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저주 - 문명의 붕괴로 보는 인류사
루크 켐프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골리앗의 저주」 우리가 문명을 믿는 방식에 대하여

루크 켐프/ 까치글방(펴냄)




문명 붕괴의 역사라니 흥미로웠다. 역사를 읽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 어떤 문명이 왜 몰락했는지 알면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과거의 붕괴를 통해 미래를 예언하기보다, 붕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사는 흔히 거대한 존재들의 이야기로 기록된다. 제국이 세워지고, 영토가 확장되고, 왕조가 번성하고, 어느 순간 쇠락하는데 이것은 마치 루틴같다. 로마의 몰락도, 청동기 시대의 붕괴도 우리는 대체로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 거대한 역사 아래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과 저항, 이탈과 생존을 함께 바라보는데 이런 관점이 내겐 매력적이었다.

역사 데이터베이스에 과학적 분석이라니 무척 흥미로웠다.



문명이 무너졌다는 말은 그 문명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거대한 제국의 멸망은 역사책에서는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방식이 바뀌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익숙했던 질서가 사라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여기에서 ‘골리앗’이라는 개념이 언급된다.

골리앗은 단순히 거대한 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크고, 더 복잡하고, 더 중앙집중화된 문명이 반드시 더 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명은 성장하면서 더 많은 것을 연결한다. 더 많은 사람과 자원을 움직이고, 더 정교한 체계를 만들며, 더 큰 힘을 갖는다. 하지만 바로 그 복잡성이 어느 순간에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커질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커질수록 무너졌을 때의 충격도 커진다는 것을 잊는다.



이 책에서 고대의 청동기 시대와 중국의 제국, 로마의 몰락, 식민지화와 현대 세계의 문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흥미로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와 장소는 모두 다르지만, 거대한 체계가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그 체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흔들리면서 결국 균열이 발생하는 과정에서는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명의 발전은 정말 계속해서 ‘진보’하기만 하는 것일까.



한때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것들도 결국 변한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무너지고 나서가 아니라 문명이 무너지기 전에 알아야할지도 모른다. 거대한 골리앗들은 끈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권력이란 그렇다고 책은 말한다.

이 책은 문명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골리앗이라는 은유를 통해 쉽게 설명해준다. 문명사에 관심 많으신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골리앗의저주 #루크켐프 #까치글방 #문명붕괴

#문명의붕괴 #인류사 #역사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ㅣ 흔들릴 때마다 나는 OO를 읽었다 2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쓴 주관적인 리뷰



『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저 | 닻



빅터 프랭클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보다, 지금의 삶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는 프랭클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핵심 개념을 따라갈 수 있는 책이고, 이미 프랭클을 읽었던 사람에게는 익숙한 문장들을 다시 자신의 삶 쪽으로 가져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던 독자라서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책을 여러 번 떠올렸다.

같은 ‘의미’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수용소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이야기했던 프랭클의 사상이 평범한 일상으로 옮겨오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질문이 너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런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흔들리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찾아오고, 열심히 살아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런 순간에 프랭클의 질문은 시작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여기서 언급되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이라는 개념!!




우리는 흔히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면 화가 나고, 실패하면 좌절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불안해진다.

그런데 프랭클이 말하는 자유는 그보다 훨씬 작고도 강력한 곳에 있다.

사건 자체를 통제할 수 없더라도,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익숙한 자기계발서에서 본 문장인가 싶었다!!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자유가 아니라 내면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라는 단어의 무게가 조금 달라졌다.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선택하는 능력이 아니라, 때로는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나의 태도를 선택하는 능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왜’를 묻는 것.



이것은 책의 핵심적인 사유가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어쩌면 그것이 프랭클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마리 베니딕트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거사 크리스티 실종이라는 미스터리를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마리 베니딕트 지음, 백지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




마리 베네딕트 저 · 백지민 역 | 문학동네








이렇게 흥미로운 책이라니!!

애거사 크리스티를 좋아해서인지 이 책은 시작부터 조금 특별했다.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사라진 사람, 의심스러운 남편, 설명되지 않는 공백, 서로 다른 진술,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내 맴돌았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실제로 1926년 12월 3일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알고 계신 부분일 것이다.

