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주라크의 광인 매그레 시리즈 15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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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라 하면 무조건 일상과 동떨어진 이미지부터 떠오르게 한다.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거수자 같은 모습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상상해 보지 못할 비정상적인 일상을 숨기며 살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할 은밀한 일상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일상으로부터 광기가 찾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광기가 곧 일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은퇴한 수사국 동료의 편지를 받고 우연히 도르도뉴로 향하게 된 매그레 반장. 같은 기차 칸에 타고 있던 수상한 남자를 뒤쫓아 뛰어 내렸다가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눈을 뜨니 베르주라크의 어느 병원에 실려온 상태였고 이 지역에서 얼마 전부터 심장에 침을 찔러 넣어 죽이는 살인마, 베르주라크의 광인이 출몰한다는 걸 알게 된다. 부상이 심한 탓에 밖을 돌아다니기 어려워져 급히 달려온 부인에게 도움을 얻어가며 수사를 진행하던 중, 매그레를 공격했던 남자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언제나 일상과 가깝던 매그레 반장 시리즈와 다른 분위기의 사건이 등장하고, 부상까지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조성해서 시작부터 무거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게다가 사건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사실상 매그레 반장의 실패나 다름 없는 분위기로 몰려 위기나 다름없다. 혼란스러워 하며 내면의 고찰을 하는 매그레 반장의 개인적인 모습까지 묘사될 정도니 얼마나 궁지에 몰린 건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광인 취급 받을 작정으로 들쑤시고 다니며 매그레 반장은 다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든다.

부상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다 보니 거의 안락의자 탐정과도 같은 추리를 보여준다. 직접 현장에 가서 그곳의 분위기가 어떻고, 어떤 일상이 존재하는지 느끼는 것을 머리 속에서만 그려내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저 사람의 인상만 보고 어떤 분위기의 집에서 사는지 추측하고, 사건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게임 말처럼 다루며 상황극을 만들어 본다. 기가 막힌 건 이게 대충은 들어 맞아서 매그레 반장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려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습을 가한다. 물론 이 방법에도 한계가 있기에 대체로 사건과 무관한 일상에서만 나오던 매그레 부인이 대신 나서는 장면이 많아서 이 또한 색다른 부분이다.

지방 소도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번 작품 속에 많이 나타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여기며, 이상한 소문이 돌면 모르는 척 해야 하는 분위기.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외부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먼저 짐작하는 풍조. 아무래도 건너 건너 아는 사이다 보니 서로 간의 일상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는 양상이다. 특히 지역 고위 인사에 해당하는 수사 관계자들 역시 여기에 포함되기에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인상을 받을 만하다. 일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매그레 반장이 처음에 실수를 하게 된 건 이런 탓일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개개인의 단위로 분석했더니, 지역사회라는 거대한 일상과 부딪치게 됐으니 말이다.

도저히 갈피를 잡기 어렵던 광인의 정체는 어떤 일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비극의 결과물이었다. 사연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상에 방해가 될 것들을 숨기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사람이 비정상적이고, 추악한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경악하게 될 부분이 많다. 다만 이 비정상적인 것이란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에 본 모습이다. 무엇 하나 잃고 싶지 않았을 소중한 일상이라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라면 첫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배경부터 정상적이지 못했고, 나름대로 야심차게 만들어간 일상 역시 비정상의 연속이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다소 과한 부분이 있어도 누구나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까지 넘어가며 추구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잘 살고자 하는 것과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언제 불이 붙을지 모를 도화선을 계속 만들어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한다는 것부터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열심히 살고자 하는 열망이 지나치면 곧 광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미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결국 방식을 정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평범한 소시민인지, 아니면 가면을 쓴 광인인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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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인의 집 매그레 시리즈 14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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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문제는 어느 집안이나 중대 사항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서로가 서로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 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으로 푸근한 모습이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겉만 보고서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나 존재한다. 가족에 대한 일 역시 마찬가지다. 그 어떤 균열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실은 불안하게 균형을 맞추며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에서 과연 무엇이 일상을 유지하게 만드는 걸까. 그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낭시에 사는 처사촌 처남의 소개로 매그레 반장을 찾아온 안나 페이터르스라는 플랑드르 여인. 벨기에와 인접한 국경 마을인 지베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그녀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몰렸다고 한다. 법학을 공부 중인 대학생 아들 조제프가 낭시에서 어떤 여자와 만나 아이까지 생겼는데, 문제의 아이 엄마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현지에서 수사 중인 경찰까지 이미 확신을 굳히고 있던 탓에 매그레는 공식 수사가 아니면서 지베로 향하게 되는데...

