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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평점 :
여러 에세이에서 다정한 필치로 만났던 가랑비메이커 작가의 문장들을 이전부터 천천히 곱씹으며 자주 들춰보곤 했다. 그 문장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작가의 작업일지를 읽게 되었다. ‘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작은 목소리로’라는 제목부터가 따뜻하다. 읽는 내내 마치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해 에세이로 접했을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창작가이자 1인 사업가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대하는 문장과는 결이 다르지만, ‘지난밤에 남긴 마지막 문장을 낯선 마음으로 마주하는 일’(어제의 목소리들에게, 105p)이라는 문장은 내게도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매번 지난한 어제의 연장선, 마무리 짓지 못한 과거의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그 문장을 낯선 마음으로 마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한참 그 페이지에서 서성였다.
‘나의 마음은 늘 ‘하다만’ 것들 뿐이었다’(계산할 줄 모르는 마음, 85p)라는 문장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했던 나를 찌르는 듯했다. 왜 나는 항상 조금 더 힘을 주지 않았을까, 왜 조금 더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만큼 바빴던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거기까지였던 것을 바쁘다는 핑계로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한참 매여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말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나의 미래 친구, 180p)’을 깨달았다. 어쩌면 삶의 본질은 결국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이렇게 글로써 연결되어 누군가의 진심을 읽고 공감의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한줄기 낭만적인 가랑비 같은 경험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진심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요즘 나는 무엇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부딪혔다. 어느 순간부터 진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부담스러워졌다. 진심을 표현한다는 건 마음을 드러내고, 무언가 노력한다는 의미이고, 그로 인한 모든 감정의 파도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인지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랑비메이커 작가의 담담한 문장들은 오히려 소박하고 가벼운 진심이 더 멀리 퍼지고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진심을 담은 작은 순간들은 결국 서로를 이어주는 실이 된다는 것도. 이 책은 단순한 작업일지를 넘어, 그런 순간들을 발견하고 깊이 음미할 수 있게 해줬고, 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작은 순간들에도 진심을 담아보자는 의지를 다지게 해주었다. 그 진심이 커다란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조곤조곤한 속삭임일지라도 괜찮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