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뇌를 읽는 기술
박정조 지음 / 문학세계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박정조 지음/ 문학세계사(펴냄)











왜 리더십이 중요한가? 한때 사교육 시장에서는 리더십 교육이 유행처럼 번졌다. 토론과 발표, 스피치와 협업을 통해 앞에 서는 법을 배우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났다. 많은 이들이 좋은 리더가 되는 법을 익히려 애썼다. 그러나 막상 조직에 들어와 마주하는 현실은 어떤가?

우리는 생각보다 리더의 자리에 서기보다, 누군가 리더 아래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어려움은 늘 리더의 문제로만 환원되거나, 반대로 개인의 성격 탓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 책의 강점은 목차에서 이미 또렷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리더를 이해하라는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관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점들이 꽤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특히 초반부를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건, ‘리더를 이해한다’는 말의 방향이 기존 내가 알던 것과 좀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은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한 기술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팔로워의 자리에서 리더의 사고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것도 성격이나 인품 같은 익숙한 기준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이라는 틀을 통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리더 역시 불안정한 존재라는 점이 강조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뇌가 권력을 만나면 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챕터였다. 권력이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판단을 낳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책임과 압박이 클수록 인간의 뇌는 단순화된 결정을 선호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은 삭제된다. 우리가 흔히 “왜 저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런 부분들이 인지적 압축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지점에서 책은 리더를 마냥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 가능한 존재로 언급한다.


상대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이해하는 것.






조직 내 갈등은 흔히 있는 문제다. 그러나 누가 더 나쁜가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각자의 위치에서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리더는 압박 속에서 단순화하고, 팔로워는 그 단순화에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해가 증폭된다. 책은 관계를 완벽히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해석하는 방식을 바꾼다. 예전 같으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였을 장면을, 한 번쯤 구조로 바라보게 만든다. 상사의 말 한마디를 몇 번이나 곱씹으며 속앓이하는 요즘, 그 말이 나오게 된 조건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은 내 삶에 바로 적용해 볼 만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말한 사람, 들은 사람, 그리고 당사자!

이 책, 의외로 꽤 흥미롭다. 상대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은 다양한 실제 사례를 통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진짜 팔로워는 겨울에 드러난다"라는 문장이나, ‘뒷담화의 세 가지 유혹을 이기는 법’,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특성에 대한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좋은 리더가 되는 법이 아니라, 리더와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관계를 읽고 대응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해답을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라, 뇌와 심리의 작동 원리 속에서 찾는다. 이 책의 저자가 자녀의 수능시험날 에피소드를 소개했는데 그때 소개한 시를 떠올리며 글을 닫는다.


밤이 되었다고 길을 사라지지 않는다. 새벽과 함께 길을 다시 온다.....






#리더의뇌를읽는기술 #박정조 #문학세계사

#직장인추천도서 #조직생활 #직장인공감

#리더십이해 #팔로워십 #관계의기술

#인간관계 #심리학책 #뇌과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N. K. 제미신 외 지음,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 황금가지







첨단과학 인공지능의 시대에 독자들은 새로운 공포를 원한다. 무려 19편의 새로운 감각, 없던 것을 읽는 느낌 그 자체였다.

공포는 언제나 ‘밖’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왔다. 문 너머, 어둠 속,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하지만 여기 단편 모음을 읽고 나면 깨닫게 된다. 그 비명은 바깥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평소 좋아하는 N. K. 제미신, 레슬리 은네카 아리마를 비롯한 작가들이 참여한 이 앤솔러지는 전통적인 호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괴물은 분명 존재한지만 그 괴물은 유령이나 악마의 형태보다, 배제된 기억, 왜곡된 역사, 혹은 지워진 목소리로 나타난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미신 작가님의 《건방진 눈빛》에서 묘사되는 눈은 정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이 분의 장편소설을 여러 차례 읽은 적 있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묘사하는 분은 아니셨는데 이번 단편에서는 그 극한을 보여준다.





설명되지 않는 공포, 게다가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어서 더 무섭고 더 두렵다. 《라시렌》에서 언급되는 물속의 여자는 누굴까? 마리와 러블리 세 자매, 실종된 마리가 돌아오는데 그것은 진짜 마리일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자 주술사》 자메이카 출신의 여상 작가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안녕, 어둠, 내 오랜 친구여.

