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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마약 중독 부모 아래서 태어난 보육원 출신의 소년이 구글과 메타에서 일하는 신경과학계의 거물이 되었다고 쓰면, 그 사이의 간극을 단숨에 뛰어넘으면서 그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생략된다. 사람들은 성공한 결과만 보려고 한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문장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너무 쉽게 납작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내가 주의깊게 봤던 것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이에 놓여 있던 수많은 무질서와 우연, 관계와 선택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상승하는 성장담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무질서, 카오스, 질서, 카오스의 가장자리, 창발이라는 다섯 개의 부로 나눈다. 과학 개념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이 책의 장르가 에세이인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매력적인 설정이다.
어린 시절의 삶은 말 그대로 무질서에 가까웠다. 부모의 중독과 가정의 붕괴, 가난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아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면 교육도 계급사다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어보면 느낄수 있다. 교과서만 깊이 파고 사교육 도움없이 학교 공부 위주로 좋은 대학을 간다는 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수 없는 구조다! 교육 편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그 결과는 양극화로 이어진다.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 하나는 그 순간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반복되고, 반복된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낸다. 저자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하나의 기회라기보다, 작은 호기심과 만남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만들어낸 거대한 패턴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창발’이라는 개념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창발은 단순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개별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 역시 그러했다고 말한다. 보육원에서 자란 한 아이가 어떻게 뇌의 복잡성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가 되었는가. 왜 어떤 아이는 트라우마를 견디고 살아남고, 어떤 아이는 그러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결국 그의 삶과 연구를 하나로 연결한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을 넘어선다.
자신이 연구하는 뇌와 자신의 삶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끝내 풀리지 않았던 질문들이 그를 신경과학이라는 세계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는 자신의 삶과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세계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평생 붙잡게 만드는 힘은 때로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무엇이 궁금해서 그것을 놓지 못하는지 돌아보면 연구의 출발점에는 한 사람의 삶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가난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지를 깨닫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성공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성공한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필연처럼 보이기 쉽다. ‘나는 어려움을 이겨냈고 결국 이곳까지 왔다’고 말하는 순간 과거의 우연과 도움, 만남과 운은 뒤로 밀려난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 과정을 꽤 솔직하게 보여준다.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았고, 저자 역시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카오스의 가장자리’라는 제목이 마음에 남는다.
완전한 무질서도 아니고 완벽하게 통제된 질서도 아닌 곳. 아주 작은 변화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경계. 저자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들은 바로 그런 가장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보인다.
지금 작은 호기심 하나가 훗날 어떻게 작용할 지 독자들의 삶에도 좋은 보기가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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