이런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는 윌 헨리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메인 괴물인 안트로포바키는 충격 그 자체라 해야겠다. 생김새는 그렇다 쳐도 이들의 잔혹한 살육행위는 그 어떤 고어물보다도 더하다. 크리처물의 정수, 진정한 괴물이 바로 이런 것이라 해야겠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면 뭐든지 원래 서식지에서 다른 곳으로 방출시키지 말자는 점이다. 국내 생태계의 외래종 문제를 사람에게 접목시켜보면 더 확실히 실감이 날 것이다.

 안트로포바키라는 괴물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가치에 대한 문제가 종종 나왔다. 이 문제는 괴물학자의 과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다. 보통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없고 고민해보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가까운 사람(특히 가족)에게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그때부터 생기는 것이 사람의 가치 문제다. 워스롭 박사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가치의 상실을 넘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한 나머지 지금의 모습이 된 걸로 보였다. 지금 현재 괴물학자의 과도한 자신감이라든지 상당히 좁은 식견과 생각, 가치관은 자기 내면에서 체워졌기에 이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강박에 강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기 자신 외에 다른 것과는 완전 단절되버려 다른 것에 대한 이해심이 없어지고, 그렇기에 자신이 아낀다고 자부하는 윌 헨리도 아무렇지 않게 막 대하게 된 것 같다.

 이 괴기한 세계에서 괴물학자와 제자의 다음 활약은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 비록 워스롭의 괴팍함은 여전할지어도 윌 헨리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있던 만큼 점점 개선되어 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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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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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면 찾아오는 건 밤이오, 이때 규칙적으로 찾아오지만 바쁜 현대에서는 들쑥날쑥한지 오래된 것이 잠이다. 그냥 졸려서 자는 것이고, 내일을 위해 자는 것이고, 그냥 오래 눈 감고 있는 정도가 잠의 전부인 게 지금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덩달아 꿈 역시 부족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잠 못드는 밤이 오래된 지금 우리에게 잠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어떤 것일까?

 의대생인 자크는 신경생리학자인 어머니, 카롤린으로 부터 꿈의 세계를 접하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성장해왔다. 그런데, 새로운 수면 단계에 대한 실험을 하다 사고가 난 이후로 어머니 카롤린이 말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데...

 잠이 주제인 만큼 주인공인 자크가 자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냥 자는 모습 정도가 아니라 수면에 빠져드는 단계라든지, 꿈 속에 빠져드는 모습이 나타나서 정말 편안하게 잠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편안함 그 자체라 이런 잠을 언제 자보았을지 생각이 많이 들 정도였다. 그 만큼 잠자는 동안에도 불안이 존재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로 잠을 잠수단계에 비유하는데, 물 속 잠수를 못하는 입장에서도 대략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보통 편안해지는 느낌을 표현할 때 공중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로 표현하는 걸 생각하면 소설 상에 나타난 잠의 단계는 정반대의 이미지에 해당되기도 한다. 아마도 잠자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은 공중에 해당될지 몰라도, 잠이 드는 과정은 잠수처럼 들어가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계를 참으며 도전하는 잠수와 편안함을 위해 깊이의 한계를 넘어야 하는 잠.

 어딘지 모르게 참 비슷하게 보인다.

 잠이 드는 장면이 많은 만큼 현대인이 많이 겪는 불면에 대한 부분도 빠지지 않았다. 잠이 드는 부분이 편안함이 깔려 있었다면 불면에서는 흔히 많은 이들이 겪었을 법한 텁텁함이라던지, 불쾌한 분위기로 깔린다. 늘 잠을 편안히 자던 자크에게 일어난 불면이라 그런지 보통 사람보다 더 극단적으로 피폐하게 보이기도 하다. 또, 수면제가 잠이 들기는 해도 편안히 자는 것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라는 것까지도. 편안히 잘 때의 편안함보다는 강제성이 있기 때문인지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물 속으로 던져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편안함이 나올 수가 없고, 꿈 역시 존재할 수 없는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편안히 자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다가 내용이 진행될 수록 꿈에 대한 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꿈이 그렇개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점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꿈이 적어진 지금에서는 아직 낯설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유로운 꿈이라면 자는 게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현실에서 벗어나 믿음이나 사실 같은 건 상관없이 있을 수 있는 곳.

 그게 꿈이라면 지친 일상에서 편히 쉬고, 놀 수도 있는 환상적인 곳이다.

 이런 곳을 누리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일까.

 이제 꿈의 먼 미래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과연 자크는 잠과 꿈을 어떻게 발전시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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