자동차만 남겨둔 채 흔적 없이 사라진 그녀는 열하루 뒤 호텔에서 발견되었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과연 기억이 정말 없었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저자 마리 베네딕트는 바로 그 열하루의 공백을 소설로 채운다.

실제 사건을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설정은 꽤 매력적이다. 이미 결말이 존재하는 사건인데도, 소설은 그 결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애거사는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질문이 조금씩 바뀐다.

과연 그녀는 왜 사라진것일까?? 우리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구성도 이런 의심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한다.






한쪽에서는 애거사가 사라진 뒤 남편 아치볼드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애거사의 과거와 결혼생활을 담은 원고가 펼쳐진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현재와 과거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독자는 두 이야기를 동시에 추리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건을 추리한다.

그다음에는 인물을 추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술 자체를 추리해보게 된다.


누가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누가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추리소설에서는 흔히 단서를 찾는다.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기 위해 행동을 관찰하고, 말의 모순을 찾고, 이상한 타이밍을 의심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책 속에서 등장하는 ‘믿을 수 없는 화자’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숙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추리소설의 기법을 넘어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이야기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선택한다. 불편한 진실은 빼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애거사의 실종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애거사는 아직 전설이 완성되기 전의 한 사람이다.

남편의 사랑을 믿고 결혼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글을 썼고,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가까운 사람의 배신과 무관심 앞에서 상처받았다.

그녀가 위대한 작가였다는 사실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살인사건처럼 정교하게 짜인 사건 자체보다도, 애거사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애거사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온 사람이다. 참으로 매력적인 분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사건을 따라가며 읽어도 좋고, 애거사 크리스티를 좋아한다면 그녀가 남긴 작품들을 떠올리며 읽어도 좋을 책!

추천합니다 !!






#마리베니딕트 #애거사크리스티 #실종사건 

#애거사크리스티미스터리 #행방불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위로의 역사
자크 아탈리 지음, 이주상 옮김 / 이니티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위로의 역사 」 죽음을 대하는 방식 ― 문명의 역사는 위로의 역사였다

자크 아탈리 저 · 이주상 역 | 이니티오




죽음은 정해진 것,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는 진리!!! 시대가 달라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끊임없이 달라져 왔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품었던 생각은 이 책은 죽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이 죽음을 견디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왔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고대와 중세, 종교의 시대를 지나 계몽주의와 근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죽음과 상실 앞에서 늘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신화와 의례, 종교, 철학, 과학, 의학, 예술, 심지어 시장과 소비까지.

시대가 바뀌면서 위로의 얼굴만 달라졌을 뿐, 인간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놀라웠던 것은 저자는 위로를 하나의 문명적 장치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죽음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냈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했고, 철학은 죽음을 사유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으며, 근대의 이성과 과학은 인간의 불행을 역사와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결국 문명은 죽음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죽음을 견딜 수 있는 이야기와 구조를 만들어왔다.




책을 읽다 보면 문명의 발전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점 참 좋았다.

우리는 흔히 문명을 인간이 더 오래 살고, 더 편리하게 살고,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문명은 동시에 인간이 상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온 것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가 담당했던 위로의 역할을 살펴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책이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는다고 느꼈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죽음을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학은 수명을 연장했고, 과학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며, 심리학은 애도의 과정을 분석한다. 하지만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죽음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슬픔조차 너무 빨리 회복해야 하는 감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탈리가 인용한 세네카의 말처럼 슬픔에 너무 일찍 개입하는 위로는 때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픔에는 그것을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위로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누군가 힘들어하면 무언가를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이 서둘러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일 때가 있다.

그래서 위로는 말을 잘하는 능력보다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 개념이 ‘이기적 이타주의’였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고통을 바라보는 자신의 불편함을 덜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위로가 위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타인을 향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견디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위로는 상당히 인간적인 행위가 된다.



나는 슬픔을 만났을 때 무엇으로 나를 위로하는가.

죽음을 없앨 수 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 없는 사회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회일 테니까.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 정말 추천하고 싶다.



#위로의역사 #자크아탈리 #이주상 #이니티오 #책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