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괴 2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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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과 익숙함의 경계는 언제 구분 되는 걸까. 자주 마주치고,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레 익숙한 것이 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아주 드물게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면 낯선 것이 된다고 한다. 이게 참 묘한 점은 무엇이든 자주 접하면 별거 아니게 된다는 의미다. 괴이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뭔가는 있다. 그저 어쩌다 마주칠 수 있는 당연한 것일 뿐이다.

산에 대한 인상이 대체로 이렇다고 한다. 갑자기 겪으면 이상하고 무서워 보일 일이 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별일이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물론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서워 하면서도 그냥 무시한 경우도 있다. 산이 곧 생계를 위한 일터이기에 피할 수 없으면 인식이라도 하지 말자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 낯설다와 익숙함의 차이일 뿐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산에는 분명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뭔가 있다고 봐야 되는 걸까. 그것과 자주 마주치다 보면 어쩌다 자주 보이는 모기나 파리처럼 그저 익숙한 일상에 지나지 않을까.

1편에 이어서 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계속 된다. 여전히 도깨비불이 나오고 여우가 나오고, 너구리가 나오고, 유령이 나오고, 괴이한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다. 주요 테마라고 한다면 모노라고 지칭되는 신비한 영력을 지닌 괴이한 존재다. 이것에 대한 체험담을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지칭하기 어렵긴 하다. 그저 형체 없이 존재감으로만 느껴지는 존재이자, 때로는 다른 산속 괴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야생 동물이나 유령, 도깨비불 같이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것에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 설명이 가능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을지 모르겠다.

이번 책에서는 2000년대 이전의 시점보다 현대에 가까운 시점의 경험담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주로 임업 관련 종사자, 현직 사냥꾼, 산 가까이에서 일을 하는 분들의 경험담이 많아서 그렇다. 기계가 갑자기 고장 나는 일이나, 이상한 일로 사고를 당하거나, 현업을 하던 도중에 무언가를 접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앞서 가던 사람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던 무서운 이야기처럼 경트럭이 자꾸만 앞에서 나타난 경우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또 도깨비불에 대해 UFO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해서 이게 현대적인 관점인가 싶기도 했다. 오래된 이야기의 경우는 이런 분들의 어린 시절에 해당되는 5, 60년대나 더 멀리 가면 에도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 초기 무렵까지 내려갈 정도다. 이 에도 말기에 벌어진 일은 마치 한국 공포영화인 <여곡성>에 나온 한 장면과 유사해서 섬뜩하게 보일 만하다.

기존에 언급되던 것 이외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라면 화장에 관련된 이야기다. 현대에는 다소 익숙한 장례 방식이라 이게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도 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1965년 경까지 화장을 하게 되면 들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나온다. 탁 트인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도중에 온갖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무서웠을 만하다. 정체불명의 괴현상이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 일로 보이긴 하다. 하지만 설명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보면 매우 놀랄 수밖에 없다. 다른 것도 아니라 시체가 불타다 발생하는 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만의 특이한 소재 거리는 더 있다. 주술사에 대한 부분은 원인불명의 질병이나 귀신이나 여우가 들렸다고 퇴치하기 위해 부른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당과 여러모로 유사하게 보였다. 일본의 저주 주술로 유명한 축시의 참배 부분은 뭔가 기이하기 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면이 강해서 무서운 축에 속했다. 음산한 기운을 잘 느끼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 같은 경우는 범상치 않은 집안 내력이나 주변에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이 신기한 점이다. 영험한 힘을 보여준 수행자의 이야기는 이게 실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판타지 같았다. 이렇듯 매번 패턴이 비슷비슷할 것 같은 산 속 괴이담 속에서도 종종 특이 사례가 나오는 모양이다.