국경 지대를 배경으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친 플랑드르라는 고유의 문화까지 섞여 있어서 다소 이국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문화적 대립 양상이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플랑드르인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데, 매그레 반장이 이들 편을 들어주는 위치가 되다 보니 날 선 분위기가 종종 튀어나온다.

치정 싸움이 사건의 발단이다 보니, 일상적인 모습을 깊이 조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페이터르스네 가족은 대체로 어떤 분위기고. 피해자인 피에르뵈프네는 사정이 어떻고. 또, 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인 시선이 어떠한 편인지. 이미 문화적 차이에 빈부격차까지 있는 집안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만 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잘사는 플랑드르인 집과 그렇지 않은 프랑스인 집 사이에서 벌어진 드라마. 이렇다 보니 객관적인 단서 보다 편견이 가득한 주변의 시선과 다소 미심쩍은 증언들이 많이 보인다. 이래저래 매그레 반장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그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기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 사건에서 점차 느껴지는 인상은 이거다. 지나친 완벽함 속을 기어 다니는 불안의 그림자. 안정적이지만 뭔가 어색한 것과 불안정하지만 자연스러움의 비교. 일상이라 하면 사람 냄새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마치 인공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평범한 일상을 나타내려 하지만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일상일까? 누구를 위한 일상이고, 이 일상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여기서 많은 이들이 착각할 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조언을 해주는 것과 일일이 다해주는 것은 완전 다르다.

가족 간의 애정을 가지고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타인이 개입할 수가 없는 그들 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러나 방법이 잘못됐다면 말이 다르다. 제 아무리 침착하게 대응하려 해도, 평소처럼 보이려 해도, 이미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연스러움은 하나도 없이 외나무다리와도 같은 일상만 계속되고, 진실을 외면하며 쌓여간 마음의 무게로 점차 병들어갈 뿐이다. 다만 이걸 지적해도 어디까지나 선택은 그 가족에게 달렸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인생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이 더 최악일지. 무엇이 그나마 상황을 되돌릴 차선책일지. 선택은 당사자들에게 달린 문제다.

이게 다른 의도가 전혀 없이 그저 가족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 점이 참으로 씁쓸하게 한다.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한다. 도착 지점을 미리 정해 놓고 어떻게 도달할지 과정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선택의 순간에 길을 잘못 들어가거나 사소한 실수를 범하고도 정해 놓은 목표 때문에 불확실해진 경로를 계속 나아간다. 이미 멀어진 목표만 계속 보며 길을 가니 그나마 괜찮을 다른 목표마저 지나치고 결국 도달하는 건 절벽이다. 이러한 결말을 맞지 않으려면 언제나 최고 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절벽에 도달하지 않을 다른 방향도 생각해 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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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피아크르 사건 매그레 시리즈 13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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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인식을 못하다가 막상 제대로 마주하면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세월의 흐름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것이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 있다는 현실. 그것도 자신이 익숙하던 장소에 잘 알던 인물들이라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게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많이 바뀌어버린 모습 속에서 보이는 그림자들만 해도 이런데, 언제 어떻게 나타났지 알 수 없는 초면인 사람들까지 섞이니 더욱 복잡해진다. 무엇이 현재의 진짜 모습일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매그레 반장은 자신의 고향인 생피아크르의 성당에서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 예고하는 편지를 받고 서둘러 도착한다. 아침 일찍 진행된 미사 도중에 아무 일이 없어서 안심한 것도 잠시, 끝난 뒤에 살펴보니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생피아크르 백작 부인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 버린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아무도 백작부인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그걸 매그레 반장이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혈흔 하나 없고, 눈에 띄는 상처 역시 없었다...

