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 지구 끝에서도 살아남는 작고 여린 잎에 숨은 강인함에 대하여
곽준명 지음 / 현대지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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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초록 세포가 들려주는 생명의 언어

곽준명 저 │ 현대지성




여름이 깊어가는 계절, 식물책은 언제나 화보처럼 다가온다. 초록빛 잎맥과 꽃, 숲의 풍경을 감상하는 에세이를 기대하게 되고 찾아보니 이 책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생물학 카테고리에 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은 하나였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재난 속에서 식물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그 답은 의외로 감성이 아니라 치밀한 생존 전략과 과학에 있었다.

생물학은 최근 학생들에게도 관심이 높은 분야다. 세특과 학생부 관리가 막바지에 접어든 고3에게는 기말고사가 끝난 지금이 오히려 진로 독서를 시작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생명과학을 좋아하지만 대학 교재는 아직 어렵고, 그렇다고 단순한 교양서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이라면 이 책은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 과학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눈높이를 잃지 않는 설명 덕분이다.



저자인 곽준명 교수는 식물 세포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다. 오랫동안 연구실에서 들여다본 미시 세계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낸 이 책!!

식물도 환경을 감지하고, 신호를 주고받으며, 기억을 남기고, 상황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과정을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차근차근 설명한다. 신비롭다. 그동안 신비롭게만 여겼던 식물의 능력이 사실은 세포 하나하나에서 시작되는 정교한 생명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식물이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가뭄이 닥치면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호흡을 조절하고, 병원균이 침입하면 세포 간 신호를 통해 방어 체계를 가동한다. 곰팡이와는 때로는 공생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싸운다. 심지어 한 번 겪은 스트레스를 기억해 다음 위기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우리가 생각했던 '가만히 서 있는 생명체'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식물을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기술의 원천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식물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오염된 토양의 중금속을 흡수하며, 의약품 생산에도 활용될 수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주체가 거대한 기술만이 아니라 작은 잎과 뿌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서 내겐 작은 감동이었다.


과학책이라고 해서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비유와 풍부한 각주 덕분에 복잡한 분자생물학 개념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었고, 연구실에서 직접 촬영한 전자현미경 사진과 QR코드 영상은 책 속 설명을 실제 장면으로 확인하게 해 주었다.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식물 세포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하는 경험까지 더해져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기술만 찾으려 했지만, 어쩌면 답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서 묵묵히 살아남아 온 식물들이 이미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느리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일수록 가장 정교한 생존의 기술을 품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끝으로 지구 끝에서도 살아남는 작고 여린 잎에 숨은 강인함에 대하여!!

식물을 보는 시선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중과학서였다. 특히 생명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 환경과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독자, 그리고 "과학책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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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1
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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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순신, 자기 자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이순신/ 결출판사



우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순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명량대첩', '거북선', '필사즉생 필생즉사' 같은 상징적인 단어들이 떠오른다. 누구나 이순신의 이름을 알고, 누구나 위대한 장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순신의 진짜 위대함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그를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명장'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위대함은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패배와 굴욕을 견뎌낸 마인드에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든 것을 잃었던 백의종군의 시간, 나라와 조정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순간, 열두 척의 배만 남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마음

내 안의 오만을 베어내지 못하면, 세상의 무엇도 벨 수 없다


이순신의 칼끝이 밖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안을 향한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이다. 우리는 늘 세상과 사람을 바꾸려 애쓰지만, 정작 가장 다루기 어려운 대상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분노, 자존심, 핑계, 오만…. 이순신이 평생 싸웠던 가장 강한 적 역시 왜군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1장 '백의종군'이었다.

우리는 실패를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리다. 책은 "과거의 영광을 찢고 밑바닥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모든 명예를 내려놓고 평병사로 돌아가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그는 억울함을 증명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힘을 준비했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쉽게 좌절하고, 억울함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또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가장 강한 의지였다.


이어지는 '자기 경계'에서는 더욱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진다. 남의 허물을 찾기 전에 내 안의 치부를 먼저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는 깊이 공감된다.

읽는 동안 역사책이라기보다 자기 성찰을 위한 철학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강함의 기준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진짜 강한 사람은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오만과 변명, 두려움을 먼저 베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만나보시길



#스스로를경계하지않는자는결코남을벨수없다

#이순신 #한국철학전집 #결출판사 #철학책

#인문학 #자기경계 #필사즉생 #필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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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미술관 - 그 그림엔 사연이 있다, 개정판
문하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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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연 지음 | 평단










명화 감상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방구석에서 시작해 전 세계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지적이고 우아한 명화 산책






예술은 늘 관심사다. 표지부터 아름다운 이 책. 명화 감상은 언제나 설레고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까. 그림의 시대와 사조를 모르고, 화가의 생애를 외우지 못해도 예술을 온전히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명화는 먼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자꾸 정답을 찾으려 한다.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어떤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시험 문제처럼 의미를 해석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면 정작 그림 앞에 오래 사유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예술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이나 그림을 설명하기보다 그림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들려준다. 화가들이 남긴 작품보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는지를 먼저 보여주니, 어느새 그림도 하나의 인생이야기 같다.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명화를 '결과'만 본다. 미술관 벽에 걸린 완성된 작품만 바라본다. 하지만 한 점의 그림 뒤에는 실패한 시간과 가난, 사랑과 상실, 끝없는 의심과 고독이 쌓여 있다는 것. 예술은 영감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낸 시간의 밀도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명화를 감상하는 일은 타인의 삶을 읽는 일과도 닮아 있다. 한 사람을 오래 알아갈수록 그 사람의 말과 표정이 다르게 보이듯, 그림 역시 그 안에 담긴 삶을 알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책이 미술을 특별한 사람들의 취미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을 잘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자신의 경험으로 그림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술은 삶과 동떨어진 고급 문화가 아니다. 사랑은 어떻게 그려졌는지, 슬픔은 어떤 색을 띠는지, 희망은 어떤 빛으로 표현되는지를 화가들은 자신의 언어로 남겼다.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의 감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








책을 넘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미술 감상이란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하나 더 갖게 되는 일이라고.

