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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ㅣ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첫 장부터 마음이 먹먹해서 한동안 읽기가 힘들었다. 할머니의 사랑이, 그리고 저자의 사랑이 요즘의 뜨거운 날씨보다 더 홧홧하게 다가와서 자꾸만 첫 장을 맴돌았다. 내가 그 시간, 그 방으로 들어가 두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유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식들에게는 어떻게든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뭔지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돌아가신 할머니가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는 때로는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마구 쏟아붓는 소나기처럼 마음 한 구석을 세차게 때리며 아프게 하기도 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 글을 자기 마음 속의 어린이의 안부를 물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 아직 크지 못한 채 남아있는 어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른들의 눈치를 많이 봤던 나, 그런 나를 꺼려하는 어른들, 그러면 나는 더더욱 주눅이 들게 되는 악순환... 작가도 말했듯이 지금은 어른들과 잘 지내면서도 문득 문득 그 때 생각이 나면 그때 내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아마 그들은 기억을 못할테고, 그러면 나만 또다시 상처 받을까봐 그 질문을 목구멍 아래로 꾹꾹 눌러담을 뿐.
어린 시절의 슬픔과 아픔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 사랑과 기쁨도 있었다. 심지어 슬프고 아픈 와중에 행복할 때도 있었다. 이런 시간들이 있어 과거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고 오늘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흉터는 남겠지만 그조차도 나의 일부로 껴안고 살아간다.
작가에게 여름은 사랑이 아닐까. 결국 사랑해서 기뻤고, 사랑해서 아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강아지에 대한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이어지고, 무더운 여름날을 버틸 힘이 된다.
사실 나는 더위를 잘 타기 때문에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위에 대한 첫 기억도 무더운 여름날 설핏 낮잠에 빠졌다가 후덥지근한 기운에 잠을 깬 순간이다. 직장인이 되면서는 휴가가 있어서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지만, 여름을 좋아햐냐고 물으면 여전히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여름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생각나는 기억 한 조각. 장마철의 어느 날, 집에 있기 답답했던 나는 부모님을 졸라 시원한 대형마트 안에 있는 서점을 갔다. 없는 살림에도 책 사는 돈은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은 내게 그날 책을 몇 권 사주셨다. 유독 길었던 그 해 장마 기간에 나는 그날 사온 책을 보며 그 습한 날을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남들처럼 여름에 어디 바다나 계곡에 놀러 갈 여유가 안되니 책이라도 내 손에 쥐어주셨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여름은 책, 부모님의 마음이 담긴 책이다. 그리고 '우리의 여름에게'를 만난 것도 여름의 기억 한 조각으로 내게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