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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ㅣ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새해 첫 책으로 선택한 《귤의 맛》은 제목과 달리 상큼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장 불안정한 시기일지도 모를 중3, 흔들리는 아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였다. 영화 동아리를 통해 우연히 만난 네 아이는 저마다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전학을 간 아이, 갑작스럽게 아빠의 사업이 망해버린 아이, 가족 중 누군가의 병으로 하루하루가 무거운 아이, 그리고 친구와 멀어지고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아이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혹은 이미 누군가는 겪어봤을 이야기들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어린 시절과 겹쳐졌다. 네 아이가 겪는 일들은 크고 작게 나 역시 지나온 시간들이었고, 그래서 한 명 한 명에게 더 깊이 마음이 이입되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은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자는 약속을 하며 중3을 버텨낸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그 약속이 흔들리고, 결국 두 아이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찾아온다.
책을 읽는 동안 중3이었던 나의 모습도 자꾸 떠올랐다. 같은 고등학교에 가자고, 최소한 둘씩은 함께 가자고 약속했지만 결국 여러 사정으로 모두 흩어졌던 기억. 특히 내 의지나 성적과는 상관없는 선택을 해야 했을 때의 서러움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나에게는 손을 내밀어주는 어른이 없었는데, 이 책 속 어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들 곁에 머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조금은 놓였다.
어리다고, 중학생이라고 해서 생각이 가볍지는 않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한다. 삶이 주는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짊어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상큼하고 발랄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고, 네 아이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 책이었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마음을 붙잡아 줄 작은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