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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오랜만에 ‘좋아서’가 아니라 ‘재밌어서’ 끝까지 붙들고 읽은 책이다. 뭐가 다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다르다. 표지를 봐서는 가벼운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장강명 작가의 꽤나 묵직한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그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생겼던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를 들어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해서, ‘한국의 문학시장과 그 방향성’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존재와 자아’에 대해서까지 논한다. 평소 남들이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것까지 고민하는 ‘투머치띵커’인 나로서는 공감되는 생각도 많았고 정말 즐겁게 읽었다.
독서 팟캐스트를 몇 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요조와 장강명이 함께 진행했던 ‘책, 이게 뭐라고’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진행자와 저자가 펼치는 만담이 재밌어서 나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진행하는’이 아니라 ‘진행했던’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시즌2를 마지막으로 장강명 작가는 ‘책, 이게 뭐라고’를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책, 이제 뭐라고’는 시즌3부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 컨텐츠 중심으로 그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고 한다.
장강명은 끊임없이 ‘말하는 자신’과 ‘쓰는 자신’ 사이에서 갈등한다. 점점 읽고 쓰는 사람은 줄어들고 세상은 쓰는 장강명보다 말하는 장강명을 요구한다. 훨씬 더 돈벌이가 되는 것도 그쪽이다. 나또한 새로운 사람과 만나 말하고 듣는 것보다는 읽고 쓰는 쪽이 훨씬 편안하기에 장강명 작가의 이런 고민에 깊이 공감했다. 세상은 자꾸 유튜브를 하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장강명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호흡’에 비유하며 ‘깨달음을 얻은 어류가 되기보다 서툴게 걸으며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양서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시대가 변해도 자극적이고 다이나믹한 영상매체보다 길고 복잡한 언어로 이루어진 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독서 팟캐스트인 ‘책, 이게 뭐라고’가 유튜브 위주로 형식을 개편한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정말로 씁쓸했다. 공존이라는 말이 어색한 시대이지만, 그래도 공존할 수는 없는 걸까? 혹시 이런 변화에 씁쓸함을 느끼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져 도태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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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서 나는 다소 고립된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나는 둘 중에 고르라면 어떤 사람을 그가 쓰는 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어도 그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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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드보일드한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용서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똑바로 보겠다는, 어둠을 직면하겠다는 의지다.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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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묻고 따지는 것은 나의 고약한 버릇이고, 읽고 쓰는 세계 거주자들의 운명인 것 같다. 그것은 힘이고 은총이며 고통이자 저주다. 나는 이게 어느 정도 죽음이나 소멸과 관련이 있는 문제가 아닐까 추측한다. 중력을 버티기 위해 골조를 세우는 것처럼 시간을 버티고 싶어 의미를 구하는 것 아닐까.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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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 한 인격을 판매해야 하는 것 같다. 강연, 방송, 영업, 상담, 정치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술자나 연구자와는 다른 삶을 산다. (…) 간혹 강연이나 방송 출연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땀을 흘린 대가가 아니라 나를 판 대가로 돈을 번 게 아닐까 의심에 빠진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잃는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더 그렇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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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우리 시대의 문학과 예술이 논평가의 업무라도 제대로 해내는지 의문이다. 눈물 흘리거나 비명 지르는 걸 논평이라고 부른다면 모를까. 지금 문학이 과학기술에 대해서만 무력한 것도 아니다. 가령 선물 시장이나 투자은행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문인이 몇 명이나 될까? 금융시장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현대자본주의의 탐욕을 지적할 때 그 목소리에 과연 얼마나 힘이 실릴까?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