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붉은 눈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갑자기 시골로 전학을 가게 된 나첫 등교날전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마도 다카리라는 이름의 눈이 유독 인상적인 여자아이다뭔가 나이와 맞지 않은 분위기에서 오는 꺼림 직한 느낌을 받던 중그 아이가 결석을 하는 바람에 빵과 숙제를 전해주러 가게 됐는데...

 

학교와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 중에서 전학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종종 있긴 했다낯선 아이가 온다는 점에서 신기함과 한편으로는 낯설다는 것이 이유모를 두려움으로 발전한 형태에서 나온 괴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현실적으로 보자면 전학생에 대한 일방적인 따돌림에서 파생된 악의적인 소문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대체로 이런 괴담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구성이다뭔가 심상치 않은 전학생점차 그 전학생과 엮이며 발생하는 무서운 일가족 중에 있는 심령 전문가의 도움으로 벗어나는 위기그런데 작중에 나타나는 불길한 묘사는 전혀 뻔하게 보이지 않는다평범한 일상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분위기를 시작으로 조금씩조금씩덮쳐오는 살아 있는 불길함이 생생하다어릴 적 보았던 괴담집이 인스턴트커피 같다면 이 소설은 진하다 못해 조금 쓴 아메리카노 같다고 해야겠다공포를 묘사하는 깊이나 결말에서 오는 상상도 못한 반전의 섬뜩함이 있어서 그렇다.

 

 

 

괴기 사진 작가

 

잡지 편집자로 일하던 나는 영국 괴기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접하고 좀 더 알기 위해 출판사까지 찾아간다그런데 거기서 기획 편집자로부터 또 다른 괴기 사진작가에 대해 듣게 된다모쿠노 요시미라는 사진작가로 우연히 방문한 개인 사진전에서 마주쳤다고 한다뭔가 이상한 사람을 떠맡아 달라는 부탁처럼 보여서 꺼림 직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사진이 궁금해진 나머지 모쿠노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로 사진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현대에는 주로 이상한 것이 찍히는 심령사진이 대표적인데과거에는 동서 가리지 않고 영혼을 뺏어간다는 인식이 많았다고 한다관점으로 따지자면 무엇이 찍힌다는 것과 현실에 있는 것을 똑같이 담아낸다는 부분에서 발생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다사진 관련 공포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이라면 이 두 가지 관점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령사진 비슷한 내용으로 보이다가 점차 사진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여러모로 놀랍다보통은 무언가가 찍혀서 무섭다고 하지사진 그 자체가 무섭다고 하지 않는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딱히 이상한 것이 찍히지는 않았지만 그 장소에 존재하던 무언가가 담겨서 따라온 사진그런 사진이 수 백장이나 가득 쌓인다이러면 사진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도 이상하지 않다여기에 텍스트와 이미지에서 오는 공포의 차이점과 이 둘이 합쳐져 2배의 효과를 내는 부분에 대한 묘사까지 있어서 꽤 흥미롭게 봤다.

 

의외의 추리요소가 있다는 점에서도 놀랍다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되짚어가다가 발견하는 반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트릭이 있어서 그렇다원문으로 봐야 이해될 부분이라 번역에 나름 신경 써야 될 부분이었는데 다행히 번역가 분이 센스 있게 해놓아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괴담 기담 · 사제 옛 집의 저주

 

작가가 실제로 수집한 실화 괴담으로 부록 형태로 4개가 수록되어 있다처음은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와 관련된 짤막한 괴담이다약간 흔한 괴담처럼 보이지만 그저 과거 시점의 얘기로 끝나지 않고 현재와 연결점이 있는 듯한 느낌을 줘서 찜찜함을 남긴다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작가가 수집한 실화 괴담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려다보는 집

 

귀신의 집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쓰게 돼서 문득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된 나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사거리 오르막길 벼랑에 새로 지어진 서양식 주택이 있었다완공 이후로 몇 달이 지나도 사람이 살지 않은 점이 주목을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화제가 됐다그렇게 몇 달 동안 그 집을 계속 올려다보던 중나와 친구들은 너무 수상해 보인 나머지 몰래 들어가 보기로 하는데...

 

흔히 흉가로 알려진 곳은 심령스폿으로는 물론이고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흉가라고 하는지는 대부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그런데 뭔가 애매한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이를테면 이 소설에 나오는 집 같은 경우 말이다딱히 이상한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오래 방치된 집이 아닌 새로 지은 신축 건물이다문제는 사람이 사는 인기척이 전혀 없다대놓고 음침한 분위기가 무섭긴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기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경우도 은근 무섭긴 하다.

