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5
장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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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작가의 [취미는 사생활]을 읽었다. 은행나무 시리즈 N 15번째 작품이다. 거주 불안. 영혼까지 끌어모아서라도 자가를 마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집주인에게 질질 끌려다닐 것만 같은 막막함을 하염없이 퍼붓는 시대이다. 은협의 가족이 그렇다. 은협의 남편 보일씨의 직업이 무엇인지, 벌이는 얼마나 되는지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가 넷인데도 아들 둘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방 3개짜리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보일이 은밀한 취미생활을 시작하며 숨통을 틔우고 싶게 만든 이유 중의 하나는 빚을 져서 라도 아파트를 구매하자는 의견에 은협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은협이 마음을 바꾼다 하더라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야만, 아니 대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 정도로 아파트 값은 올랐고 은협의 가족은 영원히 전세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이 아들에게 신혼집으로 내줄 것이니 어서 빨리 집을 나가라고 독촉한다. 집주인이 기존 전세세입자에게는 5% 이상의 전세비를 올릴 수 없기에, 새로운 세입자를 찾으려는 꼼수인 것인지 진짜로 아들의 신혼집을 마련해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자기가 들어와 살 거라는 말로 세입자를 내보내고 월세로 바꾸어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은협은 집주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고, 괜히 보일러를 교체할 것인지 물어보려고 전화해서 이런 파국을 맞게 된 것이라 자책한다. 은협에게 남은 선택은 서울 근교의 지방으로 이사하던지, 서울에 남으려면 빌라로 이사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빌라는 너무나도 싫었다. 


은협의 경우처럼 초등학교 남학생 두 명의 자녀와 아직 곧 취학을 앞둔 유치원생 소연과 갓난 아기 민희까지 네 명의 아이를 두었다면, 소연이 피가 날때까지 긁어서 피부과를 데리고 가는 동안 민희까지 돌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갓난아이를 잠시라도 맡아준다면 훨씬 더 수월하고 빠르게 소연이의 진료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소설의 화자인 ‘나’는 은협을 도와주는 착한 이웃으로 등장한다. 23층짜리 아파트 맨 윗층에 사는 은협과 바로 아랫층에 사는 ‘나’는 민희를 돌봐주다가 소연이 이모라고 부르며 애착을 갖게 되면서 언니, 동생 사이로 가까워지게 된다. 화자가 나중에 은협의 전세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은협에게 전세로 내주고 자신은 은협이 세입자로 있던 곳에 새로운 세입자로 들어가는 나름의 희생 정신을 발휘한 결단을 내리며 농담처럼 층간 소음을 복수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은협의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애써 그럴 필요 없다고 통 큰 결단을 내린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만, 결말에 이르게 되면 화자가 농담처럼 던지 말은 진심이었을지도 아니 그런 복수의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사기를 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화자가 은협네 가족을 도와주면서 은협의 남편 보일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게 되었고, 여장을 즐기며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던 보일은 아내와 화자의 습격으로 인해 모든 게 들통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원한 것은 여장이 아니라 잠시도 혼자 일 수 없는 집에서의 탈출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보일의 무책임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기에 보일이 땅을 팔라는 제안에 화자가 동의한 것 또한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은 이가 은협의 가족을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선행이 아니었을까란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화자의 기인한 행동들과 현 프로라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얼핏 화자가 남편의 죽음으로 삶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고 서서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해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결국 화자 또한 비참하고 어이없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지만, 남겨진 은협의 가족은 그리고 소연이 착한 일을 하고 받은 10원짜리 동전 50개를 모아 마지막 선물로 전해준 새콤달콤은 너무나도 가슴 아리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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