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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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끝내주는 인생]을 읽었다.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견뎌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부모님과 조부무님의 이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방식이, 앞에 가족 관계를 언급하는 말이 없으면 그냥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잠깐 동안 부모와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 친근한 언급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저자가 사랑하는 방식임을 그리고 그렇게 존중하며 애써 기억하려는 애정이 느껴져 참으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여겨진다. 그리고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해준다. 아마도 가족들이 책의 내용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열렬히 응원해 줄 것이라는 담백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작업으로 인해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딴세상 사람들처럼 보인다. 분명 요즘에는 어딜가도 쉽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손해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저자는 어디서 이렇게 귀한 사람들만 골라서 만나는 것일까? 내가 그동안 너무 색안경을 쓰고 사람들을 바라본 것일까? 아님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명한 명제 앞에서 막연하게 책에 나온 사연들이 부러워지는 것은 나뿐일까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어찌보면 강연의 달인일 것 같은 저자조차도 군부대에서의 강연과 공연에서는 동생의 말처럼 그야말로 ‘좆됐다’는 표현이 얼마나 리얼하게 다가오는지, 막바지에 극적 반전을 기대했으나 역시나 군대는 바뀌지 않는다는 DP  드라마 속 봉디샘의 말처럼 가장 흑역사로 남을 강연을 마치지 않았을까 싶다. 대체 이슬아 작가의 남자 팬은 어디에 있는 거냐는 질문에 읽는 동안 여기에 있다고 무음의 아우성을 보냈다. 그냥 지금처럼 익명의 소리없는 팬으로 남아 있을테니 그까이꺼 군대에서 지들끼리 킥킥거리는 애송이들의 무관심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길 바란다. 역시나 군대는 여전히 어렵다.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 마감에 대한 그리고 글쓰기의 압박에 대한 저자의 마음을 토로한 부분이 있다. 어느 작가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일간 이슬아’처럼 매일 무엇인가를 써내야 하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나 또한 어느 정도 경험해봤기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고 하지만 막상 새 책이 매일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고 세상에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지 경탄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자가 오디오매거진을 들으며 전해주는 내용은 우리가 경탄해마지 않는 위대한 작가들도 어쩌면 여느 사람들처럼 고뇌와 자기연민의 시간을 견뎌내며 그렇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성장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우연히 본 신병 시즌2에서 어리버리하지만 엄청난 열정을 가진 FM소대장이 주인공 군수저 일병 빅민석의 찬사에 이렇게 대답한다. “잘하고 못하고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그건 시간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거 하나 뿐이야.”


“직업이든 공부든 생계든 해야만 하는 일이 있잖아요. 회피할 수 없는 일, 회피하면 모든 게 무너지는 그런 일이 누구한테나 있어요. 일루수한테 공은 그런 거죠. 그런데 그 일이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잘 써야만 하는데 자신이 없는 원고를 마주할 때면 서툰 수영 실력으로 파도에 담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놀랐다. 이 사람도 무서워한다는 것에. 잘해야만 하는 소중한 일들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에. 선생님에게도 글쓰기가 그런 공이라는 사실이 무지막지한 위안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안을 하나 드립니다. 약간 느슨한 협회를 만드는 거예요. 삶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런 모임을 만들어서 각자 상황을 얘기해보면 어떨까. 세상의 모든 일루수한테 마음을 조금 보내주는 거죠. 마음을 조금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서로 생각하는 거죠.(212)”


#이슬아 #끝내주는인생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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