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대 딛고 다이빙 - 안 움직여 인간의 유쾌하고 느긋한 미세 운동기
송혜교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6월
평점 :
'침대 딛고 다이빙' 속 저자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공감이 됐던 이유는 저자가 겪은 일을 나도 겪어봤고, 저자가 느낀 감정을 나도 느껴봤기 때문이다. 수영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저자의 수영 강습기를 보면서는 누가 나 몰래 사찰했나 싶을 정도였다.
대학생 때 지하철로 1시간씩 통학을 할 때, 지하철에서 누가 곧 내릴지 레이더를 돌리며 조금이나마 앉아가기 위해 치열한 눈치게임을 벌였던 일, 막 개강했을 때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헉헉 대다가 종강할 때쯤에는 같은 계단을 익숙하게 뛰어 오르던 일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통학만으로도 운동이라고 위안을 삼았었다. 이걸 졸업할 때까지 몇 학기를 반복했던가.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회사 적응하느라 바쁘다는 핑계, 일하고 나면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는 핑계로 운동을 회피했다. 그러다 입사한 지 8개월쯤 지나 필라테스 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겠구나 하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고, 직장인이 되어 일에 치이던 와중에 너무 억울한 나머지 나를 위해 이 정도 투자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직장 밖에서의 즐거움을 하나쯤 찾고 싶기도 했고. 내향적인 성격 탓에 동호회는 꿈도 꾸지 않았고, 영어학원도 고민해 봤지만 회사 일도 힘든데 더 머리쓰기는 싫었다. 그러면, 몸을 써야지.
그렇게 시작한 필라테스는 이게 운동인지 고문인지 알 수 없었다. 30년 가까이 제대로 된 운동 한번 안 하고 살았으니 더 그랬겠지만. 50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내 몸의 움직임(과 고통)에 집중한 이후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집에 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한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뿌듯하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렇게 여섯 달 정도 지난 뒤 강사님이 내게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 하셨는데 스스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터라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눈에 띄게 근육이 붙지도 않았고, 여전히 회사에서는 한 마리 거북이로 살고 있어서 알지 못했는데 그렇게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운동을 시작하면서 야근을 해도 덜 힘들고, 짜증,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도 이전보다 덜 느꼈다. 저자도 말했듯이 다정함도 체력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체력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생업활동 등을 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이 받쳐줘야 그 이상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이 가능하다. 저자도 운동을 시작으로 그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영역에 도전하지 않았던가. 저자가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보듯 나도 필라테스에서 시작해 러닝, 수영, 클라이밍까지 이전에는 감히 도전해볼 생각도 안 했던 다양한 운동을 해보고 있다.
운동하는 그 순간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 좋다. 물론 필라테스를 3년 가까이 했지만 여전히 코어는 엉망이고, 수영은 평영의 벽에 부딪혔지만 느리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한 달 가까이 실패하던 클라이밍 루트는 최근에서야 겨우 성공했다. 한동안은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마음을 다잡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몸을 쓰는 기쁨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는 운동을 안 하던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같이 운동을 하진 않는다. 여전히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수영 가지 말까'하고 5초 정도 고민한다. 주말에 호기롭게 자유수영 간다고 짐을 다 싸놓고서는 피곤하다며 침대에서 드러누워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도 많다. 클라이밍을 가서도 오늘은 날이 아니라며 설렁설렁 하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운동은 내게 하루의 활력과 새로운 기대감을 주기 때문에 완전히 그만두는 날은 오지 않을 듯하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나 또한 동을 시작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또 조금씩 나아지는 체력을 바탕으로 좀 더 풍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등산이라면 질색하던 내가 스스로 나서 이번 주말은 어느 산을 가볼까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하고, 2~3km 정도 거리는 걸어다니며 거리 구경도 한다.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이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어쩌면 내가 직접 나가서 겪는 세계보다 더 넓고 다양할 수 있지만, 침대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는 내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르다. 그러니 다들, 침대를 딛고 일어서서 밖으로 다이빙!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