책은 한 편의 예술 에세이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한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시간을 선물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바라보는 힘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유명한 그림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며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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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 인간관계부터 커리어까지, 생각이 많은 나를 위한 철학 수업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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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지음 | 김현정 옮김 | 갈매나무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고 믿는다

일상의 다양한 질문들, 책에 제시된 예를 들면 좋아하는 일을 꼭 사랑해야 하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타협해야 하는가,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는가 같은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고민이다. 이 책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그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책이라 생각한다.



물론 챗GPT 시대에는 질문 하나를 입력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난다. 하지만 철학은 검색이 아니라 사유의 영역이다. 철학은 누군가의 답을 받아 적는 학문이 아니라, 질문을 오래 붙들고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철학적 사유 자체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철학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중요한 것은 답을 얼마나 빨리 찾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가에 있다.






혹은 그 답이 나에게도 타당한지, 다른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지를 끝까지 고민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정답을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예'와 '아니오'라는 형식으로 서술되지만 독자를 단 하나의 결론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네카와 소크라테스, 니체와 한나 아렌트, 하이데거와 레비나스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하나의 질문을 여러 방향을 제시해준다.






좋은 철학책은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은 뒤 더 오래 남는다. 문장을 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읽는 동안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더 자주 떠올랐다. 최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생겼는데 출근길에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어떤 선택 앞에서도 '철학자라면 이 질문을 어떻게 다시 물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은 삶과 가장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학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마주치는 거의 모든 고민은 이미 오래전 철학자들이 치열하게 씨름했던 질문들이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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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과 전쟁 - 무기화된 화학 이야기
앨리스 러브조이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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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필름과 전쟁』

앨리스 러브조이 지음 |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우리가 기억을 저장하는 물질은, 무엇의 역사를 품고 있는가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많은 것을 남긴다.


한 사람의 얼굴, 여행의 순간, 지나간 시간의 흔적. 필름은 오랫동안 기억을 저장하는 아름다운 매체로 존재했다. 이 책은 그 익숙한 물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필름은 단순히 이미지를 담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화학 산업의 산물이었고,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힘들이 충돌했던 전쟁과 과학기술의 역사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렬했던 지점은 우리가 문화라고 믿었던 것의 뒤편에도 언제나 물질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는 예술이고 사진은 기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필름은 수많은 화학 공정과 자원, 노동, 산업 체계 위에서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이미지가 탄생하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생산의 세계가 있었다.


앨리스 러브조이는 필름이라는 작은 물질을 따라가며 20세기의 거대한 역사를 추적한다. 코닥과 아그파 같은 필름 기업은 단순히 사진과 영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아니었다. 그들은 화학 기술을 축적했고, 그 기술은 평화로운 시대에는 문화산업을 움직였지만 전쟁의 시대에는 군수산업과 연결되었다.

여기서 책이 던지는 질문!!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만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영화를 보고, 사진을 감상하고, 기술의 편리함을 누린다. 하지만 그 기술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자원과 노동이 투입되었고, 어떤 정치적·경제적 구조 속에서 발전했는지는 쉽게 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잊힌 과정을 복원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필름과 핵무기의 연결이다. 필름은 빛에 반응하는 물질이었고, 역설적으로 핵 시대의 흔적을 기록하는 도구가 되었다.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던 기술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파괴적인 무기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묘한 충격을 준다.


이 책을 읽으며 과학기술은 결코 순수한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은 언제나 사회와 정치, 경제와 함께 움직인다. 하나의 발명품은 실험실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 기업의 이해관계, 자원의 이동, 노동의 형태 속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콩고의 우라늄 광산 이야기는 기술 발전의 이면을 바라보게 한다. 원자폭탄이라는 역사적 사건 뒤에는 과학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광산에서 자원을 채굴한 노동자들, 식민지 구조 속에서 움직였던 사람들, 이름 없이 역사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이 있었다. 기술의 역사는 동시에 누군가의 희생과 연결된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

책은 또한 전쟁을 산업과 과학, 환경과 기업, 자원과 권력이 얽혀 만들어지는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는 현대 문명의 편리함 속에도 과거의 선택과 흔적은 남아 있다.


이 점에서 필름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현대 문명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우리는 필름 대신 스마트폰과 클라우드를 사용하며 기억을 저장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은 어떤 물질 위에 서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역사는 무엇인가.


좋은 역사책은 이미 알고 있던 사건을 새롭게 보게 만든다.

이 책은 사진과 영화라는 친숙한 영역에서 출발해 전쟁, 화학, 핵무기, 환경 문제라는 거대한 세계로 독자를 데려간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지뿐인가. 아니면 그 이미지를 가능하게 만든 세계까지 함께 기억해야 하는가.


필름은 수많은 순간을 기록했다. 사람들의 얼굴과 시대의 풍경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필름은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과 기술, 전쟁과 선택의 역사까지 품고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필름의 뒷면을 비추는 한 장의 사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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