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미쳤나 봐"
한참 인기를 끌었던 신인 작가의 소설이라길래 구입한 <The 100-year-old man who climbed out the window and disappeared /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오래 산 사람의 회고록 정도 되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라니. 작가가 전직 기자였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모를 약장수의 이 만담 같은 이야기는 펼쳐지는 장면마다 코미디라 읽는 도중 책을 내려놓고 킥킥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에. 뻔뻔하기 짝이 없구만.
앨런 칼슨 할아버지는 오늘 생일을 맞았다. 몇 시간 후면 100세 맞이 생일잔치가 열린다. 할아버지는 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창문을 열고 지내던 양로원에서 나가버린다. 방에서 신던 실내 슬리퍼를 신고, 스웨덴의 추운 겨울을 막아줄 외투도 없이.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한 건달이 맡긴 여행가방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버스에 갖고 타는 것으로 훔치게 되는데, 이것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야기는 양로원을 나온 할아버지가 몇 주 사이에 겪게 되는 일들과, 젊은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뜻하지 않게 온갖 참견을 다 하고 다녔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이거 해도 너무한 거 아냐, 뻥이 지나치잖아, 하다가도 능수능란한 전개가 재미있어 멈출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가 오펜하이머 박사를 만나 핵폭탄 제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마오쩌둥의 세 번째 아내를 만나지를 않나, 낙타 한 마리로 히말라야를 건너 이란으로 들어갔다가 옥살이를 하더니, 탈출하여 본국으로 갔다가, 러시아로 갔다가, 급기야는 북한까지 온다. (아쉽게도 남한은 오지 않는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한동안 살다가 프랑스로 가게 되고, 다시 미국의 CIA 요원이 되어 러시아에 잠입했다가, 미국을 거쳐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읽을 때는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봤는데 막상 다 보고 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앨런 할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비관한 적이 없고, 언제나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까?
100번째 생일날 인생이 지겨워 무작정 떠난 길에서 할아버지의 인생은 또 한 번 바뀐다. 그러나 이런 인생은 앨런 할아버지니까 가능했던 건 아닐까? 별생각 없이 홀딱 빠져드는, 오랜만에 이야기로 홀리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4 But Allan did not get into other people‘s business - if he could avoid it, which he usually could.
하지만 앨런은 남의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남의 일에 신경을 끄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32 Allan‘s father always wondered how the rails could be so straight considering the extent of the workers‘ consumption of sprits, and he had felt a twinge of guilt every time Swedish rails swung to the right or left.
앨런의 아버지는 러시아 근로자의 술 소비량을 생각하면 기차의 선로가 어떻게 그렇게 똑바를 수 있는지 늘 신기했다. 그리고 스웨덴의 기차선로가 늘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강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191 Was it the Lord who had sent Mr. Karlson to help him, or was it the Devil who lay behind? But God answered with silence.
칼슨 씨를 자신에게 보낸 것이 신이었을까 악마였을까? 하지만 신은 대답 대신 침묵뿐이었다.
232 I do believe I‘ll survive this too, said Allan.
이번에도 또 살아남겠구먼, 하고 앨런이 말했다.
269 But Allan thought that although the soup tasted as it did, he could at least enjoy it in peace, without anyone shouting at him for reasons that he couldn‘t quite follow.
하지만 앨런은 수프의 맛을 떠나,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에게 소리 지르는 이가 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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