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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 ㅣ 한국추리문학선 3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종합 선물 세트를 받게 되면 언제나 흥분이 된다. 그것도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면 더 그렇다. 포장지를 하나하나 열어가며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재미는 직접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대단하다 싶으면 더 대단한 게 나오고. 하나하나 모두 모아 놓고 보면 이래서 한 세트구나 하는 의도까지 알아내면 감탄에 감탄을 수밖에 없다. 물론 품질의 문제도 따져봐야 하지만 절반 이상을 열었는데도 크게 흠이 없다면 그건 완벽한 세트라 판단해도 된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종합 선물 세트에 가깝다.
추리소설가 당승표는 상금이 걸린 추리 퀴즈게임에 초대하는 메일을 받게 된다. 어디까지나 특별 초정이었지만 어느 정도 상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참가한다. 1, 2차 테스트 통과자들, 그리고 또 다른 특별 초정자인 백종명과 함께 당승표는 행사장소인 강원도 산골의 폐교에 도착한다. 참가자들 간에 이런저런 신경전을 겪으며 첫 날이 지나가고 두 번째 날이 밝아온다. 아침 식사 디저트로 나온 커피를 서로 나눠 마시건 중, 독극물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처음 부분에서는 책 분량에 비해 사건이 약간 단순하다던가, 왜 이런 시점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등의 의문점이 많았다. 하지만 금방 이게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 게 되니 점점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빠르게 읽기 좋아서 지루할 틈도 없이 본격적인 윤곽을 파악하기 쉬웠다.
여러 사건을 하나로 엮어 전체적으로 큰 사건을 만들어낸 구성은 보면 볼수록 놀랍다. 작중에 등장하는 추리 요소들은 따로 흥미롭긴 해도 따로 놓으면 연쇄 살인 같은 걸로 연계시키지 않는 이상 길게 다룰만한 건 아니다. 오히려 단편 소설에 어울리는 소재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영화 쪽에서 많이 기획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구성이지 않을까. 잘 보면 작중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은 나름의 독립적인 스토리를 가지면서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형태다. 물론 후반부부터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며 하나로 합쳐지는 전개가 되고, 독립적인 스토리로 구분하기 애매해 보이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상이라고 해둔다.
작중에 사용된 트릭과 암호들은 굉장히 참신했다. 꽤 전문적인 과학 요소가 많이 나온 것도 대단한데, 우리나라의 사회, 정치적 환경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트릭이 나왔을 때는 진짜 최고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트릭이란 트릭은 이미 다 소모 됐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찾아보면 충분히 더 개발할 여지는 남아 있어 보였다.
암호 같은 경우, 다른 작품에서 보면 보물찾기 아니면 다잉 메시지처럼 단편적으로 쓰이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 만큼 남용이 심한 경향이 있어서 살짝 임펙트가 약할 수도 있는 요소다. 다잉 메시지 같은 경우는 요즘에 들어서 현실적으로 보면 억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런데 암호로서 참신함과 사건과의 깊은 연관성을 동시에 잡는 구성을 보여 기상천외한 트릭에 이어서 한 번 더 놀랐다. 중간 중간 자세한 설명을 누락해 뒤에서 소량의 서술트릭처럼 보이게 만든 부분도 굉장히 멋지게 보였다.
여러 추리 소재가 쓰이는 만큼 잘못하면 무작정 뒤섞은 짬뽕이 될 수도 있었지만, 각 시점을 산만하지 않게 배치해서 오히려 궁금증이 생기게 만든다. 여기에 메인 주인공인 당승표가 추리하는 타이밍을 적절하게 잡아 놓아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본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보면 재벌과 정치인, 사회적 이슈를 다룬 면이 종종 볼 수 있어 혹시나 흔한 한국식 교훈이나 설정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괜한 걱정이었다. 오직 추리에 집중하도록 트릭과 복선이 여럿 깔려 있는데 그런 게 들어갈 자리는 진작 없었을 것이다. 속편을 염두 해둔 듯한 결말을 보며 이후를 상당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