매그레 반장의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보니 어릴 적을 회상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살해당한 피해자. 사건 관계자. 그 밖의 주변 인물 등등. 대부분이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는 인물들이라 이래저래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어쩌다 만난 아는 사람 정도가 아니다 보니, 어릴 적에 보아온 모습과 현재의 모습에서 발생한 괴리감이 상당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살인 사건으로 인해 다시 마주하게 된 고향이니 더욱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의 살인은 매우 특이한 방식이라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을 죽게 만들긴 했지만 법적으로 범죄라 하기 애매한 심리적인 흉기에 의한 살인이라 그렇다. 보기에 따라 이게 말이 되느냐, 너무 억지라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이런 걸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고령의 노부인이고, 이런 방식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배경을 제시한다면 마냥 불가능 하지 만은 않다고 본다. 실제로 피해자인 백작 부인이 상당한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 배경을 보여주며 유래 없을 살인 방식에 대한 개연성을 계속 더해준다.

몰락해가는 지방 귀족 가문의 안타까운 실상을 다룬 내용에 가깝다. 한때 화려하던 시절은 흐릿한 형태로만 남아있고, 추한 모습만 보이는 채로 겨우 자리 보전하고 있는 게 현재 모습이다. 거의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이런 귀족에게 눈독 들이는 경우라면 아마 선의보다는 불순한 의도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재산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 고독한 현실로 인해 저지르게 된 실수들, 뒤늦게 몰려오는 죄책감까지 해서 상당한 마음 고생 속에서 지내게 되는 모습을 비춘다.

이걸 다름 아닌 매그레 반장의 어린 시절 회상과 교차되며 보여주기에 쓸쓸함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언제나 주어진 사건 속의 관계자들이 가진 배경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던 매그레 반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잘 알던 어린 시절 기억 속 사람들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 나름대로의 죄책감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살인이라 인정되기 어려운 사건이라 어떤 식으로 해결을 봐야 할지도 고심해야 된다. 얼마나 복잡한 심정일까.

특이한 살인 방식 만큼이나 전혀 예상할 수 없게 사건이 해결돼서 당황하게 되는 동시에 어딘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사건을 검토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건 언제나 주인공 탐정이나 경찰이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법적인 처벌 문제가 제대로 부각되면 후속 조치가 불가능하기에 그 역할이 무력화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검토 부분까지는 그대로 하되, 마지막은 다소 과격하게 보일 방식으로 사건을 뒤엎어 버린다. 하나의 드라마로서 보면 대단원을 장식하는 극적인 결말이라 나쁘지 않다고 본다. 단순히 마무리를 내기 애매해서 벌인 난장판이 아니라 책임감이 무엇인지 깨닫고 벌인 행동으로 묘사돼서 그렇다. 이 과정을 통해 매그레 반장 역시 하나의 희망을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너져 가는 과거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일어설 현재의 다짐을 확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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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마물의 탑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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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빛이란 의외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급한 순간에 보내는 신호가 될 수도 있고. 어두운 곳에서 도움이 되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이로운 관점에서 본 해석이다. 그런데 반대로 해로운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가 나올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표시. 경계심이 생기게 하지만 묘하게 이끌려 가게 되는 곳. 확실한 건 이거 밖에 없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모른다. 결국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믿음과 판단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 대해 자신의 믿음과 판단으로 멀리 하거나 가까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키타큐슈의 탄광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광부를 그만둔 모토로이 하야타는 등대지기가 된다. 두 번째 근무지인 간세이 지역의 고가사키 등대로 향하나 어딘지 모르게 지역 사람들이 등대를 꺼림직 하게 여긴다는 걸 느낀다. 이런 탓인지 시라몬코의 전설과 수상쩍은 하얀집에 대한 일로 예정된 날보다 늦게 등대에 도착하게 된다. 하야타는 그곳에서 등대장 이사카 고조로부터 전쟁 이전에 고가사키 등대에서 근무하며 겪은 기이한 일에 대해 듣게 되는데...