 

전반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탐험 같은 느낌으로 전개되는 중간에 집에 대한 불길한 느낌을 강조한다단순히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고 구체적인 무언가의 목격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함을 점차 쌓아가며 분위기를 조성한다정확히는 무언가가 나와서 무섭다가 아니라 그냥 멀쩡하게 생긴 집 자체가 무섭다는 인상이다여기서 나타난 공포 요소는 복선이 주어지고 나중에 무슨 의미인지 진실이 밝혀지는 구성이다나름 이 부분을 추리 요소로도 볼 수 있긴 한데 무서운 이야기에서 흔히 나오는 반전 같은 것에 가까워서 추리로 보이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그저 이런 부분에서 공포와 추리는 성격이 다르면서도 한 끝 차이로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괴담 기담 · 사제 원인

 

안 좋은 일은 갑자기 연달아 온다고 하는데딱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실화 괴담이다무슨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연속 불행에 대한 원인이 딱히 존재할까만약 존재한다면 이런 것 밖에 없다불길한 무언가와 접촉했다든지일종의 저주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저질렀다면 몰라도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면 예기치 못한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특히나 이게 실화 괴담이라고 하니...

 

 

 

한밤중의 전화

 

한밤중에 전화를 받게 된 나전화를 건 친구는 내가 작가 데뷔를 한 기념으로 방문했었던 심령스폿으로 유명한 산에 와 있다고 한다그저 밤중에 심령스폿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호러작가라는 설정을 현실에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그런데 친구가 전화를 계속 이어가며 문제의 심령스폿을 방문한 이후 발생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전화와 관련된 괴담하면 대부분 둘 중 하나다수신자나 발신자에게 뭔가 있다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소설로 진행했으면 약간 뻔하게 보일 수도 있어 대화문으로만 진행되는 내용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다른 서술이 없으니 대화 안에서 나오는 한정된 정보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만약에 작중 인물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더라도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이상독자 역시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런 부분에서 공포 뿐만 아니라 추리 요소를 어느 정도 써먹기 딱 좋다.

 

부주의 하게 심령스폿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기도 한다옛날이나 지금이나 단순 재미로 버려진 장소에 무단 침입하는 사례가 많다사유지 무단 침입 같은 법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좋지 않은 장소에 있는 것에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보통은 그런 좋지 않은 것이 따라온다는 표현한다그런데 요즘 같이 통신이 발달한 시대라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찾아간다이것도 어디까지나 전화 관련 괴담에서 자주 나오는 것이긴 하다.

 

 

 

재나방 남자의 공포

 

지방의 어느 온천 여관에 머물던 나여관 건물 구조가 독특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본관 건물 밖에 존재하는 산길을 발견한다호기심에 산길을 올라 온갖 폐허를 목격한 끝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서둘러 여관으로 돌아오게 된다이후 자정 무렵불이 꺼진 온천에 들어가 있을 때 그 누군가와 만나게 된다그는 어쩌다보니 산 속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고 하며 예전에 그림 연극을 하던 시절 겪은 재나방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이들 앞에 나타나는 괴인에 대한 괴담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국내에서는 빨간 마스크나 홍콩할매귀신 같은 경우에 해당하고이런 괴담의 원조인 일본에는 입 찢어진 여자(빨간 마스크의 원조 격인 괴담)와 빨간 망토가 있다서양에서 비슷한 것이라면 19세기 영국에서 목격된 스프링힐드 잭이라는 것도 있다여러모로 익숙한 괴담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특이하다고도 할 수 있다근현대에 들어서 많이 발생한 괴담이라는 점과 그냥 길에서 마주친 정신이상자나 거수자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의 형체를 한 기이한 존재로 묘사되는 부분에서 말이다작중에 등장하는 재나방 남자는 길거리 괴인 괴담에 서양에서 유명한 모 크리처를 합친 듯한 이미지다중간에 그 크리처가 언급되는 걸 보면 확실히 모티브로 삼은 것이 맞는 모양이다.

 

재나방 남자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앞선 다른 소설들에 비해 추리소설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피해자범인목격자사건현장의 미스터리추리소설하면 당연히 나오는 요소들이다단순 무서운 이야기 정도로 사건을 다루다보니 조금 더 자세한 단서 같은 것이 없긴 하지만 정황만 가지고 추리가 진행되긴 한다보통 이런 정황 추리는 물증이 없어서 조금 끼워 맞추기 식으로 허술하게 나오기도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나름 그럴싸한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이 되다보니 꽤 그럴싸하게 나오는 편이다.

