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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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한테 알라딘 중고서점은 정말 문제다. 더는 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책을 고르고 있다. 책 찾으러 갔다가 또 집어온 책. 고전을 많이 읽어본 편이 아니라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마담 보바리는 말 그대로 보바리 씨의 부인이니까 이 책은 보바리 씨에게 시집온 그의 부인 이야기다.

 

 



샤를르 보바리는 가정을 꾸려가는 데 별 관심이 없던 아버지와, 남편 덕에 온 기대를 자식에게 걸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모든 것을 다 정해준다. 직업부터 결혼할 여자까지. 보바리는 어머니의 뜻대로 의사가 되고 돈 많은 미망인에게 장가도 가지만 첫 번째 부인은 곧 세상을 떠나고 만다.

 

 



보바리는 첫 번째 부인이 죽기 전, 어떤 시골마을로 왕진을 갔다가 알게 된 엠마라는 여자에게 끌린다. 엠마는 농부의 딸이지만 어릴 적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은 '배운 여자'다. 그녀는 공부할 시절 책에서 본 세상을 동경한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불만인 그녀는 외부에서 온 의사 선생님 보바리가 어쩌면 자신의 꿈을 이루어 줄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핑계를 대고 마을을 드나들던 보바리는 부인이 죽자마자 엠마의 아버지에게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진작부터 의사 양반의 마음을 알아채고 있던 엠마의 아버지는 바로 승낙하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엠마는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무언가가 있다고 믿지만, 동시에 감당해야 할 현실도 있다는 것은 모른다. 그녀가 꿈꾸는 것이라고는 화려한 무도회, 잘 차려입은 사람들, 꿈같은 생활뿐이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그저 현재는 늘 불만이고, 자신이 모르는 어떤 굉장한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그녀가 남자들을 만나 불륜을 저지른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저항하려고도 해보지만 그럴수록 욕망은 더욱 강해진다. 애초에 '이만하면 됐어'할, 자기 만족용 저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뒤 가리지 않고 좋은 것만 쫓았던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그토록 모든 것을 바쳤던 남자들이 아닌 엄청난 액수의 어음이었다. 빚더미에 앉은 그녀는 백방으로 돈을 구해보려 하지만 전 애인이나 현재의 애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다시 한 번 버림을 받고), 앞뒤 안 가리고 무책임한 그녀답게 자살해버리고 만다. 죽는 과정도 어찌나 길게 묘사를 해놨는지, 철없던 그녀의 삶이 사라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안 죽었어? 하면서.)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나 했는데 그 뒤에 나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길다. 엠마가 죽었는데 이러쿵저러쿵 싸우기나 하는 신부님과 동네의 권력자 약제사 오메, 남겨진 샤를르, 딸, 샤를르의 어머니 이야기까지.

 

 



어쩌면 시대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이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무턱대고 이상만을 쫓았던 엠마나, 평생을 걸쳐 부인만 사랑한 보바리 같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다.

 

 


좋은 것만 하면서 현재를 책임지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현실이 있어야 이상도 있다. 엠마는 그걸 몰랐다.

 

18
이렇게 해서 그는 떡갈나무처럼 자랐다. 손이 억세고 혈색이 좋은 아이가 되었다.


29
갈색이었는데도 눈썹때문에 새카맣게 보이는 그 눈길은 천진하면서도 당돌하게 상대를 똑바로 건너다 보았다.


100
그래서 그녀는 하느님의 불공평함이 증오스러워 벽에 머리를 기대고 울었다.


291
「정말 거짓말 무더기로군......」
이것은 그의 생각을 그대로 요약하는 한마디였다. 사랑의 쾌락은 학교 운동장에 뛰노는 학생들처럼 그의 마음을 어찌나 짓밟아 놓았는지 거기에는 푸른 풀포기 하나 돋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리로 지나간 여자들은 어린 학생보다도 더 경박해서 담벼략에 낙서한 제 이름 하나 남기지 못했다.

340
그들은 둘 다 자기들의 과거가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각자가 하나의 이상을 만들어가지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생활을 거기에 맞추고 있었다. 게다가 말이란 언제나 감정을 길게 늘이는 압연기 같은 것이다.

