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숨겨진 보물이라 하면 보통 무엇을 떠올리는가. 대체로 금전적인 걸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지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한정판, 절판된 책, 작가의 미발표 작품만큼이나 끌리는 건 없다. 단순히 가진 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수나 아무도 읽지 못한 작품을 접한다는 영광을 누린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문제없이 발견됐을 경우만 허락되는 것이다. 다소 문제가 있는 보물이라면 그건 곧 출처를 따져야 하는 부정한 장물이 되고 마니까. 

 

 1편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맨 첫 장에 어느 작가 이름이 적혀 있다. D. 맥도널드. 영미권 하드보일드 쪽에서 꽤 유명한 듯한데, 국내에는 <푸른 작별> 하나만 번역되어 있어 많이 알지는 못한다.이 소설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어떤 부분에서 자료를 좀 찾아봐야 할까라는 생각에 고민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작중에서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언급 되는 부분에서 단서를 잡았다. 대강 이런 연관성이지 않을까 한다. 낭만적인 보물과 그걸 둘러싼 광기어린 쟁탈전.

 

 천재 작가로 알려진 로스스타인이 잠적한지 18년 되어가는 1978. 자택에 강도가 침입해 로스스타인은 살해당하고 모아둔 돈과 미출간 작품이 적힌 원고 노트 전부를 도둑 맡는다. 시간이 흘러 2010,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와 메르세데스 사건으로 큰 부상을 당한 이후 부정적으로 변한 아버지로 인해 잦은 부부싸움이 벌어지는 소버스 집안. 아들 피트는 동네 공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개울가 제방 밑에 무언가를 파묻은 흔적을 발견한다. 그곳을 파해쳐서 발견한 것은 오래된 트렁크.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다량의 돈 봉투와 공책. 바로 32년 전에 범인과 함께 종적을 감춘 로스스타인의 재산과 유작이었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사건이라는 점과 범인에 해당되는 인물의 행적을 보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미저리>가 떠오르고도 남는다. 다만 주제는 비슷해 보여도 각각 작품 속에서 주목받는 요소는 다르다. <미저리>가 작품을 쓰는 작가 그 자체라면, <파인더스 키퍼스>는 작가가 쓴 작품이 메인이다. 그것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발표 작품 말이다. 좀 마니아 감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팩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을 다루는 편이라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요소가 많다.


 3부작 중 2권에 해당되는 작품이지만 사실상 빌 호지스가 중간쯤은 가야 나오고 범인과 피트 소버스 시점이 대부분이라 외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긴 하다. 그럼에도 아쉽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1970년 후반에서 2010년대까지의 시간 간극이 점점 좁혀오다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는 긴장감. 아직 어린 학생인 피트 소버스가 혼자서 느끼는 사회와 가정의 무게. 살해당한 작가의 유작이라는 가치 있는 보물이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주는 딜레마. 여럿 스릴 있는 요소들이 많다. 특히 이 작가의 유작은 단순한 돈 문제로 흘러 갈수도 있는 내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다. 생각보다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나 피트 소버스의 나이와 그에 따른 어리숙한 면을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일이 잘 풀리는 것이 더 개연성 없었을 것이다.


 빌 호지스와 일행들이 보여주는 활약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마지막 3편에 대한 떡밥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있어 메인 캐릭터들도 소홀히 하는 편은 아니다. 게다가 외전 같다고는 했지만 전작의 메르세데스 살인마로 인한 피해자의 모습을 다루는 걸보면 시리즈로서 아예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전작이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로 촉발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나타냈다면, 이번에는 그 영향을 직격타로 맞은 소시민의 삶이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붕괴직전인 가정. 그 속에서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아이들. 이런 환경에 인생을 바꿀 기회를 주지만 존재 자체가 부정한 보물이 던져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며 일찍 철이든 아이에게. 어떻게 보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에게 주어진 상황이라 더 순수하고 복잡하게 얽히게 됐다고 본다. 아이에게는 비밀이 많은 법이고 이걸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거나 상의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가. 

 

 견물생심이라고 해야 할까? 물건을 보니까 가지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걸맞게 바꾸면 읽고 싶어서 가지고 싶다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쟁점은 이거다. 나 혼자만 독점하기 위해 가지고 싶은 것이냐. 단순한 팬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몰라도 이게 도가 지나친 쪽으로 나간다면 그건 광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작품을 쓴 작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어떻게 되든 작품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광기. 아마 범인의 이런 모습만 보여줬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이와 반대되는 피트 소버스가 있기에 독자의 좋은 예시와 나쁜 예시로 구분된다. 분명 범인과 피트가 로스스타인의 소설을 통해 느낀 건 똑같다. 같은 책을 읽은 독자끼리 대화를 나눠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점이다. 그러나 허구를 허구로 보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그들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허구를 통해 현실을 이겨내려 하는 학생과 허구에 빠져 현실에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미치광이로 말이다.


 단순히 책으로 시작에서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스릴 있고 낭만적인 이야기라 책 맨 앞에서 언급된 존 D. 맥도널드의 작품을 더 알고 싶어진다. <푸른 작별> 하나로는 이 작가의 스타일을 깊게 느끼기는 부족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다면 원서라도 도전해볼 생각도 들지만 영어에 약한 탓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러면서 기다리거나 적절한 기회를 잡는 순간이 오는 수밖에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