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 지구, 인간, 문명을 탄생시킨 경이로운 운석의 세계
그레그 브레네카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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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별똥별은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였지만, 나에게 운석은 "지구 밖에서 날아온 위협적 존재"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 공룡 멸종설, 2013년 첼랴빈스크 운석우 사건, 혹은 영화 아마겟돈 같은 운석의 대중적 이미지 때문일지도.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의 저자는 운석에 대한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이 책은 운석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다루지만, 저자의 명료하고 유머러스한 설명 덕분에 독서의 진입장벽은 낮았다. 과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역사, 철학적 통찰까지 다루며 독자를 끌어당겼고, 특히 저자의 아재 개그는 책을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책의 제목,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물리적 차원에서 칼 세이건이 말한 "우리는 별에서 온 존재"라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둘째, 초기 지구와 운석의 충돌이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과 물질을 제공했다는 과학적 발견을 반영한다. 이 역할은 현대까지 이어져, 운석은 여전히 우주의 필수 영양소와 원재료를 지구에 전달하는 우주적 운송수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철이다. 지구 표면에는 금속성 철이 거의 없고, 철광석을 제련할 기술이 없던 멀고 먼 과거에 운석 철은 가공이 쉬워 인류 문명이 최초로 활용한 철이었다. 여러 고대 청동기 문명에서 발견된 철 장신구나 무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는 인류가 철기 문명에 접어들기 전부터 운석 철을 활용해 무기와 귀중품을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책은 운석과 인류의 관계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광범위하게 조망한다. 고대 문명에 남겨진 운석에 대한 기록은 당시 사람들이 운석을 미지의 두려움으로 여겼음을 잘 보여준다. 중세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도그마가 지배적이어서 운석조차 지구 내부에서 생성된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도 있었다.


 현대 과학의 발전 덕분에 이제 우리는 운석이 우주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보통 사람들이 운석에 대해 아는 지식은 그리 깊지 않다. 저자는 운석이 주로 어디에서 채집되고 관리되는지, 운석을 왜 연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어떤 과학적 사실을 알 수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월석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화성에서 온 운석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운석 하나쯤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걱정, 즉 "거대 운석이 날아와 지구를 파괴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다룬다. 통계적으로 언젠가 거대 운석이 지구를 위협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파괴하거나 궤도를 수정하려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일상의 소소한 걱정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먼 미래를 대비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장시키며 과학 발전의 의의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운석학에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재치 있는 말로 마무리한다. 초기 태양계의 비밀을 간직한 운석을 연구하는 것은 곧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일과 같다. 운석학이 학문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되지 않았고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분야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운석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라 우주의 보석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길가의 돌을 볼 때도, 혹시 운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운석은 우리가 인간성을 발전시키기까지 걸어온 여행에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여행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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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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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에세이에서 다정한 필치로 만났던 가랑비메이커 작가의 문장들을 이전부터 천천히 곱씹으며 자주 들춰보곤 했다. 그 문장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작가의 작업일지를 읽게 되었다. ‘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라는 제목부터가 따뜻하다. 읽는 내내 마치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해 에세이로 접했을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창작가이자 1인 사업가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대하는 문장과는 결이 다르지만, ‘지난밤에 남긴 마지막 문장을 낯선 마음으로 마주하는 일’(어제의 목소리들에게, 105p)이라는 문장은 내게도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매번 지난한 어제의 연장선, 마무리 짓지 못한 과거의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그 문장을 낯선 마음으로 마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한참 그 페이지에서 서성였다.


 ‘나의 마음은 늘 ‘하다만’ 것들 뿐이었다’(계산할 줄 모르는 마음, 85p)라는 문장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했던 나를 찌르는 듯했다. 왜 나는 항상 조금 더 힘을 주지 않았을까, 왜 조금 더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만큼 바빴던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거기까지였던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한참 매여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나의 미래 친구, 180p)’을 깨달았다. 어쩌면 삶의 본질은 결국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렇게 글로써 연결되어 누군가의 진심을 읽고 공감의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한줄기 낭만적인 가랑비 같은 경험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진심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요즘 나는 무엇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부딪혔다. 어느 순간부터 진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부담스러워졌다. 진심을 표현한다는 건 마음을 드러내고, 무언가 노력한다는 의미이고, 그로 인한 모든 감정의 파도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인지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랑비메이커 작가의 담담한 문장들은 오히려 소박하고 가벼운 진심이 더 멀리 퍼지고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진심을 담은 작은 순간들은 결국 서로를 이어주는 실이 된다는 것도. 이 책은 단순한 작업일지를 넘어, 그런 순간들을 발견하고 깊이 음미할 수 있게 해줬고, 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작은 순간들에도 진심을 담아보자는 의지를 다지게 해주었다. 그 진심이 커다란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조곤조곤한 속삭임일지라도 괜찮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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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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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는 좋아해도 나방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사실 나비도 무섭지만) 나방을 무서워 하는데, 특히 여름밤 핸드폰 불빛이나 거리 조명에 달려드는 나방들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 나방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해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나방을 매개체로 지구의 생태 전반을 다룬다. 나방 하나로 시공간을 넘나드면서,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사실 생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여서 저자가 설명하는 내용들이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탐구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이 책은 저자가 나방 덫(듣기만 해도 공포스럽다)을 설치해 채집된 나방을 분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저 밤에 활동하는 칙칙한 생명체인줄 알았던 나방이 알록달록한 색을 지녔거나, 낮에 활동하는 나방들도 있다는 사실부터가 신선하다. 심지어 진홍나방은 나방보다는 나비에 가깝게 생겼다. 