419
레옹이 그녀에게 싫증이 난 것만큼 그녀 역시 상대에게 물려버렸다. 엠마는 간통 속에서 결혼생활의 모든 진부함을 그대로 발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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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Paperback) (Paperback) - Oxford Bookworms Library 2
루이스 캐롤 지음 / Oxford(옥스포드)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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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계를 보며 여왕이 주최하는 파티에 늦을까 봐 길을 재촉하는 토끼가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예전에 어디선가 얻어놨다가 읽지도 않고 보관만 했던 <Alice's Adventures in Woderland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즘 자꾸 후기가 눈에 띄길래, 안 그래도 예전부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책장에서 빼서 앞으로 볼 책과 함께 두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 다시 보니 참 새롭다.

 

 



앨리스는 책만 보는 언니 옆에서 지루해하다가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는 토끼를 따라 땅 밑 구멍으로 들어간다.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음료와 케이크를 먹고, 속이 상해 엉엉 울기도 하고, 말하는 애벌레와 늘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고양이를 만나기도 한다. 카드에 나오는 사람들과 홍학으로 크로켓을 하다 보니 마음에 안 들면 다 목을 치라는 여왕의 명령에 남은 건 여왕, 왕, 앨리스뿐이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나중에는 이상한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앨리스. 그래도 괜찮다. 그런 세상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많은 소설이나 동화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다. 이건 진짜 이상한 꿈이었다.

2
‘Well! ‘ thought Alice, ‘after a fall like this, I can fall anywhere! I can fall downstairs at home, and I won‘t cry or say a word about it.‘

‘흠!‘ 앨리스는 생각했습니다. ‘한 번 이렇게 떨어져 보고 나니까, 이제 어디서 떨어지든 괜찮겠어! 집에 돌아가 계단에서 떨어져도 울거나 불평하지 않을 거야‘

5
‘Why can‘t I get smaller?‘ It was already a very strange day and Alice was begining to think that anything was possible.

‘왜 몸이 작아지지 않는 거지?‘ 너무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자, 앨리스는 이제 불가능한 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3
‘I don‘t really know, sir!‘ said Alice. ‘I know who I was when I got up this morning, but I have changed so often since then, I think I am a different person now.‘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제가 누군지 알았는데요. 오늘 하루 동안 제가 너무 많이 변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제가 아닌 것만 같아요.‘

20
‘Please,‘ she said, ‘can you tell me which way to go from here?‘
‘But where do you want to get to?‘ said the Cat.
‘It doesn‘t really matter-‘ began Alice.
‘Then it doesn‘t matter which way you go,‘ said the Cat.
‘But I would like to get some where,‘ Alice explained.
‘If you just go on walking,‘ said the Cat, ‘in the end you‘ll arrive somewhere.‘

‘부디‘ 하고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지 알려주시겠어요?‘
‘대체 어디로 가고 싶다는 거냐?‘ 고양이 씨가 말했습니다.
‘사실 어디든 상관은 없어요-‘ 앨리스가 입을 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지 않으냐.‘ 고양이 씨가 말했습니다.
‘아무 데나 가는 건 싫어요. 어디든 가야겠어요.‘ 앨리스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계속해서 걷기만 하면,‘ 고양시 씨가 말했습니다. ‘결국에는 어디에든 도달하게 되는 거야.‘

40
She was not afraid of anyting now, because she was much bigger than everybody in the room.

이제 앨리스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방에 있는 사람 중 앨리스가 제일 컸기 때문이지요.

‘It doesn‘t matter what you say,‘ said Alice. ‘You‘re only a pack of cards!‘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앨리스가 말했습니다. ‘카드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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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Paperback, Open Market ed)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 Bloomsbury Publishing PLC / 2009년 5월
평점 :


소문으로 들었던 <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은 후 원서를 보는 피로감이 넘나 심하여 어지간해서는 안 보겠다고 다짐을 하였으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우연히 보고는 홀린 듯 집어온 책. 마침 번역본도 있길래 펼쳐보았으나 첫 장부터 딱 싫어하는 번역체이길래  냉큼 원서로 집어왔다.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엔 조금 어리둥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모르고 봐서 또야? 했지만 유명한 책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줄리엣은 작가다. 전쟁이 끝나고 신문에 연재를 하고 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런던 거리 곳곳에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있고, 사람들의 표정은 우울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세상에서 줄리엣은 글을 쓸 때조차 조심스럽다.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이 실례가 될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인연. 줄리엣과 '건지'라는 동네 주민 사람들은 편지로 연락을 하다가 건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군에 의해 5년간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인 줄리엣은 이 일을 바탕으로 새 책을 쓰고자 직접 건지로 가서 편지로 친해진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쌓고, 전쟁으로 지친 마음을 서로 달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감자껍질 북클럽'이 도대체 뭔가 했는데 건지 마을 사람들의 독서 모임 이름이었다. 독일 점령 기간에 아주 우연히 시작된. 당시의 전 세계인들이 다 그랬듯 건지 사람들도 힘든 시기를 보낸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시험당하는 험한 일을 겪으면서 유약한 듯 강하게 5년이라는 함께 시간을 견딘다.

