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꿈을 그냥 흘러 보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꿈을 자주 꾸고, 심지어는 무서운 게 나온 적이 있어서 부모님에게 달려간 적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꿈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기억에 남는 꿈을 가지고 이리저리 해석을 시도하거나, 역시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나타났을 때 기분나쁜 느낌이 남을 정도니까. 단지, 기억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거나 기억이 난다고 한들 그냥 꿈이다 하고 끝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1권에서 자크가 어머니를 찾는 과정을 넘어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꿈과 수면에 대해 접근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의 평온한 잠 문화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꿈의 발전이 이루어지기까지. 편안한 과거에 안주하는 것도 좋지만 진보하며 나아가는 미래도 환상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수면과 꿈에서 시작된 탐구는 곧 현실에 대한 시각과 상상력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는 이미지가 내가 보는 이미지로 한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못한 점이다. 시야의 넓이 차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걸 보면서 작중에서도 제시되는 잠에서 시작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흔히 불면이라는 것이 어쩌면 현실과 다른 비시각을 원하지만 상상력을 비롯한 각종 분야의 한계점이 정해져 있기에 현실에 매달리고 잠을 비롯한 꿈이 점점 적어진다고 생각된다. 상상력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으면 모를까, 사람마다 정도의 차는 있어도 상상력이 조금씩은 있다. 이 개개인의 상상력이 무의식적으로 비시각적인 이미지를 원하지만, 상상력을 가진 당사자 본인이 만들어낸 한계점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상황에 등장하는 것이 수면제 같은 인공적인 수단이다. 작중에서는 악품에 들어간 요소를 비롯한 다양한 부분에서 수면과 꿈에 좋지 않다고 하는데, 단순히 꿈이 적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한계점을 더 두껍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현실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 같았다. 나를 속이기 보다는 나를 이해하자는 것인데,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무의식을 들여다 보자는게 관점이다. 생각은 하기 쉬워도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는 만큼 내가 나의 무의식을 보는 것도 그 만큼의 과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저 이상하다, 불편하다, 힘들다는 게 진짜 내 의식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서 나오는 걸 배척하고 있는지. 이걸 구분해야 진짜 나를 알 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건 어려워도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건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꿈 속에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만난다는 점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은 애초에 설계되어 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크가 만난 미래의 자신은 완성되어 한층 더 높은 상위적인 존재가 아닌, 그저 나이와 경험이 더 많은 나 자신 그 자체다. 나의 문제를 같이 고민해주고, 다른 사람과도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를 서스름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인 것이다. 숨기고 싶은 사실도 이미 다 알고 왜 그러고 싶은지 잘 이해하는 이런 친구가 어디 있을까. 나 자신이니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읽다보면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 자주봤던 전개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의 소설에서는 후반부에 가서 기술의 발전이나 진보해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비극이 벌어지고 각종 부작용으로 혼란이 일어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 동안 보지 못한 부분으로 한층 더 높은 신세계를 발견하고는 했다. 잠은 오히려 그 반대로 보였다.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비극이 닥치고 혼란에 휩싸였다가 갈수록 발전해 나가 좋은 환경에 신세계에 도달한다. 작중에서도 발전과정에서의 혼란과 부작용이 언급되지만, 이 역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 차근차근 올라가며 개선을 하면 방지할 수 있다고 하는 걸보면 이전보다는 좋은 결말로 유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위인들도 꿈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꿈에서 영감을 주는 게 다른 이들은 본 적이 없던 비시각적인 이미지였을까. 아니면 미래의 자신이 이끌어준 것일까. 정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문제는 꿈에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도 다들 잘자고 좋은 꿈 꾸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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