 수많은 나방들은 각자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한다. 종간 경쟁뿐만 아니라 종내에서도 경쟁이 펼쳐진다. 포식자가 다른 종에겐 피식자가 되는 물고 물리는 관계가 얽히고 설킨다. 이 과정에서 어떤 종은 작아지고, 어떤 종은 커진다. 여기에 이주나 분화, 멸종과 같은 변수까지 더해지면, 자연의 복잡한 질서 속에서 유지되는 생태계가 얼마나 연약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태계의 일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인간이라는 종이 자연에 가하는 파괴적 압력과 그 결과에 대해 보여준다. 이미 종간 경쟁에서 승리한 인간은 다른 종의 이주나 최악의 경우 멸종을 야기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셧다운으로 사람들이 극도로 활동을 자제했던 시기, 맑아졌던 하늘과 물, 다시 나타난 동물들은 인간이 생태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생태계를 돌아보는 여정은 나방에서 시작해 나방으로 마무리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젠 나방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이지만, 앞으로는 나방이나 다른 생명체를 볼 때마다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날 것 같다. ‘그들의 존재는 자연의 규칙과 냉혹한 우연의 산물이며, 이러한 압력으로 빚어진 보석과도 같다. 에메랄드, 진주, 루비… 그렇게 아름다운 보석처럼 그들은 탄생했다.’ 우리는 그렇게 보석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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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식물 이야기
사이먼 반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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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크게 관심은 없는 존재인 식물. 보통 관상용으로 볼거리가 되어 주거나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 주거나, 좀 더 크게 보면 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다. 하지만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식물이고, 문명의 탄생과 성장에 식물이 지대한 역할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농업혁명만 해도, 식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장구한 인간의 역사를 식물을 매개로 비춰본다. 그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식물이 과학과 산업, 문화, 전쟁 등 인간사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평범하게 보이던 식물도 다르게 보인다.


 밥 위에 올려져 있으면 싱그러운 연녹색 완두콩이 멘델 유전법칙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유명하지만, 7천년전부터 재배되어 왔고, 루이 14세가 좋아할 정도로 고급 음식이었다는 점은 이채롭다. 여기에 통조림 제조기술과 급속냉동기술이 발전되고 나서야 완두콩이 이렇게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는 사실은 기술의 발전이 그 식물의 지위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말라리아 치료제의 원료가 되는 기나나무는 유럽 제국주의의 확산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하나의 권력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인 2차 세계대전 당시, 기나나무 서식지를 점령한 일본에 의해 군사무기화 되었다니, 하마터면 전쟁의 판도까지 바꿀뻔 했다.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브라질너트는 재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훼손되지 않은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채취한 브라질너트를 먹고 있다니,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아마존 한 조각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신기하면서도, 온전한 아마존이 선사하는 브라질너트를 오래도록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조롱박이 용기로 사용되면서 문명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 로마 시대 오이를 재배하기 위한 온실이 있었다는 점, 딸기가 쾌락의 상징이었다는 점 등 식물과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식물은 식량이나 기호식품으로 소비되기도 하고, 감상의 수단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의학이나 화학 등 과학 발전의 원천이나 산업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는 잊고 있었던 무궁무진한 식물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인류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식물들. 그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멸종 위기에 놓인 종들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이 식물은 인간과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그 식물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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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2 - 호랑이덫 부크크오리지널 5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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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일당 사건 기록 1에 이어서 또 다시 사건에 휘말린 경성의 모던보이, 에드가 오. 러시아에서 돌아온 친구 세르게이 홍을 만나러 나갔다가 눈 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걸 본 에드가 오는 남정호 순사부장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되고, 세르게이 오가 범인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경찰에서는 조선박람회를 앞두고 호랑이덫이라는 비밀작전을 수행 중인데, 에드가 오가 목격한 살인사건과 사라진 세르게이 홍, 호랑이덫 이 3가지 사건이 뒤얽히며 독자를 1929년 경성으로 끌어당긴다.


 지난 작품이 1920년대 일제강점기가 배경임에도 시대의 아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면, 이번 작품은 관동대지진이라는 아픈 역사가 작품을 관통하며 역사인식을 일깨워 준다. 에드가 오가 지닌 관동대지진의 기억 한 조각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지고, 여기에 조선 땅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여전히 에드가 오는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작보다 심각해진 작품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세르게이 홍의 행적에 대해 파헤치며 사건에 좀 더 진지하게 몰입하는 걸 보고 있자면 전작에 비해 그가 탐정으로서 조금은 성장했다는 생각도 든다.


 전작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서 반가운 와중에, 이번에는 선화보다는 연주가 맹활약을 펼친다. 여전히 다방 흑조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는 에드가 오가 놓친 사실들을 짚어주며 탁월한 추리력을 보여준다.


 선화는 경성에서 떠도는 소문의 핵심을 꿰뚫는 명민함을 보여주는데,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문의 본질이 똑같다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회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하고 무자비한 학살도 결국 소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하는 부분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포와로가 사건 관련자들을 모두 모아서 진실을 밝히는 클리셰의 오마주같다. 다만, 연주가 어마어마하게 판을 크게 벌렸을 뿐. 드러난 진실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어딘가 씁쓸하지만, 일제의 비밀작전을 무력화시킴으로써 통쾌감을 주기도 한다.  


 이번 작에서는 1편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들의 서사가 더 자세히 드러나면서 ‘1929년 은일당 사건기록’이 시리즈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다. 은일당의 속사정이나, 선화와 연주의 관계, 계월과 연주 사이의 비밀 등이 드러나면서 그간의 궁금증이 해소된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선화와 연주가 멀어지게 된 계기나 선화와 계월이 마지막에 나누는 대화는 앞으로도 은일당 사건 기록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기대감을 자아낸다. 다음번에는 에드가 오가 어떤 사건에 휘말릴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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