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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식물 이야기 ㅣ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사이먼 반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2월
평점 :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크게 관심은 없는 존재인 식물. 보통 관상용으로 볼거리가 되어 주거나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 주거나, 좀 더 크게 보면 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다. 하지만 인류가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식물이고, 문명의 탄생과 성장에 식물이 지대한 역할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농업혁명만 해도, 식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는 장구한 인간의 역사를 식물을 매개로 비춰본다. 그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식물이 과학과 산업, 문화, 전쟁 등 인간사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평범하게 보이던 식물도 다르게 보인다.
밥 위에 올려져 있으면 싱그러운 연녹색 완두콩이 멘델 유전법칙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유명하지만, 7천년전부터 재배되어 왔고, 루이 14세가 좋아할 정도로 고급 음식이었다는 점은 이채롭다. 여기에 통조림 제조기술과 급속냉동기술이 발전되고 나서야 완두콩이 이렇게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는 사실은 기술의 발전이 그 식물의 지위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말라리아 치료제의 원료가 되는 기나나무는 유럽 제국주의의 확산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하나의 권력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비교적 최근인 2차 세계대전 당시, 기나나무 서식지를 점령한 일본에 의해 군사무기화 되었다니, 하마터면 전쟁의 판도까지 바꿀뻔 했다.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브라질너트는 재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훼손되지 않은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채취한 브라질너트를 먹고 있다니,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아마존 한 조각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신기하면서도, 온전한 아마존이 선사하는 브라질너트를 오래도록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조롱박이 용기로 사용되면서 문명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 로마 시대 오이를 재배하기 위한 온실이 있었다는 점, 딸기가 쾌락의 상징이었다는 점 등 식물과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식물은 식량이나 기호식품으로 소비되기도 하고, 감상의 수단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문화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외에도 의학이나 화학 등 과학 발전의 원천이나 산업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는 잊고 있었던 무궁무진한 식물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인류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 해 온 식물들. 그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멸종 위기에 놓인 종들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라면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이 식물은 인간과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그 식물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