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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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을 읽었다. 이전의 에세이를 통해서 그리고 SNS를 통해서 저자가 식물 집사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식물을 돌보는 이야기의 책까지 낼 정도로 매니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식물이라는 명사에 형용사형인 접미어를 붙인 제목은 이 에세이에 담긴 식물의 생태를 통해 관조한 인간 삶의 낙관적 자세를 이끌어내고 있다. 지금 앉아 있는 책상의 한 귀퉁이에도 선물 받은지 1년이 넘은 그래서 이름도 까먹은 식물 하나가 물이 가득한 유리 화분에서 신기하게도 잘 견디고 있지만, 화초나 꽃을 키우는 데에는 영 관심이 없던 나에게 저자의 에세이는 새로운 환기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장군이를 떠나보내고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심경을 토로한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잠시 눈을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소중한 존재의 상실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과 실제로 겪어 보는 거의 괴리가 너무나도 커서 아무리 설명하고 대체하려고 해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갑자기 눈 주위의 열기가 느껴지며 시야가 흐릿해지며 요통치는 감정이 밀려올 때면 살아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란 무력함과 더불어 염세적인 생각에만 머물게 만든다. 모든 게 다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시간의 연속은 그동안 부단히 쌓아왔던 일과 관계들의 모라또리움을 선언하며 자꾸만 빈 구석으로 나를 몰아가는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진다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지만 아주 짙은 슬픔의 물감에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며 옅어지도록 만드는 희망과 낙관의 시간들이 과연 나에게도 올 것인지 아직은 두렵기만 하다. 마음이 몹시도 힘들고 울쩍한 밤을 보내다 애써 페이지를 넘기며 집중하던 차에 '우리들의 세컨드 스텝' 부분을 읽게 되었다.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삼촌을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에 무슨 감정이 일었다 사라지는지, 완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의사로부터 매번 확인하고 내려가는 막냇동생을 바라보는 누나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없이 슬프고 아프기만 한지, 아니면 엄마가 살아온 세월 동안 반복된 그 무수한 내일들 덕분에 실버 라이닝 같은 희망과 낙관이 빛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엄마를 지켜보며 나 역시 맞게 될 몇십 년 후의 일상에 대해 어렴풋이 배워갈 뿐이다.(95-96)"

그리고 저자가 장군에게 씌워주고 싶은 작은 화관을 찾다가 뭐에 쓸거냐는 말에 주저하는 가운데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정확히 의도를 설명한다. 

"내가 아는 한 식물들의 세컨드 스템은 아주 적절한 거리 속에 유지된다. 순 하나가 올라왔다고 원줄기가 도태되지 않고 원줄기가 새로 나온 순을 경계하여 고사시키는 일도 없다.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다음 스텝에만 충실한 식물들은 때론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진행 방향을 알고 있는 듯 느껴지곤 한다. 그다음에 대해 숙고하고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자 영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라난다. 

내일부터 엄마에 대한 걱정은 조금씩 덜기로 한다.(97)" 


상실의 경험은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 또 다시 비슷한 일을 겪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낸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것을 내가 조율하고 싶은 전에 없던 욕구가 강렬히 밀려오고, 조금이라도 균형이 깨질 것 같은 위기가 감지될 때에는 불안함에 휩싸여 어서 빨리 안정을 찾기를 바라는 조바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내가 아무리 바둥거려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깨다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세컨드 스텝'에 나온 내용들은 마치 하느님이 내 마음을 그동안 쉼없이 지켜보고 계심을 알려주는 것처럼 다가왔다. 우리가 삶에서 겪어내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은 결국은 소멸이라는 귀결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각자가 짊어져야 할 몫과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나의 세컨드 스텝은 소중한 나의 또 다른 줄기를 향해 지속적인 응원과 애정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희망과 낙관으로 나의 슬픔은 어느덧 엿어지고 비슷한 일을 겪게 될 누군가에게 새로운 스텝을 밝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힘이 생겨나지 않을까 기원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억이란 생활의 잔류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기억의 톤, 감정, 의미를 환기하며 글을 쓰는 게 내 일이고 그 환기의 힘으로 현재의 어려움들을 이겨나가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기억 모두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혹시 어느 면에서는 그 역시 '호더적' 패턴이 아닐까. 마침내 기억과 추억은 구분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추억하는 것은 좀더 주체적인, 단순한 환기에서 더 나아간 의지적 행위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식물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147)"


"<내 정원의 붉은 열매>의 '나'는 서로에 대한 열정적 오해 속에 결국 사이가 멀어진 사람들에 대해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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