 

여기까지 보면 단편 괴기 추리겠지만 사건의 범인에 대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사람인가아닌가그냥 살인범이라면 추리소설로 끝나지만 범인이 정체불명이라면 공포소설이 되는 셈이다이건 앞서 말한 괴인 괴담에서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아마 작가는 이런 사소한 부분의 차이로 공포와 추리가 구분되며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접한 경우라면 장편 시리즈인 도조 겐야 시리즈를 단편 소설로 접하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

 

 

 

괴담 기담 · 사제 애견의 죽음

 

애완동물과 연관된 괴담 역시 심심치 않게 있는 편인데 이 괴담 역시 그런 사례다이런 괴담의 특징이라면 애완동물의 진짜 정체 같은 괴기스러운 경우와 주인과의 인연을 다룬 감동적인 경우로 나눠진다그런데 이 괴담은 감동적이라 봐야할지 기이하다고 할지 조금 애매하다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주인의 사랑으로 이어진 어딘가 감동적인 괴담이긴 하다문제는 이것이 애견이 만들어낸 기묘한 기적 치고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괴담에서 무슨 과학적인 것을 따지냐고 하겠지만 이건 창작이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실화괴담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뒷골목의 상가

 

소설에 들어갈 괴담 소재 조사를 부탁한 나그 중에는 씨라는 인물이 겪은 어느 골목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체험인이 아직 그 곳에 거주중이라는 등의 이유로 취재원이 사용 허가를 거부한다하지만 작가로서의 알 수 없는 기질 탓인지 나는 최대한 각색을 해서 소설 속에 해당 괴담을 넣으려 시도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괴이한 일로 인해 결국에는 완전히 포기한다이후 취재원으로부터 오랜만에 우편물이 도착한다그 안에는 안부 인사가 적힌 편지와 함께 씨가 체험했다는 그 기이한 골목 이야기가 자세히 적힌 원고가 있었는데...

 

도시에서 가장 외진 곳이라고 한다면 골목길 밖에 없다물론 골목마다 다 똑같다고 할 수 없고 주택이나 상가가 밀집한 곳인 경우도 있어서 사람이 아예 안 보이는 곳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럼에도 골목이라고 하면 어딘지 무섭다는 인상이 드는 건 왜일까그것도 뒷골목이라고 할수록 더더욱그건 일상적으로 보이는 바깥 공간이 갑자기 협소해 보인다는 인상과 함께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는 위화감이 겹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마치 원래 알던 세계에서 이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말이다이런 곳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일 수밖에 없다그것도 앞에서 다가오는 것보다 뒤에서 오는 경우가앞에서 오면 적어도 누구인지 식별이 가능하지만 뒤라면 돌아보지 않는 이상 소리로 인식하는 것이 전부니까.

 

이런 골목길에서 느낄 법한 공포가 이 소설 속 괴담에 농축되어 들어 있는 인상이다단순히 골목길에서 위험한 사람이나 괴이한 존재와 마주친다는 정도가 아니다마치 현실과 다른 세계로 분리된 곳으로 빨려 들어가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존재에게 쫓긴다는 인상이다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그냥 뒤를 따라오는 낯선 존재라면 피하거나 숨으면 그만이다그런데 뒤를 따라오는 것이 하나의 공간이라면 어떨까현실이랑 똑같이 생겼지만 나와 그 낯선 존재랑 단 둘만이 존재하는 다른 세상내가 아는 세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가 골목길에서 끝나지 않고 확장돼버리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안과 밖의 의미가 없어진다아무리 숨 죽여 숨어 있더라도 그 존재는 자신을 인식한 이상 어디든 찾아가니까.

 

결말에 나타나는 기묘한 추리 부분은 서술 방식이 완전 다르긴 하지만 <붉은 눈>에서도 반전으로 쓰인 것을 재탕한 것이나 다름없긴 하다무서운 이야기 결말에서 흔하게 쓰이는 클리셰나 다름없기도 하고보기에 따라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섬뜩함을 느낀다단순히 저주 같은 것이 퍼져 나가는 게 아니라 무서운 이야기이라는 또 다른 세상이 현실에 구현되어 빨려 들어간다는 인상이라 그렇다작가가 설계한 메타적 설정이라는 점에서 꽤 흥미롭기도 하다.

