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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평점 :
나 같은 사람한테 알라딘 중고서점은 정말 문제다. 더는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책을 고르고 있다. 책 찾으러 갔다가 또 집어온 책. 고전을 많이 읽어본 편이 아니라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마담 보바리는 말 그대로 보바리 씨의 부인이니까 이 책은 보바리 씨에게 시집온 그의 부인 이야기다.
샤를르 보바리는 가정을 꾸려가는 데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와, 남편 덕에 온 기대를 자식에게 걸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모든 것을 다 정해준다. 직업부터 결혼할 여자까지. 보바리는 어머니의 뜻대로 의사가 되고 돈 많은 미망인에게 장가도 가지만 첫 번째 부인은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보바리는 첫 번째 부인이 죽기 전, 어떤 시골마을로 왕진을 갔다가 알게 된 엠마라는 여자에게 끌린다. 엠마는 농부의 딸이지만 어릴 적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은 '배운 여자'다. 그녀는 공부할 시절 책에서 본 세상을 동경한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불만인 그녀는 외부에서 온 의사 선생님 보바리가 어쩌면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핑계를 대고 마을을 드나들던 보바리는 부인이 죽자마자 엠마의 아버지에게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진작부터 의사 양반의 마음을 알아채고 있던 엠마의 아버지는 바로 승낙하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엠마는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무언가가 있다고 믿지만, 동시에 감당해야 할 현실도 있다는 것은 모른다. 그녀가 꿈꾸는 것이라고는 화려한 무도회, 잘 차려입은 사람들, 꿈같은 생활뿐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그저 현재는 늘 불만이고, 자신이 모르는 어떤 굉장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그녀가 남자들을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저항하려고도 해보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애초에 '이만하면 됐어'할, 자기 만족용 저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뒤 가리지 않고 좋은 것만 쫓았던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토록 모든 것을 바쳤던 남자들이 아닌 엄청난 액수의 어음이었다. 빚더미에 앉은 그녀는 백방으로 돈을 구해보려 하지만 전 애인이나 현재의 애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한 번 버림을 받고), 앞뒤 안 가리고 무책임한 그녀답게 자살해버리고 만다. 죽는 과정도 어찌나 길게 묘사를 해놨는지, 철없던 그녀의 삶이 사라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안 죽었어? 하면서.)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나 했는데 그 뒤에 나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길다. 엠마가 죽었는데 이러쿵저러쿵 싸우기나 하는 신부님과 동네의 권력자 약제사 오메, 남겨진 샤를르, 딸, 샤를르의 어머니 이야기까지.
어쩌면 시대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이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무턱대고 이상만을 쫓았던 엠마나, 평생을 걸쳐 부인만 사랑한 보바리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다.
좋은 것만 하면서 현재를 책임지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현실이 있어야 이상도 있다. 엠마는 그걸 몰랐다.
18 이렇게 해서 그는 떡갈나무처럼 자랐다. 손이 억세고 혈색이 좋은 아이가 되었다.
29 갈색이었는데도 눈썹때문에 새카맣게 보이는 그 눈길은 천진하면서도 당돌하게 상대를 똑바로 건너다 보았다.
100 그래서 그녀는 하느님의 불공평함이 증오스러워 벽에 머리를 기대고 울었다.
291 「정말 거짓말 무더기로군......」 이것은 그의 생각을 그대로 요약하는 한마디였다. 사랑의 쾌락은 학교 운동장에 뛰노는 학생들처럼 그의 마음을 어찌나 짓밟아 놓았는지 거기에는 푸른 풀포기 하나 돋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리로 지나간 여자들은 어린 학생보다도 더 경박해서 담벼략에 낙서한 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했다.
340 그들은 둘 다 자기들의 과거가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각자가 하나의 이상을 만들어가지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생활을 거기에 맞추고 있었다. 게다가 말이란 언제나 감정을 길게 늘이는 압연기 같은 것이다.
419 레옹이 그녀에게 싫증이 난 것만큼 그녀 역시 상대에게 물려버렸다. 엠마는 간통 속에서 결혼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그대로 발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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