등대라고 하면 솔직히 뭔가 크게 떠오르는 게 없었긴 하다. 그저 바다에 가면 종종 보이는 구조물이자, 불빛으로 항로에 도움을 주고, 종종 기이한 괴담이 나오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경으로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일본의 등대 역사를 다루는 면이 많다 보니 이렇게까지 중요한 시설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다. 또한 지형적인 특성상 상당히 외로운 직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말이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면이 묘하게 민속 문화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역사가 깊고 외진 곳에서 위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로 바다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산속에 대한 부분도 꽤 있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등대가 바다를 향해 있는 건 맞지만, 그 주변이 육지의 어디 부분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있을 법 하다. 가령 인구 수가 얼마 안 되는 외딴 섬이나 주변에 민가가 거의 없는 산간벽지와 맞닿아 있는 해안의 경우처럼. 사람이 많은 도심지 근처에만 등대가 있었다면 외로운 직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이러한 점에서 등대는 바다와 육지 모두와 가까우면서도 위치에 따라 이미지가 다양한 독특한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 스토리다 보니 경우에 따라 진부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동일한 장소, 사건, 경험에 대한 부분은 무서운 이야기에서 은근 자주 나오는 클리셰긴 하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현재에 다시 반복됐다는 부분이 단순 기시감이 아니라는 점에서 섬뜩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러한 공통된 부분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이 짧으면 모를까 이 소설처럼 다소 시간이 필요한 경우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클리셰가 워낙 흔하다는 점도 있고. 다만 구체적으로 이 반복되는 구조 안에 어떤 비밀이 있고 또 어디에서 다른 점이 있는지 관심이 생긴다면 별 문제는 아니다. 큰 결점이라기 보다 워낙 고전적인 스토리 구조다 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호불호라고 본다.

추리소설이라는 면에서 보면 물증과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현실적인 사건이 아닌, 추정의 영역으로 풀어야 되는 비현실적 사건을 다룬 괴기 미스터리에 가까운 편이다. 본격적인 사건이라 해야 될 것이 결말이 가까워져야 나타나는 동시에 해결로 직행하며 끝나기 때문에 추리 면에서 다소 약하게 보일 여지가 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만 한가득 보여주다가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이건 공포 부분에 만족하면서 보면 크게 문제 되지 않기에 참고해야 될 사항에 가깝다. 혹시나 평소 알던 추리소설 같은 느낌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되면 실망할 가능성이 클 수도 있으니까.

등대와 민간 신앙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두 요소를 통해 작은 사회와 전근대성의 폐해를 나타내서 여러모로 놀랍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두 요소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만 존재하는 사회. 외진 곳에 동떨어져 있는 환경. 하지만 등대의 경우는 근무 환경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더욱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확장성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탓에 등대와 민간 신앙에서 나타난 공포의 충돌은 이렇게 보일 여지도 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괴이한 존재가 가로막기 위해 혼동을 준다고. 하필이면 작중의 괴이가 등대의 빛과 같은 하얀 존재로 묘사되기에 더욱 그렇게 보이게 된다. 앞길을 비추는 빛인지, 방해하는 괴이인지. 이걸 확인하고자 가까이 가게 되는 순간 이미 그걸 선택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게 한다.

