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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역사
자크 아탈리 지음, 이주상 옮김 / 이니티오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위로의 역사 」 죽음을 대하는 방식 ― 문명의 역사는 위로의 역사였다
자크 아탈리 저 · 이주상 역 | 이니티오
죽음은 정해진 것,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는 진리!!! 시대가 달라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끊임없이 달라져 왔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품었던 생각은 이 책은 죽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이 죽음을 견디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왔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고대와 중세, 종교의 시대를 지나 계몽주의와 근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죽음과 상실 앞에서 늘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 신화와 의례, 종교, 철학, 과학, 의학, 예술, 심지어 시장과 소비까지.
시대가 바뀌면서 위로의 얼굴만 달라졌을 뿐, 인간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놀라웠던 것은 저자는 위로를 하나의 문명적 장치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죽음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인간은 의미를 만들어냈고, 그 의미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했고, 철학은 죽음을 사유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으며, 근대의 이성과 과학은 인간의 불행을 역사와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결국 문명은 죽음을 없애지는 못했지만, 죽음을 견딜 수 있는 이야기와 구조를 만들어왔다.
책을 읽다 보면 문명의 발전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점 참 좋았다.
우리는 흔히 문명을 인간이 더 오래 살고, 더 편리하게 살고,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면 문명은 동시에 인간이 상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온 것이기도 하다.
특히 종교가 담당했던 위로의 역할을 살펴보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책이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는다고 느꼈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죽음을 훨씬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학은 수명을 연장했고, 과학은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며, 심리학은 애도의 과정을 분석한다. 하지만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죽음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슬픔조차 너무 빨리 회복해야 하는 감정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탈리가 인용한 세네카의 말처럼 슬픔에 너무 일찍 개입하는 위로는 때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픔에는 그것을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위로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누군가 힘들어하면 무언가를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이 서둘러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일 때가 있다.
그래서 위로는 말을 잘하는 능력보다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 개념이 ‘이기적 이타주의’였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그 고통을 바라보는 자신의 불편함을 덜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위로가 위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타인을 향한 행위이면서 동시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견디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위로는 상당히 인간적인 행위가 된다.
나는 슬픔을 만났을 때 무엇으로 나를 위로하는가.
죽음을 없앨 수 없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 없는 사회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회일 테니까.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 정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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