 

 



힘든 시기가 지나갔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갈무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편지 하나로 시작해 끈끈한 정을 나누고, 전쟁의 뒷감당을 같이 나누어 가진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이런 소설이 나오려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허구한 날 헛소리 해대면서 역사 왜곡만 일삼는 일본을 보면 아직 멀었지 싶다.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고 바라본 일제 강점기는 꽤 훌륭한 소재가 될 것도 같은데 말이다.

 

 



독일이 철저한 반성을 했기에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악몽과 같은 기억을 이렇게 후손들에게 끊임없이 재생산하여 들려줄 수 있는 거겠지. 뜬금없지만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못 받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유럽의 이런 토양이 부럽다.

6.
But the truth is that I‘m gloomy-gloomier than I ever felt during the war. Everrything is so broken, Sohpie, the roads, the buildings, the people. Especially the people.

하지만 사실 난 전쟁이 끝나기 전보다 지금이 더 우울해. 정말로 정말로 우울해. 세상이 너무 황폐해. 도로도, 건물도, 사람들도 전부 다. 특히나 사람들이 더 그래.

54
But it‘s forgivable to enjoy myself a little - isn‘t it?

그렇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쯤 괜찮겠지? 그렇지?

86
I‘m averting my eyes from the mounds of rubble across the road and pretending London is beautiful again.

건너편 도로에 산처럼 쌓여있는 부서진 잔해에서 눈을 돌리고는 런던이 예전과 같이 아름답다고 믿지.

109
There was an old canvas bathing shoe lying in the middle of the path. Eli walked round it, staring. Finally, he said, ‘That shoe is all alone, Grandpa.‘ I answered that yes it was. He looked at it again, and then we walked on. After a bit, he said, "Grandpa, that‘s something I never am.‘ I asked him, ‘What‘s that?‘ And he said, ‘Lonesome in my sprits‘

길 중간에 낡은 수영용 신발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엘리는 그쪽으로 걸어가 신발을 한동안 바라보았지요.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이 신발에게는 아무도 없네요, 할아버지."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엘리는 다시 한 번 신발을 바라보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갔습니다. 잠시 후 엘리가 말하더군요. "할아버지, 나는 그럴 일이 없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엘리가 말했습니다. "혼자서 외로운 거요."

193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her not to have such a heart.‘
Yes, but worse for the rest of us.

‘그렇게까지 용기 있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야. 그렇지만 그녀가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을 거야.

219
According to Miss Pelletier, it is not that you want to belabour anyone with details, but it did happen to you and you can‘t pretend it didn‘t. ‘Let‘s put everything behind us : seems to be France‘s cry. ‘Everything - the war, the Vichy, the Milice, Drancy, the Jews - it‘s all over now. After all, everyone suffered, not just you. ‘In the face of this institutional amnesia, she writes, the only thing that helps is to talk to fellow survivors.

펠티에 씨는 고통을 설명하는 것으로 남을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었어. 있었던 일을 아닌 척할 수는 없다는 거였지. ‘이제 지난 일은 모두 잊어버리자‘ 프랑스는 목청 높여 외쳤어. ‘전부 다 - 전쟁, 비쉬 통치의 시절, 밀리스 연합, 파리의 드안시며 유대인에 관한 기억까지(이 부분은 검색으로 찾은 거라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 이제는 끝났다고. 따지고 보면 다들 힘들었지, 당신 하나만 힘든 건 아니었다고. ‘이렇게 다 잊어버리자고 기억상실을 교화하는 가운데 펠티에 씨는 맞선 거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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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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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 보긴 했으나 내용은 가물가물했던 <모모>.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던 이 노란색 예쁜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모모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간 저축은행의 영업사원들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금하라고 한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회색 옷과 신발로 차려입은 이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해 시간을 아껴 더 많은 돈을 벌기를 그럴듯하게 이야기하고 다닌다.