실화 괴담집 같던 이 책도 계속 접하다 보니 이제 산 속에 있는 무언가가 익숙해 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무슨 일을 겪게 된다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산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생겨 침착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는 것이다. 무작정 없다고 여기기에는 수 많은 목격담과 증언들이 남아 있다. 부정한다 해도 그 순간에 받은 강렬한 충격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언젠가는 무심코 다시 튀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거나 해서 익숙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인식을 거부하기 보다는 적어도 무엇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둬야 미지에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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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춤집에서 매그레 시리즈 11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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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신 만의 공간. 자신이 있어야 될 곳. 근심 없이 편안히 있을 곳. 없으면 허전한 곳. 원인은 다르더라도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이걸 가까운 곳에서 찾지 못하면 멀리서 찾게 된다는 거다. 적당한 곳에서 잠깐 기분 전환 하는 걸 넘어 다소 진지하게 파고든다는 말이다. 그것도 남의 자리를 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원인을 어리석게 말려든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보니 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 전체를 날려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상테 교도소에 사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있던 범죄 조직의 두목 르누아르는 매그레 반장에게 어린 시절의 일을 털어 놓는다. 누군가가 운하에 시체를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고 얼마 동안 이걸 빌미로 협박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에 두 냥 춤집이라는 곳에서 그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업무로 인해 바빠져 크게 신경 쓰지 못하던 매그레 반장은 우연히 모자 가게에서 어떤 남자를 목격한다. 그가 두 냥 춤집에서 열리는 가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걸 듣고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라갔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존재조차 확인 되지 않은 미제사건을 쫓아가다 벌어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나 다름 없다. 안 그래도 작중 시점이 휴가철이라 경찰 인원이 모자르고, 매그레 반장 역시 휴가를 앞두고 사건이 터진 거라 이래저래 심란한 모습을 보인다. 미제사건의 흔적을 발견해 쫓아 갔더니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데다 별다른 단서 없이 계속 복잡하게 만드는 일만 벌어지니 답답할 만도 하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도 겉과 속이 다른 면으로 인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라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비참하게 보인다. 하루하루가 재미 없더라도 나름대로 무난하게 살 거나, 별일 없이 가족들과 잘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허전함이나 충동적인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실수로 한순간에 인생을 망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더욱 깊고 냉혹한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나름의 큰 결단을 내려도 치밀함과 냉정함이 부족하다 보니 허둥댈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일개 소시민이 갑자기 전문 범죄자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잠시 혼란은 줄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면 때문에 매그레 반장이 상당히 힘들 만도 했다. 뭔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조사에서는 대부분 평범한 것들 밖에 나오지 않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 놓지 않고 숨기기 바쁜 이들만 있고, 분위기는 이래저래 요란한 상황이다. 사건 관계자들의 배경을 들여다 보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이 여기서는 되려 갈피를 못 잡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배경은 일상과 구분되는 음울한 사연과 그림자가 있는 편인데, 이 사건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일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비일상. 자신 만의 공간, 아니면 세계로 정리된 또 다른 일상이라는 이름의 범죄라서.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두 냥 춤집은 그저 허물없이 지내는 자유로운 곳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 공간, 세계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단순히 주말 여가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는 휴양지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일상을 만들기 위한 비밀 장소,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보며 느낀 건 이렇다.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멀리서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멀쩡한 인생에 평생 남을 흠집을 내는 일탈에 불과하다. 가까이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드라마 같은 인생이자,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공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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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물랭의 댄서 매그레 시리즈 10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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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삶을 벗어나 모험을 즐기고 싶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다. 뭔가 멋져 보이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는 그런 화려한 인생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그 만한 여유가 되는가. 이걸 통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모험으로 인해 발생할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그저 특별함에 취하고 싶어서,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서 책임 없이 즐긴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엇에 휘말리든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는 말이다.