 

 

 

괴담 기담 · 사제 찻집 손님

 

단순히 찻집에서 무례한 말로 떠드는 다른 손님을 작가가 직접 목격한 일 정도의 내용이다조금 허무하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이걸 눈앞에서 내가 직접 겪는 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할 것이다끝으로 각 괴담의 후기와 함께 작가는 아주 좋은 충고를 해준다그 어떤 무서운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서 듣는 것이 최고다.

 

 

 

맞거울의 지옥

 

교토에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나는 도쿄로 출장을 가서 캡슐 호텔에 묵게 된다거기서 세면실 거울이 좌우로 붙어 있는 맞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문득 란포의 소설을 떠올린 그때 마침 세면실에 들어온 나이 많은 남자가 관심을 가져 잠깐 대화를 주고받다가 아예 괴담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그런데 갑자기 남자는 거울이 무섭다고 하면서 맞거울 때문에 자기 동생에게 일어난 무서운 일을 들려주는데...

 

거울 역시 많은 괴담에서 나오는 소재거리 중 하나다거울에 무엇이 비치는가비치지 않은 가의 문제부터 깨트려서 발생하는 부정기묘한 의식이나 부적으로의 용도 등등신비로움과 공포가 함께 존재한다고 해도 될 정도다특히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맞거울은 한때 엘리베이터 거울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들어봤다.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해서 만들어지는 무한의 상 속에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솔직히 소재 면에서는 잘 알던 괴담이라 그런지 크게 특별하다는 인상은 아니다결말 역시 마찬가지고그럼에도 맞거울을 들여다보는 묘사나 맞거울 속에 비춰지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 기묘하다여기에 작중 인물의 일그러져 버린 인생과 맞거울이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도 그렇다무한이 반복되는 거울의 상좋은 일 없이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심심하고 불행한 삶무엇이 진짜 자신인지 알 수 없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무한히 펼쳐진 거울상을 들여다보게 되고그 끝은 나 자신이 진짜 내가 아니게 돼버리는 파국이다거울 너머의 무언가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은 이런 걸 뜻하는 걸까.

 

여담으로 여기서 언급된 란포의 소설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이 작품을 흥미롭게 읽었든 심심하게 읽었든 간에 맞거울이라는 나름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울을 볼 수 있으니까.

 

 

 

죽음이 으뜸이다사상학 탐정

 

사람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눈으로 확인해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할 죽음을 막는 탐정 쓰루야 슌이치로갑작스럽게 사무소를 방문한 이누마라는 의뢰인에게서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돌려보내려 한다하지만 어딘가 포착하지 못한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끼며 결국 사연을 들어본다이누마는 자신의 친구 3명이 죽었고 그 중 2명으로부터 죽음을 권유하는 말이 들려온다고 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장편 시리즈인 사상학 탐정 시리즈에 해당되는 단편이다일본에서는 8권까지 출간되어 시리즈가 완결 되었고국내에서는 2권까지만 출간되고 중단 된데다 그마저도 절판된 상태다.

 

심령 요소가 들어간 추리는 어떤 것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는데이 작품에 나온 사건과 해결방식을 보며 이런 식으로 새로운 추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감탄했다추리하면 당연히 존재하는 피해자와 범인이라는 구도는 이 소설에도 있다단지 있는 그대로 현실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비유로 사용돼 작가만의 새로운 방식을 대입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그래서 심령 요소 안에서 나름 논리적인 추리가 가능한 동시에 섬뜩함을 나타낼 수 있다보통은 추리로 밝혀낸 진실이 놀라움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진실이 곧 공포인 것이다.

 

여담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의뢰인이 앞서 나온 단편 중 하나에 나왔던 등장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정보를 그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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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삶이라는 열병 시대의 아이콘 평전시리즈 1
폴 콜린스 지음, 정찬형 옮김 / 역사비평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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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 소설이나 시, 에세이는 많이 접했지만 이렇게 생애를 깊게 다룬 평전은 처음 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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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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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그림자 속에는 숨어 있는 것들이 많다표면에 들어나지 않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되는 깊은 세계무슨 일이 일어나고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이곳에서 발생한 일이 사회 표면으로 올라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다수면 가까이에서는 절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심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괴리감과 함께숨어 있던 심연을 탐색하고 파해 치려는 시도가 어떻게든 이루어질 것이다실체가 들어나기 바라는 이들이 있기에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얽힌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다단서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그림자 속에 묻혀버리거나 남는 것은 이거 밖에 없다이 심연에 발을 들이민 이들에게 끝나지 않을 후유증으로 남는 크나큰 상처.

