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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의 아이 1~2 세트 - 전2권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어린 시절의 불행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인생의 가장 초반이자 앞으로의 삶에 기반이 되는 시기기 때문에 더욱 큰 흉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주변에 보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자신이 비교 될수록 대못이 점점 박힌다. 아픔의 아픔이 계속 박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버리고 만다. 살아있는 채로 죽어버린다고 하면 어떤 느낌일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가 부정당하는 만큼 점점 내면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말을 들어도, 좋은 사람들과 지내도 문을 열기란 쉽지가 않다. 좋은 의미로 한 충고나 비판이라도 도리어 자물쇠만 더 늘어나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이 답이냐고 묻는다면 결국은 시간이다. 불행했던 시간만큼의 무언가가 채워지기까지의 기한 없을 오랜 시간. 깊은 상처가 있을수록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진심을 담은 노크를 한다면 반응이 올지도 모른다.
호적 없이 방랑생활을 하다 살인혐의로 소년원에 들어오게 된 마치다 히로시.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는데도 천재적인 소질이 보이는 엄청난 지능이지만, 사람과 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교도관인 나이토는 이런 마치다를 맡을 생각에 걱정이 앞서는 한편으로 겉모습과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한편 무로이라는 자의 지시로 마치다를 탈주시키기 위해 소년원에 또 다른 소년이 들어오게 되는데...
총 3부로 나눠진 큰 스토리로 마치다 히로시라는 소년이 사회에 나가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범죄로 살아온 밑바닥에서 자신이 돌아갈 자리가 있는 삶이 생기기까지. 한편으로는 겉모습으로 인한 편견과 그리고 그의 뒤를 계속 쫓아다니는 거대한 그림자. 비록 인생의 전부를 다룬 것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커다란 드라마가 되고도 남는다.
각 파트 별로 살펴보면 이런 느낌이다.
1부는 소년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소년 드라마 겸 스파이 스릴러다. 교도관 나이토와의 신경전 속에서 보이는 숨겨진 면,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소년들과의 관계를 보며 마치다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한편으로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범죄조직의 그림자가 돌아다녀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긴장감이 넘친다.
2부는 대학이 배경인 청춘, 성장 드라마 겸 서스펜스 스릴러다. 여기서부터는 마치다 이외의 다른 인물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인물관계가 꽤 복잡하다. 주변 인물들을 여러모로 깊이 다루다보니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전체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설렁설렁 넘겨서는 안 된다. 다른 인물시점에서 진행되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보다보면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삶이 최고의 행복이라 느껴진다. 아무리 불행하다 못해 막 사는 인생이라도 어디에 있든 절대 안심할 수 없이 지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래서 무엇을 하고 살든 나쁜 짓에는 손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겠지.
3부는 본격적으로 각종 인물들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기업 스릴러 겸 본격 미스터리다. 복잡하지 않는 선에서 기업 내부 사정을 다루며 경제계에서의 암투를 다루는 게 살짝 국내 드라마 한 장면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 파트와 연결되면서 꽤 복잡한 구성이 되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다. 상당히 속도감이 있어서 이 파트에 들어서면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 나머지 계속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약간 찜찜하면서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라 살짝 아쉬운 감이 있긴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긴 하다. 여기서 스토리가 더 불어나면 대하소설이나 마찬가지고 메인 주제가 소년 범죄인 만큼 여기에서 적정선을 끊어야 마땅하다.
얼핏 보면 각 파트 별로 분위기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도 마치다와 무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큰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미스터리가 눈에 띄는 특징이다.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부분이 나중에 가서는 엄청난 반전이 되거나, 한 파트에서 끝났을 것 같던 요소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등. 상상 이상으로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보면 된다. 마치다의 행보 역시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면서 행동과 심리 부분에서 언제나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아 작중 최대 미스터리 요소 중 하나다. 여기에 메인 주제의 핵심을 다루는 만큼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만든다.
소년 범죄자의 밝은 미래와 안타까운 최후가 동시에 나타나 있어서 씁쓸하기도 하다. 한 번 생긴 전과 기록은 편견과 좋지 않은 시선으로 평생 따라다닌다. 시간이 갈수록 철없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와 심리적 부담도 늘어날 것이고. 이렇다보니 아직 인생의 절반도 안 지난 시기에 모든 걸 내던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심하면 다시 범죄에 다시 빠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고. 확실한 것은 동기가 어떻게 됐든 범죄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더러운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를 노리고, 많은 걸 가질 수 있다고 한들 편히 지내지 못한 환경이라면 불행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에 다시 시작할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 좋은 환경을 만나야 하는 것도 중요하나 스스로의 의지 역시 확실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도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처벌에 대한 나름의 역설도 볼 수 있다. 바로 저지른 죄에 대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 처벌이 고통을 주는 형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크게 복잡한 건 아니고 좋은 환경을 경험하게 해서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시키는 형식이다. 아무 탈 없는 삶에서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그냥 죄라는 이름으로 주는 형벌은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신체적 아픔을 주는 것이 전부라면, 이 역설적인 형벌은 심리적 아픔을 준다고 보면 된다. 그 죄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고 느낄 환경에 노출시켜 마음 깊숙이 박히게 만드는 것. 어느 정도의 실효성 문제가 있겠지만 제대로 각인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형벌일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힘든 환경에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거나, 반대로 좋은 환경이라도 나쁜 길로 빠지는 예외의 경우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게 겉으로 들어난 대외적 이미지인지까지는 알 길이 없겠지만. 어쨌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좋지 않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 무언가 하나씩은 빠져 있거나 생각보다 겉과 속이 다르기도 하다. 특히 겉과 속이 다르다는 부분은 멈춰 버린 감정으로 인한 표현 부족, 또는 오랜 시간 내면을 숨기면서 가면처럼 굳어진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다 보니 딱딱하고 무서운 인상이 되는 것일 테다. 이러하듯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좋은 환경 속에서 멈춰버린 감정이 다시 움직이고 가면이 떨어지도록 말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겪으며 빈 자리를 채워나가다 보면 끝없을 빙하기에도 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단지 기다려줄 인내와 다소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