벨기에 리에 주에 위치한 카바레 클럽인 게물랭에서 델포스와 샤보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몰래 숨어 있다가 금고를 털기로 계획한다. 그런데 불 꺼진 가게 안에서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어떤 외국인 손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면서 곧바로 도망치게 된다. 다음 날, 신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고 게물랭도 평소와 다름 없이 영업 준비 중인 모습이라 델포스와 샤보는 당황한다. 샤보는 중요 속보가 나오지 않는지 계속 기다리던 중, 동물원 잔디밭에 있던 트렁크 안에서 어제 목격한 시체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매그레 반장이 아닌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또 다른 식으로 낯설게 보인다. 분명 그 특유의 위압적인 특징을 가진 실루엣이 돌아다니는 듯한 행적이 있긴 있다. 하지만 잠깐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나타나기만 할 뿐, 작중 중반까지 제대로 모습을 들어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의문만 더욱 커져 간다. 매그레 반장은 벨기에까지 와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게물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시체 이동의 문제에다 사건 관계자들 간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범인의 동기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가운데, 살해 당한 피해자 역시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여기에 무언가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이 안 되다 보니 더 그렇다. 단순히 밤 문화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고 하기에 어딘가 일상적이지 못한 면이 있어서 그렇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인물이 알고 있던 사실이 잘못된 것인가. 무얼 숨기려 하는 것인가. 이렇게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그레 반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교통 정리에 들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매그레 반장은 사건의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었지만 실상은 무대 감독 같은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봤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대 위 배우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하나의 배역처럼 숨어서 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며 변수를 던지는 관찰자. 평소 같다고 할 수도 있으면서 타인이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인상이다. 갈수록 뭔가 반장의 스타일과 맞지 않은 사건 같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소박한 드라마 때문이라는 건 알아둬야 한다. 그러니까 일개 그저 그런 진부한 일상과 수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숨어 있던 비일상이 예상치 못하게 충돌해서 발생한 혼란이라는 것이다.

다소 큰 사건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난 드라마와 핵심 사건은 굉장히 어처구니 없고 시시한 것이었다. 아니 딱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도 발생 중인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거라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철 없는 미성년자나 청년의 일탈 문제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깟 화려하고 특별하게 사는 게 뭐라고. 몸 상태도, 정신 상태도 다 버려가면서 저렇게 병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걸까. 오만함에 빠져 책임이라는 걸 하나도 모르고, 정도라는 걸 생각하지 않으며,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에 망가지는 건 본인인데.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결국은 부모라는 것도 크게 놀랍지도 않다. 일탈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친구를 잘못 만나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부모 둘 중 하나니까.

특별함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 밖에 없던 게물랭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있던 건 사실상 댄서 밖에 없었던 셈이다. 생각해 보면 그 댄서에게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긴 하겠다. 그저 돈벌이 하는 직장이자 매일 보는 일상적인 풍경이었으니까. 그런 곳에 잠깐도 아니고 매일 같이 죽치고 앉아 있는 이들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한순간의 화려함은 잠깐일 뿐, 영원하지 못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무언가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싶다면 이상한 길로 빠지지 말고 지금 사는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다른 게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보일 것이 당사자에게는 별거 아닌 따분한 인생이듯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특별하게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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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비탄 * 마술사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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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비탄

청나라 시절, 부모를 일찍 잃었지만 아버지가 쌓아둔 재산으로 행복하게 지낸 청년 세도가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함 그 자체였던 그가 도락에 맛이 들려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지만, 이내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평범하지 않고 새로운 걸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귀공자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없었고, 하루하루 피폐해지기만 한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남경에서 새해 등롱 놀이를 하던 무렵이다. 어느 누추한 서양인이 귀공자의 집 앞에 와서 열대 바다의 인어를 잡아왔다고 말하는데...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로 인해 현실이 망가지다 못해 환상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서양인을 처음 보는 동양인이 가진 동경심 같은 느낌도 있어 보였다.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자신이 사는 세계 안에 갇힌 한계라 볼 수 있겠고,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나타난 존재가 서양인이다 보니 환상의 영역으로 여겨질 만하다.