 

 단 한 번의 실수로 가족을 잃고 하루하루를 술로 살아가는 전직 형사 이호진그에게 예전 상사였던 백동표 과장이 찾아와 몰래 조사할 일을 의뢰한다다름 아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단서는 실종된 딸이 나온 포르노 영상 뿐이마저도 경위를 알 수 없기에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사건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되는 수사그러나 수사 진행되면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더 깊은 상처호진은 이 사건을 반드시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데...

 

 전반적으로 어둡고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분위기가 강하다주인공부터가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듯한 인상에 진한 술 냄새가 느껴지는 묘사와 서술까지 더해져 거칠거칠한 느낌이다여기에 사건마저 사회의 이면을 다루기에 이렇게 보이기도 한다여기서 나타나는 미스터리는 어둠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것은 거울에 비친 듯이 나타나는 자기 자신의 모습요지경 이 꼬라지하며 흉을 보는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는 진실자기 자신은 깨끗하고 잘못된 게 없다고 부정하겠지만 그건 자기 자신을 모르니까 하는 말이다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얼마나 역겨운 위선자로 보이는지남을 비판할 수준도 안 되는 것들이 큰소리치고 다니는 게 얼마나 꼴사나운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걸로 보일 것이다흔히 말하는 이런 거 말이다철없는 사회 초년생 사이에서 발생할 법한 일탈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강력 범죄평화로운 가정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비극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겉 표면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겉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비춰지니까그 자극에 이끌려 감정을 쏟아내고 열을 내며 더욱 부풀리니까 진짜 속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그렇게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애먼 곳에 화풀이 하고 책임을 묻는 코미디가 벌어진다이게 문제다저런 걸 보니까 범죄로 이어진다규제해야 한다이러는 사이에 본질적인 문제는 계속 방치 된다앞에서는 꼰대질 하면서 자화자찬실질적인 문제는 바뀌는 것이 없는 현실겉은 자극적으로 변하고 본질은 묻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추리요소로 사건을 뒤집어 버리는 점이 아주 놀랍다느릿느릿하고 진한 고독함으로 가득한 하드보일드 분위기 속에서 눈에 보이는 수사 흐름만 따라가는 구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눈여겨볼 것 없이 지나가게 된다건조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배경으로 보이기에 그렇다무겁지만 너무 뻔한 듯이 흘러가는 인상이라 어딘가 심심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단서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상당한 충격을 주는 것에 비해 사실상 모든 전말이 범인을 통해 밝혀지는 탓에 어딘가 살짝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처참한 현실을 아주 크게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사회의 이면검은 그림자를 나타내기에 이만한 연출이 어디 있을까.


 사회의 이면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구나 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자연스럽게 마주보고 익숙하게 자주 접하는 모습이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자각하지 못하고그저 자기 자신이 부정 당한다고 합리화 해버리는 것이다그런 상태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든 공격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더 정확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만만한 대상을 지목해 사회의 악이라고 몰아간다올바른불건전불법범죄조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서악질적인 인지부조화라고 밖에 볼 수 없다그렇게 상처는 끊임없이 커져간다내 상처만 생각하며 남에게 상처를 내고그 상처는 곧 다시 돌아와 더 큰 상처를 낸다상처는 상처로 번지고 번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난도질하는 형국이 된다이걸 어디서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거다본질을 외면하지 말자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겉으로 들어난 것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더 깊은 사정을 파악하고 해결하자애먼 공격대상을 찾으며 책임전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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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분노에 사로잡혀 이런 글을 써본 게, 언제가 마지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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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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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보물이라 하면 보통 무엇을 떠올리는가. 대체로 금전적인 걸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지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한정판, 절판된 책, 작가의 미발표 작품만큼이나 끌리는 건 없다. 단순히 가진 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수나 아무도 읽지 못한 작품을 접한다는 영광을 누린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문제없이 발견됐을 경우만 허락되는 것이다. 다소 문제가 있는 보물이라면 그건 곧 출처를 따져야 하는 부정한 장물이 되고 마니까. 

