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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2 : 오스의 왕 ㅣ 킹덤 2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12월
평점 :
전작을 다시 읽게 만드는 소설
침묵으로 완성된 죄, 그 이후의 이야기 【킹덤 _오스의 왕】

요 네스뵈 장편소설/ 김승욱 옮김/ 비채
왜 내게 이런 고민을 주시나요??
정의가 패배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느끼는 불쾌함도, 반전의 쾌감도 아닌 지금 내 감정의 정체는 뭘까? 어!! 이거 융인데??
최근 헤르만 헤세를 읽으며 융의 언어로 돌아보면, 그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형은 살아남았고, 동생은 침묵했다. 이야기는 닫혔지만 내 마음은 끝내 닫히지 않았다...... ( 서사는 종결됐지만 심리 과정은 미완의 상태)
최근 융을 접하며 이 책의 1권 표지( 손 그림자)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놀랍다. 또한 이들 아버지가 지어준 형제의 미들 네임 즉 칼빈과 아벨이 주는 상징성!!
누구든 살인자가 될 수 있나?
아니면 일부 사람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막아주는 정신적 퓨주나 도덕적 퓨즈 같은 게 있나? p18
『킹덤』 1권은 오스라는 고립된 산악 마을에서 살아온 두 형제, 로위와 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이들은 서로를 유일한 탈출구이자 보호막으로 삼아왔다. 형 로위는 언제나 계산적이고 냉정하며, 동생 칼이 저지른 실수와 범죄를 대신 정리해왔다. 그 과정에서 살인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는다. 절대 끊어질 수 없을 것 같던 형제의 결속은 균열을 맞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숨겨왔던 욕망과 질투, 폭력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2권은 그로부터 8년 후, 형제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호텔과 마을 개발 사업을 배경으로 다시 시작된다. 겉으로는 안정된 삶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살인과 은폐는 여전히 현재를 잠식하고 있다. 도로를 우회하는 터널 공사, 마을 사람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집요한 경찰 쿠르트의 추적은 형제가 공유해온 침묵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로위는 여전히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만, 칼은 더 이상 보호받는 동생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한때 서로의 전부였던 두 사람은, 이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면서도 서로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소설에서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은 가장 오래된 윤리적 면죄부다.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판단을 중단시켜왔다. 그 모든 반인륜적 가정 폭력에서 반복되지 않았나??
가족은 오히려 도덕적 질문을 유예한다. 로위가 동생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그는 그림자의 논리를 선택한다. 융이 말했듯, 그림자는 악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에 통합되지 않았을 때 폭력적으로 튀어나온다. 로위의 폭력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신화 아래 정당화된 무의식의 분출이다.
반대로 칼의 침묵은 어떤가? 그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융의 관점에서 침묵은 그림자를 억압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억압된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의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여기서 작가가 배경을 산악 지대로 선택한 점 치명적이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 반복되는 폭력, 대물림되는 죄는 집단 무의식이 닫힌 채 순환하는 '공간의 상징'이다.

잔잔히 흘러가는 소설임에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한 것은 주변 인물들이 한몫한다. 두꺼운 볼륨감만큼 다양한 인물이 묘사된다. 1권에 등장했던 지붕 기술자 모에의 딸 나탈리 모에, 친구도 적도 아닌 경찰관 올센은 여전히 저마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두 형제를 중심인물로 부각시킨다.
형한테서 파렴치한 살인자의 모습을 본 거야… 아빠가 옳았어. p400
소설이 다시 쓰는 카인과 아벨 신화는, 폭력이 태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폭력이 이미 가능해졌던 시간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아버지는 로위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보았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대신 두려워했던 방식이다. 그 두려움은 침묵으로 전해져, 형제의 삶 속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으로....
소설은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성장 서사가 되기를 거부한다. 이 작품에서 성장보다는 다만 질문을 남기는데 가족은 정말 최후의 가치인가? 사랑은 언제 폭력으로 전환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도덕적 판단 대신 신화를 선택하는가? 요 네스뵈가 다시 쓴 카인과 아벨은, 서로를 죽이는 이야기라기보다 서로를 놓지 못해 함께 파멸로 가는 이야기다. 살인은 사건이 아니라 결과이며, 침묵은 공범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융의 말처럼, 인간은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 할수록 그것에 지배당한다. 책의 마지막 문단은 눈 쌓인 부달 호수의 섬뜩할 만큼 아름다운 배경 묘사로 끝난다. 내가 아는 북유럽 최고의 소설가 요 네스뵈식 엔딩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자기 안의 형제를 끝내 바라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반복되는 신화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