자네와 다시 이야기하러 왔네. p266


앤솔러지를 덮으며 신선했던 감각이 살아남는다. 단편의 특성상 이야기들이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읽는 내내 길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단편이라는 형식이 원래 그렇듯, 하나의 세계에 막 적응하려는 순간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독자는 그 여백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이런 방식이 단편이 주는 실험적인 성향. 매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단편을 사랑한다.





이 작품들은 공포를 완성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파편처럼 던져놓고, 독자가 그것을 이어 붙이게 만든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 끝내 해소되지 않는 불안. 마치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 소리가, 시간이 지나서야 점점 또렷해지는 것처럼.






#저밖에서비명소리가

#뉴블랙호러

#황금가지

#호러소설

#단편집

#앤솔러지

#N_K_제미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200살 할머니
이인 지음 / 향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 인 지음/ 향기책방 (펴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아픈 가족을 돌보고, 그들의 식사를 차리고 의복을 깨끗이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들.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이 수많은 노동이 아무런 대가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성만의 의무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성애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지만, 정작 그 가치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다.





요양원, 사회 보장 제도, 가사 도우미와 육아 도우미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며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그동안 누군가가 아무 대가 없이 감당해온 일들이 사실은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는지, 그리고 그 노동이 얼마나 쉽게 평가절하되어왔는지. “여자라서 당연하다”는 말 아래 묻혀 있던 시간들이, 이제는 비용이라는 형태로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 셈이다.






『나의 200살 할머니』를 덮고 나니,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 사회의 돌봄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되던 일상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했는지, 우리는 왜 그 가치를 뒤늦게야 인정하게 되었는지.





이런 생각은 내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같은 어떤 이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삶을 지탱하던 사람들의 존재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 현장에서의 육체 노동,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어지던 수많은 손길들. 그때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가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성별을 모른채로, 어떻게 이 저자분이 할머니를 돌보게 되었는지 사연이 궁금했던 마음으로 막연하게 출발했다. 덮고나서 인터넷 서점 정보를 보고 알았다.





한때는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던 사람이, 이제는 먹여지고 돌봄을 받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그 변화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결국 겪을 일이다. 돌봄의 그 대상이 나로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담았다. 식사를 하셨는지 묻고, 이름을 부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 책이다. 할머니의 유년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삶을 차곡차곡 담았다. 100살을 넘어 200살을 향해 간다는 설정은 농담처럼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그것이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얼마나 깊은지 와닿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면, 이 책은 더 이상 특정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미 떠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직 곁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순간보다, 읽은 뒤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쓰인다.








#나의200살할머니

#이인

#향기책방

#에세이추천

#가족이야기

#할머니

#돌봄노동

#모성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주론 - 제5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까치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까치글방(펴냄)





군주론은 이미 수많은 역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좀 더 기대감이 높았던 것은 마키아벨리 전공학자가 직접 번역한 한국 최초의 이탈리아어 완전 번역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미 읽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군주론』을 새롭게 확인하는 독서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오래된 고전이지만, 이번 개정5판을 읽으며 가장 먼저 실감되는 것은 텍스트 자체가 새롭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군주론을 집필할 당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상황은 어려웠다. 그는 한때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했지만,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되찾으면서 공직에서 쫓겨났고,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까지 당한다. 이후 풀려나긴 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잃은 채 시골로 물러나야 했다.




바로 그 유배와도 같은 고립의 시간 속에서 『군주론』이 쓰였다. 낮에는 농사일을 돕고, 밤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고전 속 인물들과 대화하듯 글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메디치 가문에 헌정된 책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정치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현실제안서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군주의 유형을 나누는 방식이다. 세습 군주와 신생 군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치해야 하며, 특히 새롭게 권력을 잡은 군주는 훨씬 더 많은 위험과 저항에 직면한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얻은 만큼,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때로는 잔혹한 선택도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인 판단보다는 그것이 효과적인지를 묻는 듯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 인간에 대한 전제다. 그는 인간을 쉽게 변하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두려움과 욕망에 지배되는 존재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움을 사는 것과는 구분해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공포를 통치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번 판본의 핵심은 뭘까?

한 번 번역되고 끝난 책이 아니라, 여러 차례의 개역을 거치며 다듬어진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역자 후기에서 드러나듯, 이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이탈리아어 원전을 기준으로 다시 읽고, 다시 옮기고, 다시 검토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되었다.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석이자 비평 아닐까?




무엇보다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고전 특유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도 과하게 권위적이지 않은 디자인이라, 읽기 전부터 한 번 더 손이 가게 만든다. 오래된 텍스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번역한 기획 의도와도 잘 맞아보인다.




