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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검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2월
평점 :
길 잃은 비둘기
가게 주변을 청소하던 오하쓰는 소매에 피가 묻은 여인을 목격하고 쫓아간다. 그런데 여인은 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오하쓰가 도둑으로 의심받고 만다. 다행이 지나가던 무사의 도움으로 오해는 풀고 잘못 본 일로 넘기려 한다. 그런데 오하쓰가 본 여인은 가시와야라는 가게의 안주인이었으며, 남편의 병수발을 들어주는 하녀가 사라진 일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에도 시리즈의 한 파트인 영험한 오하쓰 시리즈의 프리퀄에 해당되는 단편이다. 초능력이 기반이 되는 추리물인데 여러모로 시대적 배경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소소하게 진행된다. 특이하게 보이는 부분이라면 가족들이 함께 사건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큰오빠인 로쿠조는 관청에서 일하고 있어 사실상 직접적인 수사반장 역할. 둘째 오빠인 나오지는 정보원 및 조력자. 꽤 든든하게 보이는 조합이다. 물론, 초기 단편이라 그런지 쉽지 않게 나오긴 한다.
사건 자체는 평범한 축이지만 오하쓰의 초능력이 나타난 부분은 약간 놀랍다. 묘사로만 보면 어딘가 사이코메트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사건이 일어난 그 현장의 흔적을 다시 보여주는 걸 넘어 기묘하기까지 한다. 물론 사이코메트리가 직접적으로 접촉을 해야 가능하다는 법칙이 있는 걸 생각하면 이보다 더 엄청난 능력인 것 같다.
가마이타치
오요는 의원인 아버지 겐안이 왕진을 나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걱정한다. 최근 에도 거리를 돌며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속칭 가마이타치 때문이다. 기다리다 못한 오요는 비오는 밤거리로 마중을 나가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가마이타치의 살해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오요는 서둘러 관청에 신고를 하지만 살인현장에는 시체는 물론 아무런 증거도 남아 있지 않는다. 이런 탓에 오요는 뭔가를 잘못 본 것이라는 취급을 받게 되던 중, 집근처로 문제의 그 가마이타치가 이사를 왔다는 걸 알게 되는데...
묻지마 살인이 메인으로 보이지만 실상을 보자면 거의 정치스릴러에 가깝다. 범죄는 일상과 밀접하면서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할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강력 범죄의 검거에 따라 평판이 좌지우지되는 것도 똑같기도 하고.
인망 좋은 권력자가 자리를 잡으면 거리가 안정되지만,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이상 그 이전에 부패를 일삼던 잔존 세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제 딴에는 살기 좋은 때가 없어졌다고 불만을 가지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예전의 권세를 되찾으려고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겉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뒤에서 그들만 아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높은 자리일수록 정직해야 한다지만 상대가 지저분하게 나오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권모술수에는 권모술수로 대항해야 하는 법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 않는 가.
섣달의 손님
작은 여관인 우메야에는 새해 섣달마다 방문하는 단골 고객이 있다. 센다이에서 방물가게하며 정월 대목에 맞춰 가게 물건을 사러 에도로 가는 길에 들린다고 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숙박비로 세공품을 두고 가는 것인데...
꽤 짧은 내용에 반전 요소를 제외하고는 크게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다만,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크기를 생각하면 꽤 엄청나긴 하다. 살짝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옛날 전래동화를 보면 이것과 비슷한 전개 있긴 했다.
형편이 좋지는 못해도 행복하게 사는 가족. 이런 소박한 가정을 노리는 악한. 그리고 어떻게든 착하게 사는 사람은 손해 보지 않고, 악한은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이렇게 보면 옛날이야기 감성으로 읽기 좋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검
순시관 나이토 신노스케는 전당포에 맡겼던 검이 처분당해 다른 검을 받게 됐다. 문제는 이 검이 밤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로쿠조는 영험한 능력이 있는 동생 오하쓰에게 검을 가져간다. 검 자체에서는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자 모두들 밤중에 말을 하기 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오하쓰는 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오하쓰가 사건을 담당하는 내용이다. 최초 단편인 <길 잃은 비둘기>가 제법 현실적인 사건을 다룬 것에 비해 이번에는 사건 자체도 기묘하다. 겉만 봐서는 황당하면서도 일본에서 검이 가지는 위치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말하는 검이 가지고 있는 사연과 장엄한 연출이 섞여 있는 형태라 여러모로 흥미진진하다. 시대물적인 깊은 사연은 그것대로 인상깊고. 무사물에서 나오는 것과는 다른 신비로운 검술이 분위기를 경이롭게 만든다. 초현실적인 사건인데도 현실적인 수사방법이 바탕에 깔려 있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오하쓰의 분위기와도 어울리게 보였다.
장인이 만드는 물건에는 혼이 담긴다는 말이 있다. 보통은 정성과 노력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여기서는 만드는 의도까지 염두해두는 것 같다. 특히나 검처럼 사람을 해칠만한 무기라면 더욱더 중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