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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비탄 * 마술사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4월
평점 :
인어의 비탄
청나라 시절, 부모를 일찍 잃었지만 아버지가 쌓아둔 재산으로 행복하게 지낸 청년 세도가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함 그 자체였던 그가 도락에 맛이 들려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지만, 이내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평범하지 않고 새로운 걸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귀공자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없었고, 하루하루 피폐해지기만 한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남경에서 새해 등롱 놀이를 하던 무렵이다. 어느 누추한 서양인이 귀공자의 집 앞에 와서 열대 바다의 인어를 잡아왔다고 말하는데...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로 인해 현실이 망가지다 못해 환상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는 묘사가 인상적이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서양인을 처음 보는 동양인이 가진 동경심 같은 느낌도 있어 보였다.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 자신이 사는 세계 안에 갇힌 한계라 볼 수 있겠고,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나타난 존재가 서양인이다 보니 환상의 영역으로 여겨질 만하다.
온갖 화려한 묘사란 묘사는 다 나오며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걸 늘어 놓지만 결국 완전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전개는 비극적으로 보일 만도 하다. 완전히 주저 앉지 않고 여전히 갈망하며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면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이미 한 번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 파멸 직전까지 가봤으니, 두 번이라고 못 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단순히 무모한 결정이 아니라 이미 많은 고뇌를 통해 내린 결정으로 보이는 구석도 있기에 그 열망 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책에 실린 삽화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에 실린 그림과 비슷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초판본 형태의 제본으로 나온 《살로메》를 읽어 봤기에 진짜 그렇게 보였다. 그 당시 일본에서 나올 법한 그림 스타일 치고는 중세 서양화 느낌이 강하고, 내용 역시 어딘지 모르게 《살로메》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있다. 왕실을 배경으로 하고,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퇴폐적으로 변해가는 고위층의 모습에서 그렇다. 차이점이라면 살로메는 잔혹함과 퇴폐의 끝을 보여주지만, 이 소설의 귀공자는 역시 퇴폐적인 면모가 있지만 그래도 낭만은 존재한다는 인상이다. 그 낭만의 끝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그 동경 만큼은 이해 받지 못할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마술사
어느 나라에서 연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던 중, 엄청 아름답기로 소문난 어느 공원에 가보기로 한 나. 연인은 최근 공원 연못가에 가설 극장을 세운 마술사가 있다면서 보자고 한다. 그곳에 가는 도중에도 공원의 온갖 화려한 면에 빠져들 뻔했는데, 마술사의 극장에 다가갈 수록 어둡고 기묘한 환상의 세계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데...
가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미적 감각이란 것은 보기보다 유별난 걸 넘어 기괴한 경우도 있다고.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감상에 가깝다고 본다. 화려함의 극한을 넘어 퇴폐적인 판타지에 가까워져 이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파괴적인 아름다움. 앞의 《인어의 비탄》은 채울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반대로 한계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에 빠져버리는 과정이다.
분별력 없이 빠져드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대체 어떤 것일까. 공원에 있는 온갖 화려한 것들에 대한 묘사는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지긴 하다. 하지만 마술사의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서 보인 풍경과 마술사의 외형, 마법에 가까운 마술에 대한 부분은? 이 부분에서는 경이로움을 넘어 다소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라 하면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이미지라도 있는데, 이건 무엇이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하다. 아니, 이걸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될지 모를 정도로 괴이하다. 삽화에도 이런 느낌이 살아 있기에 간접적으로 나마 작중의 기묘함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있다.
아름다움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비극적인 내용은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던 부분이지만, 그건 대체로 이별이나 슬픔으로 인한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거나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동경한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는 비극은 오히려 반대다. 아름다움의 심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넘쳐 나니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고, 지금까지 상상하기도 어렵고 느껴보지도 못한 자극 속에서 자아마저 잃어버리게 만들며 모든 걸 파괴한다. 이건 과도한 동경을 나타낸 걸로 보이면서도 다소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어의 비탄》 속의 귀공자는 적어도 이해가 되는 파멸적 동경이라면 여긴 너무 해롭고 위험하다는 인상이 들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