온갖 화려한 묘사란 묘사는 다 나오며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걸 늘어 놓지만 결국 완전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전개는 비극적으로 보일 만도 하다. 완전히 주저 앉지 않고 여전히 갈망하며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면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이미 한 번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 파멸 직전까지 가봤으니, 두 번이라고 못 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단순히 무모한 결정이 아니라 이미 많은 고뇌를 통해 내린 결정으로 보이는 구석도 있기에 그 열망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책에 실린 삽화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에 실린 그림과 비슷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초판본 형태의 제본으로 나온 《살로메》를 읽어 봤기에 진짜 그렇게 보였다. 그 당시 일본에서 나올 법한 그림 스타일 치고는 중세 서양화 느낌이 강하고, 내용 역시 어딘지 모르게 《살로메》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있다. 왕실을 배경으로 하고,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퇴폐적으로 변해가는 고위층의 모습에서 그렇다. 차이점이라면 살로메는 잔혹함과 퇴폐의 끝을 보여주지만, 이 소설의 귀공자는 역시 퇴폐적인 면모가 있지만 그래도 낭만은 존재한다는 인상이다. 그 낭만의 끝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그 동경 만큼은 이해 받지 못할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마술사

어느 나라에서 연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던 중, 엄청 아름답기로 소문난 어느 공원에 가보기로 한 나. 연인은 최근 공원 연못가에 가설 극장을 세운 마술사가 있다면서 보자고 한다. 그곳에 가는 도중에도 공원의 온갖 화려한 면에 빠져들 뻔했는데, 마술사의 극장에 다가갈 수록 어둡고 기묘한 환상의 세계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가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미적 감각이란 것은 보기보다 유별난 걸 넘어 기괴한 경우도 있다고.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감상에 가깝다고 본다. 화려함의 극한을 넘어 퇴폐적인 판타지에 가까워져 이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파괴적인 아름다움. 앞의 《인어의 비탄》은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반대로 한계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에 빠져버리는 과정이다.

분별력 없이 빠져드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대체 어떤 것일까. 공원에 있는 온갖 화려한 것들에 대한 묘사는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지긴 하다. 하지만 마술사의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서 보인 풍경과 마술사의 외형, 마법에 가까운 마술에 대한 부분은? 이 부분에서는 경이로움을 넘어 다소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라 하면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이미지라도 있는데, 이건 무엇이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 아니, 이걸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될지 모를 정도로 괴이하다. 삽화에도 이런 느낌이 살아 있기에 간접적으로 나마 작중의 기묘함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있다.

아름다움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비극적인 내용은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던 부분이지만, 그건 대체로 이별이나 슬픔으로 인한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동경한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는 비극은 오히려 반대다. 아름다움의 심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넘쳐 나니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고, 지금까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느껴보지도 못한 자극 속에서 자아마저 잃어버리게 만들며 모든 걸 파괴한다. 이건 과도한 동경을 나타낸 걸로 보이면서도 다소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어의 비탄》 속의 귀공자는 적어도 이해가 되는 파멸적 동경이라면 여긴 너무 해롭고 위험하다는 인상이 들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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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목 매그레 시리즈 9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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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나타내는 무언가를 정하라고 하면 보통 무엇을 떠올릴까. 보통은 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것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긴 있다. 늘 있는 일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함께하는 무언가. 그게 없어지면 살아가는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될 정도로 친숙한 것. 사실 뭐가 됐든 상관 없는 일이긴 하다. 중요한 건 이거다. 일상이나 다름 없는 무언가가 영원히 사라질 상황에 처하면 참을 수 있느냐. 대부분은 초조하다 못해 불안해 하고 급기야 절망에 빠지고도 남는다. 보통은 이걸 극복하려는 힘겨운 시도를 하겠지만, 오히려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세상 모든 것을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는 뒤틀린 마음을 가졌다면 말이다.

생클루에서 벌어진 미국인 노부인과 하녀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외르탱. 이 사건을 해결했던 매그레 반장은 외르탱이 범인이라는 물증은 있지만 동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런 탓에 점차 그가 무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자, 자신의 직위를 걸고 사형 전날 밤에 외르탱을 일부러 탈옥 시켜 지켜보기로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신문사로 보낸 편지로 인해 계획된 탈옥이라는 의혹이 보도 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외르탱이 숨어 있던 여인숙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주하는 바람에 놓치고 마는데...