 

 1편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맨 첫 장에 어느 작가 이름이 적혀 있다. D. 맥도널드. 영미권 하드보일드 쪽에서 꽤 유명한 듯한데, 국내에는 <푸른 작별> 하나만 번역되어 있어 많이 알지는 못한다.이 소설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어떤 부분에서 자료를 좀 찾아봐야 할까라는 생각에 고민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작중에서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언급 되는 부분에서 단서를 잡았다. 대강 이런 연관성이지 않을까 한다. 낭만적인 보물과 그걸 둘러싼 광기어린 쟁탈전.

 

 천재 작가로 알려진 로스스타인이 잠적한지 18년 되어가는 1978. 자택에 강도가 침입해 로스스타인은 살해당하고 모아둔 돈과 미출간 작품이 적힌 원고 노트 전부를 도둑 맡는다. 시간이 흘러 2010,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와 메르세데스 사건으로 큰 부상을 당한 이후 부정적으로 변한 아버지로 인해 잦은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소버스 집안. 아들 피트는 동네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개울가 제방 밑에 무언가를 파묻은 흔적을 발견한다. 그곳을 파해쳐서 발견한 것은 오래된 트렁크.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다량의 돈 봉투와 공책. 바로 32년 전에 범인과 함께 종적을 감춘 로스스타인의 재산과 유작이었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사건이라는 점과 범인에 해당되는 인물의 행적을 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미저리>가 떠오르고도 남는다. 다만 주제는 비슷해 보여도 각각 작품 속에서 주목받는 요소는 다르다. <미저리>가 작품을 쓰는 작가 그 자체라면, <파인더스 키퍼스>는 작가가 쓴 작품이 메인이다. 그것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발표 작품 말이다. 좀 마니아 감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팩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을 다루는 편이라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요소가 많다.


 3부작 중 2권에 해당되는 작품이지만 사실상 빌 호지스가 중간쯤은 가야 나오고 범인과 피트 소버스 시점이 대부분이라 외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긴 하다. 그럼에도 아쉽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1970년 후반에서 2010년대까지의 시간 간극이 점점 좁혀오다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는 긴장감. 아직 어린 학생인 피트 소버스가 혼자서 느끼는 사회와 가정의 무게. 살해당한 작가의 유작이라는 가치 있는 보물이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주는 딜레마. 여럿 스릴 있는 요소들이 많다. 특히 이 작가의 유작은 단순한 돈 문제로 흘러 갈수도 있는 내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다. 생각보다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나 피트 소버스의 나이와 그에 따른 어리숙한 면을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더 개연성 없었을 것이다.


 빌 호지스와 일행들이 보여주는 활약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마지막 3편에 대한 떡밥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있어 메인 캐릭터들도 소홀히 하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외전 같다고는 했지만 전작의 메르세데스 살인마로 인한 피해자의 모습을 다루는 걸보면 시리즈로서 아예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작이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로 촉발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나타냈다면, 이번에는 그 영향을 직격타로 맞은 소시민의 삶이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붕괴직전인 가정. 그 속에서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이들. 이런 환경에 인생을 바꿀 기회를 주지만 존재 자체가 부정한 보물이 던져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며 일찍 철이든 아이에게. 어떻게 보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에게 주어진 상황이라 더 순수하고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고 본다. 아이에게는 비밀이 많은 법이고 이걸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거나 상의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가. 

 

 견물생심이라고 해야 할까? 물건을 보니까 가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걸맞게 바꾸면 읽고 싶어서 가지고 싶다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쟁점은 이거다. 나 혼자만 독점하기 위해 가지고 싶은 것이냐. 단순한 팬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몰라도 이게 도가 지나친 쪽으로 나간다면 그건 광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작품을 쓴 작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어떻게 되든 작품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광기. 아마 범인의 이런 모습만 보여줬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와 반대되는 피트 소버스가 있기에 독자의 좋은 예시와 나쁜 예시로 구분된다. 분명 범인과 피트가 로스스타인의 소설을 통해 느낀 건 똑같다. 같은 책을 읽은 독자끼리 대화를 나눠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점이다. 그러나 허구를 허구로 보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그들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허구를 통해 현실을 이겨내려 하는 학생과 허구에 빠져 현실에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미치광이로 말이다.


 단순히 책으로 시작에서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스릴 있고 낭만적인 이야기라 책 맨 앞에서 언급된 존 D. 맥도널드의 작품을 더 알고 싶어진다. <푸른 작별> 하나로는 이 작가의 스타일을 깊게 느끼기는 부족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다면 원서라도 도전해볼 생각도 들지만 영어에 약한 탓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러면서 기다리거나 적절한 기회를 잡는 순간이 오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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