결국 고가사키 등대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막혀버리며 생긴 원한과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선 과거라는 이름의 괴이가 뒤섞인 비극의 장소나 다름없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줬으면 하는 모순에서 오는 공포란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나 자신도 그곳에 붙잡혀 갇히고 말 것이라는 위험성과 원치 않은 꺼림직한 존재를 떠 앉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공포.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견딜 수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간혹 등대에 떠도는 괴담 같은 것도 이와 비슷하게 발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운 환경을 벗어나고픈 욕구와 자리를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이 충돌해서 말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에 언급된 광부를 그만둔 이후이자 등대지기가 되기 전의 시점에 대한 부분은 어떤 일일지 궁금하게 한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와의 접점도 있다 보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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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그림자 매그레 시리즈 12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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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사람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언제나 돈이다. 돈 문제로 얽히면 좋은 관계이던 사람과도 금방 싸움이 난다고 하지 않은가. 대체로 이런 문제에서는 가진 자들이 더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려 한다. 그렇게 가지고도 너무 씀씀이가 박하다. 이런 식으로 언제나 부자는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세상 일은 언제나 반드시 그렇다는 건 없다. 특히 돈 문제 앞에서는 누구나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파리 보주 광장 61번지에서 걸려온 신고로 출동한 매그레 반장. 그곳은 아파트와 제약회사가 위치한 곳으로 사장인 레몽 쿠셰가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시체의 등 뒤에 있던 금고 속 돈까지 도난 당한 상태였지만, 매그레 반장은 정황상 살인범과 절도범을 동일 인물로 여기지 않는다. 한편 쿠셰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보니 대부분 상당한 돈 문제가 얽혀 있다는 점이 밝혀지는데...

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된 평범한 남자. 관련 인물로는 현 부인, 전 부인과 재혼한 남편,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여자. 이런 관계만 봐도 흔한 드라마가 떠오를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재벌 집안이 나오고, 돈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고,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흔해 빠진 이야기는 아니다. 피해자 쿠셰는 자수성가 해서 뒤늦게 부자가 된 경우라 그런지 흔히 떠오르는 상류층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탈하고 누구에게 든 돈을 아끼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만 가득하다. 그렇기에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덕적인 면과는 별개로 이렇게 씀씀이가 좋은 사람을 굳이 죽일 이유가 있다면 대체 무엇일까. 역시 돈 때문일까.

사방에서 돈 얘기가 나오고, 돈 때문에 발생하는 사연들을 늘어 놓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계속 나온다. 돈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돈을 얼마나 버는 문제로 사람을 판단할 것이냐. 아니면 돈과 상관 없이 사람을 판단할 것이냐. 이게 조금만 관점을 다르게 봐도 의미가 확 바뀌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것도 쿠셰라는 인물이 소시민 스타일을 더 편하게 여기는 상류층이라서 말이다. 다른 작품 같았으면 그저 돈이 많으니까 사람이 좋아 보인다, 돈이 많으니 저런 일 당할 만 했다는 얘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쿠셰의 인간적인 면이 계속 부각되니 돈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겨우 돈 때문에 이런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 남을 뿐이다.

결국은 돈 문제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돈에 미쳐 있었다는 실체를 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어진다. 일상에서도 늘 나오는 말이 돈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이걸로 사람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불행해진 현실에 대해 책임을 전가 하고, 그저 돈에만 집착하는 것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범인은 범인대로 딱하게 보일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자기 만족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악독하다는 인상이 더 크다. 자신이 생각한 이상향과 현실 간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히스테리가 폭주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린 거나 다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앞서 다룬 것과 비슷한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돈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냐. 돈 때문에서 사람이 나쁜 짓을 하게 되는가. 사람이 나쁘기에 돈에 집착하게 되는 건가. 어떻게 보면 피해자인 쿠셰가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실천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평생을 돈 때문에 힘들게 살았지만, 부자가 돼서는 집착하지 않고 지냈으니 말이다. 단순 사치가 아닌 자기 나름대로 베푸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이걸 제대로 보여줄 기회는 영영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 돈의 위험성을 알고 조심했지만 결국 돈 때문에 죽게 됐으니 엄청난 비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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