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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평점 :
읽은 기간 : 2015.05.17~2015.06.25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00년대 후반의 프랑스와 영국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이전에 '리틀 도릿'을 본 것이 다였다.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고전이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다.
혁명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소시민, 귀족, 프랑스를 떠나 영국에 정착한 이민자, 직업상 프랑스와 영국을 자주 오가는 영국인 등등 당시 혁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사람들이 등장해 서로 씨실과 날실처럼 단단히 엮이게 된다.
이야기는 다짜고짜 시작된다. 배경, 인물소개부터 하고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 설명을 하는 식이다. 그래서 내가 뭐 빼먹고 읽은건 아닌지, 내가 기억을 못하는 대목이 있었는지 중간에 몇 번을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었다. 복선도 풍부하고, 각 사건에 대한 설명도 자세한데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풀어놓지 않고 천천히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읽다보면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도 들어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도 있었다. 등장인물이 아주 많지는 않으나 나는 외국이름은 영 어려워서 적어놓고 봤는데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친 인물 하나가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해서 누구였는지 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확인해야 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앞에서 나온 사건 하나하나, 인물 한 두명의 이야기가 점점 합쳐져 다른 큰 이야기를 이루고 흘러가는 방식이라 대체 무슨 일이 있을지 상상하게 되어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히 인물과, 각 인물들이 둘러싸여 있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다.
205쪽) 로리씨는 그곳에서 숫자가 세로로 죽 나열된 커다란 장부에 줄을 긋고 있었다. 숫자뿐 아니라 구름 아래 모든 것을 셈 하는지 창문에도 수직 쇠창살이 줄처럼 내리쳐져 있었다...(중략)...어떤 장소, 어떤 공간에 있어도 지나치게 커보이는 것이 스타라이버의 묘한 특색이었다...(중략)...멀리 구석에 있던 나이 든 서기들까지 그에게 밀려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근엄하게 신문을 읽던 은행장은 스트라이버의 머리통이 자신의 배를 들이받기라도 한 듯 불편하게 고개를 숙였다. 로리씨는 이런 상황에서 견본으로 추천할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책을 볼 때 번역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원문이 영어이다 보니(프랑스어도 나오나? 그건 모르겠다) 대명사를 많이 활용하고 앞에 나온 명사를 다른 말로 계속 바꿔주는데 그래서인지 말이 좀 모호하게 느껴진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 피하기 힘든 부분이긴 하다) 책이 박대통령 취임 전에 나왔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번역가 및 출판사 관계자들이 그네체의 후계자인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부분 :
115쪽) 특별한 이유 없이 낮고 음울한 목소리에 울음 섞인 억양을 듣는다든가 애처로울 정도로 멍한 표정을 보지 않더라도, 재판정에서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 오랜 고통의 기억이 언급된다든지 하는 외부요인이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이런 상태를 불러일으키지만 가끔 옛 기억은 저절로 떠올라서 그를 우울한 상태로 몰아갔다."
오타도 있었다. (317쪽 '..주민들이 자비에 자신들의 목숨을 맡기게 될까 봐 극도록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작년 10월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수정됐기를 바란다. 문체의 특성을 보아 원문이 상당히 장황한 필체였을 것 같은데 이 번역본은 읽기 편하다. 생략한 부분이 상당한 것 같다.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어쩄든 책 자체는 아주 재미있게 봤다. 매일 흉흉한 사건이 터지고, 빈부격차는 심하게 벌어지고,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달라, 없이 사는 이들은 희망을 잃어가는 내 나라의 현실과 그닥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감정이입해서 봤다.
159쪽) 후작나리는 쥐구멍을 나온 쥐떼를 훑어보듯 그들을 훑어보았다...(중략).."참 이상한 일이군. 자네들은 왜 자신과 자식들을 잘 건사하지 못하지? 자네들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왜 늘 길 위에서 얼쩡거리는지 모르겠어. 자네들 때문에 내 말이 얼마나 상처입었을지 알게 뭔가."
161쪽 ) 이런 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또는 법을 무시하고 어떤 짓을 하는지는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한 터라, 찍소리도 하지 못했고 손 한번 쳐들지 못했으며 눈조차 바로 뜨지 못했다.
결말도 마음에 든다. 인간이란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여서 남을 위해 희생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는 결말이라니 고전답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여자사형수 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은 다름 아닌 가난한 술집 주인 부부로 그려진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힘은 아래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다음 번엔 '레미제라블'을 읽어봐야겠다.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점점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