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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날 : 2015.06.28
작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독서를 할 때 작가가 풀어주는 이야기를 별 생각 안하고 따라가는게 나의 책읽기 방식이었다. 이 책도 그렇게 누워서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어느 구절을 읽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문장을 좀 더 꼼꼼히 보고 밑줄 긋고 내가 느낀 점을 써가며 글을 읽는 습관을 다시 들이고 있다.
이 책은 어느 살인자가 자신의 생을 기억하기 위해 쓰는 기록물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주인공은 이제 늙은이로, 본인의 말에 의하면 '천재적인 살인자'였다. 노인에게는 은희라는 딸이 하나 있다. 자신이 죽였던 부부의 딸인데, 아이엄마의 부탁으로 아이는 본인이 키웠다. 죽이기 전 약속을 했으니까. 그리고 주인공은 '빈말만 일삼는 놈들은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은 은희 하나가 다다. 그런데 웬 놈이 나타나서 은희를 죽이려고 한다. 그것만은 막고 싶은데 하필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그래서 매일 기록을 해나가며 은희를 지키고자 한다. 그런데 이놈의 치매라는 병 때문에 기록을 열심히 해도 기억은 자꾸 빠져나간다. 뭐가 진실인지 누가 내 편인지 나중에는 누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43쪽) 옆집 개가 자꾸 우리 집을 들락거린다. (중략) 퇴근한 은희는 그 개는 우리 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은희가 왜 내게 거짓말을 할까.
85쪽) ..그런데 이건 망상이 아니야. 분명히 뭔가가 없어졌다고. (중략) "그래, 개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있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108쪽) "우리 집 개가 아닌데......대문을 닫아놓든지 해야지 아무 놈이나 막 드나들고." "전에도 있던데요. 이 집 개 아니에요?" "못 보던 놈이 요즘 들어 들락거린다니까요. 저리 가."
간결한 문장으로 빠르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갑자기 결말을 향해, 여전히 차분하고 차갑게 곤두박질 친다. 기억을 잃어가며 그나마 존재했던 자신의 세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만다.
첫번째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다 읽고나니 태연한 주인공의 태도가 좀 으스스하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인 연쇄살인마에게 신이 내린 벌은 생과 사의 중간지점에 가둬버리는 것이었다. 과거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미래에 뭘 해야겠다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현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랜시간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살인을 하며 스스로 고립되는 생을 살았던 주인공에게 어쩌면 당연한, 혹은 최고의 말로가 아닌가 싶다. 첫번째로 책을 읽었을 때가 작년이니까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다시보니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다. 이번에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놓칠까봐 꼼꼼히 적어가며 읽었는데 다 읽자마자 내가 파악한 내용이 맞는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