회색 영업사원들은 사람들 사이에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나타나지는 않고, 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욕심을 내는 이를 찾아내 언제나 영업에 성공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더 절약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이상하게도 늘 바쁘다. 서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고 마음을 나눌 시간도 없다. 심지어 웃는 법도 잊어버렸다. 그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모모는 보게 된다. 사람들의 시간이 얼마나 위대한 건지를. 시간을 나눠주는 할아버지를 만나 회색 신사들을 쫓아내고 저장되어 있던 사람들의 시간을 구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친구들을 되찾게 된다.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상하게 지루하고 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표현은 환상적이지만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누구보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모모라는 소녀와 사람들의 시간을 교묘히 훔치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시간 도둑들의 이야기. 때로는 동화가 가슴 철렁한 교훈을 주기도 한다.

12
그들은, 무대에서 그려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나 우스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삶이 자신들의 일상의 삶보다 더 현실 같다는 묘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들은 이러한 또 다른 현실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했다.

56
묘하게도 기기를 경망스럽다고 탓하지 않는 사람은 나이 든 베포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말솜씨 좋은 기기가 비웃지 않는 사람은 괴짜 노인 베포밖에 없었다.

199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 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217
가슴으로 느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218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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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Mass Market Paperback)
Jonas Jonasson / Hyperion Books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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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미쳤나 봐"
한참 인기를 끌었던 신인 작가의 소설이라길래 구입한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래 산 사람의 회고록 정도 되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라니. 작가가 전직 기자였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모를 약장수의 이 만담 같은 이야기는 펼쳐지는 장면마다 코미디라 읽는 도중 책을 내려놓고 킥킥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에. 뻔뻔하기 짝이 없구만.



앨런 칼슨 할아버지는 오늘 생일을 맞았다. 몇 시간 후면 100세 맞이 생일잔치가 열린다. 할아버지는 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창문을 열고 지내던 양로원에서 나가버린다. 방에서 신던 실내 슬리퍼를 신고, 스웨덴의 추운 겨울을 막아줄 외투도 없이.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한 건달이 맡긴 여행가방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버스에 갖고 타는 것으로 훔치게 되는데, 이것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야기는 양로원을 나온 할아버지가 몇 주 사이에 겪게 되는 일들과,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뜻하지 않게 온갖 참견을 다 하고 다녔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이거 해도 너무한 거 아냐, 뻥이 지나치잖아, 하다가도 능수능란한 전개가 재미있어 멈출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가 오펜하이머 박사를 만나 핵폭탄 제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마오쩌둥의 세 번째 아내를 만나지를 않나, 낙타 한 마리로 히말라야를 건너 이란으로 들어갔다가 옥살이를 하더니, 탈출하여 본국으로 갔다가, 러시아로 갔다가, 급기야는 북한까지 온다. (아쉽게도 남한은 오지 않는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한동안 살다가 프랑스로 가게 되고, 다시 미국의 CIA 요원이 되어 러시아에 잠입했다가, 미국을 거쳐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읽을 때는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봤는데 막상 다 보고 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앨런 할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비관한 적이 없고, 언제나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까?



100번째 생일날 인생이 지겨워 무작정 떠난 길에서 할아버지의 인생은 또 한 번 바뀐다. 그러나 이런 인생은 앨런 할아버지니까 가능했던 건 아닐까? 별생각 없이 홀딱 빠져드는, 오랜만에 이야기로 홀리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4
But Allan did not get into other people‘s business - if he could avoid it, which he usually could.

하지만 앨런은 남의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남의 일에 신경을 끄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32
Allan‘s father always wondered how the rails could be so straight considering the extent of the workers‘ consumption of sprits, and he had felt a twinge of guilt every time Swedish rails swung to the right or left.

앨런의 아버지는 러시아 근로자의 술 소비량을 생각하면 기차의 선로가 어떻게 그렇게 똑바를 수 있는지 늘 신기했다. 그리고 스웨덴의 기차선로가 늘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강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191
Was it the Lord who had sent Mr. Karlson to help him, or was it the Devil who lay behind?
But God answered with silence.

칼슨 씨를 자신에게 보낸 것이 신이었을까 악마였을까?
하지만 신은 대답 대신 침묵뿐이었다.

232
I do believe I‘ll survive this too, said Allan.

이번에도 또 살아남겠구먼, 하고 앨런이 말했다.


269
But Allan thought that although the soup tasted as it did, he could at least enjoy it in peace, without anyone shouting at him for reasons that he couldn‘t quite follow.

하지만 앨런은 수프의 맛을 떠나,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에게 소리 지르는 이가 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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