재독한 군주론 역시 질문이 늘어난다.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또 인간은 얼마나 쉽게 변하는가. 그런 불편한 질문들을 남긴 채 책을 덮게 된다. 그럼에도 다시 펼쳐보게 되는 이유는, 이 책이 말하는 현실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군주론

#니콜로마키아벨리

#까치글방

#고전읽기

#정치철학

#권력의본질

#인간본성

#현실주의철학

#마키아벨리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드워드 윌슨 리 저 | 김수진 역 | 까치(까치글방)








유럽 지성의 방향을 바꾼 사람!!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누구인가? 책은 피코의 출생과 유년시절로 시작된다. 단테의 시곡 첫 구절을 거꾸로 암송했던 아이는 자라 고작 스물네 살에 900개의 논제를 던지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의 어머니가 대단한 인물이었다. 딸들에게도 라틴어를 가르쳤던 분이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은 학문적 밀도로 가득 차 있고, 삽화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곧바로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의미를 붙잡으려 매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런 경험이 이 책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감을 잡기 위한 동시대 유명 인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미켈란젤로 (1475–1564), 보티첼리 (1445–1510)가 있다.

대략 모나리자, 천지창조가 만들어지던 바로 그 시대, 대략 500~600년 전을 떠올리면 된다.



피코가 살았던 시기 르네상스 지식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을 연결하며 하나의 진리를 꿈꿨다. 지금의 우리는 오히려 넘쳐나는 언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다면 피코가 말한 ‘천사들의 문법’은 어쩌면 어떤 초월적 언어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언어의 가능성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그의 스승이자 인문주의자였던 안젤로 폴리치아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 관계를 넘어선 강한 정서적 결속으로 묘사되는데,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다소 동성애적으로 읽힐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한 관계의 규정이라기보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서로의 언어와 사유에 깊이 매혹되며 형성했던 지적 친밀성으로 볼 수 있다.







말과 사유를 매개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 속에서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관계. 어쩌면 피코가 믿었던 ‘언어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은, 가장 가까운 이 관계 속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코의 짧은 생애에 이렇게 깊은 영향을 주고 받은 인물은 적지 않다.

스승이자 르네상스 플라톤주의의 중심 인물이었던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인간과 신, 그리고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연결하려는 사유를 피코에게 심어주었고, 그 사유는 이후 ‘모든 지식의 통합’이라는 피코의 야심으로 확장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의 후원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는 단순한 정치적 보호자를 넘어, 다양한 사상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한 인물이었다. 피코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후원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던 교회 권력, 특히 교황 인노첸시오 8세와의 긴장은 또 다른 방식의 ‘영향’이었다. 그의 900개 논제가 단죄되는 과정은, 피코의 사유가 어디까지 나아갔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는 혼자서 세계를 통합하려 천재가 아니다. 읽기 전에 나도 오해했던 부분이다.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서는 개별 대상들이 모든 물질의 공통된 본질에 의해 통합되는데, 이런 상태는 숭고한 말을 통해 주변 세계와 분리된 느낌이 흐려질 때 경험하게 된다.”

역자 후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 문장은 이 책을 끝까지 밀고 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에드워드 윌슨 리가 전하는 이 사유는 단순한 철학적 문장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인식 자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있다.






책은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지적 격변 속에서 피코가 왜 ‘언어’에 집착했는지를 따라간다. 그는 히브리어, 라틴어, 아랍 철학, 신비주의 전통까지 넘나들며 모든 지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언어에서 찾으려 했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더 높은 존재로 끌어올리는 매개체였다.






피코의 사유는 그의 시대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이후 유럽 사상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를 통해 정립된 르네상스 플라톤주의를 한층 확장하며,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의 진리로 묶으려는 그의 시도는 근대 인문주의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특히 인간을 고정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존재로 본 그의 관점은 이후 인간 중심 사유와 개인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문화와 지식을 가로지르는 통합적 사고는 오늘날 비교철학이나 융합적 사유의 선구적 모델로 다시 읽히고 있다.





그의 철학을 다시 읽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답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사상,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분열하는 시대에 그는 이미 모든 지식이 하나의 진리를 향해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했다. 특히 언어가 인간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 변화시키고, 나아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미디어와 담론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결국 피코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말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존재인지 스스로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






#천사들의문법 #에드워드윌슨리

#조반니피코델라미란돌라 #르네상스

#인문주의 #언어의힘 #철학책추천 #인문교양 #독서기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