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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평점 :
조정래 작가님을 좋아한다. 20대 초반에 읽었던 <한강>과 20대 후반에 읽은 <태백산맥>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나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이 두 작품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건 말할 나위 없다.
그랬던 작가님이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다룬 소설을 내셨다고 해서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교육의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냥 그랬다. 물론 읽을만한 책인 것은 맞다. 그리고 구구절절 다 옳은 말씀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처럼 간단하지 않으며 그렇게 이상적이기만 한 접근으로는 풀기 어려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건 소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연 따로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사람이 등장하여 이 나라 교육의 문제를 보여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에게 건 탓에 부담감과 피로함을 느끼는 학생부터 돈 없고 빽 없어 왕따를 당하며 비참하게 살다가 살 길 찾는 걱정부터 하는 가난한 청소년,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시간당 10만 원씩 벌어먹고사는 덕에 한국을 '금광'으로 보는 영어 원어민 선생까지. 이 모든 것은 분명 한국 교육계의 엄연한 현실이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시선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이상적이고 피상적이기만 해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대작가님이라 내 기대가 너무 컸을까. 게다가 어쩔 수 없이 옛날 분인 작가님의 세계에서는 아직도 선생님은 무조건 어려운 대상이고, 좋은 선생은 '제자'(학생 말고)의 일이라면 무슨 일이건 발 벗고 나서며, 학생들은 그런 선생을 무조건 따르기만 한다. 공교육의 체계가 없다시피 한 지 오래라 권위조차 없는 요즘 시대에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하나 더. 소설 전체에 녹아있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 조금 불편했다. 우리의 교육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은 짧은 시일 안에 이뤄진 것도 아니고 누구 한 명의 잘못도 아닐진대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엄마들'을 보는 한심한 시각은 너무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역시 세대차인가? 작가님께서도 아버지들이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회사일 바쁜 건 알지만 자녀와 주말에는 목욕도 같이 하고, (이 방식조차 너무나 예스럽지 않은가!) 대화도 나누라는 식이다. 그럼 그게 다 해결이 되는 건가? 여전히 육아의 책임을 엄마 혼자 떠안고 있는 이 나라에서, 갈 데 모르고 휘청이는 공교육과 부모의 책임감을 자극하며 거대 시장으로 성장한 사교육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려운 엄마들의 고민은 정작 소설에서는 빠져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모든 어머니들을 마치 '자식 사랑에 목메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여편네들'이라고 그려낸 것만 같아 좀 불편했다.
주인공이 집으로 들어와 '저고리를 아내에게 건네는' 장면이라든가 남편에게 존대하는 아내와 반말하는 남편의 모습, 어린아이들의 입을 빌려 '아빠가 엄마를 이기지 못 해 찌질해보인다'고까지 하는 건 좀. 평소에 회사일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 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모든 책임을 전부 다 엄마들 책임으로 모는 것도 바른 시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작가님의 문제의식이 뭔지 알겠다. 그리고 맞는 말씀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굳이 어려운 숫자나 용어를 써가며 낸 통계자료 같은 것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인식부터. 그리고 변화는 나부터. 하루빨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는 사회가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21 성적표에 석차를 기록하는 것은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40 아이들이 성적 줄 세우기에 치여 그렇게 많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정작 학부모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나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59 그러게. 난 어차피 전망 잡친 인생이야.
383 기본 조건 알지요? 포먼과 똑같아야 하는 것. 백인, 푸른 눈, 금발.
42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 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81 아니에요, 전 아직까지 뭘 꼭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오빠처럼 가출 안 해도 되니까. 저는 겁이 많아 가출을 못 하니까 나이 먹더라도 계속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냥 엄마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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