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센 강의 춤집에서 ㅣ 매그레 시리즈 11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신 만의 공간. 자신이 있어야 될 곳. 근심 없이 편안히 있을 곳. 없으면 허전한 곳. 원인은 다르더라도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이걸 가까운 곳에서 찾지 못하면 멀리서 찾게 된다는 거다. 적당한 곳에서 잠깐 기분 전환 하는 걸 넘어 다소 진지하게 파고든다는 말이다. 그것도 남의 자리를 노리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원인을 어리석게 말려든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보니 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생 전체를 날려 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상테 교도소에 사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있던 범죄 조직의 두목 르누아르는 매그레 반장에게 어린 시절의 일을 털어 놓는다. 누군가가 운하에 시체를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고 얼마 동안 이걸 빌미로 협박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리고 체포되기 직전에 두 냥 춤집이라는 곳에서 그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후 다른 업무로 인해 바빠져 크게 신경 쓰지 못하던 매그레 반장은 우연히 모자 가게에서 어떤 남자를 목격한다. 그가 두 냥 춤집에서 열리는 가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걸 듣고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라갔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존재조차 확인 되지 않은 미제사건을 쫓아가다 벌어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나 다름 없다. 안 그래도 작중 시점이 휴가철이라 경찰 인원이 모자르고, 매그레 반장 역시 휴가를 앞두고 사건이 터진 거라 이래저래 심란한 모습을 보인다. 미제사건의 흔적을 발견해 쫓아 갔더니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데다 별다른 단서 없이 계속 복잡하게 만드는 일만 벌어지니 답답할 만도 하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도 겉과 속이 다른 면으로 인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라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비참하게 보인다. 하루하루가 재미 없더라도 나름대로 무난하게 살 거나, 별일 없이 가족들과 잘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허전함이나 충동적인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실수로 한순간에 인생을 망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더욱 깊고 냉혹한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 나름의 큰 결단을 내려도 치밀함과 냉정함이 부족하다 보니 허둥댈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일개 소시민이 갑자기 전문 범죄자를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니까. 잠시 혼란은 줄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면 때문에 매그레 반장이 상당히 힘들 만도 했다. 뭔가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조사에서는 대부분 평범한 것들 밖에 나오지 않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 놓지 않고 숨기기 바쁜 이들만 있고, 분위기는 이래저래 요란한 상황이다. 사건 관계자들의 배경을 들여다 보는 매그레 반장의 스타일이 여기서는 되려 갈피를 못 잡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배경은 일상과 구분되는 음울한 사연과 그림자가 있는 편인데, 이 사건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일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비일상. 자신 만의 공간, 아니면 세계로 정리된 또 다른 일상이라는 이름의 범죄라서.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두 냥 춤집은 그저 허물없이 지내는 자유로운 곳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 공간, 세계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단순히 주말 여가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는 휴양지였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일상을 만들기 위한 비밀 장소,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장소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보며 느낀 건 이렇다. 책이나 영화에 나오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멀리서 찾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멀쩡한 인생에 평생 남을 흠집을 내는 일탈에 불과하다. 가까이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드라마 같은 인생이자,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공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