잘못된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점. 매그레 반장의 경찰 경력이 걸린 위기. 일상이라는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매그레 반장 역시 여유를 갖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니 이래저래 긴장감이 감돌아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분위기가 다른 내용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는 상태인데 무엇보다 무고할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매그레 반장을 도발하는 듯한 일만 벌어지니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간혹 탐정에 해당되는 캐릭터와 라이벌처럼 맞먹는 인물 간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작품이 종종 있는데 이 작품이 딱 그렇게 보였다. 사건 관계자들의 배경을 파악하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과 대립 구도를 이루듯 상대도 비슷하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인생을 분석하며 날카롭게 파고들 기회를 노리는 스타일이라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된다. 서로의 심리를 파악하고 무슨 짓을 벌일지 대응하는 대결이나 마찬가지라 증거나 단서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그렇다. 무언가를 발견하더라도 이게 대체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뻔히 눈 앞에 범인이 있고 일부러 증거나 단서를 흘리고 다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매그레 반장의 사건 속에는 다양한 인생에 대한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토록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평소의 수사 방식도 통하지 않고, 오히려 농락 당하기만 해서 사건의 진실 만큼이나 파악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 이 범죄에 다다르기까지 있었던 과정이자, 이럴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건 그 어떤 범죄라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간혹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타인을 해치는 범죄 같은 경우 말이다. 현대에도 자주 일어나는 범죄니 낯설지 않을 것이다. 설명이 안 되는 이걸 규명하기 위해 성급한 억측이 난무하고는 한다. 무엇 탓이다, 무엇이 사회를 어지럽힌다, 무엇이 사회악이라고 하면서. 이런 것들은 대부분 가까이에서 뻔히 보이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만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이 사건을 설명하려면 하나의 비유를 들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표지에 있는 커피 잔이 적절하다고 본다. 커피 한 잔. 근현대에 들어 사람의 인생에서 여유로운 순간 하면 자주 떠오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은가.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라 할 수도 있고. 요즘 시대에 카페 하면 가볍고 흔한 이미지지만 매그레 반장이 있던 시대에는 다소 특별하게 묘사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교류의 장 같은 분위기라 그 안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사람이 된 것 같은 특별한 곳이었다. 거기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이란 상당한 가치가 있다 할 수 있다. 이 특별해 질 수 있는 순간을 갑자기 박탈 당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절망을 넘어 악의적인 분노가 생길 만도 하다.

이 분노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살고 싶다. 열심히 살고 싶다. 그런데도 할 수가 없다. 수 많은 인생들이 교류하고 살아가는 자리에 내 것은 없다. 내 커피 한 잔 만은 없는데 다들 즐기고 있다. 내가 즐기지 못할 바에는 다 뒤엎어버리고 싶다. 참으로 악독하다고 할 수 있으면서, 한편으로 인생이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겨우 커피 하나, 아니면 커피 하나의 가치나 다름 없는 무언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진범도 그렇고 범인에게 엮인 사건 관계자들도 말이다. 차이점이라면 사건 관계자들은 그저 가지고 싶었고, 진범은 가질 수 없기에 이용하고 부숴버릴 의도였다는 점이다.

제목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남인 사람들끼리 목을 걸고, 더 정확히는 인생을 걸고 벌어진 사건이라 해결이 돼도 뭔가 시원치 않은 인상이 남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계속되기 위해 타인의 목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범인에게 놀아난 이들과 마찬가지로 범인 역시 잘 살아 보겠다는 인생이 있었다. 매우 지독한 죄질 때문에 동정 받을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 역시 커피 한 잔을 원했을 뿐이다. 다른 욕심도 아니고 남들 만큼 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아예 찾지 않고 스스로에게 고립되어 파멸을 자초했다. 원하던 이상이 턱 없이 높았던 걸까. 아니면 세상의 벽이 너무 높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걸까. 무고한 이는 구했지만, 어쨌든 하나의 인생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무거운 공기는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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